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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가수 Kenny Choi가 이끄는 Emo밴드
Daphne Loves Derby의 두 번째 앨범
굳이 비교의 대상을 찾자면, 글쎄 넬(Nell)과 닮았다고 해야 할까? 음악적 기반을 모던 록에 두고 있다는 광역한 의미의 뭉뚱그려진 은유 정도로 이해해주길 바란다. 물론 이들의 음악적 정서가 넬의 그것과 꼭 같이 20대의 ‘청춘향기’를 진하게 담고 있다는 부연도 덧붙이긴 하겠지만 말이다.
미국의 씨애틀 인근 작은 도시에서 시작된 밴드 Daphne Loves Derby의 역사는 2002년을 출발점으로 하고 있으니 6년의 숙성기를 거쳤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이 처음 밴드를 결성하기로 의기투합한 나이가 고작 14살이었다는 사실에 접근하면 약간은 당황하게 된다. 고작 20살의 나이를 지닌 이들에게 6년의 활동기를 운운하며 중견 밴드라는 명칭을 부과하는 것도 어색하기 때문이다. 아, 물론 이미 한 장의 정규 음반을 발매한 속칭 소포모어 앨범 밴드라는 점에선 생판 초짜의 신인이라고 규정짓기도 뭐하지만.
앨범의 음악을 섭렵하기 전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재킷을 가득 채우고 있는 한 동양 청년의 모습이다. 밴드의 바이오그래피에 Kenny Choi라는 이름을 확인하기 전까진 일본계 아티스트가 아닌가 의심했었다.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지는 수록곡의 음성이 담고 있는 첫 인상이 짙은 고추장 빛깔의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짐작케 할 어떤 힌트도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드러머 Stu Clay와 리드기타리스트 Spencer Abbott와 함께 밴드의 보컬이자 기타, 그리고 리더라는 파트 이외의 역할까지 맡고 있는 인물은 분명 ‘최’라는 성을 지닌 한국인이었다. 아쉽게도 그가 어떤 개인사로 미국에서 고교생활을 했으며 그의 부모가 어떤 사람들인지에 대한 친절한 설명은 없지만, 한국인이라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앨범의 속지를 맡긴 음반사의 직원에게 확인 전화를 걸었을 때도 애써 그 점을 강조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뭐, 중언부언의 이야기로 해설지를 시작하긴 했지만, 이 모든 것들이 음반을 대하게 될 여러분의 궁금증에 적절한 설명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Daphne Loves Derby라는 밴드는 젊고, 그러나 이미 프로페셔널로 활동한 기간이 어지간한 중견 그룹과 맘먹을 만큼 솔찬히 되었으며 핵심 멤버가 한국인이라는 것 정도면 대략의 음악 외적인 설명은 끝난 셈일 테니까.
앨범을 시작하는 <Are two chords enough, dear?>는 인트로 곡이라는 것을 한 껏 의식한 장중한 코드 진행이 인상적이다. 마치 퀸(Queen)의 음악을 모던 록 풍으로 재해석해 놓은 듯 하다고 할까? 이어지는 <Stranger, you and I>에 들어서야 본격적인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디스토션을 잔뜩 걸어 놓은 일렉트릭 기타와 그 기타 사운드의 여백을 적절히 조절하는 노련한 곡의 조립이 이미 데뷔 앨범 한 장을 프로들의 씬에 던져 놓은 유경험자의 노련함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불과 두 곡의 음악을 들었을 뿐이지만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역시 보컬인 Kenny Choi의 음색이다. 앞서 국내 그룹 넬(Nell)과 어색한 비교를 했었지만 넬의 보컬이 단조풍에 가깝다면 Kenny Choi의 보컬은 좀 더 장조풍에 가깝다. 화학적인 비율로 말하자면 스매싱 펌킨스(Smashing Pumpkins)의 빌리 코건이 선보였던 보컬 스타일에 30%쯤 빚지고 있다면 아마 꽤 정확한 색감이 짐작될 것이다. 모던 록 일반의 특징일 수도 있지만 감정의 과잉이 느껴지지 않는 건조한 스타일의 보컬톤을 쓰면서도 높낮이와 음량으로 필링(feeling)을 전달하는 Kenny Choi의 성대는 어쩌면 꽤 괜찮은 물건 하나를 발견한 것이 아닌가라는 감탄사를 내뱉게 한다. (더구나 그가 한국인이라니 이 얼마나 흐뭇한 감상과 리뷰란 말인가?)
