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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식 로맨티시즘과 싸이키델릭한 캘리포니아 사운드'의 황홀한 만남!
모던, 브릿 사운드의 새로운 아이콘 골드프랩의 2008년 새 앨범 [Seventh Tree]
꿈꾸듯 환상적이며 달콤한 선율의 첫 싱글 <A&E>
'글래머러스'한 클럽에서 '싸이키델릭'한 초원으로:Goldfrapp [Seventh Tree]
"그건 7이라는 숫자가 새겨진 나무였어요. 정말 아름다운 나무였는데, 거기 달린 커다란 가지들이 흔들리는 모양이 꼭 물 속에 있는 해초 같았어요. 아침에 일어났을 때 이거다, 라고 결정했답니다. 이게 새 음반의 제목이라고 말이에요."
― 앨리슨 골드프랩(Alison Goldfrapp)
"우린 작업 중에 계속 이렇게 말했어요. '더 싸이키델릭해야 해, 더 싸이키델릭해야한단 말이지.'"
― 윌 그레고리(Will Gregory)
상투적인 문구이긴 하지만(그리고 사실도 아니긴 하지만) 이렇게 시작하는 것이 가장 무난할 것 같다. 처음에 음반을 잘못 받은 줄 알았다고 말이다. 단정하게 한음한음 또박또박 짚어주며 오르락내리락하는 어쿠스틱 기타 아르페지오, 고양이가 갸르릉거리기라도 하듯 입을 동그랗게 모아 소리를 내는 보컬, 굴곡 없이 평온하고 나긋나긋한 멜로디, 닉 드레이크(Nick Drake) 풍의 우아한 현악 세션, 평화롭게 둥둥거리는 더블베이스, 살짝살짝 섞인 화이트 노이즈와 더불어 뿌옇게 퍼지는 앰비언트 전자음. 이 평화로운 포크 발라드는 다름 아닌 골드프랩(Goldfrapp)의 새 음반 [Seventh Tree]를 여는 <Clowns>다. 그렇다. 당신이 알고 있는 바로 그 골드프랩 말이다.
골드프랩의 2005년작 [Supernature]는 음반의 제목처럼 '초자연적인' 규모의 성공을 거둔 음반은 아니었다. 어쨌든 이들은 저스틴 팀버레이크(Justin Timberlake)도, 마이 케미컬 로맨스(My Chemical Romance)도, 50센트(50 Cent)도 아니니까. 그러나 [Supernature]는 그 해의 가장 잘 만든 댄스 팝 음반 중 하나였다. 글램 록과 디스코를 과감하게 뒤섞은 번쩍거리는 사운드는 야하긴 했어도 천박하지는 않았다. 골드프랩 특유의 '언더그라운드'한 선정성 ― 관음증, 다소 온건한 사도-마조히즘과 양성애, 늑대 머리를 한 반인반수(半人半獸)와의 성적(性的) 교감, 마를렌 디트리히(Marlene Dietrich) 풍의 도착적 복장 ― 도 적절한 수준에서 억제되어 있었다. 대박 싱글 <Ooh La La>를 필두로 <Ride A White Horse>, <Number 1> 등의 곡들이 차트에 올랐고, 골드프랩은 컬트적인 유명세에서 벗어나 대중적 팝 스타라는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게 되었다.
따라서 골드프랩의 성장과정을 쭉 지켜본 사람들이라면 그 뒤의 행보도 어느 정도는 예상 가능했다고 말할 수 있다. [Supernature]가 전작에 비해 대중적인 접근을 취한 음반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음반의 성공이 예전 골드프랩의 정체성을 깡그리 버리고 얻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이들은 다소 뒤틀린 성적 판타지와 그것을 구현하는 예민하고 날카로운 전자음의 세계에 머물러 있었고, [Supernature]도 그런 면에서 보자면 변절이나 변신 같은 잣대를 들이대는 것보다는 '성질을 좀 죽인 음반'이라고 보는 쪽이 온당했다. 그러니, 지금까지 쭉 그래왔다면 앞으로도 그렇게 하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겠나.
