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이나 링고 데뷔 10주년 기념 작품 !!
1998년 데뷔 이래, 예측 불능의 종횡무진 활동전개로 유일무이한 아티스트 상을 확립하고, 고고의 존재감을 발하는 아티스트 시이나 링고. 2008년 데뷔 10주년 기념 앨범 [나와 방전]을 발매합니다.
10주년 기념 앨범 [나와 방전]에는 팬들로부터 상품화 리퀘스트가 가장 높은, 데뷔시부터의 앨범 미수록곡과 싱글의 커플링 곡이 포함된, 2CD - 총 22곡입니다. 겁도 없이 망설임도 없이 그리고 거침도 없이 팜므 파탈의 세계를 음표로 표현해 온 시이나 링고. 데뷔 10주년을 맞은 시이나 링고가 나이테를 더한 연륜보다는 10년 벼린 칼날의 번득임으로 서늘한 쾌감을 안겨주는 곡들을 모았습니다.
* 통상반 특전: 전곡 일본어 가사 및 한글번역 수록
팝 뮤직의 센세이셔널리즘. 시이나 링고의 10년을 뒤돌아 볼 때,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섹스 피스톨즈와 그들의 매니저, 말콤 맥라렌(Malcom McLaren)이다. 이들은 서로 유기적인 작용을 일으키며 음악 씬에 자극을 주고, 뒷날 팝뮤직 역사에 이름을 남기는 음악 프레젠테이션의 수법을 효과적으로 사용했다. 시이나 링고의 '말콤 맥라렌'은 담당 디렉터인 야마구치 이츠키、그리고 디자이너인 CENTRAL67의 키무라 유타카를 중심으로 한 수많은 영상작가와 그 외 우수한 크리에이터가 집결한 팀이다. 우수한 이 인재들이 시이나 링고를 블랜딩한다.
「네. 아마도 그것은 매우 강한 특징일 겁니다. 야마구치 씨와 키무라 씨는 가사와 곡을 파는 일보다 브랜드 이미지를 어떻게 잡느냐 하는 쪽에 더욱 신경을 썼습니다. 그들은 노래를 중심에 두지 않았으므로 곡과 완전히 관계 없는 아이디어가 나왔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기호가 강하게 들어간, 한 개의 응집된 덩어리 같은 앨범을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들었을 때 전율이 오르는, 그런 따끔따끔한 기분을 맛보게 하고 싶은 것이 큰 목적이었지요. 비교적 이른 제작단계에서 그 즐거움을 위해 한 곡 한 곡을 준비한다는 사실을 자각했습니다. 」
그렇다면, 시이나 링고가 보여준 이 모든 것이 허구였다는 것인가. 실제는 그 반대이다. 그녀는 이상으로 여기는 음악의 비전을 가지고 있고 그 비전에 호흡을 불어넣는 압도적인 재능이 있다. 허구도 하나의 방편이라고 말하는 것이 적당한지는 모르겠지만 팝 뮤직의 신화는 그런 허구를 추구하면서 자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이상에 매력적인 허구를 더한 첫 앨범 『무죄 모라토리엄』과 두 번째 앨범 『승소 스트립』은 한 때、제작자의 상상을 넘는 일대 현상이 되어서 그녀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렇다, 예전의 섹스 피스톨즈가 어느 시기에 이르러 공중분해 된 것처럼. 단, 동어반복이긴 하지만, 그녀에게는 풍부한 재능이 있다.
한 때 음악 활동에서 발을 빼고, 결혼과 출산, 육아 등 개인 생활로 돌아갔지만 많은 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그녀는 9.11테러로 하나의 커다란 전기를 맞게 되었다.
「그 이전에는 좋은 곡이 아니라면 의미도 없고, 만들어진 곡에 체온이 없다면 음반에 실을 수도 없다고 단정했지요. 그리고 우선 사람답게 살고 싶었구요. 하지만 테러 사건으로 인해 나와 연관된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들에 대한 책임도 작으나마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이후 그녀는 레코딩 기술을 구사한 에포크 메이킹의 대작, 『시멘트 정액 밤꽃』을 완성했다. 악마의 크로스로드에 서 있던 그녀가 현재로 계속 이어지는 길을 택하고 미래를 향해 확실한 걸음을 내딛은 것이다.
