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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기타 대신 어쿠스틱기타를 손에 쥔 21세기 최후의 액티비스트.
역사상 가장 위대한 랩 메탈 밴드 RATM의 기타리스트 톰 모렐로(Tom Morello)의 뜨거운 심장을 담은 송가.
나이트워치맨 (The Nightwatchman)의 2008년 작. [The Fabled City]
Tom Morello
토마스 밥티스트 모렐로(Thomas Baptist Morello)는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 이하 RATM)과 오디오슬레이브(Audioslave)의 사운드메이커였다. 왜 굳이 ‘사운드 메이커’라는 표현을 사용했느냐 하면 그의 이펙터 세팅과 기타 플레이는 그야말로 '혁신'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손수 자신의 기타를 주문 제작하여 사용하면서 다양한 이펙팅 효과와 독특한 연주법으로 자신만의 소리를 창조해내면서 많은 기타키드들의 우상으로 등극했다. 플레이는 고전적인 하드락과 메탈, 그리고 80년대 말의 펑크 트랙들에서 리프를 가지고 왔지만 그와는 반대로 사운드 이펙팅은 지극히 미래 지향적인 성질의 것을 보여주었다.
갑작스런 예를 들자면 이런게 있다. F.W. 무르나우(F.W. Murnau)의 무성영화 [선라이즈]를 보면 대사를 녹음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대사를 대신하기 위해 가능한 여러 가지 기발한 '장치'들을 설치해 놓았는데, 톰 모렐로 역시 자신의 리미트를 오직 기타 한대로 제한하면서 기발하고 색다른 돌파구를 마련하는 데에 성공했고, 결국 사운드의 혁신을 일궈낼 수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여러 사람들이 꼽는 최고의 기타리스트의 목록에 절대로 빠지지 않는데, 롤링 스톤(Rolling Stone)지에서 꼽은 '역대 최고의 기타리스트 100인' 중 26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각종 잡지와 유튜브에서도 그의 독특한 세팅과 플레이가 끊이지 않고 거론되곤 했다.
주조해내는 사운드가 '혁신적'이라면 그의 정치적 행동은 '급진적'이다. 뉴욕의 할렘에서 태어난 톰 모렐로는 일리노이에서 성장했는데 고등학교 재학 당시부터 아나키즘과 사회주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로날드 레이건(Ronald Reagan)이 당선됐을 때는 학교의 교지에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헤드라인에 작성하기도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에 진학해 사회과학을 공부하기도 한다.
톰 모렐로는 13살 무렵 레드 제플린(Len Zeppelin)의 커버밴드의 보컬로 참여하는데 나중에는 직접 기타를 잡아보려고 한다. 레드 제플린의 <Black Dog>을 연주하기 위해 두 번의 기타 레슨을 받는데, 이 레슨에서는 노래보다 일단 C 메이저 코드와 스케일을 가르쳤다. 이런 방식이 지겨웠던 톰 모렐로는 이렇게 계속 연주하는 것이 시간낭비라고 생각하면서 3년 동안 기타를 끊는다.
1984년도에야 톰 모렐로는 진지하게 기타를 다시 공부한다. 후에 툴(Tool)의 기타리스트가 되는 아담 존스(Adam Jones)와 함께 일렉트릭 쉽(Electric Sheep)이라는 밴드를 결성하는데, 역시 정치적인 가사를 담아내려고 시도했으며 대학교에서 배웠던 솔로 연주 스킬을 사용해보기도 하면서 밴드는 톰 모렐로에게 있어서 실험의 장으로 거듭난다.
LA로 거주지를 옮긴 톰 모렐로는 락 업(Lock Up)이라는 밴드에서 잠시 활동하다가 잭 델 라 로차(Zack de la Rocha)의 프리스타일링에 감동받고 그와 함께 음악활동을 하기로 결심한다. 이미 브래드 윌크(Brad Wilk)라는 드러머가 있었고 곧 이어 잭의 학창시절 친구인 팀 코머포드(Tim Commerford)가 베이시스트로 합류하면서 비로소 RATM이 탄생하게 된다. 1992년에 곧바로 메이저 레이블인 에픽(Epic)과 계약하면서 폭풍과도 같은 셀프-타이틀 데뷔앨범을 내놓는다.
2집 발표 당시에는 톰 모렐로와 잭 델 라 로차의 의견차 때문에 밴드가 파산할 뻔하기도 하였고 2000년도 MTV 뮤직비디오 시상식장에서 베이시스트인 팀이 무대 옆의 쇠기둥 뿌리에 올라가서 난동을 부리는 사건이 벌어지면서 잭 델 라 로차는 결국 밴드를 떠나기로 결심한다. DVD로도 출시됐던 그랜드 올림픽 오디토리움(Grand Olympic Auditorium)에서의 마지막 공연을 끝으로 밴드는 해산된다.
