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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 역사상 가장 유니크한 밴드!!!
기상천외한 4인조 애니메이션 캐릭터 밴드 고릴라즈(GORILLAZ)
최고 히트앨범 [ Demon Days ]의 싱글 B-사이드와 리믹스 버전들을 모은 [ D-Sides ] 발매
incl. 동양의 전통악기 연주가 찰랑거리는 가운데 부드럽게 흐르는 <Hong Kong>, 예리한 일렉트로 비트의 <Rockit> & DFA 유니트, Jamie T, Hot Chip 등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는 발군의 뮤지션들의 퀄러티 높은 9곡의 리믹스 버전 수록!!!
More Than A Feeling : Gorillaz [D-Sides]
1.
B-사이드라는 말은 1950년대 초반부터 사용되었다. 7인치 비닐 레코드를 통해 레코드의 양쪽에 음원을 수록할 수 있게 되면서, 뮤지션들은 자신이 발표하는 싱글 레코드에 두 곡을 실었다. 하나는 이른바 '타이틀곡'으로서, 이는 통상 A-사이드(A-Side)라 했다. 다른 한 곡은 정규 음반에는 보통 수록하지 않는, 완성도나 히트 가능성이 낮은 곡으로서, 이것이 B-사이드(B-side)였다. 가끔씩 한 싱글에서 A-사이드와 B-사이드가 모두 히트를 치는 경우도 있었는데, 이를 '더블 사이디드 히트(double-sided hit)'라 불렀다.
CD와 MP3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이러한 물리적 구분은 효력을 잃었지만 여전히 A-사이드와 B-사이드의 존재론적 위상은 유지되고 있다. 현실적으로 A-사이드에 비해 B-사이드의 품질은 낮은 편이며, B-사이드 모음집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팬 서비스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기가 어렵다. 디페시 모드(Depeche Mode)나 펫 샵 보이스(Pet Shop Boys)처럼 정규작의 완성도에 버금가는 B-사이드를 꾸준히 발표하는 뮤지션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여기에 더하여 푸대접을 받는 것을 또 하나 들자면 리믹스 버전이다. '원곡의 해체와 재구성'이라는 리믹스 본연의 음악적 야심이라는 것이 아무래도 원곡의 아우라에 비해서는 일단 '한 등급 낮은' 것으로 먹고 들어가게 되는 분위기가 대세인 것이며, 이 또한 대개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외는 존재한다. B-사이드 곡들 중에서는 그 곡이 정규작에 수록되지 않은 이유가 곡의 질이 후져서라기보다는 단지 음반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맞지 않기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드는 양질의 곡들이 있다. 또한 어떤 리믹스는 단순한 히트곡의 재포장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리믹스 뮤지션의 음악적 상상력을 확장하는 동시에 우리가 원곡에서 즐겁게 들었던 바로 그 순간을 다른 형태로 재현하기도 한다. 지금 여러분이 손에 들고 있는 이 음반에서도 그런 순간들이 보이고, 그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왜냐하면 이것은 고릴라즈(Gorillaz)의 B-사이드와 리믹스 모음집이기 때문이다.
2.
이 음반을 집어들 '수준'의 사람들이라면 알 수밖에 없는 내용이기는 하지만, 음반 내지에 아티스트에 대한 설명이 없는 것 또한 이상한 일일 것이다. 고릴라즈는 '가상 밴드(virtual band)'로서, 머독(Murdoc, 베이스), 2D(보컬), 러셀(Russell, 드러머), 누들(Noodle, 기타리스트)이라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로 이루어진 4인조 밴드다. 이 캐릭터 멤버들은 각자의 사연과 각자의 스토리를 나름대로 갖고 음악 활동을 한다. 이 캐릭터 밴드의 아이디어를 낸 것은 블러(Blur)의 브레인 데이먼 알반(Damon Alban)과 애니메이션 [탱크 걸(Tank Girl)]의 공동 제작자로 유명한 제이미 휴렛(Jamie Hewlett). 이들은 1998년에 밴드를 결성했고, 당시의 이름은 그냥 '고릴라(Gorilla)'였다.
이들은 두어 곡의 데모를 녹음하며 슬렁슬렁 활동을 시작했고, 그 뒤 델 다 훵키 호모사피엔(Del Tha Funkee Homosapien)과 댄 디 오토메이터(Dan The Automator) 등이 합류하며 본격적인 프로젝트 밴드로 거듭난다. 밴드는 2000년 [Tomorrow Comes Today](EP)를 발표하며 음악 시장에 등장했고, 첫 싱글 "Clint Eastwood"를 거쳐 정규 데뷔작 [Gorillaz]를 내놓았다. 참여 뮤지션들이 록과 힙합(과 힙합을 근간으로 한 일렉트로닉 음악) 분야에서 한 가닥씩 하는 인물들인 관계로 어떤 종류의 음악이 나올 것인지는 예측 가능하긴 했지만 예측 가능하다는 것과 실제의 결과물을 듣는 감흥은 분명 다른 것이다. 전자는 '무엇'의 영역이고 후자는 '어떻게'의 영역일텐데, 중요한 것은 언제나 '어떻게'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떻게'의 측면에서 [Gorillaz]는 비교적 흡족한 결과물이었다. 전체적으로 힙합의 기조가 강한 사운드 스케이프 위에서 알반의 흐느적거리는 보컬과 알반의 예민한 송라이팅이 적절히 조화를 이룬 그들의 데뷔 음반은 6백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했으며, "Clint Eastwood", "Rock The House", "19-2000" 등의 싱글들이 히트를 기록했다. 그러나 온전히 흡족한 결과물이라 하기는 어려운 음반이기도 했다. '물리적' 결합은 이루어졌는데 '화학적' 결합의 측면에서는 불만족스러운 부분이 종종 들렸다고 하면 될 것 같다.
