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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적으로 가장 사랑받는 컨템포레리 색소포니스트 케니 G!
부드럽고 로맨틱한 사운드에 열정적인 트위스트가 가미된 정규 신보
케니 지 [리듬 & 로맨스] featuring 조수미
수많은 히트 팝발라드 제작의 주인공인 명프로듀서 월터 아파나시에프와 다시 한번 팀을 이뤘으며 소프라노 조수미가 게스트 보컬로 참여한 2008 Concord 레이블 데뷔 신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대중적 연주인 케니 지
음반을 내놓는 아티스트들마다 빗겨갈 수 없는 것이 바로 평론가들에 의해 가해지는 ‘대중성’과 ‘예술성’ 논란이다. 하지만 어찌 보면, 순수 예술 분야가 아닌 대중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는 억울하기 그지 없는 것일 수도 있다. 대중 음악인이 대중들의 기호에 영합하는 음악을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고, 이렇게 하는 데에 그들의 ‘존재의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이 항상 이런 논리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어서, 엄청난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어들인 음악인들은 거의 예외 없이 예술성 논란에 휩싸이기 마련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상업적인 성공을 거둔 연주자로 꼽히는 케니 지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한 소절만 들어도 당장 그의 연주임을 직감할 수 있는 로맨틱한 소프라노 색소폰 연주를 트레이드마크로 하는 그가 일궈낸 성공신화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경지에 달해 있다. 실례를 들자면, 그의 1992년 작 히트 앨범 [Breathless]는 빌보드 앨범 차트에 무려 4년여 머문 스테디 셀러였고, 미국 시장에서 1천만 장 이상 판매된 음반에 주어지는 다이아몬드 앨범의 기록을 갖고 있다.(다이아몬드 앨범을 인증받은 음반 중 연주 앨범은 이 작품이 유일하다. 1992년 11월 발매된 이 음반은 미국 음반산업협회(RIAA)로부터 1998년 6월 18일 다이아몬드 앨범으로 인증받았고, 지금까지 미국에서만 통산 1,200만 장이 팔려나갔다. 참고로 이 부문 1위 기록은 통산 2,900만 장이 팔린 이글스의 [Eagles/Their Greatest Hits 1971-1975]가 보유하고 있다) 이 밖에도 그의 전성기였던 그의 출세작으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노래 중 하나인 ‘Songbird’가 실렸던 [Duotones](1986) 앨범을 비롯한 대부분의 음반이 멀티 플래티넘을 기록했을 만큼 그를 향한 대중들의 사랑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컨템퍼러리 재즈’란 꼬리표를 달고 있는 그의 음악이 대중들에게 가까이 가면 갈수록 그를 향한 평단이나 음악인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1982년 셀프 타이틀 음반으로 데뷔해 사반세기가 넘는 음악 활동 경력을 통해 엄청난 음반 판매고를 기록한 그였지만, 음악인 최고의 영예로 꼽히는 그래미상 시상식에선 1993년 [Breathless] 앨범에 실렸던 ‘Forever In Love’로 ‘최우수 연주곡 작곡(Best Instrumental Composition)’ 부문을 수상한 것이 유일했다.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그래미의 성향이 극명하게 드러난 것일 수도 있지만, 이처럼 평단은 그에게 가혹했고, 정통 재즈 팬들이나 일부 연주자들은 그의 음악에 ‘재즈’란 타이틀이 붙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즈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즉흥 연주(improvisation)’보다는 예측 가능한 패턴을 지닌 멜로디 중심의 음악을 해왔다는 점이 이런 비난을 사게 된 원인이겠지만, 사실 이는 케니 지는 물론 그의 대를 이은 데이브 코즈 등 소위 ‘스무드 재즈(smooth jazz)’의 범주에 속하는 음악인들에게는 공통적으로 주어졌던 비난이었다(케니 지의 경우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에게서 일정부분 영향을 받았고, 마치 부드럽게 사랑을 나누는 듯한 케니 지의 블로잉은 로맨티시즘의 극치를 보여준다는 평을 얻어왔다).
