그래미가 인정한 '금세기 최고의 소울 카리스마' 메이시 그레이
메가히트 싱글 'When I See You'등 신곡 12곡 수록
* 주목! 히든트랙 (13번 트랙)수록
Macy Gray / Trouble With Being Myself
- No Trouble With Being 100% Original Macy Gray
퉁명스럽게 생긴 두툼한 입술과 성난 듯 뻗쳐 나온 사자갈기 모양의 헤어 스타일, 그리고 조금은 망가진 구부정하고 군살 많은 몸매 등은 아무래도 우리가 생각하는 정상급 흑인 여성 뮤지션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게다가 1970년 9월 9일 생이니, 이건 빼도 박도 못하는 30대 아줌마 나이인 셈이다. 심지어 슬하에 자녀가 셋이나 되고, (현재 재혼해서 잘 살고 있기는 하지만) 이혼 경력까지 꿰어 차고 있으니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다.
목소리도 감미로운 소울 발라드나 파워 넘치는 폭포수 고음 발성과는 영 거리가 멀어, 남대문 노점상에서 열흘 정도 목청껏 외쳐 다 쉬어버린 '미운 오리새끼' 목소리다. [도널드 덕] 만화에나 어울릴 법 한 음색 아니던가. 미국 학부모들이 경악할 노골적인 성 담론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실실 웃어가면서 툭툭 내뱉는다. 참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못 생긴 얼굴에 목소리마저 괴상해, 땅꼬마 시절부터 따돌림 당하기 일쑤였던 바로 그녀가 바로 21세기 최고의 네오 소울 여성 보컬리스트로 꼽히는 메이시 그레이(Macy Gray)인 것이다.
나탈리 매킨타이어(Natalie McIntyre)라는 촌스러운 이름의 오하이오(Ohio) 주 캔톤(Canton) 토박이 어린 시절의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음악을 좋아한 부모님 덕에 귀동냥으로 들었던 마빈 게이(Marvin Gaye), 다이아나 로스(Diana Ross),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 그리고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 같은 고전 소울 아티스트들의 LP를 벗삼아 지내는 일 뿐이었다. 7살 때부터는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며 어설프게나마 흉내도 좀 내보고 또 자작곡을 만들기도 했다. 올드 스쿨 힙 합 사운드에도 경도되어 있었다. 10대 시절에는 기숙사 생활을 했던 덕에, 백인 취향의 로큰롤에도 심취해 볼 수 있었다.
1995년에 LA로 옮겨온 그녀는 [남가주 대학(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서 시나리오를 공부하는 틈틈이 음악 하는 친구들에게 노래 말을 써주기도 했는데, 데모 작업에 불참한 리드 싱어 대타로 마이크를 잡은 나탈리의 독특한 음색은 이들 밴드 멤버들을 사로 잡았다. 좀도둑 생활을 했을 정도로 빈곤했던 생활 여건이 조금이라도 나아질까 싶어, 대뜸 제안을 수락했고 이후 호텔 바와 클럽 등지에서 노래하게 되었다. 입 소문이 날개를 단 듯 퍼져 나갔다. 그래서 사람 일은 한치 앞을 내다 보기 어렵다는 것일까. 심한 콤플렉스로 대인 공포증까지 겪게 만든 그 특이한 목소리. 그것은 한 때 그녀를 세상에서 격리시키더니 이젠 그녀를 다시 세상에 나오게 만든 동인(動因)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후 자신만의 재즈 그룹 위 아워스(The We Ours)를 결성해 작은 커피숍 등지를 순회하며 공연을 가졌다. 태중에 세 번째 아이가 자라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뒤늦은 출발에는 그만큼 큰 시련이 이어졌다. 그녀에 관심 보인 몇몇 음반사 중 내심 기대가 컸던 [애틀란틱(Atlantic)] 레이블 담당자로부터 거절 당하는 비보를 접할 즈음, 남편 마이클 하인스(Michael Hines)와도 결별하게 되었다. 그녀는 결국 낙향의 길을 택했다. 하지만 출산 후 안정과 의욕을 되찾은 그녀는 다시 LA 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후 [좀바(Zomba)] 레이블과 체결한 퍼블리싱(publishing) 계약 덕분에 1998년 4월, [소니(Sony)] 휘하의 [에픽(Epic)] 레이블을 정식 파트너로 삼을 수 있었다. 고향 캔톤 시절의 이웃사촌 이름인 메이시 그레이로 예명을 대신했다. 이후 근 1년간 이어진 스튜디오 칩거 끝에, 훗날 초대형 신인으로 꼽힐 그녀의 데뷔작 모양새가 조금씩 잡혀가기 시작했다. 그녀가 고전 소울에 힙 합과 록 사운드를 가미한 네오 소울 장르에 주력한 것은 100% 자의적인 선택이었다. 그녀가 듣고 자란 음악이 바로 그런 것들이었으니 말이다.
