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대수>의 세계관과 음악에 대한 오마주이자 진정한 음악영화로 기록될 <아버지와 마리와 나> - 이무영 감독 작품
<원스>, <어거스트 러쉬>의 감성적 음악을 뛰어넘는 장영규 음악감독의 서사적 Original Sound Track
<한대수>, <산울림>, <어어부 프로젝트>의 숨겨진 명곡들이 순수의 숨결로 재발견되어지다!
<남상아>(3호선 버터플라이) 특유의 슬픔과 위로가 느껴지는 감성적 보이스가 돋보이는 Remake!
영화 [아버지와 마리와 나] 음악의 테마는 ‘retro’다. 넓게 ‘회귀’, 그리고 ‘재연’의 의미를 갖는다. 촬영 전 영화음악을 구상할 때 이 두 단어를 염두에 뒀다. 그건 예전의 순수함으로 돌아가자는 의지와,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한 채 묻힌 안타까운 음악을 새롭게 손질해서 대중에게 선보이자는 의도였다.
아버지와 마리와 나 Original Sound Track Review – Retro를 통한 순수의 재발견
영화 [아버지와 마리와 나] 음악의 테마는 ‘retro’다. 넓게 ‘회귀’, 그리고 ‘재연’의 의미를 갖는다. 촬영 전 영화음악을 구상할 때 이 두 단어를 염두에 뒀다. 그건 예전의 순수함으로 돌아가자는 의지와,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한 채 묻힌 안타까운 음악을 새롭게 손질해서 대중에게 선보이자는 의도였다.
지난 7-80년대, 그리고 90년대 정말 주옥 같은 음악들이 많았으나, 영화와 적절히 조화를 이룰 수 있는 한대수와 산울림, 그리고 어어부 프로젝트의 노래들이 엄선됐다. 이들 대부분은 대중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곡들이다.
이중 한대수의 노래들은 영화 [아버지와 마리와 나]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두 번째 앨범 [고무신] 수록곡인 ‘오면 오고’는 영화 속 가상 밴드 ‘배태수와 풀잎들’의 노래로, 그리고 ‘오늘 오후’는 주인공 태수가 죽기 몇 시간 전 작곡한 노래로 둔갑했다.
‘오면 오고’는 심지어 한대수의 허락도 받지 않고 영화 속에서 ‘태양처녀’로 제목이 바뀌기도 했다. 나는 아직도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이 노래의 가사에 감동을 받는다.
“시들어진 꽃에도 또 하루가 있다고, 옆에 앉은 태양처녀 날보고 말하네. 오면 오고, 가면 가고, 내 마음 난 몰라.” 이게 도대체 무슨 의미인가?
[아버지와 마리와 나]에 이 노랠 사용하고 싶은 생각에 젊은 시절 태수를 ‘시들어진 꽃’, 그리고 죽은 그의 아내를 시들어진 꽃에게 빛을 내려주는 ‘태양처녀’로 억지 해석해 시나리오에 써넣었다, 영화 속에서는 태수가 속세를 등진 채 산속에서 단 둘이 사랑을 나누며 살아가는 예전 밴드 멤버들을 찾는 장면에서 사용된다. 그들은 이 세상과 함께 발걸음을 맞추지 않지만, 과거의 추억이 있기에 행복하다. 이들이 사는 곳이 대한민국 히피의 이상향이 아닐까?
‘오늘 오후’는 훌륭한 히피였으나 결코 모범적 아빠는 아니었던 태수가 아들인 고교생 록커 건성에게 마지막 선물로 주고 떠나는 곡이다.
“가볼까, 저 언덕 위의 외나무로 그대여 오늘 오후. 가엾은 꽃잎 따 그대 머리 위에 꽂아서 쳐다볼까. 하늘의 품은 넓어요. 나무들 하품하네.”
태수는 아들이 불러주는 이 노래를 들으며 게으르게 살았던 삶을 마감하고 자연으로 돌아간다. 3호선 버터플라이 보컬 남상아의 구슬픈 목소리로 전해지는 ‘오늘 오후’는 슬픔과 동시에 위로의 손길을 건넨다.
이 외에도 한대수의 ‘행복의 나라’가 영화 속 거리의 악사가 된 태수가 부르는 노래로 등장하나 너무 많이 알려진 노래라 사운드트랙에서 제외했다.
산울림의 네 번째 앨범에 숨어있던 보석 ‘어디로 갈까’는 [아버지와 마리와 나]에서 두 가지 다른 버전으로 그 아름다움을 뽐낸다. 먼저 건성이 길에서 우연히 만난 마리와 헤어짐의 갈림길에 놓였을 때의 배경음악으로, 그리고 건성과 태수가 무대 위에서 함께 연주하는 노래로도 등장한다. 이 노래의 가사는 연구대상이다. 유치원생 수준의 노랫말로 헤어짐과 만남, 혹은 삶과 죽음의 의미를 너무나도 명료하게 설명한다. “너는 어디로 가니? 나는 어디로 갈까? 해는 저물어가고 황혼이 발길을 재촉하네. 너는 어디로 가니? 나는 어디로 갈까? 지금 지나쳐가면 언제 다시 돌아오려나. 너는 어디로 가니? 나는 어디로 갈까? 길은 갈라졌어도 우린 다시 만나게 될 거야.”
매일 매일의 만남과 헤어짐을 말하는 듯하지만, 그 속에 담긴 의미를 되새겨보면 분명 죽음 후의 만남을 말하고 있다. 비록 길은 갈라지더라도, 언젠가 꼭 다시 만날 거라는 말은 죽음을 눈앞에 둔 태수가 철부지 아들 건성에게 하고 싶은 애기가 아니었을까? 록커 부자로 등장하는 김상중과 김흥수가 홍대클럽에서 직접 이 노래를 연주하며 불렀던 장면이 영화 속에 등장한다. 비록 솜씨는 최상이 아니더라도 배우들이 피땀 흘려 연습, 연주와 노래를 소화해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적이다.
태수가 아내를 떠나 보낸 물가에서,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각각 회상에 잠기는 장면에 등장하는 ‘양떼구름’은 [아버지와 마리와 나]의 음악감독이며 어어부 프로젝트의 터줏대감인 장영규가 작곡, 세 번째 앨범 [21c new hair](00년)에 실었던 곡이다. 백현진의 거친 보컬을 대시한 남상미의 가녀린 목소리는 가슴 쓰린 애잔함으로 다가온다.
영화 [아버지와 마리와 나]는 흘러간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영화이다. 사운드트랙에 수록된 곡들이 듣는 이로 하여금 그런 추억을 되새기게 하고, 새로운 추억을 만드는 계기가 될 수 있길 바란다.
한대수가 부르는 ‘Red River Valley’는 원래 유명한 팝송을 쓰려했으나 저작권료가 너무 비싸 대타로 등장한 곡이다. 저작권 소멸 상태(public domain)의 곡이라 돈은 한 푼도 안 들었다. 너무도 맑고 아름다운 원곡이 한 대수의 입을 통해 나오니 매우 거칠고 삐딱해졌다. 아주 마음에 든다.
마지막으로 내 첫 영화 때부터 계속 함께 일해오고 있는 장영규와 비록 환갑을 넘겼지만 내겐 아직도 ‘행복의 나라’를 부르짖는 청년인 한대수 형, 비록 잘 아는 사인 아니지만 내게 수많은 아름다운 추억을 심어준 산울림의 김창완 씨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08년 5월 13일 이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