하지만 ‘스무드 재즈’건, ‘컨템퍼러리 재즈이건’, 혹은 ‘팝 인스트루멘틀(Pop Instrumental)’이건 간에 아무러면 어떠랴. 그가 여전히 능력 있는 연주자이고, 진부한 듯 보이지만 여전히 대중들의 청 감수성을 충족시키는 음악을 만들어내는 이상 그는 영원한 ‘색소폰의 마술사’이며, 비대중적인 연주 음악을 대중들에게 친숙하게 만들어준 최고 공로자가 아닌가? 이번 앨범에서도 그의 음악은 여전히 통속적이지만, 거부할 수 없는 로맨티시즘을 담고 대중들에게 손짓하고 있다. 앨범 타이틀부터 ‘리듬과 로맨스’ 아닌가? 얼핏 상반되어 보이는 리듬감과 로맨티시즘을 절묘하게 결합시켜 최고조의 화학반응을 일으켜내는 것은 온전히 케니 지의 탁월한 능력 덕분인 것이다.
뛰어난 멜로디 메이커로 변신한 후 성공가도 달려
케니 지의 본명은 ‘케네스 고얼릭(Kenneth Gorelick). 1959년 6월 5일 유태계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음악적인 재능을 발휘해 16세 시절부터 색소폰을 불기 시작했고, 그로버 워싱턴 주니어 등의 연주 음반을 들으며 실력을 쌓아나갔다. 고등학교 재학시절 이미 밴드의 일원으로 유럽 공연을 갖는 등 풍부한 경험을 축적한 그는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진 흑인 소울 싱어 배리 화이트(Barry White)의 오케스트라(Love Unlimited Orchestra)에서도 활동을 했고, 시애틀 지역의 펑크(funk) 밴드 콜드 볼드 앤 투게더(Cold, Bold & Together)에서도 연주를 했다. 이후 워싱턴 대학에서 회계학을 전공한 이후에도 필라델피아 출신의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인 제프 로버가 이끌던 재즈 록 밴드 제프 로버 퓨전(Jeff Lorber Fusion)에 가담해 활동하는데, 이 밴드 역시 펑크 색채 강한 음악을 들려주던 팀.
이처럼 젊은 시절 그의 음악을 지배한 펑크 사운드는 1982년 [Arista] 레이블과 계약을 맺고 발표한 데뷔작 [Kenny G]에 진하게 배어나오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음반에는 제프 로버가 작곡가 및 편곡자로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후 이처럼 리듬감이 강조된 음악 스타일은 2집 [G-Force](1984)-밴드 지 포스(G-Force)의 이름으로 발표되었다-를 지나 3집 [Gravity]에 이르기 까지 꾸준하게 이어졌다.
하지만 음악인으로서 그의 성공 시대는 이러한 초기 음악 스타일을 과감히 벗어던지면서 개막되기 시작했다. 바로 빌보드 팝 싱글 차트 4위까지 오르며 말 그대로 ‘크로스오버 히트’(주:이 경우는 한 장르의 음악이 다른 장르의 차트에서도 히트하는 경우를 일컫는다)를 기록한 ‘Songbird’가 실린 [Duotones](1986) 앨범이 500만 장 넘는 판매고를 기록하면서부터다. 이 ‘Songbird’는 향후 케니 지 음악 스타일을 예고하는 멜로디 패턴을 담은 의미있는 곡인데 이러한 감미로운 멜로디와 기존의 리듬감 강한 곡이 공존하는, 변화의 과정을 담아낸 앨범 [Duotones]에는 명 프로듀서 나라다 마이클 월든(Narada Michael Walden)과 이번 케니 지의 앨범 [Rhythm & Romance]에도 참여하고 있는 평생지기 월터 아파나시에프가 작곡가로 힘을 보탰다. 특히 수많은 발라드 히트곡을 발표해온 월터 아파나시에프와의 만남은 케니 지에게는 이후 화려한 성공시대를 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그의 대표곡 중 하나인 ‘Silhouette’와 스모키 로빈슨의 보컬이 실린 ‘We’ve Saved The Best For Last’(1988)에서는 완연히 케니 지의 연주 패턴을 정립시켰고, ‘Going Home’이 실린 [Live](1989)를 지나 그에게 유일한 그래미 트로피를 안겨준 ‘Forever In Love’(빌보드 팝 싱글 차트 18위)를 비롯해 ‘By The Time This Night Is Over’, ‘Sentimental’ 등이 실린 초대형 히트 앨범 [Breathless](1992)에 이르러 그의 인기는 상종가를 기록했다. 2002년의 [Paradise]에 이르기까지 모두 12장의 정규 앨범을 낸 그는 그 외에도 라이브와 베스트 앨범 등을 통해 꾸준히 인기를 얻어왔고, 특히 감미로운 연주를 앞세워 [Miracles](1994), [Holiday](1999) 등의 크리스마스 시즌 앨범들을 발표해왔다. 특히 [Miracles]는 그의 대표작인 [Breathless]도 해내지 못한, 빌보드 앨범 차트 1위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시종일관 라틴 사운드로 채색된 대중적 앨범 [Rhythm & Romance]