1999년 7월에 출시되어 우선 [빌보드(Billboard)] 'Hit Seekers' 앨범 차트 1위에 오른 그녀의 데뷔 앨범 [On How Life Is]에 평단의 전폭적인 지지가 이어졌다. 하지만 팬들의 반응은 조금 더딘 편이어서, 데뷔 싱글 'Do Something'이 'R&B/힙 합 싱글 차트' 63위에 오른 정도에 그쳤다. 그런 그녀의 음악성에 먼저 주목한 것이 바로 [그래미(Grammy)] 심사위원단이었다. 일반 대중들은 잘 알지도 못하던 그녀에게 '최우수 신인상' 그리고 '최우수 여성 R&B 보컬리스트' 부문 후보 자리를 내어주었으니 말이다.
평생 한 번 뿐인 '최우수 신인상' 트로피를 크리스티나 아길레라(Christina Aguilera)에게 빼앗긴 대신, 후속 싱글 'I Try'가 라디오 청취자들에게 강하게 어필하며 인기몰이에 나섰다. 팝 싱글 차트 5위에 안착했고, 팝 앨범 차트 4위에 올랐으며, 3백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을 정도다. 수록 곡 'Why Don't You Call Me'가 'Adult Top 40' 차트 25위에 올랐다. 이듬해 거행된 2001년 [그래미]에서 '최우수 여자 팝 보컬 연주' 부문을 수상했고, 영국에서도 [브릿 어워즈(Brit Awards) 2000] 선정 '최우수 여성 해외 아티스트'와 '최우수 해외 신인' 부문을 차지했다.
같은 해 하반기에는 정상급 빅 비트(Big Beat) 아티스트 팻보이 슬림(Fatboy Slim)의 [Halfway Between The Gutter And The Stars] 그리고 3인조 얼터너티브 랩 그룹 블랙 아이드 피스(Black-Eyed Peas)의 신작 앨범 [Bridging The Gap]에 게스트 보컬로 참여했고, 영화 [러시 아워(Rush Hour) 2] 사운드트랙에 올드 스쿨 힙 합 아티스트 슬릭 릭(Slick Rick)과의 듀엣 곡 'The World Is Yours'를 기여하는 등 화려한 활동을 펼쳤다. 덴젤 워싱턴(Denzel Washington) 주연의 [트레이닝 데이(Training Day)]에 조연급 배우로 데뷔한 것도 이례적인 일이다.
데뷔 앨범에서 피오나 애플(Fiona Apple) 등과 작업했던 앤드루 슬레이터(Andrew Slater)를 메인 프로듀서로 맞이했던 그녀는 2001년 9월 출시한 소포모어(sophomore) 앨범 [The Id]를 위해 당대 최고의 미국인 록 프로듀서 릭 루빈(Rick Rubin)을 영입하는 영민함을 보였다. 한층 깊어진 소울 사운드가 록 음악의 텍스처로 포장될 수 있었다.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의 기타리스트 존 프루시안테(John Fruciante)가 선사한 테크노 & 힙 합 록 넘버 'Psychopath'가 그 좋은 예가 된다. 전작의 'I Try' 그리고 'Still' 같은 곡을 그리워할 팬들을 위해 에리카 바두(Erykah Badu)와외 듀엣 곡 'Sweet Baby'를 수록하기도 했다.
