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보컬, 뛰어난 연주에 성숙한 시각까지 고루 갖춘
대중 음악의 새로운 대안 마리에 딕비(Marie Digby)의 [Unfold]
웹을 기반으로 한 산업들이 나날이 번창하기 시작하면서 인터넷을 통해 데뷔를 하거나 아티스트로서의 입지를 굳히는 사례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스트리밍 탱크(Streaming Tank)를 통해 21일간 웹호스팅 콘서트를 열어 10만 명에 이르는 관객(!)을 확보하고 앨범까지 발매해 영국 차트 정상을 차지한 샌디 톰(Sandi Thom)이나 마이스페이스(Myspace)를 통해 데뷔 전 화제몰이에 성공한 릴리 알렌(Lily Allen), 그리고 최근 미국에서 돌풍을 일으킨 콜비 칼레이(Colbie Caillat) 등에 이르기까지 그 숫자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대부분이 싱어 송라이터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이들의 리스트에 신예의 이름을 하나 더 올린다면 바로 유튜브에 올린 UCC 동영상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마리에 딕비(Marie Digby)가 될 것이다.
올해 25살인 마리에 딕비는 리하나(Rihanna)의 메가 히트 싱글 ‘Umbrella’를 자신의 거실에서 부르는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렸고 현재까지 마리에 딕비 관련 천이백만 건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며 순식간에 네티즌들의 우상으로 떠올랐다. 사실 이 동영상으로 스타덤에 오르기 전부터 [할리우드 레코드]와 계약이 되어있던 상태였지만, 마리에 딕비는 신인으로서 자신을 알리기 위한 방편으로 기존 히트 곡을 그녀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해 계속해서 선보였고 결국 [칼슨 데일리 쇼]에 출연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앨범의 제작이 끝난 상태에서도 발매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던 제작사 측에서는 마리에 딕비의 UCC 중에서 가장 반응이 좋았던 ‘Umbrella’와 린킨 파크의 ‘What I’ve Done’ 그리고 데뷔 앨범에 수록 예정이었던 ‘Stupid For You’와 ‘Unfold’를 수록한 미니 앨범 [Start Here]를 공개한다. 이미 [MTV]의 인기 리얼리티 쇼인 [더 힐즈(The Hills)]의 3시즌 오프닝 에피소드에 사용되며 라디오 에어플레이가 치솟고 있던 마리에 릭비 버전의 ‘Umbrella’가 예상대로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고, 이에 자신감을 얻은 그녀는 대망의 데뷔 앨범 [Unfold]를 내놓게 된다.
[Unfold] 앨범은 UCC 동영상을 통해 드러냈듯 피아노와 기타를 기반으로 한 팝/록 넘버들로 채워져 있다. 앨범의 포문을 여는 ‘Fool’은 기존 히트 곡들을 커버해서 유명해진 ‘UCC 스타’라는 다소 가벼운 느낌의 이미지를 순식간에 상쇄시키고도 남음이 있는 곡이다. 헤어진 남자 친구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도 에이브릴 라빈 식의 무차별 폭격이 아니라 서서히 감정을 끌어올리는 노련한 감각은 물론이거니와 겨우 17살에 시작한 것으로 알려진 기타 연주 실력도 깜짝 놀랄 수준이라 미디어의 과장 섞인 지원을 등에 업고 등장한 신인이 아니라는 짐작을 가능케 한다. 이어 흐르는 ‘Better Off Alone’ 역시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에 부드럽게 흘러가는 매력적인 보컬이 일품인 트랙으로 후에 싱글로 커트 된다면 라디오 친화성을 단연 뽐낼 것이 분명한 곡이다. 한편 첫 싱글로 지난 1월부터 미국에서는 라디오 방송을 타기 시작한 ‘Say It Again’은 마리에 딕비가 인터뷰에서 밝혔듯 앨범 수록 곡들 중에서 몇 안 되는 밝은 분위기의 노래로 새로 찾은 사랑과 그로 인한 즐거움을 듣기 좋은 멜로디에 잘 녹여낸 트랙이다. 젊은 감각으로 노래하고 있지만 결코 가볍지 않고, 깊이가 있되 지루하지 않은 탁월한 아티스트로서의 가능성을 유감없이 드러내고 있어, 국내에서도 큰 인기가 예상되는 곡이다.
