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파리, 발칸 반도를 넘나드는 20세 청년의 환상적인 음악 여정!
뉴요커에서 집시로, 집시에서 파리지엔으로...
천재 뮤지션으로 불리는 팝 로맨티스트 베이루트가 들려주는 팝, 록, 샹송, 집시 음악의 아름다운 만남.
데뷔작으로 2006년 ‘올모스트 쿨’ 선정 '올해의 음반' 2위를 석권했던 베이루트가 캐치한 선율, 풍성한 하모니, 심금을 울리는 사운드로 화제를 불러모으고 있는 바로 그 앨범!
Beirut [The Flying Club Cup](2007)
세계사에서 집시들은 늘 유럽의 변방이었다. 우리는 집시, 발칸 민속 음악 등을 ‘월드 뮤직’이라고 부르며, 영미 팝의 한 분과로서가 아니라 독특함과 신선함의 방편으로서만 그들의 음악을 대할 때가 많다. ‘월드 뮤직’과 그것의 또 다른 명칭인 ‘제 3세계 음악’이 세계적인 팝 흐름의 하나로서 당당히 주목된 것은 비교적 최근에 와서의 일이다.
월드뮤직은 그 소외된 역사만큼이나 강점을 하나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영미 팝 음악이 중심이 되어 나머지 음악을 타자로 소외시키게 되면서, 오히려 그 타자의 영역들이 역으로 새로움을 획득했다는 것이다. 이 새로움은 소재 빈곤과 스타일 정체에 허덕이는 영미 문화계에 확산되어 굉장한 가치를 발휘하고 있으며, 때로는 그 중심을 뒤바꿔 놓기도 했다. 베이루트(Beirut)도 그런 현상 중의 하나다.
베이루트는 뉴 멕시코 출신의 잭 콘돈(Zach Condon)이 중심인 밴드다. 잭 콘돈은 오늘날 세계의 중심 미국에서 태어난 청년이지만, 그는 특별하게도 그 나이 또래의 누구나가 밟아야 할 코스대로 자라오지 않은 ‘중심의 변방’이다. 그는 일단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않았다. 이때의 학교란, 대학뿐만이 아니라 고등학교까지도 포함한다. 그는 16살에 학교를 그만두었으며, 그 대신에 유럽 여행을 떠났고, 그보다 어렸을 때인 15살에는 공부에 여념이 없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음반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게다가 그 만들어낸 음반들도 보통의 것들이 아니다. 미국의 평범한 중고생들이 빠지게 되는 전형적인 음악, 이를테면 푸 파이터스(Foo Fighters), 섬 41(Sum 41) 같은 주류 록이 아니라, 1980년대 풍 전자음악 그룹 마그네틱 필즈(Magnetic Fields)와 유사한 음악을 했다.
그런 그가 유럽의 온갖 장소를 여행하고 돌아다니다가 미국에 돌아와 만든 음반이 바로 베이루트의 공식 데뷔 앨범 [Gulag Orkestar]다. 이때가 그의 나이 19살이었다. 음반은 그 해 인디 음악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아직 20살도 되지 않은 애송이가 유럽 여기저기를 떠돌아다니며 집시 음악에 심취해 돌아와 브라스, 우클레레, 만돌린 같은 악기에 마그네틱 필즈 풍의 전자 음악, 로-파이 인디 음악을 섞어냈으니, 그 반응은 놀랄만하기에 충분했다. [Gulag Orkestar]는 2006년 [올모스트 쿨]에서 올해의 앨범 2위에 꼽혔을 만큼 호평을 받았다. 한국의 월드 뮤직 라디오에서도 베이루트의 음악은 자주 방송을 탄다.
