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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독일 베를린을 중심으로 결성 된 ‘The Whitest Boy Alive’ 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인디팝 밴드 King of Convenience(이하 킹스) 의 리더인 얼렌드 오여를 중심으로 결성 된 미니멀리즘 팝록 그룹이다.
킹스시절과는 사뭇 다른 음악으로 새로운 팬층을 형성하며 독일과 유럽 일본 등을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 들의 음반은 Bubbles 라는 그들의 독립레이블을 통해 발매 되었다. 1집 발매 시에는 New Young Pony Club 등과 유럽투어를 함께 하며 입지도를 넓혔다. 2009년 유럽에서 3월30일 발매예정인 새 앨범 Rules 는 멕시코의 한 스튜디오에서 레코딩 되었으며 중독성 있는 리프가 매력적인 Island 가 주목 받고 있다. 발매 즉시 영국, 독일, 스위스, 네덜란드 등 유럽 각 지역을 투어로 바쁜 활동으로 팬들과 만나고 있다.
'Dreams (2006)', The Whitest Boy Alive 기계음에 깃든 인간성
큰 키, 마른 몸, 창백한 피부를 가진 그 남자는 늘 안경을 쓰고 있었다. 안경 때문에 천재의 이미지가 보이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만사 심드렁하고 시니컬할 것 같다는 인상을 주기도 한다. 어딘가 결핍이 느껴지는 불안한 분위기도 있고, 그래서 은둔형 외톨이가 아닐까 의심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어쨌든 그는 평범하지 않아 보였다. 엉뚱해 보이기도, 불안해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의 총체적인 인상은 어떤 음악을 품고 있는 것만 같았다. 기발함이 깃든, 그리고 아름다움이 깃든.
그는 독일로 갔다
누군가는 그를 소극적인 남자의 전형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남자 얼렌드 오여(Erlend Øye)는 누구보다도 유랑을 즐긴 방랑자이자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음악을 시작하는, 그런 새로운 일과의 시작에 전혀 두려움이 없는 대범하고 적극적인 노마드이다. 1975년 노르웨이 베르겐에서 태어난 그는 20대가 시작되는 1990년대 중반부터 밴드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자국에서, 그리고 영국에서, 로마 바르셀로나 헬싱키 등 수많은 여행지 혹은 출장지에서, 그리고 독일에서.
지금 만나는 화이티스트 보이 얼라이브의 데뷔 앨범 [Dream]은 독일의 여정에서 시작된다. 쌓아왔던 수많은 이력 가운데 가장 성공적인 반응을 얻은 그의 밴드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Kings of Convenience)가 동반자 아이릭 글람벡 뵈(Eirik Glambek BØe)의 학업 문제로 활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게 되자, 그는 짐을 싸서 베를린으로 향한다. 그는 정말로 대단한 실력자이거나 대단한 붙임성의 소유자였는지, 클럽에 취직하게 되고 음악을 선보이는 동안 비슷한 취향의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 그렇게 결성한 밴드가 지금 만나는 화이티스트 보이 얼라이브The Whitest Boy Alive다.
베이시스트 머친 오즈(Marcin ?z), 드러머 세바스찬 마샷(Sebastian Maschat), 그리고 보통 대니스로 불리는 키보디스트 다니엘 넨트윅(Daniel Nentwig)은 모두 독일에서, 그리고 서로서로 하우스와 테크노를 공유하면서 성장했던 지우들. 자주 드나드는 클럽을 통해 세 남자는 얼렌드 오여가 직접 만들어 들려주는 음악이 뭔가 크게 다르다는 것을 감지하고 작업을 제안하게 된다. 평일이면 매우 조용해지는 어느 카페에서 월화요일마다 정기적으로 만나 앨범에 대한 본격적인 구상을 시작하기까지, '독일인3:노르웨이인1'의 구도에는 당연한 긴장감이 흘렀다. 장비를 훔쳐가기 위해 접근한 게 아닐까, 얼란드 오여는 의심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현실의 연주로 구현된 컴퓨터 음악
완성된 앨범의 제목은 [Dreams](2006)인데, 앨범을 통해 우리는 그들의 꿈이자 리더 얼렌드 오여의 꿈이 실현되는 결과를 보았다. 세 명의 친구들을 만나기 전까지 얼렌드가 홀로 만들었던 사운드는 모두 프로그래밍에 의존해 있었다. 이는 얼렌드의 습관이자 한계이기도 했다. 그는 만들 수 있었지만 한때 혼자였기에 완벽한 그림을 그릴 수는 없었다. 그리고 역시 하우스와 일렉트로니카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악기에 능했던 세 남자를 통해 음악을 들려주는 구조가 바뀌기 시작한다. 한때는 얼렌드의 컴퓨터 속에만 있던 음악이 이제 완벽한 실제 연주가 가능한 형태로 완성된 것이다. BBC의 리뷰는 이들의 음악을 "가벼운 댄스 프로젝트로 시작했으나 결국 감성적인 록으로 변화한 성과"라고 설명한다.