어쿠스틱 피아노와 클래식한 오케스트레이션이 마음을 파고드는 ‘Miss Invisible’은 [팬틴]에서 진행한 노래 공모전에서 우승을 차지하여 마리에 딕비의 이름을 처음으로 전 미국에 떨치게 한 곡으로 누군가에게 발견되어지기를 바라는 외로운 소녀의 마음을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담담한 어조로 노래하고 있어 큰 인상을 남긴다. 이미 [Start Here] 앨범을 통해 공개되어 디지털 차트에서 선전했던 ‘Stupid For You’는 다소 이질적인 느낌을 주는 편곡 덕분에 앨범 내에서는 독특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곡이다. 코러스를 제대로 이용하여 상쾌하고 깔끔한 감각을 선사하는 후렴 구는 최근 큰 인기를 얻은 사라 바렐리스(Sara Bareilles)를 연상시킬 정도이고, 트렌드 면에서도 꽤 앞서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또한 ‘Girlfriend’와 ‘Traffic’은 여성으로서, 인간으로서 성장하면서 느꼈을 감정을 노래로 주조해내어 앨범이 일관적으로 말하고 있는 메시지를 충분히 전달하고 있는 팝/록 넘버이다.
카펜터스의 ‘Superstar’의 대구처럼 느껴지는 ‘Voice On The Radio’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록 밴드 보컬의 목소리에 빠져버린 자신을 소재로 하여 쓰여진 곡으로 설렘과 자기 연민을 끊어질 듯 가녀리고 애수 어리게 표현해내고 있을 뿐 아니라, 기승전결을 딱 맞춰내어 드라마틱한 감정선을 정확하게 읽어내는 능력을 탁월하게 펼쳐보인다. 그리고 [Unfold] 앨범에서 가장 인상적인 순간을 제공하는 ‘Spell’은 피아노와 현악의 인상적인 협연을 가볍게 눌러버리는 마리에 딕비의 뛰어난 보컬을 경험할 수 있는 곡이다. 이미 인기 드라마 시리즈 [스몰빌]에 삽입되어 큰 화제를 모은 이 곡은 사랑에 빠진 마음을 아름다운 멜로디에 담아내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어 마리에 딕비가 추후에 사라 맥라클란이나 조니 미첼처럼 소박한 연주와 감동적인 목소리를 지닌 아티스트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Beauty In Walking Away’는 마리에 딕비가 가진 세상과 인생을 향한 성숙한 시각을 보여주는 곡으로 보컬과 연주 뿐 아니라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에 대한 독특한 시선이 한 아티스트를 얼마나 돋보이게 하는지를 증명해내고 있다. 이러한 시각은 앨범의 타이틀 곡인 ‘Unfold’에서도 유감없이 빛을 발하고 있는데 한 여성으로서, 아티스트로서의 성숙을 약속하고 있어 그녀가 미래에 어떻게 그 약속을 성실하게 이행하게 될 것인지 큰 기대를 갖게 된다. 또한 앨범 완성 당시에는 수록 계획이 없다가 결국 최종적으로 앨범에 실리게 된 ‘Umbrella’는 마리에 딕비에게는 양날의 검과 같은 곡이기는 하지만, 그녀만의 독창성이 가득 담겨 있어 리하나와는 사뭇 다른 새로운 즐거움을 선사해준다.
매일매일 새로운 얼굴들이 나타났다가 다음날이 되면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스타를 만들기 위한 놀라운 포장과 마케팅 기법들이 속속들이 생겨나고 있지만 최종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드는 것은 역시 ‘실력’ 뿐이라는 단순한 진실을 마리에 딕비는 [Unfold] 앨범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앨범이 발매되기 전에는 UCC를 통한 과대 마케팅이라는 루머에 시달리기도 했지만 ‘Umbrella’를 제외한 앨범 수록 곡 전체를 직접 작곡하며 자신의 색깔을 확실하게 드러냈고, 화려함이 아닌 소박함과 진중함으로 무장하여 긴 호흡으로 음악 팬들과 만날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자기만의 재능이 있어요. 제 경우엔 음악이 바로 그 재능이죠. 부디 그 재능을 나중에 다른 사람을 돕는 데 쓰일 수 있을 만큼 제가 성공할 수 있다면 좋겠네요.” 라고 말하는 신인 가수라니, 기대를 하지 않을 수가 없지 않은가.
글: 장민경(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