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팬들의 끊임없는 리퀘스트로 드디어 빛을 보게 된 전세계 여러 CF를 통해 사랑 받고 있는 노르웨이의 3인조 여성 보컬그룹. 이페메라(Ephemera)의 2005년 정규앨범.
Ephemera
노르웨이의 베르겐(Bergen)의 거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세 명의 소녀들인 크리스틴 상트로프(Christine Sandtorv), 잉거-리세 스트록센(Inger-Lise Størksen), 그리고 재닉 랄슨(Jannicke Larsen)은 여러 시기를 함께 지내며 같은 것을 경험하고 비슷한 감성을 가지면서 성장한다. 이들은 음악을 관계의 중심에 두고 지속적으로 기타와 키보드를 연주하고 노래하면서 곡을 만들고 밴드의 구성을 이루어 간다. 1994년 십대의 끝 자락에 이페메라(Ephemera)라는 이름의 밴드를 결성한 이들은 96년 메이저 레이블인 BMG에서 데뷔작 'Glue'를 발표 하는데 1년 후, BMG를 떠나 자신들이 세운 자체 레이블에서 음반을 찍어 내기 시작하며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인지도를 높여가기 시작한다.
레이블 이름은 자신들의 밴드 이름과 같은 'Ephemera'로 결정 하였으며 현재 밴드의 멤버인 크리스틴의 오빠가 운영을 도와주고 있다고 한다. 화려한 홍보나 눈에 띄는 프로모션 활동은 없었지만 노르웨이와 유럽, 그리고 일본 등지의 대형 레코드 샵을 중심으로 꾸준한 음반 판매고를 올리면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이페메라는 노르웨이 출신의 밴드 중에서는 그럭저럭 성공한 편에 속하고 있으며 또한 현재 베르겐에서는 없어서 안될 아주 중요한 팀으로 자리잡고 있다. 더구나 본 국에서는 'Spelemannprison'이라는 '노르웨이의 그래미'와도 같은 행사에 매년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고, 2003년에는 'Best Pop' 부문에서 수상하며 인기와 실력을 인정 받고 꾸준한 신뢰도를 바탕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이 처음으로 국내 팬들과 만나게 된 계기는 다름 아닌 국내 초콜릿 CF였다. 2000년대 초반에 방영되었던 이 CF는 한 여자가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 하다가 '쉬었다 가자'는 멘트로 마무리를 짓는 이 CF는 여러 사람들에게 챠밍한 매력을 각인시켰는데 본인 또한 이들에 대한 정보를 안 찾아보면 안되겠다는 의무감 마저 들게 만들었다. CF에 삽입 되었던 곡 제목은 'Saddest Day'였으며 곡이 실린 앨범 [Sun] 또한 한국에서 라이센스되어 이들의 국내 팬을 확보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2000년에 발표한 [Sun] 이후에는 재즈와 보사노바, 그리고 영/미의 인디팝에 영향을 받은 듯한 2001년 작 [Balloons And Champagne]을 선보였는데 앨범은 노르웨이 최대의 음악상인 알람 어워드(alarm award)의 대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얻기도 했다. 2003년에는 [Air]를 발표하는데 일본 팬을 위해 스피츠(Spitz)의 노래를 영어로 개사하여 부르면서 아시아 팬층을 확보해 나갔다. 일본에서는 [Score - Best Of Ephemera]라는 이름의 베스트 음반이 발매되기도 했는데 한국에서도 선곡과 커버는 다르지만 같은 제목의 베스트 음반이 발매되기도 했다.
Monolove
2005년 8월에 발매된 이 네 번째 정규앨범은 그녀들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사운드를 완성시키고 있다. 이전과 비교했을 때 확실히 밴드 포메이션을 유지하려는 의도가 보이는데, 노르웨이 항구도시의 경관을 생각하게 하는 아름다운 작품이라 하겠다. 세 명이서 함께 작사와 작곡을 했고, 메인 보컬과 나머지 두 명의 반주와 코러스를 통해서 앨범이 완성됐다.
