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 히긴스 [Bewitched]에 이은 재즈 피아노 트리오 걸작 앨범 시리즈 제 2탄!
행복한 스윙의 정서를 추구하는 부드러운 연주와 전통에 대한 강한 존중이 조화를 이룬 프랑스 출신의 로맨틱 피아니스트 알랭 마이에라스 트리오의 대표적 명반!
첫 곡을 듣는 순간 매력에 퐁당 빠질 수 밖에 없을만큼 우아하고 아름다운 연주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피아노 트리오 걸작 앨범으로 모든 것이 아름다운, 모든 것이 우아한 시대를 대변하는 산뜻한 스윙의 입맞춤이 어우러지는 프랑스 재즈의 미학을 선보인다.
프랑스의 영화 감독 장 뤽 고다르의 1963년도 작품 [Le Mepris, 경멸]의 주제곡인 "Le Theme De Camille, 카미유의 테마", 벤 웹스터의 명곡 "Secret Love", 줄리 런던의 명곡 "Fly Me To The Moon"과 바흐의 인벤션 등 총 15곡의 우아하고 아름다운 연주를 담은 유럽 피아노 트리오 재즈의 매력과 스윙의 아름다움이 절묘하게 베여있는 강력 추천 앨범!!!
◈ 뮤지션
Alain Mayeras (Piano)
Gilles Naturel (Bass)
Jean-Pierre Jackson (Drums)
행복한 스윙의 정서를 추구하는 부드러운 연주
Tenderly - Alain Mayeras
최근 많은 재즈 애호가들이 유럽 쪽 피아노 연주자들의 연주에 관심을 두고 있다. 그런데 다양한 유럽의 피아노 연주자들 가운데서 주로 내면적, 반성적인 피아니즘을 지닌 연주자들에게 유난히 관심이 큰 듯하다. 이런 현상은 정서적인 측면 때문이겠지만 이로 인해 유럽의 재즈 피아노 연주자들이 이처럼 정적인 연주를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이것은 분명 오해다. 그리고 사실 차분한 유럽식 피아니즘은 재즈 피아노의 시인이라 불리는 빌 에반스 혹은 그 뒤를 이은 키스 자렛 같은 미국 연주자들의 영향이 크다. 하지만 미국의 재즈 피아노 역사를 볼 때 빌 에반스와 키스 자렛이 재즈 피아노의 현재에 준 영향은 막강하지만 그래도 어디까지나 이들의 존재는 일부분에 지나지 않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빌 에반스, 키스 자렛 외에 아트 테이텀, 버드 파웰, 텔로니어스 몽크, 오스카 피터슨 등 후대에 영향을 끼친 개성파 피아노 연주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따라서 재즈의 고향인 미국식 연주에 자신들에 고유한 전통을 결합한 유럽의 재즈 피아노 연주자들 가운데 빌 에반스, 키스 자렛이 아닌 보다 전통적인 연주자들의 영향을 받은 인물들도 많음을 생각해야 한다. 물론 그렇다고 이들 피아노 연주자들이 빌 에반스와 키스 자렛을 부정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빌 에반스와 키스 자렛이 가능하게 만든 자유로운 상상의 피아니즘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기 보다 다소 보수적일지라도 재즈 피아노의 원형, 기본적 양식을 설정하고 이에 맞추어 상상을 작동시킨다고 보는 것이 더 적확(的確)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전통 중심적인 재즈 피아노 연주자들이 설정한 기본적 양식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바로 스윙감, 외적인 리듬감을 우선으로 두고 이를 바탕으로 산뜻, 경쾌한 연주를 펼치는 것이다.
1958년 프랑스 리모주에서 태어난 피아노 연주자 알랭 마이에라스도 그런 연주자 가운데 한 명이다. 그의 피아노 연주에는 전통에 대한 강한 존중이 느껴진다. 오스카 피터슨, 행크 존스로 대표할 수 있는 가벼운 리듬과 밝은 멜로디로 가득 찬 연주가 주를 이룬다. 그러나 사실 알랭 마이에라스 역시 다른 유럽 연주자들처럼 클래식 피아노 수업을 먼저 받았다. 그리고 13세였던 1971년 리치 바이라흐를 통해 재즈 피아노의 세계에 빠지게 되었다. 이렇게 클래식 피아노를 공부한 데다가 빌 에반스의 직접적인 후계자라 불리는 리치 바이라흐의 영향을 받았다면 그 역시 빌 에반스적인 피아니즘을 추구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빌 에반스가 개척한 새로운 시적 세계를 향해 모험을 떠나는 것 보다 지나간 50년대 스타일을 향수하고 여기에 자신의 감성을 부여하는데 더 큰 관심이 있었던 모양이다. (어쩌면 이것은 가장 근본적으로 취향의 문제일 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상이하다고 생각되는 두 가지 방향을 하나로 모으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이런 알랭 마이에라스의 성향은 앨범 [Tenderly]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이 앨범에서 그는 잘 구워져 기분 좋게 바삭거리는 듯한 리듬을 배경으로 낭만으로 가득 찬 멜로디를 펼친다. 그리고 그 멜로디들은 좌중을 흐뭇하게 만드는 수다처럼 유쾌한 정서로 다가온다. 과거 오스카 피터슨, 행크 존스, 듀크 조던, 케니 드류, 케니 베이런 등의 미국 피아노 연주자들에게서 느낄 수 있던 친근한 맛이다. 특히 "Hank's Mood"는 직접적으로 행크 존스에 대한 그의 애정을 느끼게 해준다. 가벼운 탄력을 지닌 리듬과 스윙하는 멜로디를 듣다 보면 저절로 행크 존스의 피아니즘이 연상된다. 그 밖에 "Secret Love", "Whisper Not" 등의 스탠더드 곡을 들어보면 쉽게 미국의 재즈 피아노 거장들이 연상된다.