그러나 이런 불만은 밴드가 발표한 두 번째 음반 [Demon Days](2005)에서 말끔히 사라진다. 아마도 2005년에 발표된 영미권 대중음악 음반 중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을 만한 이 음반은, 전작의 음악적 방향성을 좀 더 날카롭게 다듬은, 실로 화려한 '음향 건축술(sonic architecture)'을 과시하는 음반이었다. 음반의 사운드를 담당한 힙합 프로듀서 댄저 마우스(Danger Mouse)는 음반 전체에서 묵직하지만 창의적인 사운드 프로덕션 솜씨를 과시했다(그는 몇 년 뒤 날스 버클리(Gnarls Barkley)를 만들어 메가 히트를 날린다). 전작에 비해 알반이 차지하고 있는 음악적 비중이 줄어든 것이 밴드 전체적으로는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했고, 음반은 "Feel Good Inc.", "Dare" 등의 히트 싱글을 배출하며 전작에 버금가는 성공을 거뒀다.
3.
고릴라즈의 음악 세계에서 B-사이드와 리믹스는 낯선 개념이 아니다. 이미 밴드는 [Gorillaz]의 B-사이드와 리믹스 버전을 모은 두 장의 음반 [G-Sides](2002)와 [Laika Come Home](2002)를 발표한 바 있다. 이 중에서 주목할 만한 음반은 [Laika Come Home]으로, 이 음반은 매시브 어택(Massive Attack)의 [No Protection]과 마찬가지로 덥 뮤지션 스페이스몽키즈(Spacemonkeyz)와 함께 [Gorillaz]의 곡들을 덥으로 재구성한 음반이었는데, 밴드의 음악적 야심과 상상력이 뻗어나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는 것이 흥미로웠(던 만큼 듣기에는 상당한 인내심도 필요했)던 음반이었다.
[Demon Days]의 싱글 B-사이드와 리믹스 버전들을 모은 [D-Sides]는 [Laika Come Home]의 막나가는 실험적 작업들 대신 비교적 무난한 수준의(그러나 여전히 만만치 않은) 결과물들이 들어 있다. 또한 밴드의 '발전 과정'을 짐작할 수 있는 흔적들을 반추할 수 있게 돕는 역할을 했던(달리 말해 퀄리티에 문제가 없었다고 할 수는 없었던) [G-Sides]보다는 정체성을 확립한 뮤지션으로서의 자신감이 더 많이 드러난다.
여기에 수록된 곡들 중 몇몇 곡들은 오로지 '음반의 전체적인 분위기 때문에' 선정 과정에서 누락되었을지 모른다는 느낌을 강하게 불러일으키며, '음향 건축가'로서의 고릴라즈의 진면목을 드러낸다. 동양의 전통악기 연주가 찰랑거리는 가운데 부드럽게 흐르는 "Hong Kong"은 전쟁고아들을 위한 영국단체 워차일드(Warchild)를 위해 만든 곡으로, 단연 이 음반의 백미다. [Demon Days]의 히트곡 "Dare"의 데모 버전인 "People"은 단지 "Dare"의 작업 과정을 짐작할 수 있다는 것 이상의 감흥과 흥겨움을 안겨주는 신서 팝 넘버이며, 음반 제작 과정에서 나온 데모곡인 "Rockit"의 예리한 일렉트로 비트는 이 곡의 완성본을 들어 보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블러(Blur)의 팬들이라면 아이슬란드 자연보호구역의 댐 건설에 반대하기 위해 만든 "Stop The Dams"에서 남다른 감회에 젖을 것이다.
리믹스의 수준도 상당하다. LCD 사운드시스템(LCD Soundsystem)으로 상종가를 치고 있는 프로덕션 집단 DFA가 리믹스한 "Dare"는 그 중에서도 발군으로, DFA 특유의 '지저분한' 댄스 그루브가 원곡의 느낌을 다르면서도 같은 끈으로 묶는다. 최근 가장 주목받고 있는 일렉트로닉 듀오 핫 칩(Hot Chip)과 데뷔작 [Panic Prevention](2007)로 머큐리 상 후보에 오른 그라임(grime) 계열 뮤지션 제이미 T(Jamie T)가 손댄 "Kids With Guns"는 각자 극도로 개성적인 리믹스 결과물로 재탄생하고 있다. 이 정도 퀄리티면 '보너스로 수록된 리믹스 버전'이라고 부르는 것이 어불성설일 것이다.
[D-Sides]의 일차적인 목적은 '팬들을 위한 서비스 패키지'다. 여기 실린 것들은, 어쨌거나 전작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다가가기 어려운 곡들인 것이다. 그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고릴라즈의 팬들은 이 음반에서 깊은 만족감을 얻을 것이다. 또한 아마도, 이 음반으로 고릴라즈에 입문할 사람은 없겠지만, 그런 이가 있다면 그는 아마도 고릴라즈의 정규작이 궁금해질 것이다. [D-Sides]는 '절정에 오른 밴드의 방계 작업'이라는 간단한 설명으로 끝내기는 어려운, 복잡하고 창의적인 음반이다. 뜻밖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2007.11.23
최민우
대중음악웹진 [weiv](http://weiv.co.kr)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