잭 델 라 로차의 빈자리에는 사운드가든(Soundgarden)의 크리스 코넬(Chris Cornell)이 추가됐다. 밴드 이름 역시 여러 후보 끝에 오디오슬레이브로 변경됐다. 이들은 꾸준히 인기를 얻어 나가는데, 공연장에서 RATM 시절의 곡을 부를 때부터 뭔가가 삐걱대는 것 같더니만 결국은 크리스 코넬이 '해결될 수 없는 개인사적 충돌'을 이유로 밴드를 떠나면서 와해된다. 이후 크리스 코넬은 자신만의 솔로 앨범을 발표했고 RATM은 재결성하여 현재 투어 중에 있다.
The Nightwatchman
"나이트워치맨(The Nightwatchman)은 제 자신의 정치적 얼터-에고 입니다. 저는 혼자 만들었던 이 노래를 오픈 마이크 행사에서 친구들과 있을 때 부르곤 했습니다. 몇몇 팬들은 이 음악들을 달가워 하지 않았지만 저는 나이트워치맨 활동을 통해 제 정치적 입장을 더욱 확장시킬 수 있다고 봅니다. 정치적 색깔이 없는 곡들도 간혹 있지만 이것들은 제가 송라이터, 혹은 아티스트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톰 모렐로
톰 모렐로는 공연 때 사용하던 수많은 전자기타를 뒤로하고 어쿠스틱 기타를 잡는다. 자신 스스로를 '민중의 아티스트'로 설정한 채 직접 만든 포크 트랙들을 혼자 부르기 시작한다. 혹자들은 오디오슬레이브 활동을 하면서 정치적 색깔을 드러낼 기회가 비교적 줄어들면서 자신의 정치적 입장을 이런 방식으로 표출하는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는데, 사실 그는 RATM에 재적했을 당시에도 여러 사회단체에서 활동해 왔지만 직접적으로 가사를 작성한 경우는 없었다. 톰 모렐로는 우디 거쓰리(Woody Guthrie)나 브루스 스프링스틴(Bruce Springsteen), 그리고 밥 딜런(Bob Dylan)과 같은 음악을 하고 싶었다는데 나이트워치맨의 첫번째 공연은 작은 커피숍에서 소수의 인원들 앞에서 펼쳐졌다고 한다.
역시나 사회 참여적인 감독 마이클 무어(Michael Moore)의 영화 [화씨 911]의 사운드트랙인 [Songs and Artists That Inspired Fahrenheit 9/11]에 나이트워치맨의 <No One Left>가 수록되면서 서서히 이 프로젝트가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Axis Of Justice: Concert Series Volume 1]의 음반에도 <Until the End>와 <The Road I Must Travel>, 그리고 <Union Song> 등의 곡을 수록하면서 직접적인 사회 활동을 꾸준히 선보인다. RATM 당시부터 뮤직비디오를 찍어주면서 친해진 마이클 무어의 또 다른 영화인 [식코]에도 <I'm Alone Without You>라는 곡이 사용된다. 그야말로 톰 모렐로의 사회 참여적인 움직임만을 위한 프로젝트인냥 생각될 정도로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나이트워치맨의 데뷔 앨범 [One Man Revolution]은 프로젝트가 시작된 이후 상당히 오랜시간이 지난 후에야 발매됐다. 2007년 4월 24일에 공개 됐으며 발매 직후 데이브 매튜스 밴드(Dave Matthews Band)의 유럽 투어에 함께 하기도 했다. 나이트워치맨은 그들의 오프닝쇼를 펼쳤는데 가끔은 데이브 매튜스의 공연 도중 함께 연주하기도 했다고 한다. 벤 하퍼(Ben Harper)의 투어에도 오프닝으로 참여했다. 마찬가지로 공연 도중 벤 하퍼워 함께 밥 딜런의 <Masters of War> 같은 곡을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The Fabled City]
개인적인 이야기이다만 이전에 RATM의 인터뷰 영상들을 봤을 때 톰 모렐로의 목소리는 무척 매력적이었다. 확실히 신념에 가득찬 중저음의 보이스를 가졌다고 생각했고 자연스럽게 왜 그가 직접 노래를 부르지 않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 톰 모렐로가 첫번째 앨범을 냈을 당시에도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오히려 당연하다고 느꼈는데, 만일 당신이 그의 음악을 듣기 이전에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적어도 톰 모렐로의 목소리 자체에 대한 걱정은 접어두는 편이 나을 것 같다. RATM 시절부터 꾸준히 프로듀서로 참여했던 브렌던 오브라이언(Brendan O'Brien)이 첫번째 앨범에 이어 다시 한번 훌륭한 조언자로 참여하고 있다.
확실히 전작보다는 더욱 포크의 색채가 짙어졌고 의외로 전자기타의 사용빈도도 늘었다. 포크를 베이스로 루츠락, 컨트리 등의 요소들을 간간히 감지할 수 있는데, 앞에 언급했던 세 명의 거인들의 음악에 취향이 있다면 이 곡들에 대한 거부감 역시 상대적으로 적을 것 같다. 특히 몇몇 멜로디라인은 확실히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곡이 많이 연상되곤 한다. 아마 [Ranegades] 앨범에서 <The Ghost of the Tom Joad>를 커버했을 때 톰 모렐로가 속으로는 오리지날 버전을 더 부르고 싶어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앨범에 수록된 <Gone Like Rain>의 중간에 등장하는 하모니카 멜로디는 <The Ghost of the Tom Joad>의 원곡에 흐르는 하모니카 소리와 흡사하다.
