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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와 클로버」, 「두근두근 메모리얼」 OST 의 바로 그 분, 유조 하야시의 작품집 제 2 탄!
4페이지 고급 디지팩 사양, 충실한 해설과 사진이 담긴 6페이지 부클릿 포함
빛나는 하프시코드, 흔들리는 오르간과 스캣이 빚어내는 '운치와 풍류가 한 가득한 감정의 만화경' 이것은 인생의 사운드 트랙이며 성인의 휴가와도 같구나!
경음악의 미학
인간은 고전에 감동한다. 제한된 스펙과 기계의 힘보다 사람의 손이 우세하던 그 시절 오히려 인간의 상상력은 극대화됐고 마법 같은 소리들이 심금을 울렸다. 연애 또한 그랬다. 질펀한 대쉬보다는 세발자국 물러나 애인의 그림자를 밟지 않으려는 그 기품 있는 거리감이 존재했다. 그 시절의 연애는 즉답적인 과정은 아니었다. 오히려 수줍고 느린 과정이었다. 이 과정 안에 개입되는 사교의 음악이 있었다. 한줄기로 뭉뚱그려서 ‘경음악’이라 칭하는 음악들 말이다.
그러나 세상은 점점 디지털화 되어갔고 낭만을 잊어갔고 명인은 하나 둘씩 스러져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역시 명인은 시대를 초월해서 명인인지라 당시의 숨결을 재현하고 발전시키려는 노력은 계속 되어왔고, 보기 드문 국제적이고 유럽적인 세련된 노스탤지어를 체화한 젊은 명인 하야시 유조와 그의 밴드인 살롱 ‘68의 음악, 그 중에서도 지난 3월 소개된 1집에 이어 그의 두 번째 작품이 드디어 국내에 공개되었다.
Yuzo Hayashi
그의 전적은 엘리트 코스라는 단어가 무색 치 않았다. 일본을 대표하는 가수들의 작품을 프로듀스하고 작/편곡과정을 담당했으며 일본 애니메이션계에서는 유럽풍의 깔끔하고 그루비하며 노스탤지어로 가득한 음악으로 OST를 꾸밀 수 있는 독보적인 존재로 이름 높았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거칠 것 없는 인생열차 일등칸 승객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미의식이 이토록 안전한 길을 허용하지 않았다. 안정된 탄탄대로를 박차고 나와 그는 험난한 길을 걷기로 한다. 자신이 어려서 처음으로 모친께 [경음악 전집]을 선사 받고 음악에 뜻을 두었던 그 때로 돌아가서 이 삭막한 디스토피아에 낭만과 풍류를 한 가득 실은 경음악으로 자신이 숭앙하던 음악에 일생을 투신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리고 실력파 뮤지션들을 모으기 시작한다. 그래서 탄생한 그룹이 유조 하야시 & 살롱 ’68 (Yuzo Hayashi & Salon ‘68)이다. 이 그룹의 핵심은 60년대 이탈리안 B-무비의 사운드트랙과 경음악사운드의 재현, 그리고 재현을 넘어선 가치의 재조명에 기초한다. 샘플과 시퀀싱으로 인해 디지털화된 경음악이 아닌 모두 사람의 손으로 재현되는 음에 기초한 밴드의 유기적인 움직임에 기반한 경음악이다. 이것은 오히려 신선한 시도로 평가 받았고 그 여세를 몰아 2002년 첫 앨범 [Life as a Cinema]를 발매하게 되었다. 이 앨범의 수록곡은 ‘두목’ 스나가 타츠오의 믹스CD인 [World Standard]와 콧대 높은 컴필레이션 [Tokyo Bossa Nova]에 수록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동경의 클럽씬에서 발 빠른 트렌드 세터들의 주목을 한눈에 받게 되었다. 그 후 그들의 분기점이라고 할 수 있는 2005년의 성공작 [허니와 클로버] 애니메이션판의 OST를 맡아서 크게 주목 받는다. 그 후 곧바로 발표한 작품이 본작인 [Memory of Monica Vitti]다.
Memory of Monica Vitti
삐에로 빠졸리니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명작들에 이름을 올렸던 배우 모니카 비띠는 아름답고 위험한 배우였다. 풍만한 실루엣과 우아하면서도 종잡을 수 없는 팜므파탈의 아우라를 풍길 줄 아는 배우였다. 그녀는 다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뮤즈로만 해석한다. 하지만 그녀야말로 이탈리아 B무비의 전성기의 한가운데를 관통했던 여배우이다. 모니카 비띠는 어떤 의미에서 유조 하야시에게 더 없는 영감의 원천이었고 그는 결국 그녀에게 부여받은 영감을 기조로 하나의 유혹적인 바캉스를 음악극으로 꾸몄다.
이 음반 역시 전작인 [Life as a Cinema]처럼 한편의 통속극을 연상시키는 멋진 흐름을 지니고 있는 앨범이다. 다만 조금 더 구체화되고 조금 더 화려해졌다는 단서를 덧붙여본다. 아울러 [或るヴァカンス(유혹의 바캉스)]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앨범이라는 사실도 청취에 앞서 알아두시길 바란다.
이것은 가사가 거세된 음악이다. 물론 필요에 따라 한두곡이 가사가 포함되지만 대부분 가사가 없는 표제음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용을 이해함에 있어 어려움을 겪거나 난감했던 적이 없었다. 좋은 글이 읽기 쉽듯이 이렇게 좋은 곡은 굳이 가사의 도움 없이도 얼마든지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고 그 상상력이 실생활에 적용되어 낭만으로 발전된다고 생각한다. 청취의 끝에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려본다.
‘운치와 풍류가 한 가득한 감정의 만화경’
이 앨범을 듣고 난 청자제현들이 저것과 유사한 결론을 내리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