싱글 커플링 곡을 모은 2장으로 구성된 앨범『나와 방전(放電)』과 싱글 베스트적인 내용을 담은 비디오 클립집 『나의 발전(発電)』에서는 그런 그녀의 역사를 음악과 단어, 그리고 영상으로 느낄 수 있다. 『나와 방전(放電)』에 수록된 22곡은 한 아티스트의 곡이라고 보기엔 어려울 정도로 다채롭다. 동서고금의 여러 음악을 맛본 세대만의 소유할 수 있는 얼터너티브한 감성이 높은 완성도로 결실을 맺고 있다.
이런 작품에서는 쿠루리(くるり), 넘버걸(ナンバーガール)、혹은 스피커(スーパーカー) 같은 밴드들 같이 1998년에 데뷔한 그녀가 가진 시대감을 읽을 수 있다.
「당시의 여러 가지 현상을 하나 하나 떠올리면, “무엇이 원인이 되어 지금의 음악산업이 흔들리고 있는가?” 하는 생각보다는 “우리들이 데뷔했을 당시 왜 그렇게 음악 씬이 활성화되었는지?” 의문이 듭니다. 그렇게 다양한 작품이 발매되었던 상황이야 말로 기적이었다고 봐요, 지금은.」
싱글 비디오 클립집 『나의 발전(発電)』은 시이나 링고와 프로듀서인 가메다 세이지、그리고 일본을 대표하는 일류 뮤지션이 만들어낸 싱싱한 매력을 재확인시켜줌과 동시에, 시이나 링고 블랜딩 팀의 혁신적인 발상과 유머가 빚어낸 아름다운 영상미를 보여준다.
「지난 10년을 돌아보면 그렇게 오래 일을 해왔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요. 게다가 나는 일을 지속하는 것을 그다지 존경스럽게 여기지 않습니다. 한정된 생명을 사는 동안 좋은 작품을 하나라도 만들어 낸다면 그 탄생이야말로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10년간 만든 작품 중 한 곡이라도 누군가에게 기쁨을 주었다면 충분히 행복합니다. 눈 감기 전까지 스스로 대단한 곡이라고 인정하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매일 노력하고 싶어요. 만약 그 꿈을 이뤄내면 꼭 칭찬해 주시길 바래요」
시이나 링고의 10년. 그 세월은 이 원고에서는 다 이야기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일대서사시이다. 그 이야기의 행방을 상상하면서 선율과 단어, 그리고 영상에 천천히 푸욱 빠져보고 싶다.
원문: 오노다 유(小野田雄)
번역: 유은정
묘목 시절
시이나 링고는 1978년 11월 25일, 일본 사이타마 현의 우라와 시(현재의 사이타마 시)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시이나 유미코. 아버지의 전근지를 따라다니며 시즈오카 현을 거쳐 후쿠오카 시에서 성장한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발레, 피아노 등 여러 가지 교습을 받았다. 중학교 때 친구와 첫 밴드를 결성한 그녀는 학교 축제 등의 무대에 섰지만 몇 번의 라이브를 치른 뒤 팀을 해산했다. 하지만 음악을 그만 둔 것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음악에 대한 열망은 더 커진 듯 이후 교내외를 포함해서 20개가 넘는 밴드를 거쳤고 모든 악기 파트를 경험했다. 고등학교를 중도에서 그만 둔 링고는 피자 가게 점원, 경비원 등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니시진에 있던 음악교실에 다녔는데 그 때 학원의 기타 강사와 상담을 하다가 ‘링고’(일본어로 ‘사과’를 뜻한다)라는 예명을 지었다. (하지만 이 예명의 유래에는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어린 시절에 혈행이 좋지 않아서 뺨이 늘 빨간 사과 볼이었기 때문에 링고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비틀즈의 드러머 링고 스타를 좋아해서 그 이름을 따왔다는 말도 있다)
혼자서 데모 테이프를 만들며 라이브 무대에도 서곤 하던 그녀는 본격적인 데뷔 기회를 잡기 위해 1994년에 탤런트 선발 대회에 참가했다. 이 대회는 아이돌을 발굴하는 이벤트였는데 별 생각 없이 경험 삼아 참가한 링고는 전국 대회에 나가기 전 까지 수영복 심사가 있는 지도 몰랐다고 한다. 지금의 그녀와 아이돌 콘테스트는 상당히 거리감이 있어 보인다. 그런 까닭인지 팬들 사이에서는 암묵적으로 이 경력을 언급하는 일이 금기가 되기도 했는데 링고 자신은 별로 개의치 않는 듯 심야 방송에서 스스로 이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그녀의 발언이 해금의 기회가 되었는지 이후에는 그 콘테스트 참가 당시의 사진이 인터넷에 오르기도 했다.