앨범의 타이틀 트랙인 [The Fabled City]로 앨범의 주제를 환기시킨다. 앨범에서 가장 선동적인 트랙으로 RATM의 리프가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Whatever It Takes>는 8월 8일 자신의 마이스페이스 페이지에 선공개 하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증폭시키기도 했다. 나지막하게 분노하는 그의 목소리와 중간에 긴장감을 주다가 벤조 플레이가 작렬하면서 드럼이 굴러가는 부분은 특히 감동적이다. 악마는 지옥의 왕이 아니라고 읊조리는 <King of Hell> 에서는 헐리웃 영화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 쿠바의 관타나모 수용소에 관한 스토리를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다.
피아노 중심의 서정적인 무드와 중간의 첼로 연주가 아름다운 <Night Falls>, <Na Na Hey Hey, Kiss Him Good Bye>의 후렴구절을 차용하고 있는 업템포의 로커빌리 트랙 <The Lights Are On in Spidertown>, 그리고 뉴 올리언즈를 덮친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Midnight in the City of Destruction>은 자조적인 스캣부분이 청자의 가슴을 적신다. 작렬하는 드럼과 하모니카 소리가 피를 뜨겁게 만드는 <Saint Isabelle>은 언제나 당신 옆에서 함께 싸워주겠다는 긍정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마치 좀 다듬어진 목소리를 가진 자니 캐쉬(Johnny Cash)가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곡을 부를 때의 느낌마저 주고 있다.
걸출한 초대손님의 곡들이 이어진다. <Lazarus On Down>에는 시스템 오브 어 다운(System of a Down)의 보컬 세르이 탄키안(Serj Tankian)이 참여했으며 <The Iron Wheel>에는 루트 컨트리 싱어인 슈터 제닝스(Shooter Jennings)가 함께하고 있다. 이들의 목소리는 전면에 드러나지는 않고 뒤에 놓여있는데, 세르이 탄키안은 중동 특유의 서정성으로 곡에 감정을 불어넣고 있으며 슈터 제닝스가 참여한 노래는 가사와 곡 자체가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뭔가 긍정적인 환기를 돕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무척이나 서글픈 분위기로 권력을 쟁취하라고 읊조리는 <Rise to Power>로 앨범은 마무리 되는데 이 곡은 마치 엘비스 코스텔로(Elvis Costello)의 여느 조용한 발라드 트랙을 연상시키곤 한다.
Fight the Power
빌리 브랙(Billy Bragg)의 주도 하에 레스터 챔버스(Lester Chambers), 쿠(The Coup)의 멤버인 붓츠 라일리(Boots Riley), 그리고 R.E.M.의 마이크 밀즈(Mike Mills) 등이 주축이 된 텔 어스 더 트루스 투어(Tell Us the Truth Tour)에 나이트워치맨이 함께하면서 13개 도시에서 공연한다. 여러 사회단체 및 환경단체를 지지하는 투어로서 메이저 미디어들에 대한 도전 역시 모토로 삼고 있는 공연이었다. 톰 모렐로는 투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미디어 통합은 분해되어야 하고 세계화는 가면을 벗어야 합니다.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거짓말을 할 때 프레스에 있는 사람들은 그 거짓을 노출시킵니다. 프레스가 실패할 경우, 숨어있던 무법자들이 본색을 드러내게 되고 정치인들의 거짓말들은 비로소 법이 됩니다. 텔 어스 더 트루스(우리에게 진실을 말하라) 투어는 새로운 미디어 커넥션을 만드는데 도움을 주기 위한 움직임이며 우리는 그 행동들이 국가의 정책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톰 모렐로는 나이트워치맨을 가리켜 "21세기 음악계의 흑인 로빈 훗"이라고 자평하기도 했는데, 그는 RATM과 오디오슬레이브 보다 나이트워치맨의 활동이 우선순위에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자신의 생각으로는 현재 세계는 저항과 혁명에 관한 노래들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언급과 함께.
RATM 당시에도 톰 모렐로의 기타에는 여러 구호들이 써있었다. 그가 나이트워치맨 공연 당시에, 그리고 앨범의 커버에 들고 있는 어쿠스틱 기타에는 "Whatever it Takes", 즉 "무슨 수를 써서라도"라는 글귀가 명시되어 있다. 순수한 음악팬들은 음악 자체가 무언가의 도구가 되는, 이를 테면 거창한 의미로 혁명의 발판이 된다거나 하는 상황을 못마땅하게 여길 수도 있다. 적어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려면 일단은 기본적으로 '좋은 노래'를 만들어야 그것이 가능할 것이다. 그 의도가 어찌 됐든 우리는 이렇게 좋은 노래를 들을 수 있다는 데에 감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계속 전진해야만 하고 전진할 때는 음악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한상철 (불싸조 http://myspace.com/bulssaz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