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한 스윙의 나래 위에 펼쳐지는 클래식의 선율. 살며시 속삭이는 듯한 우아한 클래식의 향연! 재즈 피아니스트 마시모 파라오의 [Ave Maria]
우리는 본 작품을 통해 클래식 원곡의 기품 있는 멜로디들을 떠올릴 수 있으면서 또 한편으로는 릴랙스 하면서도 긴장감 넘치는 재즈의 묘미를 담뿍 느낄 수 있다.
살며시 속삭이는 듯한 우아한 연주
마시모 파라오 트리오(Massimo Farao Trio) / Ave Maria
국내에 클래식 곡들을 재즈로 편곡해 연주하였던 ‘Adagio’를 시작으로 세계적인 영화음악가 엔리오 모리꼬네(Ennio Morricone)의 곡을 재즈로 연주한 ‘Greatest Hits Of Ennio Morricone’라는 두 장의 시리즈 음반 그리고 전설적인 드러머 지미 콥(Jimmy Cobb)의 ‘Tribute To Wynton Kelly & Paul Chambers’, 지미 빌로티(Jimmy Villotti)의 ‘Live In Cantina Bentivoglio’에 참여하며 이름을 알린 이태리 출신의 재즈 피아니스트 마시모 파라오가 리드하는 트리오의 새 음반이 국내에 소개된다. 새롭게 라이선스로 발표되는 본 작은 전작 [Adagio]의 연장선상에 있는 ‘Classic In Jazz’ 음반. 다시 한번 마시모 파라오 트리오는 기품 있는 클래식 곡들을 스윙하며 정감어린 연주로 풀어내고 있다.
- 클래식과 재즈의 친절한 만남
클래식을 재즈로 연주하는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시행되어온 작업. 국내에도 높은 지지를 얻으며 거의 해마다 내한공연이 이루어질 정도로 확실한 인기를 확보한 프랑스 출신의 피아니스트 자끄 루시에(Jacques Loussier)를 위시하여 플룻, 바이올린, 기타, 첼로 등의 악기들과 크로스 오버(Cross Over) 협연을 펼쳤던 끌로드 볼링(Claude Bolling) 그리고 ‘Rokoko Jazz’앨범으로 전세계 음악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던 루마니아 출신의 에우젠 씨체로(Eugen Cicero) 등이 이 분야의 명인들로 자리하고 있다. 여기에 ‘MJQ’(모던 재즈 쿼텟의 약자)란 그룹 활동으로 널리 알려진 존 루이스(John Lewis) 역시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존 루이스는 재즈 피아니스트였지만 클래식에도 깊은 관심을 갖고 바흐 같은 작곡가의 작품을 재해석하거나, 클래식 이론을 재즈에 적용하였다. 사실 과거 재즈 뮤지션들 몇몇은 존 루이스 처럼 클래식 작품과 그 이론에 영향을 받고 이것을 재즈에 적용하려는 노력을 많이 기울였다. 재즈와 다른 성격을 지닌 장르지만 ‘음악적 기본’에 가장 충실한 음악이 바로 클래식이었기 때문이다.
마시모 파라오 트리오는 바로 이러한 뮤지션들의 영향 속에 클래식 곡들을 재즈화 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나 재미있는 사실은 이들이 연주하는 클래식 작곡가들 혹은 작품들이 선배 뮤지션들에 의해 이미 시도된 바 있던 레퍼토리가 대부분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이 작업이 어느 정도 한정된 듯한 선곡을 보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일단 재즈로 가장 많이 연주된 클래식 작품의 주인공은 바로 바흐이다. 또 비발디, 드보르작, 쇼팽, 라벨, 차이코프스키, 엘가, 사티, 비제 등의 작곡가들의 곡들도 재즈 뮤지션들에 의해 많은 선곡이 이루어졌었다. 아마 클래식을 재즈로 편곡한 음악에 관심을 갖고 있는 분들이라면 재즈 뮤지션들이 선곡, 편곡하는 곡들이 익히 잘 알려진 멜로디를 갖고 있거나 혹은 그러한 구조를 가진 곡들이 많음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러한 점 때문에 클래식을 재즈로 편곡해 연주하는 작업은 한계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해봤을지도 모르겠다. 글쎄 딱 꼬집어 이것을 이 작업의 한계라 할 수는 없을 텐데, 클래식의 향이 풍기면서 동시에 재즈의 향도 배어있게 또 이것을 자연스레 음미할 수 있게 하려면 역시 모태가 되는 클래식 곡의 이해가 우선되어야 한다. 이런 까닭에 가장 귀에 익은 작품들이 자주 선곡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래서 어찌 보면 이 작업은 대단히 대중의 음악적 인식적인 면을 고려하며 진행되어왔다 할 수 있을 듯 싶다. 혹시 좀더 연주자의 해석력이 강한 작품들을 원한다면 유리 케인(Uri Caine)이나 리치 바이라흐(Richie Beirach)같은 재즈 뮤지션들이 발표한 음반들을 접해보면 좋을 듯. 이들은 클래식과 재즈를 아주 다른 향과 맛으로 배합해내고 있다.
