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생 리더 요나 토이바넨(피아노), 1982년생 타파니 토이바넨(베이스), 1981년생 올라비 로우히부오리(드럼)로 이루어진 핀란드 재즈신의 뉴 리더 "요나 토이바넨 트리오" 데뷔작!!
이미 국내 재즈 매니아들 사이에 ECM 레이블의 트리오 밴드들과 제2의 트리오 토이킷 (Trio Töykeät)으로 불릴 만큼 한치의 흐트러짐 없는 호흡력과 숨 막힐 정도의 뜨거운 열정, 화려한 연주로 북유럽 재즈계 신동으로 등장한 요나 토이바넨 트리오가 10대 나이에 걸맞지 않는 완숙미를 보여주었던 충격의 화제작!
"주시할 수밖에 없는,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의 연주자들이 제대로 된 물을 만난 형국이다." -김 현준 (재즈 비평가)-
한국반 보너스 3곡 추가 수록
핀란드 재즈의 현재와 미래 - 요나 토이바넨 트리오 !!
한 나라의 재즈 수준을 결정하는 잣대는 여러 가지가 있다. 연주자든 대중이든 ‘저변’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을 수 없는데, 일단 그 나라에서 제작되는 작품 및 공연의 질과 양이 있겠고, 이렇게 만들어진 음악이 세계적인 흐름이나 수준과 어떻게 대비되는가 하는 부분도 빼놓을 수 없다. 여기까지가 상식선에서 생각할 수 있는 조건들이라면, 보다 근본적으로 얼마나 풍부하고 효과적인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는가 하는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 수준 높은 작품들이 활발하게 제작되고 있는 2006년의 우리 재즈계를 생각해 보자. 앞서 전제한 조건에서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 발견되는 바, 앞으로 10년이 지난 어느 날 우리는 자랑스레 한국 재즈의 현실을 이야기할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그런데 교육의 측면에서 바라보면 아직도 우리에겐 산더미 같은 숙제가 남아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우리 재즈계의 차세대로 발돋움한 젊은 연주자들, 그러니까 주로 2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에 걸쳐 있는 이들은 대부분 외국에서 학습한 것을 바탕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순수하게 한국 음악 교육의 힘으로 탄생시킨 연주자는 턱없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물론 연주자의 수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지만, 재즈계 전체의 발전을 위해서는 모던 재즈의 영역에서 관찰되는 음악인이 탄탄한 저변을 형성해야 한다는 점에서 우리의 재즈 교육은 분명 재고해야 한다. 서설이 길었지만, 이렇듯 교육의 중요성을 새삼 떠올린 것은 요나 토이바넨(Joona Toivanen) 트리오의 음악을 마주한 데서 비롯됐다. 작곡이든 연주든, 이 트리오의 존재는 핀란드의 재즈 교육이 어디에 이르러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물론 재즈를 듣는 것이 월드컵 응원하듯 나라 간의 경쟁을 앞세운 행위는 절대 아니지만, 언제까지고 무작정 외국의 음악만 수입해서 들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이 앨범은 신작이 아닌, 지난 2000년에 녹음된 요나 토이바넨 트리오의 데뷔작이다. 따라서 우리는 6년 전의 시점으로 자리를 옮겨 그 성과를 논할 필요가 있을 텐데, 당시라면 밴드의 세 멤버들이 아직 성인이 되기도 전이었다. 리더인 피아니스트 요나 토이바넨과 드러머 올라비 로우히부오리(Olavi Louhivuori)는 1981년 생이고, 피아니스트의 친동생인 베이시스트 타파니 토이바넨은 1982년 생. 그러니까 이 작품이 녹음됐을 때 세 사람은 18세와 17세였다. 혹시라도 앨범을 듣기 전에 이 글을 먼저 읽는 이는 진솔한 감상에 선입견을 갖게 될까 우려스럽지만, 어느 누가 이 연주를 놓고 10대 소년들의 것이라 예상할 수 있겠는가. 