이번 앨범은 정규반으로는 [Paradise] 이후 6년만의 작품. 케니 지의 음악이라면 매번 ‘Songbird’나 ‘Going Home’ 따위만 들었던 이들, “또 케니 지야?”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입 밖에 내는 감상자들의 시각으로 보자면 리듬감 넘치는 트랙이 다수 포진된 이 앨범을 보고 그가 갑자기 달라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rhythm’을 강조한 ‘Rhythm & Romance’라는 타이틀이나 ‘The Latin Album’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으니 더더욱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는 이미 지난번 앨범 [Paradise]에서 ‘Brazil’이나 ‘Seaside Jam’ 등의 음악을 통해 초기 시절의 펑키한 사운드를 수용해 내며 초기 시절로 돌아가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 바 있다. 당시에도 이런 펑키한 트랙들과 함께 ‘Ocean Breeze’처럼 감미롭고 부드러운 그의 전매특허 사운드를 조화시킨 바 있으니, ‘rhythm’과 ‘romance’가 공존하는 이번 음반 역시 전작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하지만 앨범의 처음부터 끝까지 라틴 리듬을 주제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보자면 분명 그의 과거 음악 패턴에 비춰볼 때 새로운 시도임에는 분명하다.
한편 이번 앨범이 [Universal Music] 산하 [Concord]에서 발매되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최근 거물 그룹 롤링 스톤즈도 [Universal Music]으로 이적을 선언해 눈길을 끌었지만, 여러 음반사에서 앨범을 냈던 그들과는 달리 케니 지는 1982년 데뷔 이래 줄곧 [BMG](지금은 [SONY BMG]) 산하의 [Arista] 레이블에 몸담아왔기 때문에 사반세기만의 음반사 이적은 케니 지 개인에게는 큰 변화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지난번 앨범과 마찬가지로 케니 지와 함께, 혹은 단독으로 수록곡 전체의 작곡자로 나서고 있는 월터 아파나시에프의 존재는 그의 작품에 뚜렷한 일관성을 부여하고 있다. 여기에 웨더 리포트 출신의 드러머 알렉스 아쿠냐, 기타의 라몬 스타녜로, 퍼커션 연주자 폴리뇨 다 코스타 등의 세계적 라틴 뮤지션과 베이시스트 네이던 이스트 등 최고 기량을 지닌 세션의 참여는 음반의 퀄리티를 최상으로 만들어주고 있다.
‘The Latin Album’이라는 부제를 단 이유 그리고 ‘rhythm’과 ‘romance’를 앨범 제목에 넣은 이유는 퍼커션과 소프라노 색소폰이 주도하는 첫 곡 ‘Sax-O-Loco’만 들어도 단번에 감지할 수 있을 듯. 도입부를 얼핏 들으면 티토 푸엔테 원곡을 산타나가 리메이크 한 ‘Oye Como Va’를 떠올리게 만드는 이 곡은 퍼커션이 주조하는 흥겨운 라틴 리듬, 그리고 그 리듬을 절묘하게 타고 흐르며 케니 지가 빚어내는 로맨틱한 멜로디는 “케니 지의 음악은 항상 똑같다”는 일부의 비난을 잠재우기에 충분할 듯 하다. 이처럼 이 음반에는 차차차에서 삼바, 살사, 탱고 등의 리듬감 넘치는 사운드는 물론 로맨틱한 볼레로에 이르기까지 라틴의 정취가 흠뻑 배어 있다. ‘Rhythm & Romance’의 스페인어 제목인 ‘Ritmo Y Romance’ 역시 가볍게 리듬을 타는 퍼커션과 살며시 어루만지는 듯한 케니 지 특유의 색소폰 연주가 낭만의 유토피아로 듣는 이를 안내하고 있다.
