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에 진흠집이 여러개 있으나 듣는데는 지장없슴
본 작 [Live At The Fillmore]는 그들의 첫 번 째 라이브 앨범이라는 점에서 우선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래퍼나 랩 그룹이 라이브 앨범을 발표하는 경우는 꽤 드문 일이어서 대개 믹스 테이프 DJ의 앨범에 실린 프리 스타일 라이브나 인터넷상에 떠도는 부틀렉(Bootleg) 정도가 고작이다. 물론 더 이상 언더 레이블이 아닌 <로커스(Rawkus)>에서 발표된 [Lyricist Lounge]시리즈나 <데프 잼(Def Jam)>에서 발표된 [Survival Of The Illest] 앨범처럼 예외도 있지만 여타 장르 특히 라이브 앨범이 보편화된 재즈(Jazz)와 같은 장르에 비할 바는 아니다. 랩 라이브 앨범이 발표되기 어려운 이유는 형식적인 틀이 없는 음악적 특성상 라이브 공연시의 애드 리브와 현장에서의 즉흥적인 느낌을 앨범으로 제작할 때 전혀 다른 실망스러운 결과물이 나오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이프러스 힐이 라이브 앨범에 도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센 독의 사이드 프로젝트 밴드 에스엑스 텐(SX-10)을 주축으로 한 리얼 밴드 음악을 가지고 승부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유명한 필모어 오디토리움은 1910년 엠마 게이츠 버틀러(Emma Gates Butler)에 의해 이탈리아식의 댄스 홀로 설립되었다. 상류층의 사교 장소로 이용되던 이 곳은 그레이트풀 데드(Grateful Dead), 제퍼슨 에어플레인(The Jefferson Airplane), 재니스 조플린(Janis Joplin)의 빅 브라더 앤 더 홀딩 컴퍼니(Big Brother And The Holding Company)와 같은 뮤지션으로 대표되는 '60년대 베이 에리어(Bay Area: 샌프란시스코 일대) 히피 문화와 사이키델릭(Psychedelic) 음악이 대두되면서 대중 음악 공연장의 역할 역시 수행하게 된다.
1960년대 중반 이후 빌 그레이엄(Bill Graham)같은 로컬 매니저들이 필모어와 같은 곳에서 활동하는 위의 밴드들과 계약을 맺기 시작하면서 필모어 오디토리움 역시 더욱 유명세를 치르게 된 것. 그 외에도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 티나 터너(Tina Turner), 산타나(Santana),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등 최고의 뮤지션들이 필모어를 거쳐갔다. 고풍스러운 느낌의 공연장 내부는 다양한 형태의 공연을 수용할 수 있는 유연성을 가지고 있다. 필모어 웨스트라고도 불리는 이 곳은 폐관된 뉴욕의 필모어 이스트(Fillmore East), 그리고 콜로라도의 필모어 덴버(Fillmore Denver)와 더불어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2000년 8월 16일 치러진 공연 실황을 담은 본 앨범에는 모두 17곡이 수록되어 있다. 프로듀싱은 최근 자신의 두 번째 프로젝트 앨범 [Soul Assassins Chapter II]를 발표했으며, 멤버 중 가장 친 힙 합적인 디제이 먹스가 맡았다. 또한 데뷔작부터 최근 앨범까지 이들의 대표 곡들이 총망라되어 있어 베스트 앨범의 성격 또한 가지고 있다. 상당한 질의 녹음 상태 또한 이 앨범의 의미를 한층 돋보이게 하고 있으며 리얼 밴드 연주에 맞게 편곡된 이들의 히트곡 퍼레이드 역시 꽤 즐거운 경험이 될 것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들의 2-3집 시절, '90년대 중반의 느낌은 많이 사라졌다는 점. 도프 랩(Dope Rap)의 대표 그룹이라 칭송받으며 듣는 이를 하이프(hyped up) 상태로 이끌어 내던 몽환적인 비트가 육중한 기타 리프 속에 묻혀버린 것 같아 조금은 그립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