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의 [수궁가]에서는 신재효본과 같은 부분이 많이 발견된다. 신재효본은 소리로 불려진 적이 없기 때문에 당연 히 소리는 없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이 대목은 김연수가 새로 작곡을 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김연수는 자신이 쓴 연보에서, 1935년 ‘창악 전공의 뜻을 품고 당시 순천군수 성정수씨댁에 두류(逗留) 중인 오명 창의 일인 유성준 선생을 심방하여 입문, [수궁가] 전편을 수득’했다고 적고 있다. 그러고는 다른 이에게 [수궁가] 를 배웠다는 기록은 없다. 그러기 때문에 김연수의 [수궁가]는 유성준 바디를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김연수는 배운 대로만 소리를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물론 다른 명창들도 배운 대로만 소리를 하지는 않는다. 나름대로 시대의 흐름에 맞게 고쳐서 소리를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사설을 새로 짠다거나 하는 일은 하지 않는다. 임방울 같은 대명창도 자기 나름대로 사설을 고치지는 않았다.
소리만을 자기 나름대로 고쳐서 멋있게 불렀다. 그런데 김연수는 새로운 사설을 보태기도 하고, 바꾸기도 하는 일을 많이 하였다. 그리고 새롭게 넣은 사설에는 자신이 직접 곡도 붙였다. 그래서 김연수 바디의 소리는 과거의 소리와는 다른 소리가 되었다.
사설과 음악을 대대적으로 바꾸었다는 점에서 김연수는 참으로 창조적인 소리꾼이었던 것이다. [수궁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김연수의 [수궁가]는 유성준 바디가 중심을 이루고, 나머지는 신재효 사설을 차용해서 만들어졌다. 신재효 사설에 서 차용한 부분은 모두 열다섯 대목이나 된다. 아니리 부분에서도 신재효 사설을 차용한 부분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또 김연수 [수궁가]에는 정응민 바디에만 있고 다른 바디에는 없는 대목이 다섯 대목이 확인된다. ‘약성가’는 정 광수 창본에도 있지만, 이 또한 정응민 바디일 것으로 생각된다.
임방울, 박초월 등 다른 유성준 제자들의 소리에 있는 ‘약성가’는 김연수 바디에 있는 것과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는 정광수가 정응민의 것을 차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결국 정응민 바디에서 차용한 대목은 총 여섯 대목이 된다. 그러니까 김연수가 차용한 정응민 바디는 특징적인 몇 대목에 국한된다 할 것이다.
김연수의 신재효 사설 차용은 [수궁가]의 경우 단순히 양에 국한되지 않는다. 신재효 사설을 차용한 대목은 우선 서 사구조상 보다 더 합리성을 갖게 하기 위해 선택된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별주부가 토끼를 잡으러 갈 신하로 결정 되기까지, ‘별주부 상소 ― 궐어 별주부 시험 ― 별주부 항변’으로 이어지는 긴 과정을 통해서 충분한 근거를 마 련한다든가, 토끼 화상을 그릴 때 전복의 토끼와의 인연을 설정하여, 전복이 가르쳐주면 화공이 그리는 것으로 묘사 한 것 등을 들 수 있다.
그런데 별주부가 가족들과 하직을 하는 대목은 좀 다르다. 별주부가 가족들과 하직을 할 때, 다른 [수궁가]에서는 모두 별주부가 위험한 곳에 가는 것을 염려하여 슬프게 탄식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신재효본에서는 별주부 모친은 임금을 위해 약을 구하러 가는 네 직분이 장하다고 하면서, 약을 못 구하면 거기서 죽고 돌아오지 말라고 한 다. 별주부 처는 군신의 중한 의가 부부보다 더하니, 임금을 섬기다가 분골쇄신된대도 무슨 한이 있겠냐고 한다. 늙 으신 어머님과 슬하의 어린 자식을 잘 보살필 테니, 염려 말고 토끼만 구해오라고 한다. 이는 자연스런 인간의 감정 보다는 이념적 당위성을 더 중히 여기고 앞세우는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또 김연수는 ‘산림풍경’과 같은 대목은 기왕에 유명한 더늠인 ‘녹수청산’을 대신해서 신재효본에서 차용해 넣었 다. ‘산림풍경’의 후반은 다른 [수궁가]에 있는 ‘녹수청산’과 같다. 그러기 때문에 이 대목이 훨씬 길어졌다.
길어져서 내용이 풍부해졌다는 것 외에 별다른 특징은 없다. 그리고 새로이 첨가된 부분의 곡은 당연히 새로이 작곡 해 넣었다. 이처럼 기왕의 사설에 신재효본의 사설을 첨가한 부분도 곳곳에 산재해 있다. 가능하면 신재효본 사설을 많이 차용하고자 하는 의도가 드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