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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 크림슨, 러쉬, 제니시스를 잇는 네오 싸이키델릭 록의 새로운 정의 THE MARS VOLTA (마스 볼타)
다양한 음악적 실험과 아이디어를 폭발 직전의 밀도로 담아낸 2년만의 신보 [THE BEDLAM IN GOLIATH]
도전, 실험, 열정으로 뭉친 순도 100%의 작가주의 록 밴드 마스 볼타!
한결같은 목표의식으로 도전, 실험, 열정에의 지향점을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마스 볼타의 네 번째 스튜디오 앨범 [THE BEDLAM IN GOLIATH]!
특유의 원초적 에너지가 고스란히 살아있는 첫 싱글'Wax Simulacra' 외 하드코어 펑크, 블루스, 프리 재즈, 싸이키델릭 등 장르를 넘나드는 다양한 음악적 실험과 아이디어가 폭발직전의 밀도로 남긴 총 12곡의 록 넘버 수록!
THE MARS VOLTA [THE BEDLAM IN GOLIATH]
Universe
예술과 예술가에 관해 내 안에 그려지는 개념적 이미지는, 2차원이나 3차원의 공간 - 혹은 그 공간에 대한 지도(map)의 형태이다. 예술가는 균형의 퍼즐을 풀어 어떤 지점을 우리가 방문(감상)할 수 있도록 개척하여 개방한다. 그리고 그들만의 신성한 권리로, 그 자리에 자신들의 이름으로 된 이정표를 세운다. 그 예술 우주의 공간은 무한히 넓을 뿐 아니라, 또한 무한히 미시적으로 줌인(zoom-in) 가능하다. 물론 그 관측 범위라던가 미시적인 세분화가 의미를 가질 수 있는 현실적인 한계는, 전적으로 우리들의 미학적 인지능력에 달려있다. 심미적 분해능. 문득 떠오른 표현이다.
The Mars Volta
마스 볼타(The Mars Volta)는 앳 더 드라이브-인(At The Drive-In)의 두 멤버, 오마르 로드리게즈-로페즈(Omar Rodriguez-Lopez:기타 겸 프로듀서)와 세드릭 빅슬러-자발라 (Cedric Bixler-Zavala:보컬, 작사)가 주축이 되어 2001년에 결성되었다. 멤버들의 이름이나 곡 제목, 앨범 제목, 음악 스타일 (혹은 심지어 외모?) 등에서 유럽 어디쯤의 비영어권 국가 출신일거라는 오해를 종종 받지만, 사실은 미국 텍사스 주의 멕시코 국경에 인접한 도시, 엘파소(El Paso) 출신의 밴드이다. (멤버들은 히스패닉계 미국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2003년 정규 데뷔 앨범 [De-loused in the Comatorium]으로 대중과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세상에 이름을 알렸다. 킹 크림슨(King Crimson), 러쉬(Rush) 등의 프로그레시브 밴드를 연상케 하는 치밀한 곡의 구성과 복고적 사운드,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에 비견될 정도의 강렬한 에너지, 그리고 이를 뒷받침하는 놀랍도록 정교한 연주 - 특히 라이브 퍼포먼스는, 수많은 열광적 추종자들을 낳으며 이들을 세계적 밴드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2005년의 두 번째 앨범 [Frances the Mute]은 이들의 음악적 불친절함 혹은 난해함에도 불구하고 빌보드 앨범 차트 4위로 데뷔하며 이들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기대를 증명하였고, 이는 2006년에 발표한 [Amputechture] 앨범에도 계속되었다. [Amputechture]에서는 그간의 두 앨범에서 고수해오던 일관된 내러티브의 컨셉 앨범 형식을 버리고, 음악 자체에 더욱 포커싱하여 “마스 볼타 스타일”을 더욱 확고히, 그리고 세부적으로 정립하였다.
The Bedlam In Goliath
마스 볼타가 1년 4개월만에 새롭게 발표하는 [The Bedlam In Goliath]는 전작 [Amputechture]의 추진력과 관성, 에너지를 그대로 이어 받아 발전시킨 앨범이다. 다양하고 에너제틱한 음악적 아이디어와 시도들이 폭발 직전의 높은 밀도로 담겨 있으며, 한층 더 깊고 첨예해졌다.
이 앨범이 전작 [Amputechture]의 연장선상에 있음은 커버 아트 이미지에서도 명백히 드러난다. 지난 앨범에 이어 이번에도 초현실주의 화가 제프 조던(Jeff Jordan)이 커버 아트를 제공해주었다. 데 키리코와 살바도르 달리, 마그리트 등을 동시에 떠오르게 하는 제프 조던의 커버 아트 이미지 역시 이들의 음악과 미학적인 축을 같이 하는 훌륭한 pair이다.