풍부한 효과음과 후반부의 스네어 연타가 매력을 주는 [Chaos]를 시작으로 일본에서는 보험회사의 광고에 사용됐던 부드러운 포크 발라드 튠[On The Surface], 그루브감이 돋보이는 [City Lights], 현악파트와 관악기, 그리고 입체적인 화음이 돋보이는 [Leave It at That] 등의 곡들이 차분하게 흘러간다. 이번 음반에서는 특히 멀게 위치해 있으면서도 약간은 묵직한듯한 스네어 소리가 인상적인데 [Put-On-Smile] 또한 그런 트랙 중 하나라 하겠다. 역시 첫 곡과 마찬가지로 곡 후반부의 빠른 스네어 롤링이 인상적인 [Do's and Don'ts], 싱그러운 모던록 튠 [Paint Your Sky], 박수소리와 벤조 소리가 이국적인 [Dead Again The Plan], 전작들의 느낌에 가장 가까이 닿아있는 타이틀 트랙 [Monolove], 좀 더 성숙해진 구성을 담고 있는 [End]와 소박한 [Long]을 끝으로 정규 트랙이 마무리된다.
Bonus Tracks
한국에서 발매된 베스트 음반에 수록되지 않았던 기존의 주옥 같은 노래들이 본 앨범의 보너스 트랙들로 수록됐다. [Air]와 [Sun], 그리고 [Balloons And Champagne]앨범의 수록 곡들을 모아놓았는데 무려 여덟 곡이라는 적지 않은 숫자의 트랙들로 구성되어 있다. 노래들은 당연히 하나같이 아름다운데 한국에서 발매된 베스트 앨범만으로 뭔가가 약간 부족했고, 그렇다고 비싸게 일본에서 발매된 정규 반들을 컬렉션 하기에는 좀 아깝다 싶었던 팬들에게는 좋은 선물이 될 것 같다. 경우에 따라서는 본 작 [Monolove] 보다도 이 보너스 트랙에 열광하는 부류 또한 있지 않을까 싶다.
Sweet-and-Sour
투명한 어쿠스틱 사운드와 섬세한 어레인지, 그리고 아름다운 하모니를 바탕으로 진행되는 이들 특유의 순수한 매력은 앨범에 가득 넘쳐난다. 한가한 휴일 오후에 차라도 한잔 하면서 듣고 있노라면 다음날에 회사에 가야 할 생각 조차 없애줄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위험한 앨범인 셈이다.
앨범 전체에 퍼지는 투명감은 유리도 공기도 아니다. 억지로 무언가와 비교하자면 누군가에게 잊혀져 가는 그 애틋한 감정 정도로 표현 가능할 것 같다. 그것은 쓸쓸하지만 또한 적당히 달콤하다. 본 음반을 듣는데 취향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지나치게 단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 본인도 이 음반이 무척 매력적이라고 생각이 될 정도이니 말이다. 만약 당신이 미약하게나마 약간의 감수성을 가지고 있는데 지금 당장의 상황이 적적하다면 아마도 이 음반이 당신을 위로해 줄 지도 모르겠다.
노르웨이의 베르겐에는 알려진 대로 많은 비가 내린다. 그리고 그 토양에서 만들어진 음악들은 당연히 적당량의 수분을 머금고 있다. 보통 사람들이 음악이 '흐른다'는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음악은 마치 손에 잡히지 않는 유기체와 같다. 그리고 그것이 물기로 가득 채워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본 앨범은 사람들의 지친 마음에 청량한 영향 보충제가 되어줄 것이다. 아로나민 골드나 한약같이 억지로 삼켜야 되는 것이 아닌, 아이들 먹기 좋게 나온 단맛의 영양제처럼 말이다.
한상철 (불싸조 http://myspace.com/bulssaz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