앨범 출시를 앞두고 고향에서 거행된 [프로 축구 명예의 전당 헌액식(Pro Football Hall Of Fame)]에서 'The Star Spangled Banner'를 부르다 가사를 틀려 관중의 야유를 당하는 수모를 겪은 일이 외신으로 크게 보도된 여파가 남아서 였을까. 변변한 싱글 히트 곡도 없었고, 앨범 판매고 역시 백만 장을 넘어서는 정도에 그쳤으며, 팝 앨범 차트 11위에 오르는 정도가 그녀가 거둔 수확의 전부였다. 잘 해볼 생각에 과욕을 부린 것이 조변석개하는 팝 팬들에 외면 당할 빌미를 제공한 것이라는 평이 지배적이었다.
그 밖에 작년 한해, 블록버스터 영화 [스파이더-맨(Spider-Man)]에 극중 가수 역으로 출연하고, 산타나(Santana)의 신작 앨범 [Shaman]에 게스트 보컬로 참여하는 정도의 과외 활동을 펼쳐 보인 바 있다. 하지만 그 정도를 제외하면, 딱히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가 2003년 봄을 맞이해 의욕적으로 선보이는 대망의 3집 앨범이 한층 더 반갑게 다가오는 지 모르겠다. 매 2년마다 한 장씩 정규 앨범을 출시하는 셈이지만, 이제는 익숙해진 이름이라 그런지 더더욱 기다림도 컸고 그래서 더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데뷔 당시에는 물론 충분히 충격적인 사운드로 다가왔지만 지금에 와서 반추하건대, 그녀의 본색을 제대로 드러내 보이지는 않은 듯싶은 데뷔작에 대한 아쉬움, 반면 지나치게 오버한 탓에 제대로 어필하지 못한 안타까움이 그만큼 더 클 2집에 대한 미련이 컸던 탓일까. 이번 신작 앨범은 [The Trouble With Being Myself]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 자기 자신의 음악 색깔을 찾기까지 겪어야 했던 산고의 시간들을 떠올려볼 수 있다. 게다가 그녀는 이제 싱어송라이터라는 명함에 이어 셀프 프로듀서라는 자랑스러운 이름표까지 꿰어 차게 된 것으로 보인다.
보이즈 투 멘(Boyz II Men), 핑크(Pink), TLC 등의 성공을 이끌어 낸 R&B계의 명장 댈러스 오스틴(Dallas Austin)이 전폭적인 후원을 아끼지 않았지만, 역시나 지휘봉은 그녀의 차지였던 것으로 보인다. 장족의 발전이다. 조금 더 트렌디(trendy) 한 R&B 사운드를 대폭 수용해, (아직 만족스럽지 않아 하실 분들이 더 많겠지만) 적당히 대중과 손잡은 일도 단박에 확연히 감지되는 중대한 노선 변화다. 전체적으로 보아 가사도 많이 순화되고 곡 분위기도 핑크 빛이 완연하다. 애절한 사랑 노래들도 제법 발견되지만, 결국 이래저래 사랑 노래들이 늘었다.
마이클 잭슨, 머라이어 캐리, 아이슬리 브러더스(The Isley Brothers), 시티 하이(City High), 뮤지끄(Muziq Soulchild) 등과 작업한 이력을 가진 안드레 해리스(Andre Harris) 그리고 그와 찰떡 궁합을 이루어왔으며 저스틴 팀버레이크, 질 스캇(Jill Scott) 등의 앨범을 빛내온 비달 데이비스(Vidal Davis) 정도를 제외하면 그다지 알려진 이름들도 찾아보기 힘들다. 흡사 메이시 그레이라는 이름의 밴드를 결성한 양, 함께 작곡에 참여한 뮤지션들이 연주도 아울러 소화해, 이른바 DIY 정신에 충실했다.