앨범의 트랙리스트는 여전히 스패니쉬와 라틴어, 심지어 새롭게 만들어낸 신조어 등의 낯선 단어들로 가득하다. 트랙리스트만을 받아 들고도 ‘마스 볼타로구나!’라고 알 수 있다. 그리고 첫 트랙을 플레이하자마자 그들답게 쏟아지듯 쇄도해 나오는 사운드, 비트.
Rhythm
이들의 사운드에는 90년대 이후의 록 앨범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유니즌으로 수차례 오버더빙되는 기타 리프 대신, 혼란스러울 정도로 제각각인 악기들이 에너제틱하게 쏟아지며 얽히고 설키며 혼재한다. 그 하나하나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멜로디와 스케일이지만, 그것들이 켜켜이 쌓이고 겹쳐지며 하나의 거대하고 조밀한 ‘리드믹 텍스쳐(rhythmic texture)’를 만들어낸다. 이들의 곡에서 ‘리듬’은 더 이상 드럼의 비트나 날카로운 어택을 가진 악기들에 의존하는, 딱딱하고 가느다란 골격을 가진 무엇이 아니다. 그것은 명확히 분리해 내기 힘든 사운드의 덩어리, 멜로디와 화음인 동시에 질감이며, 하드록에서 기타 리프가 하던 역할을 대신하는, 이들의 음악을 전개시켜나가는 아이디어의 기본 단위이다. 그리고 ‘리듬’이야말로 ‘복고’나 ‘프로그레시브’ 등의 다소 식상한 단어들보다 마스 볼타 사운드의 본질을 더 잘 드러내는 키워드이며, 4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해오는 동안 이들이 가장 집중적으로 파고들어 발전시켜온 부분이다.
이번 앨범에서 살펴보면, ‘Aberinkula’에서는 4/4박에서 15/8박, 5/4박 등으로 끊임 없이 변박이 이루어지고, ‘Metatron’에서는 3박을 가장한 4박의 독특한 그루브로 셔플과 스트레이트를 넘나든다. ‘Ilyena’는 가장 follow하기 쉬운 비트로 댄서블한 느낌마저 주지만 마스 볼타식의 날카롭게 쪼개지는 현란함은 여전하다. ‘Wax Simulacra’는 11/8박과 12/8박 사이를 번갈아 교묘하게 오고가며, ‘Goliath’는 17/8박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17/8박은 처음 들어봤다). 이런 리드믹 아이디어의 향연은 마지막 트랙이 끝날 때까지 이어진다.
물론 나는 이 글을 쓰기 위해 (그리고 음악적 호기심으로) 정확한 박자를 세어 가며 분석했지만, 감상에 있어서 그런 ‘분석’은 굳이 필요치 않다. 사실은, ‘리듬이 키워드라던데’라는 식으로 특별히 주의를 기울일 필요도 없다. 리듬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마스 볼타의 몫이다. (그리고 키워드 운운하는 것은 이런 글을 쓰는 사람의 몫이다.) 감상자는 그저 하나의 뭉뚱그려진 ‘인상’으로 그들의 음악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족하다.
(여담이지만, 리듬을 집중적으로 탐구하는 경향은 마스 볼타뿐 아니라 록, 재즈, 일렉트로니카 등 장르를 막론하고 진보적인 (혹은 학구적인) 소수의 뮤지션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물론 접근 방법은 모두 다르다. 이에 대해선 다른 지면에서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Control
혹자는 이들의 난해하고 혼란스러운 사운드를 들으며 - 특히 조성을 벗어난 현란한 색소폰 연주가 더해질 즈음에선 거의 심증을 굳히고 - 프리 재즈(free jazz)와의 유사성을 언급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프리 재즈에 대한 오해이거나 이들의 음악에 대한 오해, 아주 중대한 오해이다. 프리 재즈는 미리 작곡된 부분이 전혀 혹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즉흥연주의 협연으로 곡이 전개되는 반면, 이들의 음악은 혼란스러워 보이면서도 실제로는 그 혼란스러움마저 정교하게 통제되고 짜여져 있다. 엄격하게 길들여진 야수처럼.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처럼. 의학용어나 전문 학술용어를 떠올리게 만드는 차가운 느낌의 단어들로 이루어진 곡의 제목들이, 이들의 휘몰아치는 에너지가 차질 없이 통제되고 있음을 은연중에 암시한다.
이 통제는 한사람의 멤버에 의해 통합적이고 일관되게 이루어진다. 프로듀싱과 기타를 맡은 오마르 로드리게즈-로페즈는 기타와 베이스, 건반을 비롯해서 심지어 드럼에 이르기까지 모든 악기 파트들의 라인을 직접 만들고 편곡하며, 밴드의 사운드를 제어한다. 거기에 한술 더 떠서, 멤버들의 녹음은 의도적으로 다른 파트 멤버들의 연주를 듣지 못하도록 격리되어 메트로놈만을 들으며 이루어진다. (이 방법은 재즈계의 거장 마일즈 데이비스가 그의 밴드에서 실험적으로 사용했던 방법이다.) 심지어 게스트 기타리스트인 레드 핫 칠리페퍼스의 존 프루션테 마저도 그들의 방법을 존중하여, 오마르의 지시에 따라 한음 한음 녹음했다고 한다.
