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DUB) 사운드로 무장한 치명적 매력 그룹 파프리카(paprika)
"라이브 클럽에서 파프리카의 연주에 미친듯 춤을 추던 검은 피부의 청년, 어디에서 왔냐니까 자메이카에서 왔단다.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청년이 내게 던진 말이 기억난다. '와! 저런거 처음 들어봐'
4계절, 출근길 교통정체, 금연빌딩이 있는 나라에서 하는 레게음악? 이제는 무시하지 않겠다." - 앨범 프로듀서, 자우림 < 이선규 >
"겨울에 뭔 놈의 레게야? 라고 생각했지만 흡사 카리브해에 와있는 것처럼 내 몸은 뽀송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지. 그래! 이런거잖아 레게란게~" - 뜨거운 감자 < 김C >
‘덥(DUB)’이라는 장르가 있다. 레게의 부산물로 파생된 덥은 각 악기의 다양한 믹스와 효과음, 특히 에코와 반향음을 특징으로 하는데, 한마디로 몽환적이고도 최면성이 강해서 듣는 이를 나태하고 무기력하게 만들기도 하고, 복잡한 세상의 현실을 잠시 잊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쉽게 말해 ‘레게’와 ‘트립합’ 사이에 존재하는 장르라고 할 수 있는 ‘덥’은 그야말로 ‘음악=휴식’이라는 공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음악이라 할 수 있는데, 지금 소개하는 그룹 ‘파프리카(Paprika)’의 음악이 바로 이런 음악이다.
부드럽고 향기로우며 색깔로 예쁘지만, 먹어보면 맵고 톡 쏘는 맛까지 있는 야채 ‘파프리카’의 느낌 그대로, 이들의 음악은 별 생각 없이 들으면 그저 편안하고 한없이 노곤해지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그 치명적 매력에 중독되어버린다.
그룹 ‘파프리카’는 고진호(보컬, 프로그래밍, 리듬기타), 김혜원(건반, 보컬), 김헌기(기타, 보컬), 최민호(베이스)의 4인조 밴드로서, 예전에는 ‘수염공화국’이라는 이름아래 <아우라>, <레이디피쉬>, <디지비디> 등 홍대 클럽에서 왕성한 활동을 해왔으며(2005년부터 활동), 전주국제영화제나 수많은 록 축제는 물론, 자우림 콘서트 게스트 등으로 참여하며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이번 데뷔앨범은 말 그대로 ‘파프리카적인 덥(dub)’의 전형을 보여준다. ‘내가 다 버린 그 모든 것들, 내가 뺐긴 그 모든 것들, 신경쓰지 않는 걸’이라는 자조섞인 가사가 인상적인 <이제 남은 건 단지 5분>, 마치 갈 곳 없는 비내리는 새벽의 쓸쓸한 거리 풍경이 연상되는 주술적인 트랙 <Dancing in the rain>, 담배연기로 자욱한 어느 자메이카의 바에서 연주해도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듯한 <My friend> 등은 ‘파프리카’의 아이덴티티를 확실하게 느낄 수 있는 트랙.
하지만 이들이 푹 젖은 신문지마냥 무기력한 몽환을 꿈꾸는 건 아니다. <I don’t know who you are>나 <Hero>는 대중적인 멜로디라인으로 팬들에게 쉽게 어필될 것이라 예상되며, <Naked runner>의 신나는 질주감은 듣는 이로 하여금 절로 어깨가 들썩이게 만든다.
본 앨범은 전체적으로 신인 밴드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모든 곡에 ‘파프리카’만의 개성이 살아있는데, 무엇보다도 매 트랙마다 유연하게 듣는 이의 감정을 쥐락펴락하는 능력은 수십 년 경력의 프로 뮤지션 뺨칠 만큼 능수능란하다. 참고로 본작은 그룹 <자우림>의 리더, 이선규가 프로듀스했다.
[글/김양수(월간 PAPER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