베이루트의 성공은 그 음악이 담고 있는 ‘새로움’에 기인한 바가 컸다. 물론 이때의 ‘새로움’이란 잭 콘돈이 무(無)로부터 창조해낸 완전한 새로움이 아니라, 그 음악이 인디 록 팬들에게 들려졌을 때 느껴졌을 새로움이다. 사실 베이루트에 대한 호평은 대부분 록 매거진과 인디 팬들에 의해 이뤄졌으니, 이 새로움을 인디 팬들이 찾아낸 새로운 종류의 신선함으로 간주하는 것은 무리가 없다. 얼터너티브 세대의 암묵적 신조가 뭔가. 바로 기성 문법과 다른 것, 이질적인 것, 이상한 것, 도통 정상이 아니거나 소외된 것들 아니던가? 물론 그 와중에서도 록만의 패기, 팝의 캐치함을 갖춘 음악들이 사랑받았지만, 베이루트도 여기에서 예외는 아니다. 베이루트의 음악은 매우 잘 들리고, 좋은 선율, 하모니도 같이 가지고 있다.
사실 베이루트의 음악이 ‘캐치’한 것은 아니다. 여기서 실망할 팝 팬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음악엔 ‘심금’을 울리는 면이 있다. 이 심금을 울린다는 것은, 어쩌면 캐치함을 넘어서는 ‘더 깊은 감동’의 다른 말일 수도 있다. 감각적이고 딱 부러진 사비들이 도드라지진 않지만, 은은하고 정적인 미가 감돈다. 그래서 그의 음악엔 ‘멜로디’보다는 ‘곡조’, ‘우울’보다는 ‘한’이라는 말이 더 잘 어울린다. 특히 [Gulag Orkestar]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던 ‘Prenzlauerberg’, 'The gulag orkestar'는 이런 사연이 깊고 하류가 흐르는 음악 성격을 잘 대표한다. 로-파이를 위시하지만 사실상 동유럽권의 낡은 건물, 길거리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구식의 사운드, 영미 팝에선 잘 접하지 못한 (물론 월드 뮤직을 세계적으로 히트시킨 많은 영미권 가수들이 있지만) 발칸, 집시 등의 색깔은 여기에 이질적 매혹감을 배가시킨다.
이 ‘심금’을 울리는 괴상한 인디 록 워너비가 이번에 2집을 발표했다. 그 음반이 바로 여러분들이 손에 쥐고 있는 이 앨범 [The Flying Club Cup]이다. 잭 콘돈은 앨범을 발표하기 전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이 발언에는 그의 앨범을 만들게 된 동기와 핵심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으므로 그대로 소개한다. 인디 음악 웹진 [피치포크미디어]의 기사 중 일부다.
“난 자크 브렐과 프랑스 샹송 음악을 수없이 듣고 있었다. 그것은 커다랗고, 찬란하고, 과장된 편곡들과 드라마로 싸여진 팝송들이었다. 그것들은 상당 부분 나에게 친숙하지 않은 영역이었다. 그래서 난 새로운 악기들을 사기 시작했고, 내가 편하지 않은 악기들에 의존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프렌치 혼, 유포니엄 같은 것들. 이것들을 가지고 내가 늘 트럼펫으로만 하던 브라스 파트를 만들었고, 우클레레 대신에 아코디언과 오르간으로 작업했다. 나 자신을 클래시컬 팝 음악의 세계에 힘껏 던졌다. 당신도 그렇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샹송에 대한 언급이다. 잭 콘돈은 이 음반의 영감을 1900년대 초반 촬영된 어느 파리 만국 박람회 당시 사진에서 얻었으며, 음반의 전체가 프랑스의 문화, 패션, 역사, 음악에 대한 헌사라고 한다. 첫 싱글 'Nantes(낭뜨)'부터가 프랑스의 도시 이름에서 따온 제목이며, 수록곡들은 각각 프랑스의 특정 도시를 암시하도록 쓰였다. 모두가 알다시피 프랑스는 유럽 내에서도 가장 영향력이 높은 나라 중 하나다. 잭 콘돈은 샹송에 심취하고, 그에 어울리는 기름진 편곡들을 더함으로서 베이루트의 음악을 예전보다 훨씬 고급스럽게 만들었다. 집시에서 파리지엔으로, 변방에서 중심으로 이동했다.