열매를 맺기까지
이렇게 방향은 조금 다르지만 큰 무대를 경험한 그녀는 다음 해인 1995년 야마하가 주최하는 ‘제9회 TEENS' MUSIC FESTIVAL’에 출전하여 장려상을 받았고 일 년 뒤 개최된 ‘The 5th Music Quest 1996 Japan Final’에서는 우수상을 수상하며 뮤지션으로 활동할 수 있는 토대를 닦았다. 링고의 본격적인 데뷔는 1998년에 이루어졌다. 첫 싱글 「행복론(幸福論)」을 발매한 그녀는 이어서 싱글 「가부키쵸의 여왕(歌舞伎町の女王)」을 내놓았고 스스로 이 곡을 신주쿠계라고 불렀다. 이는 1990년대 전반에 일세를 누린 시부야계 음악을 풍자한 행동이었다. 링고의 첫 정규 앨범 「무죄 모라토리엄(無罪モラトリアム)」은 1999년에 발매되었는데 신인 가수로서는 상당한 성공인10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이후 링고는 순백색의 간호사 원피스를 입고 머리에 흰 캡을 쓴 채 새 싱글 「본능(本能)」을 프로모션했다. 이 간호사 코스프레는 팬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 기억에 시이나 링고라는 존재를 진하게 각인시켰고 덕분에 두 번 째 음반, 「승소 스트립(勝訴ストリップ)」은 대히트를 기록했다. 그리고 일본 골드디스크 대상에서 올해의 록 앨범으로 선정되었고 레코드 대상의 베스트 앨범상도 수상했다.
라이브 투어 등 뮤지션으로서의 활동도 왕성하게 하고 연기자 겸 가수인 토모사카 리에에게 <소녀 로봇>이라는 곡을 주며 작곡가로서도 입지를 넓히던 링고는 2000년 11월에 기타리스트인 야요시 준지(弥吉淳二)와 결혼을 했다. 당시 링고는 임신 중이었는데 이를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한밤중은 순결(真夜中は純潔)>의 비디오 촬영에 임했다. 하지만 곧 그 사실이 드러나 뮤직비디오는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다. 이후 출산 등 개인 사정으로 잠시 활동을 정지했던 링고는 2002년 이혼을 발표했다. 이혼 이후 링고는 커버곡을 모은 앨범, 「가수의 즐거움~그 첫 번째~(唄ひ手冥利~其ノ壱~)」를 내놓았고 일 년 뒤인 2003년에는 「시멘트 정액 밤꽃(加爾基 精液栗ノ花)」(2003년)을 발표했다.
사과는 익어가고
2000년, 두 번 째 앨범을 완성 한 뒤 그녀는 인터뷰를 통해 “시이나 링고로서 활동하는 것은 세 번 째 앨범까지 만이다”라고 밝혔었다. 링고의 그 선언은 정확히 실천되었다. 3집을 낸 뒤에는 밴드 동경사변(東京事変)을 결성했고 2004년에 첫 앨범 「교육(教育)」 발표했다. 그리고 일부 멤버가 교체된 뒤 2년 후인 2006년에는 두 번 째 앨범 「어른(大人)」으로 차트 1위에 오르는 영광을 안았다. 현재 동경사변은 「오락(娯楽)」까지 3장의 앨범을 발매했다.
솔로에서 밴드 멤버로 변신한 그녀는 2006년에 새로운 분야에 도전했다. 바로 영화 ‘사쿠란’의 음악 감독을 맡은 것이다. 이 작업으로 링고는 일본 아카데미상에서 음악상을 받았으며, 홍콩 국제 영화제가 주최한 ‘아시안 필름 어워드’에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사이토 네코와 공동 작업으로 [헤이세이 풍속(平成風俗)]을 발표했다.