영화 <드럼라인>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Marching band intro>와 <That's our hero shot> 정도를 제외한다면 비교적 무난한 세기의 연주를 통해 팝적인 감각을 멋지게 드러내고 있는 전체 수록곡들은 위의 여러 장점들과 부합하며 낯선 이름에도 친근감을 갖게 하는 넉살좋은 붙임성을 발휘한다. 하지만 앨범 전체 수록곡들은 하나하나의 인상을 거론할 만큼 확연한 변별력을 지니고 있진 못하다. 그래도 호의적인 해석을 가해보자면 비슷비슷한 곡들의 열거가 아닌 하나의 주제를 다양한 variation으로 담았다고 평해줄 수 있을 것이다.
로버트 프로스트(Robert Frost)의 시에서 영감을 얻어 작명했다는 앨범 [Good night, witness light]는 청춘에 관한 음악적 감상이다. 때로는 우울한 정서를, 그리고 이유 없는 젊은 날의 불안을 가사의 이 곳 저 곳에 숨겨 놓고 있다. 이들의 1집엔 그런 내음들이 더 강했을 것이라 짐작해 본다. 전작을 감상한 외국의 필진들이 너바나(Nirvana)나 라디오헤드(Radiohead)를 거론하는 것으로 미루어 음악적인 스타일도 본작보다는 보다 펑크(Punk) 스타일이 강조되었을 것이다. 아쉽게도 이 음반을 감상하고 있는 지금, 이들의 1집 앨범에 대한 정보는 몇 줄의 바이오그래피를 통해 얻게 되는 것이 전부이니 안타깝게 생각된다.
감상자에 따라 Daphne Loves Derby라는 밴드가 기존 모던 록 밴드 리스트에 그저 이름 한 줄 올리는 선에서 마무리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앨범의 끝 곡 <How's it going to end>까지 진득하니 이어폰을 사수한 사람들에겐 어떤 기분 좋은 영감이 떠오를 것이라 내기 돈 없는 장담을 슬쩍 던져본다. 그 근거로 제시하는 것은 바로 잘 짜여진 멤버들의 유기적인 조화이다. 가장 훌륭한 이들의 장점인 Kenny Choi의 인상 강한 보컬을 슬쩍 지나쳤을 때 그 진가가 드러난다. 기타 두 대와 드럼 하나로 구성된 단촐한 삼인조이지만 14살에 이미 상대의 음악성을 알아 봤을 정도의 탁월한 혜안이 가져온 멤버들의 완성도 높은 개인기량과 다양한 편곡, 그리고 단순한 구성에서도 조금씩 변화를 가미하는 재기를 눈치 채게 되기 때문이다.
크림(Cream)이나 러쉬(Rush) 같은 록 역사의 불가사의한 3인조를 떠올리는 것은 분명 필자의 오버센스다. 그러나 너바나(Nirvana)를 처음 발견하고 열광했던 사람들이라면 Daphne Loves Derby의 음악을 처음 접한 후에 긍정의 고갯짓을 끄덕여 줄 정도의 여유는 가져 줄 수 있을 것이다. 세기말의 불안을 노래한 것이 너바나(Nirvana)의 야생적인 기타 사운드였다면 2000년대 후반의 정서엔 Daphne Loves Derby가 더 어울릴 것 같다는 극히 사적인 견해를 펼쳐 보일 수 있는 것도 팝 칼럼니스트로 살아오면서 경험적으로 습득한 예감이 있기 때문이니 무언의 동의를 구해본다.
모처럼 행복한 몇 십 분을 보냈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이제 고막의 감각이 더 이상은 청춘의 음악에 적합하지 않다고 자조하던 시기에 Daphne Loves Derby가 회춘아닌 회춘을 경험하게 해주었으니까. 아울러 이 음반을 접하게 될 여러분들에게 약간의 시샘을 느끼게 된다. 그 나이가 10대, 20대의 청춘들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적어도 필자가 들었던 것 보다는 더 많은 것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록이란 누가 뭐래도 청춘의 음악이 아닌가?
김태훈 / 방송인,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