그렇다고 알랭 마이에라
스가 대중적으로 인정 받은 선배 연주자들의 길을 그대로 따르기만 한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그의 음악은 그저 50년대의 분위기를 복제한 시대 착오적인 음악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음악이 현재에 위치함을 적극 드러낸다. 50년대 미국의 피아노 트리오 사운드를 추구하면서도 자신이 유럽, 특히 프랑스 연주자임을 드러낸다. 그 좋은 예가 프랑스의 거장 영화 감독 장 뤽 고다르의 1963년도 작 [Le Mepris, 경멸]의 주제곡인 "Le Theme De Camille, 카미유의 테마"와 이 트리오에서 드럼을 연주한 쟝 피에르 잭슨이 직접 감독한 영화 [Ca n'empeche pas les sentiments 그래도 사람의 감정은 어쩔 수 없다]의 삽입곡 "Si Douce 너무나 부드러운"이 아닐까 싶다. 이 두 곡에서 그는 유럽 특유의 우아함을 편하고 부드러운 멜로디를 통해 드러낸다. 경우에 따라서는 빌 에반스의 피아니즘의 영향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고도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러나 "Invention #4/aBachadabra"의 경우 바하의 인벤션을 통해 자신의 클래식적 소양을 드러내면서도 여기에 찰랑거리는 스윙감을 더해 바하를 재즈적으로 바꿈으로써 유럽적 특성과 상관없이 결국엔 기본적으로 전통적인 재즈 피아노 트리오 양식을 존중하고 있음을 밝힌다.
그렇다면 왜 알랭 마이에라스는 스윙에 애착을 보일까? 이것은 단지 그가 오스카 피터슨, 행크 존스 등의 연주를 좋아하기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그에게 스윙이란 1930년대를 휩쓴 재즈의 한 사조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고 가뿐하게 흔들리는 리듬만을 의미하는 것 같지 않다. 그에게 스윙은 모든 것이 아름다운, 모든 것이 우아한 시대를 대변한다. 그리고 그 찬란한 시대는 꼭 지나간 특정 시대를 지칭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스윙의 산뜻한 흔들림만 있다면 시대와 상관없이 모든 것이 아름다우며 우아할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그렇기에 그에게 스윙은 하나의 낭만적 정서라 할 수 있다. 바로 이점이 알랭 마이에라스라는 피아노 연주자의 음악을 결정하는 가장 주요한 특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왜냐하면 정서로서 스윙을 생각했기에 그의 트리오 연주가 기본적으로는 50년대 미국식 재즈 피아노 트리오의 전통을 계승하지만 그것이 과거의 재현이 아닌 재현된 현재로 다가올 수 있었으며, 빌 에반스로 대표되는 (유럽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클래식적 시정을 적절히 사운드 안에 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사운드가 친숙하면서도 신선한 느낌을 주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알랭 마이에라스는 앨범에서 특별히 모든 것이 행복하고 편안한, 스윙적 정서가 가장 잘 드러나는 시기를 6월로 국한 시킨다. 이것은 3박자의 우아한 왈츠 풍으로 전개되는 "June In Paris 6월의 파리"와 앨범 내지에 알랭 마이에라스가 서술한 글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사실 우리에게 6월은 여름의 시작이지만 프랑스에서 6월은 봄과 여름이 교차하는 시기다. 겨울을 뚫고 꽃처럼 피어 오른 봄은 6월 초에 만개해 6월 21일에 여름에게 자리를 내준다. (프랑스의 공식적인 계절 구분이 이렇다.) 이렇게 봄과 여름이 자리를 바꾸는 시기를 알랭 마이에라스는 부드러운 멜로디와 청량한 스윙으로 표현한다. 그래서일까? 나는 이 앨범이 가을이나 겨울에도 나름 맛있게 들릴 수 있지만 봄과 여름, 특히 여름에 더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 가운데서도 검정색이 아니라 푸른 색이 도는, 이상스레 사람들을 달뜨게 만드는 여름 밤에 더 어울리리라 생각한다.
(낯선 청춘 최규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