데뷔 10주년 기념 앨범, 「나와 방전(私と放電)」
CD의 곡과 곡 사이에는 3초 정도의 공백이 있다. 링고는 이 갭이 싫어서 자신의 음반은 이런 틈이 없도록 주의를 기울여 제작한다. 그녀의 이런 ‘낭비를 싫어하는 절약 정신'은 이번에 발매한 데뷔 10주년 기념 앨범에서 다시 한 번 빛났다. 원래 싱글의 커플링 곡은 그다지 큰 주목을 받지 못한다. 싱글 음반에는 수록되지만 순서는 언제나 2번으로 대부분의 시선은 간판인 싱글곡이 가져간다. 링고는 이렇게 늘 조연 취급만 받던 커플링 곡들을 골라 따로 앨범으로 묶어 10주년 기념 앨범으로 발매했다.
시이나 링고는 사근사근하거나 친절한 뮤지션은 아니다. 그녀가 거리낌 없이 펼쳐 보여준 가사는 어렵기 그지없다. 글자는 그저 단어일 뿐 의미를 알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한자와 문어투가 많은 것도 난해한 이유 중 하나지만 그보다는 ‘링고 만의 법칙’에 의해 만들어 진 단어들이 섞여있어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윤회 하이라이트>는 전혀 뜻이 이어지지 않는 단어들로 나열되어 있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이 곡의 노랫말은 원래 영어로 지어졌다. 일단 영어로 가사를 지은 뒤 그 발음에 맞게 가차(假借)문자를 나열해 가사를 만든 것이다. ‘I never thought’라는 영어 가사를 愛に罵倒(일어발음으로는 I never thought와 비슷한 ‘아이니바도’가 된다)식으로 가차 표기를 했으니 이런 법칙을 알기 전까지는 도통 의미가 읽히지 않는다. 곡 제목인 <不幸自慢> 역시 ‘fuck off ”g"men’이 가차식 표기이다. 여기서 "g"men은 게이를 가르킨다는 말도 있는데 그렇게 단정하고 본다면 상당히 파장이 큰 가사가 된다. 하지만 또 그저 제3자인 "g"men이려니 여기면 그냥 모순된 사람을 꼬집는 노래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시각의 위치에 따라 해석을 다르게 내릴 수 있는 것이 링고 가사의 매력이다. (하지만 그 매력에 눈뜨기 까지는 오락 한 판을 깨는 정도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Fade In, Fade Out의 설명 없이도 저절로 머리에서 극이 전개되는 것도 링고 노래가 가진 장점이다. <애처가의 아침식사>는 그 대표적인 예다. 남편이 출근하기 전, 아내는 나풀나풀 검은 머리를 늘어뜨린 채 과일을 깎는다. TV를 보니 흡연자에게 과일이 좋다네요, 한 쪽 들고 가세요 이렇게 상냥하게 권하면서. 그런 모습이 사랑스러워 남편은 아내에게 다가가 머리카락을 만진다. 그러자 아내는 180도 변한 차가운 모습으로 차갑게 말한다. 그것도 빛나는 과도를 든 채로. “이런 정경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우선 내키는 대로 거짓말을 했어요, 당신이 안심하고 내 곁에 오게 하기 위해. 과일이 담배에 좋은 지 알게 뭐예요”
하지만 이 해석 역시 개인적인 풀이일 뿐이다. 링고가 어떤 광경을 머리에 두고 가사를 썼는지는 그녀만이 알 것이다. 그리고 가사에 큰 비중을 두지 않고 멜로디만을 듣더라도 링고의 노래는 충분히 흥미롭다. 단정하고 소박한 <푸른 하늘>과 날카롭고 매서운 <계집아이> 그리고 <Can't Take My Eyes Off You>의 유니크한 커버곡 <그대의 눈동자를 사랑해>에 이르기까지 그녀는 다양한 색깔을 보여준다. 겁도 없이 망설임도 없이 그리고 거침도 없이 팜므 파탈의 세계를 음표로 표현해 온 시이나 링고. 데뷔 10주년을 맞은 그녀가 나이테를 더한 연륜보다는 10년 벼린 칼날의 번득임으로 서늘한 쾌감을 안겨주길 기대해 본다.
유은정(음악애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