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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 속에 깃든 변함없는 아름다움- 아름다운 슬픔을 노래하는 이 시대의 음유시인 Rufus Wainwright (루퍼스 웨인라이트) 2007년, 새롭게 발매되는 다섯 번째 정규 앨범
영화 [I Am Sam] 의 삽입곡이자 비틀즈의 리메이크 넘버 ‘Across The Universe’ 를 통해
수많은 영화팬과 팝팬들의 감성을 두드렸던, 음유시인 루퍼스 웨인라이트!
통산 다섯 번째 정규 앨범인 이번 작품에서 루퍼스는 포크적 정서를 기반으로 한, 재즈, 클래식을 아우르는 깊이 있는 사운드에 더해, 펫 숍 보이즈의 닐 테넌트의 참여로 인해 이전보다 한 층 넓고 풍성해진 음악적 스팩트럼을 자랑하고 있다.
클래식적 편성과, 웅장한 코러스 라인이 쓸쓸한 그의 목소리에 더해지면서 한없이 슬픈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첫 싱글 ‘Going To A Town’, 닐 테넌트의 참여로, 루퍼스 웨인라이트의 우아함에 새로운 힘이 더해진, 환상적인 느낌의 오프닝 트랙 ‘Do I Disappoint You’, 이전 작들에서 보여준 재즈적 접근의 사운드로 앨범의 대미를 장식하는 ‘Release The Stars’,
등 참을 수 없이 아름다운 12곡의 신곡 수록!
늘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 매번 앨범을 낼 때마다 비슷한 톤으로, 그러나 지루하지 않게 훌륭한 음악을 만드는 아티스트들이 있다. 그들의 음악은 고요했고 깊었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슬픔이 깃들어 있었다. 엘리엇 스미스가 그랬다. 그러나 그는 2003년 10월 이후 세상에 없다. 벨 앤 세바스찬도 그랬다. 하지만 그들은 언제부턴가 잠잠하다. 그리고 루퍼스 웨인라이트가 있다. 그는 꾸준하다. 지난 10년 간 루퍼스 웨인라이트는 다섯 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루퍼스 웨인라이트는 늘 슬퍼 보인다. 슬픔을 무겁게 표출하는 그의 음악은 결국 아름답다. 그가 형상화한 아름다운 슬픔은 상당한 호소력을 갖는다. 많은 이들을 감상에 젖게 한다. 외로운 ‘사람들’을 주로 다독여주는 루퍼스는 문득 사람이 아닌 현실 바깥에 존재하는 생명의 외로움을 대변하는 뮤지션이기도 했다. 미국의 산업계가 만들어 낸 초록 괴물 슈렉은 자신의 외로운 순간을 ‘할렐루야’로 노래했다. 레나드 코헨의 재산이자 제프 버클리의 것이기도 했던 명곡으로, 대중적인(?) 괴물 슈렉은 루퍼스의 버전을 택했다. 그의 노래를 ‘립싱크’한 슈렉은 더 많은 이들에게 루퍼스 음악의 의미를 일깨워주었다. 슬픔을 노래하는 남자를 통해 우리는 새삼 알게 되었다. 근원과 사연만 다를 뿐 슬픔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대중적인’ 감정이라는 것을.
슬픔은 당연하다고, 혹은 흔하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결코 얄팍한 감정은 아니다. 누구에게나 진지한 순간이다. 루퍼스의 음악이 진지한 것은 그래서 당연했다. 그는 죽음을 다루는 데 익숙했다. ‘Matinee Idol’에서는 리버 피닉스를, ‘Memphis Skyline’에서는 제프 버클리를 추모했다. 세상을 등진 안타까운 타인들도 슬픈 음악의 영감을 제공했지만, 본질과 핵심은 자신의 운명으로부터 나왔다. 그는 사랑받는 만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남자를. 그는 사랑하면 할수록 불편한 눈총을 받았다, 세상으로부터. 그의 화법은 달랐다. 밴드 시저 시스터스처럼 유쾌한 음악으로 세상의 편견에 대응하거나 영화 <헤드윅>처럼 상세하고 파격적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며 호응을 얻는 대신, 루퍼스는 그저 조용하고 꾸준한 음악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루퍼스의 음악이 조용하게 느껴지는 건 그의 목소리 때문일 것이다. 높낮이가 비슷할 때 그는 좋은 목소리를 가진 ‘가수’ 같다. 라디오헤드의 톰 요크로부터 절망을 빼면 루퍼스의 목소리가 나온다는 평가도 있다. 그의 중저음은 고음을 향할수록 우아해지고, 격차가 심해질수록 단단해지고 힘이 붙는다. 목소리를 따라 사운드도 유유하게 흘렀다. 그는 록과 클래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자신의 목소리에 녹이는 작업에 익숙했다. 기타를 다룰 때 그는 포크 싱어가 되고, 피아노를 다루고 현악과 섞일 때 루퍼스의 음악은 클래식의 품위와 안정감을 느끼게 한다.
지난 앨범들이 담고 있었던 미학을, 지금 만나는 다섯 번째 앨범 [Release The Stars]에서도 루퍼스는 어김 없이 보여준다. 예상하는 바와 같이 그는 트렌드를 노래하지 않는다. 루퍼스는 새 앨범 작업 차 독일로 갔다. 도시의 외곽을 순회하며 18세기의 풍경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는 옛 궁전들을 발견했고, 전통과 고전의 아름다움을 눈으로 확인하며 새로운 영감을 얻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Sanssouci’를 완성했다. 옥구슬 구르는 듯한 도입부의 하프, 중간중간 등장하는 플루트의 맑은 소리는 새로운 여정에서 발견한 신비로운 흥분을 표현한 것처럼 느껴진다.