물론 우리는 어린 나이에 화제를 불러 모은 연주자 중 상당수가 별 볼 일 없는 성년의 길을 걸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간혹 앳된 얼굴의 연주자가 등장하여 매체의 호들갑을 유도하지만, 재즈는 마냥 공격적인 테크닉으로 이목을 집중시키는 10대 연주자의 묘기대행진이 아닌, 한 음을 누르더라도 온갖 고심의 흔적이 배어 있는 무명의 60대 연주자에게 더 깊은 정을 느끼게 하는 음악이다. 이런 전제 하에 앨범을 마주하면, 요나 토이바넨 트리오의 음악은 기대하지 못한 신뢰를 느끼게 하며 핀란드재즈의 인프라가 다른 유럽의 여러 재즈 강국에 비해 절대 뒤지지 않을 것이라는 심증을 갖게 한다. 핀란드 출신의 밴드를 떠올리자면 최근 몇 년 사이 우리나라 재즈 팬들의 감성을 자극한 트리오 토이킷(Trio Töykeät)이 가장 먼저 생각나지만, 앨범 한 장만으로 단순 비교를 해 봐도 요나 토이바넨 트리오의 미래는 이 선배들이 지금까지 이룬 업적보다 더 밝을 것임을 예감할 수 있다. 내가 이들의 연주에서 가장 먼저 주목한 것은 바로 음악을 대하는 마인드가 매우 자유롭다는 부분이다. 대다수의 촉망 받는 젊은 연주자들이 이를 성취하기 위해 테크닉을 전면에 내세우는 경향이 있는데, 요나 토이바넨 트리오에게서는 그 이외의 또 다른 무엇, 그러니까 주어진 숙제를 성공적으로 마쳐야 한다는 도전 정신이 아닌, 그들 스스로 이 음악을 기쁜 마음으로 즐기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는 얘기다. 마치 앨범 안에 실린 사진 속의 젊은이들이 얼굴 가득 짓고 있는 화사한 미소처럼. 그러나 막상 앨범에 실린 곡들을 유심히 들어 보면 이들이 모든 면에서 매우 진지한 자세를 견지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첫 곡인 ‘Kantele’(핀란드 전통악기의 이름에서 따온 제목). 짤막한 주제에 이어 수려하게 펼쳐지는 요나 토이바넨의 솔로가 집요하다고 생각될 만큼의 강한 집중력을 선보인다. 어찌 보면 이것이 이 트리오의 음악성을 대변한다고도 할 수 있겠는데, 대부분의 곡에서 요나 토이바넨은 한 곡 안에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으려하지 않고 핵심을 강조한 채 특정한 이미지를 보다 확연히 각인시키려 애쓰고 있다. 두 번째 곡인 ‘Pale Morning Dun’이나 세 번째 곡인 ‘Kertomus Metsästä’(숲에서 전해진 이야기) 같은 발라드도 마찬가지다. 사실 이러한 특성은 북유럽 출신의 여러 피아노 트리오에게서 유사하게 관찰되는데, 1990년대 이후 자리한 현대 재즈의 한 경향으로 봐도 무방하고 요나 토이바넨 트리오가 지향하는 스타일이 가까운 선배들의 영향을 거스를 수 없었다 해도 좋을 것이다. 앞선 세 곡에 비해 ‘Mietomieli’(부드러운 마음)은 옛 명인들이 선보인 모던 재즈의 경향에 가까운 경우다. 물론 요나 토이바넨 트리오의 또 다른 개성을 작곡에서 찾을 수 있는 만큼 과거의 음악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는 식의 얘기는 적합하지 않다. 작곡 얘기가 나왔으니 이 부분을 짚고 넘어가자. 전체적으로 요나 토이바넨 트리오의 곡들은 최근 들어 우리에게 어필했던 다른 북유럽의 젊은 피아노 트리오들에 비해 진행 자체가 덜 명료하다. 따지고 보면 상대적으로 다른 밴드들에게서는 다분히 팝적인 감각의 곡들을 자주 접해왔기 때문에 빚어진 느낌일 텐데, 우리나라 재즈 팬들에게 사랑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My Place’마저도 마냥 ‘친절한’ 진행으로 듣는 이의 기대를 채우기에 급급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나는 이 부분을 요나 토이바넨 트리오의 가장 큰 장점이라 얘기하고 싶다. 이는 작곡과 연주 모두에서 시종일관 밀도 높은 연주를 선보이며 앨범의 백미로 자리한 ‘Numurkah’(호주의 도시명)에서 유감없이 발휘된다. 만약 테마를 통해 이 곡의 모든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면 분명 몇 마디의 주제 멜로디를 더 필요로 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끝까지 그 마지막 몇 개의 음정을 선사하지 않은 채 나머지 부분은 이어지는 솔로를 통해 해소한다. 