그러나 신보의 첫 싱글로 발매된 <A&E>는 이런 예상을 깔끔하게 뒤집었다. 연분홍색 들꽃이 핀 초원을 광대 분장을 한 채 쓸쓸하게 걸어가는 보컬 앨리슨 골드프랩(Alison Goldfrapp)의 모습이 찍힌 이 싱글의 커버 안에 담긴 소리는 이 이미지와 정확히 일치했다.골드프랩을 특징짓던 강렬한 전자음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섰고, 그 자리에 하프, 어쿠스틱 기타, 베이스, 드럼 등의 실제 악기가 들어왔다. U2와 디페시 모드(Depeche Mode)와의 작업으로 유명한 프로듀서 플러드(Flood)가 믹싱과 공동 프로듀싱을 담당했다. 그 결과로 나온 것은 초기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도 언급할 수 있을 목가적이고 싸이키델릭한 사운드와 영국 포크의 전통에 발을 들여놓은 몽롱하고, 초현실적이고, 우아한 발라드였다.
<A&E>의 이미지와 음악적 전략은 또한 [Seventh Tree] 전체를 특징짓는 방향이기도 하다. 특히 초반부의 세 곡, <Clowns>와 <Little Bird>, 언뜻 비틀스(The Beatles)의 <Getting Better>가 스쳐 지나가는 <Happiness>는 일렉트로닉 뮤지션의 눈과 귀로 재해석한 1960년대의 '소리의 풍경(sound scape)'처럼 들린다. <Eat Yourself>에서는 실제 1960년대에 주로 사용되던 오르간인 옵티건(Optigan) 소리가 짤랑거린다(언뜻 들으면 하프시코드 같은 그 소리다). 때로는 그보다 더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예를 들어 <Road To Somewhere>의 인트로를 장식하는 하프는 1600년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음악적 첨가물들은 단순한 장식이라기보다는 음반이 가고자 하는 목표와 긴밀하게 관련을 맺고 있다는 인상이 강하다. 어디에도 없을 것 같지만 귀에 익은 소리의 공간, 무언가를 연상할 수는 있지만 꼭 그것은 아닌 소리의 공간을 향한 목표 말이다. 그것이 골드프랩의 시도와 단순한 복고를 구분짓는 경계일 것이다.
하긴, 이 팀은 언제나 그래왔다. 미술학도 출신이자 트리키(Tricky) 같은 뮤지션의 음반에서 게스트 보컬을 전전하던 앨리슨 골드프랩과 영화음악 작곡가였던 윌 그레고리가 만나 둘 다 애드 엔 투 엑스(Add N To (X))와 스콧 워커(Scott Walker)를 좋아한다는 이유로 의기투합하여 데모를 녹음하기 시작했다는 '펫 샵 보이스(Pet Shop Boys)스러운' 결성동기로 골드프랩을 꾸리기 시작했을 때, 이들은 이미 둘 다 30대였다. 어느 정도 자신을 통제할 수 있고, 확고한 목표의식이 있으며, 실험과 치기를 구분할 줄 아는 나이다. 이들의 데뷔작 [Felt Mountain](2000)은 트립합 같지 않은 트립합이었고, [Black Cherry](2003)는 일렉트로와 인더스트리얼 사이의 어딘가에서 사람들을 흥분시키는 음악이었다. [Supernature]에서는 글램 록과 일렉트로, 디스코를 혼합했지만 그 결과물은 익숙한 듯 낯선 음악적 풍경이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이 음반을 '전작의 성공에 부담을 느낀 아티스트의 내면 탐구에 기인한 소품'이라는 도식적인 시선으로 재단하고 싶지는 않다. 골드프랩의 팬들이라면 아무래도 이 음반과의 첫 만남에서 당황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어떤 이들은 실망스러운 기분이 들 수도 있겠지만 [Seventh Tree]는 세심한 방식으로 잘 짜여진 일렉트로닉 음반이며, 이 음반이 품고 있는 음악적 야심도 소품보다는 훨씬 커 보인다. 어쩌면 [Seventh Tree]는 영국 대중음악의 위대한 두 전통인 포크와 싸이키델릭에 대한, 일렉트로닉 음악의 언어로 쓰여지고 바쳐진 헌사일 것이다.
더군다나, 사실은 이런 시도가 어째서 이제야 이루어졌는지 궁금해하는 것이 오히려 맞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골드프랩의 '도시적'인 일렉트로닉 사운드는 서머셋(Somerset) 주의 작은 도시 배쓰(Bath) 바깥에 위치한 시골에 지어진 자신들의 스튜디오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니, 왜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음반을 만들었는지 묻는 것보다 어째서 이제야 자기 동네 주변의 풍경을 음악으로 만들 생각을 했는지 물어보는 것이 더 올바른 질문일지도 모른다. 대답 대신 "Join our group and you will find harmony and peace of mind"(<Happiness> 중)라고 노래할지도 모르겠지만.
2008.2.11
최민우
대중음악웹진 [weiv](http:weiv.co.kr)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