중심으로 이동한 만큼 베이루트는 음악 속에 안정, 서사, 세련을 강화한다. 신보 [The Flying Club Cup]은 전작의 집시-하류 감성과 단출함을 희석하고, 명징하고 풍성한 소리들을 늘렸다. 선율과 하모니도 떠돌며 슬퍼하는 것 같던 곡조에서, 안정감이 있고, 클래시컬하고, 팝의 기운이 강해졌다. 한 많은 역마의 인생 같던 전작의 애수는 이번 앨범에 와서 낭만과 아름다움에 섞이기 시작한다. 적확한 규정은 아닐지 모르지만, 집시 음악에서 챔버 팝(혹은 바로크 팝)으로 돌아섰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잭 콘돈이 즐겨 들었다는 자크 브렐은 바로크 팝의 대표 격인 스캇 워커(Scott Walker)가 가장 큰 영향을 받은 뮤지션이기도 하다.
물론 그의 음악은 여전히 앙상한 처연함을 간직하고 있다. 음반 안에서 계속 흐르는 울고 넘는 느낌의 코러스, 여전히 집시 풍이 가득한 브라스 연주는 이를 반증한다. 더구나 완전히 클래시컬한 악기 편성이 아니라, 만돌린, 아코디언, 전자오르간 같은 악기들이 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그 질료에 고착된 태생적인 애수는 변함없이 앨범 안에 흐른다.
그러나 조금은 변형되었다. 낡고 녹슨 악기 같던 예전의 투박함은 새 악기로 교체한 듯이 맑은 소리로 바뀌었고, 구성과 규모도 프렌치 혼, 전자 오르간, 하프시코드, 유포니엄 등을 더하여 크고 복잡해졌다. 베이루트의 음악엔 여전히 방랑 실내악 같은 기운이 잔잔히 흐르지만, 이제 그 실내악은 구성만이 아니라 정말로 실내로 들어간 듯이 들린다.
재밌게도 베이루트는 정말로 ‘밖’에서 ‘안’으로 들어갔다. 신보는 잭 콘돈이 전문 스튜디오에서 작업한 첫 정규 앨범이다. 사실 그는 15살 때 녹음한 습작 수준의 앨범부터 2006년 인디 음악계에 깜짝 선풍을 일으킨 [Gulag Orkestar]에 이르기까지, 모든 음악 작업을 부모님 집에서 했다고 한다. 그러니 그의 소리는 당연히 일정 수준 탁하고 정제되지 않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오웬 팔렛(Owen Pallet)을 만나면서 잭은 스튜디오에서 녹음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당시 자신의 그룹 파이날 판타지(Final Fantasy)의 EP를 녹음하고 있던 오웬의 배려였다. 물론 공짜는 아니었다. 오웬은 베이루트의 음악을 듣고서 같이 작업할 것을 제의했고, 잭은 그 대가로 스튜디오의 남는 녹음 시간을 쓸 수 있었다. 이런 사연으로 베이루트는 처음으로 정규 스튜디오에서 녹음할 수 있었고, 컴퓨터로 초기 작업을 했던 원곡들은 훨씬 고급스런 빛깔로 포장될 수 있었다.
전작에서 베이루트는 보헤미안 악사를 동경하는 방랑 청년 같았다. 그리고 이번의 그는 확장의 시기에 막 들어선 팝 로맨티스트 같다. 그는 [Gulag Orkestar] 발표 뒤 2년의 시간 동안 발칸에서 파리로, 집시에서 챔버 낭만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지금 프랑스 파리와 자크 브렐에 취해 있다. 그리고 [The Flying Club Cup]은 그 시간에 대한 음악적인 기록이다.
[글 : 이대화(웹진 IZM 편집장,
www.izm.co.kr)]
1. A Call To Arms
2. Nantes
3. A Sunday Smile
4. Guyamas Sonora
5. Le Banlieu
6. Cliquot
7. The Penalty
8. Forks and Knives (La Fete)
9. In The Mausoleum
10. Un Dernier Verre (Pour la Route)
11. Cherbourg
12. St. Apollonia
13. The Flying Club Cu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