실제로 얼렌드 오여는 자국 밴드 로익솝(R?yksopp)의 작업에 참여하는 것으로(그는 로익솝의 데뷔 앨범이자 노르웨이 차트 1위를 기록하기도 했던 히트작 [Melody A.M.](2001)의 수록곡, 'Remind Me'와 'Poor Leno'에 자신의 목소리를 빌려주었다), 또 자신의 밴드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의 성향을 포크와 일렉트로니카를 섞는 것으로 프로그래밍 음악에 대한 남다른 조예를 보여주기도 했던 인물이다. 그리고 보통 초안을 컴퓨터로 잡지만 두텁게 사운드를 입히는 작업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언제나 라이브로 구현되는 순간을 상정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러므로 즉석에서 공연을 펼칠 수 있는 정도의 현실적인 사운드 메이킹을 원한다고 했다.
독일의 레이블 버블스 레코드(Bubbles Records)를 통해 출반한 데뷔 앨범 [Dreams]는 프로그래밍 음악의 차갑고 기계적인 이미지, 그리고 사람이 직접 연주 가능한 인간성과 현실성을 두루 살리고 싶었던 얼렌드 오여의 작은 꿈이 완성된 작품이다. 여기에 음악의 전반적인 인상을 시각화할 수 있도록, 미국 LA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 제프 맥패트리지(Geoff McFertridge)의 드로잉이 입혀졌다. 흑백 일러스트레이션으로 단출하게 꾸민 앨범의 디자인을 비롯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Golden Cage'의 뮤직 비디오는 그들 음악의 성향을 보다 간명하고 명료하게 설명해줄 수 있었다.
일시적인 프로젝트를 넘어
얼렌드 오여는 어떤 면에서 정주에 관심이 없는 인물로 보인다. 그는 킹스 오브 컨비니언스로 자국을 넘어 세계 무대에 진출하게 되었고, 로마 헬싱키 바르셀로나 등 무려 11개 도시를 이동하면서 녹음한 솔로 앨범으로 흥미로운 작업 후일담을 선사하기도 했다. 시작이 과연 진지했는지 여부를 알 수는 없지만 좌우간 화이티스트 보이 얼라이브는 독일이라는 낯선 무대에서 막연하게 구상했던 바를 이상적인 동반자들을 만나 성공적으로 실현한 성과다.
완성한 앨범 [Dreams]는 자국 독일에서 거리 공연을 펼치지도 하고, 유럽 투어를 진행하면서 관대한 호응을 얻었던 작품이다. 그리고 국내 수입반으로 소개가 되었고 재수입까지 이루어졌던 은근한 인기 앨범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 라이선스의 형태로 뒤늦게 공식 소개되는 앨범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최근 두 번째 앨범 [Rules](2009)를 선보이고 독일과 영국의 투어 일정을 공개하는 것으로, 어디엔가 정착하지 못하는 얼렌드의 일시적인 프로젝트가 아니라 그들의 의욕과 우리의 호응을 기반으로 움직이는 밴드임을 보여주기도 했다.
여전히 얼렌드의 인상은 엉뚱하고 아리송하다. 심중을 알 수 없는 표정과 코디로, 또 자타공인의 방랑벽으로, 활동하고 거쳤던 밴드만 대강 읊어봐도 그는 쉽게 짐작하거나 이해하기 힘든 캐릭터다. 하지만 몇 가지 확실한 그의 이야기가 있다. 그는 끊임없이 변화를 추구하는 인물이라는 것, 변화 안에서 늘 변함없이 지키고 있는 기본은 아름다운 멜로디와 섬세한 비트라는 것, 그리고 우리와 한참 동떨어진 어딘가에서 살고 있지만 금방이라도 달려와 귓가에 대고 속삭이듯 노래를 들려주는 남자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