따라서 이런 식의 접근은 작곡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일종의 절제미라 할 만하며, 나이답지 않은 원숙미를 드러낸 것에 다름 아니다. 곡이 마무리될 즈음 계속해서 이어지는 다음 곡 ‘Aibara’(특별한 뜻이 없는, Arabia를 거꾸로 쓴 제목)도 같은 접근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이 두 곡은 마치 하나의 구성처럼 받아들였을 때 더 좋은 감상이 될 법한데, ‘Aibara’의 후반부에 접어들수록 약간의 사족이 보이는 것을 제외하면 포스트 모던을 지향하는 피아노 트리오에서 맛볼 수 있는 더없이 좋은 이미지 구축의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남은 세 곡은 이 앨범과 다른 시기에 녹음된 라이브 연주로,한결 생동감 넘치는 면모를 마주할 수 있어서 좋다. 빠른 템포의 ‘Cubio’나, 수록된 곡들 중에서 가장 서정적인 멜로디로 이루어진 ‘Jäähyväiset’(안녕) 모두 보너스 트랙이지만 되레 우리나라 재즈 팬들의 기호에 잘 맞는 예라 하겠다. 끝으로 실린 ‘Mietomieli’의 라이브 연주도 스튜디오 녹음과 비교해 보면 좋은 감상이 될 듯.
요나 토이바넨 트리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베이시스트 타파니 토이바넨과 드러머 올라비 로우히부오리의 묵직한 존재감이다. 두 사람 모두 요나 토이바넨과 같은 학교에서 공부하며 호흡을 맞춘 만큼 그 조화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겠지만, 그 중에서도 타파니 토이바넨의 베이스 연주는 특기할 만하다. 일견, 덴마크 출신으로 작년에 세상을 떠난 닐스-헤닝 외스테드 페데르센(NHØP)를 연상케 하는 솔로 패턴과 톤도 일품이지만, 곡의 전면과 후면을 거침없이 넘나드는 카리스마는 북유럽에서 또 한 명의 뛰어난 베이시스트가 탄생했음을 느끼게 한다. 앞으로 이 트리오 뿐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활약이 기대되는 연주자가 아닐 수 없다. 이렇듯 어린 나이에도 이미 많은 것을 갖춘 세 사람은 핀란드 컨서바토리의 교내 스튜디오에서 재학 중에 이 앨범을 녹음했다. 그렇다고 그간의 노력을 집대성한 졸업 작품이 아닌, 학습의 과정 중에 만들어진 이 성과물은 이후에 발표된 두 장의 또 다른 앨범이 과연 어떻게 연출됐을지 무척이나 궁금하게 한다.
다시 재즈 교육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 아직도 상당수 재즈 팬들은 모던 재즈의 영웅들이 남긴 무용담을 들추며 드라마틱한 그들의 생애를 통해 재즈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신선들의 음악인 양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단언컨대 도제식의 교육이 주를 이루거나 레코드를 들어가며 어깨 너머로 연주를 익히는 시대는 수십 년 전에 막을 내렸다. 이미 오래 전부터 한 연주자의 프로파일에는 어느 대학에서 누구를 사사했는지 중시돼 왔으며 (마치 클래식 음악 공연의 프로그램을 보는 듯하지 않은가.) 어떤 환경 속에서 음악의 꿈을 꿔 왔는지 따지는 시대가 됐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요나 토이바넨 트리오를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세 연주자는 일정 부분 타고난 재능을 지닌 경우라 하겠지만, 그 능력을 어떻게 키워내는가는 순전히 교육의 몫이었다. 그러므로 이들의 음악을 얘기하며 핀란드 재즈의 현재와 미래를 함께 거론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주시할 수밖에 없는,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의 연주자들이 제대로 된 물을 만난 형국이다.
[글 : 김 현 준 (재즈 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