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는 1935년 유성준에게 [수궁가]를 배우고, 그해 7월 상경하여 조선성악연구회에 입회, 송만갑 선생 문하에서[ 흥보가], [심청가] 각 전편을 수득(修得)하였다고 하였다.
그러나 김연수의 [흥보가]에는 신재효 사설이 많이 차용되어 있다. 그러기 때문에 비록 김연수가 송만갑으로부터 [흥보가]를 다 배웠다고 말할지라도, 그것이 곧 이후에 김연수가 부른 [흥보가]가 전적으로 송만갑 바디 [흥보가]라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사설의 경우 신재효본을 위시해 서 당시에 널리 읽혀지던 소설과, 많이 부르던 다양한 바디의 소리를 폭넓게 차용하였다. 그래서 [춘향가] 같은 경 우에는 당시 바디의 종합판 같은 느낌을 줄 정도이다.
사설에서 대목별로 같거나 비슷한 부분을 보면 김창환 바디 정광수본, 신재효본, 송만갑 바디 강도근본·박봉술본의 순이다. 그런데 ‘놀보 제비 후리러 가는 대목’ 이후만을 본다면, 송만갑 바디로부터는 거의 차용을 하지 않았으며 , 신재효본으로부터 대부분을 차용했다. 김연수가 이 뒷부분을 거의 신재효본으로부터 차용한 이유는 무엇일까. 아 마도 그 당시 불려지고 있던 판소리보다도 신재효본이 낫다고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송만갑 바디보다는 김창환 바 디가 낫기는 하지만, 그래도 역시 신재효본보다는 못하다고 판단했다는 뜻이다.
[흥보가]의 경우 특징적인 현상은 또 같은 부분보다도 비슷한 부분이 매우 많다는 점이다. 이는 김연수가 차용할 때 그대로 한 것이 아니라, 늘 자기 나름대로 수정을 가했다는 뜻이다. 수정을 가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장황한 사설을 줄이는 방식을 들 수 있다. 장황한 사설을 줄여 간략하고 짜임새 있게 만드는 것이다. 두 번째로 들 수 있는 방법은 보다 확대하는 방식이다. 이는 김연수 자신이 창작해서 넣을 수도 있고, 몇 개의 사설들을 합치는 방법이 있을 수도 있다. ‘놀보 심술’같은 대목은 여러 가지 것들을 합치되, 나름대로 취사선택해서 만든 것이다.
그런가 하면 처음, 중간, 끝 등 극히 일부만을 차용한 곳도 여러 곳 눈에 띈다. 이렇듯 김연수는 새로이 사설을 짤 때 다양한 방식을 사용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김연수가 무조건 다른 바디의 사설들을 그대로 차용하지 않고, 자기 나름의 비판적 안목을 가지고 취사선택하고, 새로이 써 넣기도 하면서 만들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지적할 수 있는 것은 비교의 대상으로 삼은 세 가지 이본에 없는 부분들에 관한 것이다. 이 부분 들은 김연수가 나름대로 창작한 부분이라고 일단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비교의 대상으로 삼은 이본들이 지극히 제 한적인 이상, 확정적인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 부분들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에 대해서는 더욱더 조사를 진행해야 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