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에서 짐승으로 아날로그 솔로유닛
전자양(dencihinji)이 6년 만에 선보이는 환경 친화적 일렉트로닉 어드벤처 [숲]
dencihinji
2001년 가을, 한창 한국의 인디펜던트 씬이 자신들의 색깔에 맞춰 제각기 정착해가고 있을 무렵, 신선한 앨범이 한 장 발매됐다. 그것은 이미 여러 클럽 등지에서 공연을 하면서 필립 K 딕의 소설 제목에서 발췌한 듯한 전자양(A.K.A. 이종범)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자의 작업물이었다. 그는 앨범 발매 이후 바로 군에 입대하게 되며 그가 입대한 이후에 본 앨범은 그 해 한국 인디씬에서 나왔던 앨범 중에 가장 주목 받았던 앨범으로 기록 됐는데,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매해 장마시즌에는 라디오에서 [오늘부터 장마]가 흐르기도 했으며 [아스피린 소년]은 CF에도 사용되면서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정작 앨범이 라디오와 인터넷을 떠돌며 점차 인지도를 쌓아갈 무렵, 그는 군대에서 열심히 삽과 총을 들고 국가를 위해 일하고 있었다.
군대에서 후임들에게 악마로 낙인이 찍힌 채 사회로 컴백한 전자양은 아주 느리지만 꾸준하게 자신만의 작업을 진행한다. 물론 이전에도 많은 음악을 듣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그는 더욱 다양한 음악들을 섭렵하면서 음악에 대한 실험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러는 와중에 여러 영화제에서 공연을 했으며 데이트리퍼의 앨범에 리믹스 트랙을 발표하면서 한국에서 다음 앨범이 가장 기대되는 인디펜던트 아티스트로 지목되면서 많은 사람들, 특히 소녀 팬들이 그의 컴백을 기다려왔다.
Welcome to the Jungle
무려 6년 여의 시간이 흘러서야 그의 두 번째 정규앨범이 발매됐다. 포크와 감성적인 멜로디를 중심에 두었던 전작보다는 훨씬 방대하고 다양한 사운드 스케이프를 선보이고 있는데, 이것은 비단 한국의 씬에 국한되지 않는, 오히려 영/미권의 현재 상황에 더욱 부합하는 월드-와이드한 내용물을 담고 있다. 이전 작 보다 습한 물기가 많이 빠진, 보다 담백하고 원숙해진 이번 앨범의 타이틀은 [숲]으로 명명되어 졌는데, 글리치와 컷 앤 페이스트를 비롯한 여러 일렉트로닉한 요소들이 눈에 띄지만 그것의 본 바탕은 바로 자연에 가까운 아날로그 사운드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일본풍의 인디팝적 감성과 80년대의 신스팝, 아기자기한 일렉트로닉 이펙트, 그리고 현재 영,미씬에서 가장 주목 받고 있는 움직임인 프리-포크 사운드를 닮아 있는 본 작은 기존 전자양의 팬들과 인디팝의 지지자들, 그리고 일반 대중들과 실험적인 음악을 사랑하는 리스너들마저 한번에 포용할 수 있는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다. 코넬리우스(Conelious)와 애니멀 컬렉티브(Animal Collective)의 느낌을 캐치할 수도 있겠지만 분명한 자신만의 색깔, 그리고 한국적인 모양새를 담고 있다.
소박한 박수소리로 시작하는 앨범은 어두운 따뜻함을 가진 [비행선]을 지나 플레이밍 립스(Flaming Lips)의 해맑음을 연상시키는 [당분인간], 산뜻한 인디팝 튠[나와 산책하지 않겠어요]와, 올 여름을 접수할 음울하게 빛나는 노래 [열대야]등의 노래들이 일단 청자들을 끌어 당긴다. 1,2분대로 이루어진 짧은 트랙들은 스킷이라는 느낌 보다는 마치 영화, 드라마의 스코어와도 같은 느낌을 주며 [봄을 낚다], [난파]등의 인디 포크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을만한 트랙들 또한 꾸준히 존재한다. 그리고 앨범의 하이라이트라 할만한 9분 여의 대곡으로 이루어진 엔딩 트랙 [홀리엔드]는 정신분열 적인 모습을 보여주다 마지막 2분은 숲 속의 엠비언트 사운드를 고스란히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연해낸다. 또한 그것은 앨범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기도 하다.
오랜 생각을 통해 써진 듯한 가사와 아날로그한 포크 사운드, 그리고 난무하는 실험적인 전자음이 절묘하게 교집합 되는 부분이 바로 본 앨범 [숲]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의 이름인 전자양(Electric Sheep)에서 이미 나타나듯, 기계(Electric)와 자연(Sheep)의 아름다운 조합이 바로 본 사각의 디스크 안에 포박되어 있는 셈이다. 양과 질을 동시에 만족시켜줄, 올해 가장 흥미로운 앨범의 탄생을 알리는 순간이다.
무려 70분의 러닝타임, 20여 곡에 달하는 트랙리스트를 가진 본 작 [숲]은 6년의 기다림 조차 무색하게 만들 만큼 알찬 내용물을 담고 있다. 앨범이 너무 다양한 내용물을 담고 있어서 듣고 있노라면 과연 이게 단순히 한 장에 들어갈 만한 앨범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물론 각 노래들에는 그가 스스로 새겨놓은 낙인이 선명하지만 때로는 마치 여러 개의 유기체 인냥 저마다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 움직이기도 한다. 마치 정글의 법칙 속에서 자신의 방식대로 제각기 살아가는 숲 속의 생물들처럼 말이다. 전자양의 첫 번째 보도자료에 의하면 몇 년 후 다시 사회에 나와서 계속 음악을 하는 전자양의 모습을 기대해본다는 글이 적혀있다. 이 앨범은 적어도 내 생각에는 그러한 기대에 부응하고도 남을 것처럼 보인다. 안드로이드는 아직도 전자양의 꿈을 꾸는 것 같다.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
한상철 [평양감사/불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