한편 새로운 환경은 스스로를 정확히 발견하는 현장이기도 했다. 앨범을 시작하는 첫 곡 ‘Do I Disappoint You’는 지난해 그의 밴드와 작업했던 초안을 독일로 가져 가 살을 붙이기 시작했다. 처음 신디사이저만으로 작업했을 때, 영화 <블레이드 러너> 같은 SF 영화의 분위기가 나왔다고 회상한다. 그처럼 아득하고 풍성한 공간감을 가진 곡이다. 그러나 루퍼스의 목소리와 융화되기 시작하고 후반부에서 유려한 현악이 쏟아질 때, 공상과학의 원형과 적정한 선에서 거리를 두는, 그래서 전과 같은 루퍼스를 또 만나게 된다. 물론 그 변함 없음은 잔잔한 피아노로 출발해 이제 미국이 지쳤다고 노래하는 첫 싱글 ‘Going To A Town’에서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다.
앨범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펫 숍 보이스의 닐 테넌트다. 그는 루퍼스 새 앨범의 투자자인 동시에 사운드의 일부를 담당한 멀티 플레이어로 분했다. ‘Rules And Regulations’ ‘Not Ready To Love’에서 건반악기를 연주했으며, 몇몇 곡들의 코러스를 담당했다. 그리고 ‘Do I Disappoint You’의 샘플을 맡았다. 전혀 다른 스타일을 추구하는 두 아티스트의 연대는 흥미롭다. 닐은 펫 숍 보이스의 스타일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는 루퍼스에게 익숙하지 않은 영역을 채워주는 유능한 서포터였다. ‘Do I Disappoint You’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우연히 발견한 판타지의 단서는 루퍼스에게 그리 친숙하지 않았다. 닐은 사운드 샘플을 통해 일렉트로닉한 상상력을 확장했고, 이를 기반으로 해 루퍼스는 특유의 고요한 음색과 우아한 전개를 선보였다. 실험과 유지를 동시에 담은, 그리고 오랜 시간을 들여 마침내 완성하게 된 ‘Do I Disappoint You’는 결국 앨범의 첫 곡으로 배치되었다.
미국 록 밴드 킬러스의 보컬 브랜든 플라워스도 흔적을 남겼다. 직접 앨범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그림자처럼 루퍼스 가까이에 있다. 한 때 그들은 사귀는 게 아니냐는 염문이 돌기도 했다고 한다. 툴사(미국, 오클라호마)에서 만나 같이 술을 마시는 현장이 목격되었으므로. 둘 사이의 ‘진실’(!)을 입증해주지는 못하지만, ‘Tulsa’는 둘 사이의 ‘사실’을 말해주는 곡이다. 노래는 루퍼스가 그 지역의 한 바에서 만났던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노래 안에서 화자는 자신을 기다리는 여자에게 전혀 마음이 없다. 그의 관심대상은 하얀 옷을 입은 남자, 그리고 남자 애인이 있는 남자다. 화자는 하얀 옷을 입고 있는 남자와 마주쳤던 툴사에 다시 가고 싶어한다. 툴사에서 만난 남자는 누구일까? ‘Tulsa’는 여운을 남기는 곡이다. 여담으로, 브랜든 플라워스는 말한다. “의혹에 대해서 그리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게이가 아니다.”
앨범에 수록된 곡들은 저마다 다른 분위기를 가지고, 그러나 잔잔하고 쓸쓸한 톤으로 슬픔을 노래한다. 잊을 수 없는 추억을 남기고 돌아 온 툴사를 회상하는 ‘Tulsa’는 완연한 클래식 구성을 보여준다. 현악을 아끼지 않았고, 직접 연주한 피아노는 조금도 감정을 절제하지 않은 채 격정적으로 흐른다. ‘Not Ready To Love’ ‘Slideshow’ ‘Leaving For Paris No.2’에서는 여느 때와 같이 어쿠스틱 악기가 담을 수 있는 서정미의 절정을 보여준다. 물론, 생기를 부여하는 노래들도 존재한다. 많지는 않다. ‘오 마이 갓’으로 시작하는 ‘Between My Leg’은 여성들의 코러스가 두드러지는 모던 록이다. 이와 함께 ‘Rules And Regulations’는 ‘비교적 밝은’ 루퍼스를 만날 수 있는 곡이다. 앨범에는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도 참여했다.
루퍼스의 앨범은 늘 편차가 없었다. 언제나처럼 그는 깊은 슬픔을 노래한다. 꼭 극단적인 죽음이나 쉽지 않은 사랑이라고 명시하지 않아도, 그리고 가사를 읽지 않아도 짐작되는 무거운 슬픔이 음악을 지배하고 있다. 루퍼스는 음악으로 눈물을 숨기는 싱어 송라이터로 보인다. 그가 행복한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다. 분명 층을 알 수 없는 복잡한 내면을 가졌을 것이다. 다만 그는 슬픔으로 명쾌한 감동을 선사한다. 그의 음악은 우리는 저마다 다른 주제로 슬픔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일깨운다. 그 새삼스러운 사실을 음악으로 일러줄 때마다 우리는 감동한다. [Release The Stars]는 루퍼스의 슬픔을 통해 우리를 안심하게 하고, 그리고 행복하게 하는 앨범이다.
[글 : 이민희(매거진 프라우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