전작들에서 무척이나 화려했던 게스트 진도 최대한도로 축소시켰다. 뉴욕 출신의 관록파 언더그라운드 래퍼 패로어 먼치(Pharoahe Monch)가 쉽게 구별 가는 이름이다. 댈러스 오스틴 특유의 터치가 은근하게 풍겨오는 첫 싱글 'When I See You'는 상큼한 봄 햇살처럼 화사하게 펼쳐지는 매력만점의 구애가(求愛歌)다. 일부러 꾸미지 않고 자연스럽게 연주하고 또 편안하고 즐겁게 불렀다는 느낌이 강하다. 펑키(funky)하게 튕기는 기타 리프와 산뜻한 피아노 연주가 참 잘 버무려져 있다.
흡사 루츠(The Roots)의 음악을 듣는 듯, 어쿠스틱 힙 합의 진수를 선보이는 'It Ain't The Money'가 바로 앞서 언급한 패로어 먼치의 게스트 랩 보컬이 등장하는 곡이다. 그리고 애써 참아가며 공개하지 않았던 깜짝 초대 손님을 이제서야 공개하려 한다. 실험 정신 충만한 90년대 모던 록 음악의 '천재'로 불리며 신 세대 햏자(!)들의 찬가로 꼽히는 'Loser'를 히트 시킨 주인공이기도 한 그, 바로 다름 아닌 벡(Beck Hansen)의 보컬 피쳐링(featuring) 및 공동 작곡이 바로 그것이다. 오! 신이시여!
단박에 청자를 사로잡는 호소력 넘치는 보컬 솜씨를 들려주는 미드 템포 복고풍 소울 넘버 'She Ain't Right For You'는 남의 남자를 짝사랑하게 된 비애로 밤잠 못 이루는 여인의 마음을 잘 표현해 냈다. 아울러 그러한 애절함을 배가 시키고자 삽입된 오케스트레이션(orchestration) 편곡 역시 댈러스 오스틴이구나 싶게 만드는 부분이다. “널 위한 진정한 사랑은 오직 나만이 줄 수 있다.”고 설파하는 'She Don't Write Songs'도 같은 견지에서 해석이 가능한 곡이다. 조금 더 느긋하고 여러 면에서 특유의 유머 감각이 발휘된 점이 조금 다를까. 이 두 곡은 그녀의 대표 히트곡 'I Try'의 명성을 이어갈 것이 확실시 되는 정말 좋은 곡들이다.
메이시 그레이 스타일 네오 소울 사운드의 진수를 보여주는 'Things That Made Me Change', 힙 합과 재즈 그리고 소울과 록을 아우르는 'Come Together'는 혼(horn) 섹션을 추가 편성해 풍성함을 배가 시킨 점이 돋보인다. 일상 속에서 발견되는 작고 소중한 행복에 대한 찬가 'Happiness', 전성기의 다이아나 로스를 연상시키는 [모타운(Motown)] 소울 사운드 구현에 충실한 'Jesus For A Day', 레게(reggae) 리듬을 차용해 왔지만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곁들여 마냥 즐겁게 듣기에는 조금 어두운 느낌을 드리우고만 'Childhood Memories' 등도 함께 발견된다.
'사랑 만이 해답'이라 노래하는 그녀를 만나볼 수 있는 밝은 느낌의 곡 'Speechless' 그리고 메이시 그레이가 홀로 완성한 뮤지컬 풍의 심플한 곡 'Screamin'' 역시 수작이다. 복잡한 리듬 트랙 연주와 편곡을 자랑하는 'Every Now And Then'의 뒤를 이어, 아 카펠라(a capella)로 완성된 가스펠 풍의 히든 트랙이 한 곡 등장한다는 사실은 앨범을 구입한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작은 기쁨이다. 적당히 통일성을 주면서 다양한 입맛을 고루 선보인 성찬이라는 점이 특히 마음에 흡족하다.
1. When I See You
2. It Ain't The Money (Feat. Pharoahe Monch)
3. She Ain't Right For You
4. Things That Made Me Change
5. Come Together
6. She Don't Write Songs
7. Jesus For A Day
8. My Fondest Childhood Memories
9. Happiness
10. Speechless
11. Screamin'
12. Every Now And Then
13. Hidden Tr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