한편 월터 아파나시에프의 피아노에 이어 케니 지의 색소폰이 주도하는 ‘Tango’에는 탱고에 통상적으로 사용되는 반도네온(주:아코디언과 흡사하나 아코디언의 건반 대신 단추 모양으로 생긴 키보드가 있음) 대신 아코디언이 사용되고 있는데, 이 역시 소프라노 색소폰의 비중이 큰 관계로 좀 더 소프트한 느낌을 주고 있다.
‘Peruvian Night’이나 삼바 리듬을 차용하고 있는 ‘Brasilia’, 유일하게 케니 지가 테너 색소폰을 들려주는 ‘Fiesta Loca(광란의 축제)’, 한창 주목받는 라틴 여가수 카밀라가 피처링한 발라드 넘버 ‘Es Hora De Decir(말할 시간)’ 등은 모두 또 한번 대중들의 사랑을 받기에 충분한 곡들.
가벼운 보사노바 리듬이 가미된 감미로운 발라드 트랙 ‘Copa De Amor’(사랑의 잔)이나 흥겨운 살사 리듬으로 앨범을 갈무리 하는 ‘Salsa Kenny’ 등의 곡들 역시 ‘라틴 앨범’이라는 테마에 충실한 작품들.
한편 오리지널 곡들로 꾸려진 이번 앨범에 실린 두 곡의 리메이크 곡들 역시 시선을 끈다. 세번째 트랙으로 실린 볼레로 넘버 ‘Sabor A Mi’는 멕시코 출신의 유명한 볼레로 작곡가 알바로 까리요(Alvaro Carrillo)의 원곡을 새롭게 해석한 작품이다. 로맨틱한 볼레로 음악의 매력을 케니 지표 소프라노 색소폰이 극대화시키고 있는 곡이다. 새삼 설명이 필요 없는 곡 ‘Besame Mucho’ 역시 케니 지가 재해석해내고 있다.
한편 한국 발매반에는 한국이 낳은 디바 조수미가 이 곡을 스페인어와 한국어로 부른 두가지 버전의 ‘Mirame Bailar’가 실려 있어 눈길을 끈다. 역시 앨범에서 주목할 만한 곡인 이 작품은 [At Last…The Duets] 앨범에 임형주와 함께 한 ‘하월가’를 실었던 것처럼 여전히 그의 최대 시장 중 하나인 한국의 팬들을 겨냥한 보너스 선물의 성격이 크다.
이번 앨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라틴 리듬을 주제로 삼으며 과거의 음반들과는 다른 느낌으로 채색해내고 있지만, 과거 케니 지가 [Classics In The Key Of G](1999)에서 루이 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를 리메이크한 것을 두고 퓨전 재즈 기타리스트 팻 메시니가 혹평을 했던 것처럼, 기본적으로 정통 재즈의 규범을 따르지 않고 있는 케니 지의 연주 패턴에 대한 ‘안티’들의 곱지 않은 시선은 바뀌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케니 지는 여전히 대중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는 뮤지션이다. 전성기 시절만은 못하다지만 지난번 정규 앨범 [Paradise]는 골드 레코드를 기록하는 선전을 펼쳤다. 서두에서 언급했던 ‘상업성’과 ‘예술성’ 논란은 케니 지와 같은 뮤지션에게는 더 이상 의미가 없는 시간낭비일 뿐이다. 음악의 본질이 ‘감동’이고, 예술적이건 아니건 간에 케니 지의 음악을 듣고 감동을 느끼는 이들이 존재한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 아니겠는가.
2008. 1. 25 원용민(월간 52street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