오마르의 철저한 독재(?)에 의해 프로듀싱이 이뤄진다는 점은, 이 사실을 몰랐던 많은 이들(특히 고전적인 록 순수주의자들)에게 의아함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예전에 본 마스 볼타에 관한 어떤 리뷰는 이들의 음악을 ‘계산되거나 재단되지 않은 원초적 에너지의,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멤버들의 호흡이 빚어낸 결과물’일 거라고 단정지어 놓고 있었다. 그러나, 나름의 자격(?)으로 단언컨대, 마스 볼타의 사운드는 그런 낭만적 클리셰를 통해 얻어질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어느 쪽이 우월하다는 것이 아니라, ‘다르다’는 것이 포인트다.) 비슷한 방식으로 프로듀싱하고 있는 밴드 ‘못(Mot)’의 경우는 그 통제되고 있음이 보다 명시적으로 드러나는 스타일인데 비해, 밴드의 폭발적이고 원초적인 에너지를 희생시키지 않는 오마르의 프로듀싱은, 프로듀서의 관점에서도 매우 흥미롭다.
Modernism
이들의 음악은 앨범 발매를 거듭해가면서 점점 더 고집스러울 정도로 음악 자체에 대한 예술적 집착을 보인다. 물론 예술적이지 않은 음악이 어디 있을까마는, 보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그러하다. 혹 ‘예술적’이라는 형용사가 거슬린다면, 이들이 “우리는 예술가 나부랭이가 아니라 그저 음악과 인생을 즐길 줄 아는 멋진 양아치들일 뿐이에요, 하하!”라는 식의 쿨가이들과는 조금 다른 애티튜드를 갖고 있다는 정도로 해두자. 쓰리-코드 펑크의 미학이 포스트모더니즘적이라면 이들의 음악은 모더니즘적이다. 진지한 미학적 성찰로부터 비롯되고 엄격하게 통제되며, 감상자에게 어느 정도의 심미적 준비나 훈련(혹은 심미적 분해능)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어떤 이들에게 그런 요구는 불쾌함을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 팝 아트의 친근함과 미니멀리즘의 심플함이 수많은 추종자들을 거느리는 가운데, 이런 딱딱한 태도는 시대착오적이라고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심지어 벌거벗은 임금님의 우화를 떠올리며, 감상에 필요하다는 ‘심미적 안목’ 따위는 애초부터 존재하지도 않는, 예술적 허영심에 의한 허구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못mot’의 이언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최소한 이것은 믿어도 좋다: 임금님의 옷은 여기에 실재한다.
The Mars Volta In The Universe
예술에 관한 나의 일반론을 다시 환기하자면, 그 요점은 다양성이다. 마스 볼타가 ‘모더니즘적이라서’, 혹은 ‘치밀하게 짜여진 통합적 프로듀싱으로 인해’ 그들이 훌륭한 것이 아니며, 또 그와 반대되는 성격의 밴드들이 훌륭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포스트모더니즘도 모더니즘도, 감정에 충실한 뜨거운 ‘날것’의 에너지도, 정교하게 설계된 치밀한 구조물도, 그 어느 것에도 절대적 우위는 없다. 우리는 지구에 마지막 단 하나의 밴드만을 남기고 나머지를 멸종시키기 위한 선별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마스 볼타는 그들만의 방식으로, 그들이 선택한 재료들로, 그것들이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어떤 지점’을 찾아내어 우리에게 제공할 뿐이다: 그들이 아니고서는 좀처럼 도달할 수 없는 어떤 지점을. 우리에겐 방문할 수 있는 근사한 장소가 하나 더 생긴 것이다! 그들은 어떤 밴드들이 그러하듯 우연히 어떤 운명에 의해 그 근처를 거닐다가 그 지점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치밀하게 목표하고 준비된 탐사에 의해 그곳을 찾아내었다. 그런 능력을 지닌 밴드는 많지 않다. 그런 발견을 애타게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그래서 마스 볼타는 훌륭하고 소중한 밴드다.
마스 볼타가 우리에게 찾아준 그곳은, 완전한 신세계라기보다는 우리가 이미 지나친 적 있는 어느 곳 근처에 숨겨져 있던 비밀장소이며, 어쩌면 그 점이 우리를 더 들뜨게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곳에선 익숙함과 낯섦, 노스탤지어와 여행지의 흥분이 묘한 비율로 공존한다. 모든 이들이 그곳을 방문하고 머무르지는 않겠지만, 나를 포함한 우리들 중 몇몇은 그곳에서 아주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리라.
이언 (밴드 못mot / 보컬, 프로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