- 흥겨운 스윙에 녹아든 클래식 멜로디
‘Adagio’처럼 이번 ‘Ave Maria’에도 매우 대중적인 클래식 작품들이 선곡되었다. 대충 훑어보면 베토벤을 필두로 엘가, 슈베르트, 비제, 하이든, 쇼팽, 드보르작, 바흐, 차이코프스키 그리고 라벨 등 매우 다양한 작곡가들의 작품들이 선택되었다. 클래식에 큰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면 아마 각 곡의 제목들이 그리 익숙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음반이 플레이 되고 나오는 음악들은 어디선가 한번 아니, 몇 번은 들어봤을 그런 멜로디들일 것이다. 필자는 일부러 곡 제목을 안보고 음반을 먼저 들었는데 13곡을 다 들을 때까지 낯설기보다는 너무나 친숙한 느낌을 받았다. 정말 ‘교양’ 혹은 ‘가장 기본적인’ 클래식 에 속하는 곡들만 수록되어 있다고 봐도 될 법한 그런 선곡인 것이다. ‘대중의 음악적 인식적 측면’에서 본다면 아마도 이 이상의 좋은 선곡은 없을 듯.
하지만 선곡 된 곡들은 하나의 텍스트일 뿐 우리는 이제 마시모 파라오와 그의 트리오가 이 곡들을 재즈로 엮어가는 과정을 귀로 관찰해봐야 한다. ‘Adagio’에서 그랬듯 대체로 마시모 파라오의 편곡과 연주는 원곡의 멜로디를 보존하며 여기에 재즈의 맛을 가미한 릴렉스 한 연주와 경쾌한 스윙 리듬을 특징으로 한다 할 수 있다. 특히 이 트리오의 연주는 리더인 마시모의 피아노 연주가 거의 모든 곡의 스케치와 색칠까지 도맡아 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에 의해 주도되는 면이 강하다. 트리오의 긴밀한 인터플레이에 의한 접근보다는 무리 없고 과장 없는 접근을 택한 것이다. 한편 너무나 유연하게 연주되는 마시모 파라오의 피아노 선율을 따라가다 보면 살며시 미소를 짓게 되는데 바로 클래식 멜로디를 연주하고 이를 유지한 상태의 솔로를 선보이는 듯 하지만, 여기에 잘 알려진 재즈 스탠더드 곡들을 아주 교묘하며 적절히 곁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11번 곡으로 수록된 바흐의 ‘Toccata E Fuga In D Minor’가 그렇다. 이 곡의 솔로 중에 마일즈 데이비스(Miles Davis)의 명반으로 일컬어지는 ‘Kind Of Blue’의 첫 곡인 ‘So What’의 멜로디와 유사한 코드 콤핑을 언뜻 접할 수 있다. 바흐의 곡과 마일즈의 곡을 모두 알고 있다면 아마 이 곡에서 두 개의 곡이 하나로 오버랩 되는 듯한 느낌을 받을지도. 이밖에도 몇몇 곡들의 피아노 솔로 안에서 낯익은 재즈 스탠다드들을 찾을 수 있다.
클래식 팬들에게는 흔하디 흔한 멜로디의 클래식이겠지만 재즈라는 다른 분위기 속에서 원곡과 다른 느낌을 얻을 수 있으리라 보며, 반대로 재즈 팬들은 이들이 재즈 풍으로 연주한 부분에서 혹은 클래식 멜로디 안에 숨겨놓은 재즈 스탠더드들을 찾는 것에서 색다른 감상의 재미를 느껴볼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게다가 이들의 연주는 은근하며 정감어린 기분을 고취시키기에 충분하다. 수록된 13곡들을 들으며 익숙한 멜로디에 한번 웃고, 스윙한 리듬에 다시 한번 웃을 수 있는 연주인 것이다. 그만큼 마시모 파라오 트리오의 해석과 연주는 클래식과 재즈의 가장 기분 좋은 만남을 적절히 표현하고 있다.
-마시모 파라오 트리오의 바이오그래피
1965년 이탈리아 제노바 출생의 피아니스트 마시모 파라오와 1963년생의 베이시스트 알도 주니노가 주축이 되어 최초의 마시모 파라오 트리오가 결성되었다. 이들은 1990년 이태리의 거장 드러머 중 한 명인 지아니 카졸라(Gianni Cazzola)와 트리오를 이뤄 스플래쉬 레이블에서 첫 데뷔작 [For Me]를 발표하며 활동을 시작하였다. 95년에는 이태리의 유능한 트럼페터로 인정 받으며 프랑스 블루노트 레이블에서 활동하고 있는 플라비오 볼트로(Flavio Boltro)를 게스트로 맞아 두 번째 앨범 [Ciao Baby]를 발표하였다. 마시모 파라오는 자국 내에서의 활동하는 한편 재즈의 본고장인 미국에서도 다양한 활동을 펼쳤는데 거장 클라리넷 연주자인 토니 스캇(Tony Scott)부터 바비 더햄(Bobby Duhram), 잭 맥더프(Jack McDuff), 지미 콥(Jimmy Cobb), 냇 애덜리(Nat Adderley), 아치 쉡(Archie Shepp), 케니 버렐(Kenny Burrell), 게리 바츠(Gary Batz), 제시 데이비스(Jesse Davis) 등과 연주, 투어를 함께하는 한편 앨범 레코딩에도 참여하였다. 또한 마시모 우르바니(Massio Urbani), 지미 빌로티(Jimmy Villotti), 피에트로 토노로(Pietro Tonolo), 엠마뉴엘 시시(Emanuele Cisi) 등 자국의 뮤지션들과 밀접한 교류를 펼치기도 하였다. 점차 이탈리아에서 프랑스, 독일, 코르시카, 오스트리아, 핀란드, 두바이 그리고 미국 등지로 활동반경을 넓혀갔던 이들은 최근 일본에서 ‘Piano Lounge’라는 시리즈로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2001년부터 마시모 파라오는 자국의 AZZURRA 레이블에서 음반을 발표하며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