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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영혼들이 만들어낸 슬픔의 찬가. 한국이 유독 사랑하는 여성 드림팝 듀오 애줘 레이(Azure Ray)의 어른들을 위한 자장가 [Burn and Shiver]
Azure Ray
한국에서는 여러 영화 사운드트랙에 곡이 수록되면서 일반 애호가들에게도 본격적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했던 미국의 드림팝 듀오 애줘 레이(Azure Ray)는 마리아 테일러(Maria Taylor)와 오렌다 핑크(Orenda Fink)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15세 무렵 알라바마 예술대학(Alabama School of Fine Arts)에서 만나는데 둘은 애줘 레이에 앞서 리틀 레드 로켓(Little Red Rocket)이라는 밴드를 결성했다. 팀은 베루카 솔트(Veruca Salt)와 자주 비견되곤 했으며 게펜(Geffen)에서 90년대 중, 후반에 두 장의 음반을 발표하기도 했다.
애줘 레이는 조지아 주에서 시작됐지만 네브라스카에서 활동하면서 씬에서 주목 받았다. 친밀하고 고백적인 가사를 통해, 그리고 조근조근 하면서 적당히 서늘하고 슬픈 사운드를 통해 자국은 물론 전세계의 인디뮤직 팬들에게도 큰 호응을 얻었다. 처음에는 웜(Warm)과 계약하면서 셀프 타이틀 앨범과 두 번째 정규작 [Burn and Shiver]를 발표하는데 이후에는 새들 크릭(Saddle Creek)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대표작 [Hold on Love]와 [November EP]를 공개하면서 화제의 중심에 떠오른다. 미국의 얼트 컨트리와 미니멀한 일렉트로니카를 잘 버무려 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이들의 작업물들은 꾸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킨다.
애줘 레이의 두 여성들은 같은 새들 크릭 출신의 밴드 나우 잇츠 오버헤드(Now It's Overhead)의 멤버로도 활동하고 있기도 하며 새들 크릭의 수장인 브라잇 아이즈(Bright Eyes)의 다수의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모비(Moby)의 앨범 [18]에서 [Great Escape]라는 곡을 함께 만들었으며 마리아 타일러는 웜 시절의 레이블 메이트인 크룩드 핑거즈(Crooked Fingers)의 앨범에 참여했고, 오레다 핑크의 경우엔 저팬케익스(Japancakes)와 작업하기도 했다.
애석하게도 애줘 레이는 2004년도에 해체됐다. 오레다 핑크가 먼저 팀을 떠났으며 마리아 타일러는 자신의 솔로 작업과 여러 다른 프로젝트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마리아 타일러는 2005년 5월에 자신의 솔로 앨범 [11:11]을 공개했고 뒤이어 오레다 핑크 역시 2005년도 8월에 [Invisible Ones]를 발표하면서 개인적인 이야기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두 앨범 모두 새들 크릭에서 발매됐으며 마리아의 앨범은 74번째, 그리고 오렌다의 앨범은 75번째 발매된 새들 크릭 앨범으로 기록됐다. 마리아 테일러의 솔로 앨범에 수록된 [Song Beneath The Song]은 미드 [그레이 아나토미(Grey's Anatomy)]에 삽입됐으며 오레다 핑크의 솔로 앨범에 수록된 [Blind Asylum]은 역시 미드인 [The O.C.]에 수록되면서 소소한 관심을 모았다.
애줘 레이의 곡들은 영화 사운드트랙에도 자주 수록되곤 했다. [윈터 패싱(Winter Passing)]과 [숏버스(Shortbus)],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The Devil Wears Prada)], 그리고 외화 시리즈 [식스 핏 언더(Six Feet Under)]와 같은 곳에 줄줄이 삽입되면서 더욱 내밀한 감성을 덧입히는 도구로 사용되곤 했다. [Hold on Love] 앨범에 수록된 [Across the Ocean]의 경우엔 한국에서 폭풍과도 같은 인기몰이를 했던 [커피 프린스 1호점]에 수록되면서 한국의 일반 음악 팬들에게도 친숙하게 다가가는 계기가 됐다.
Orenda Fink
오렌다 핑크는 아이티섬에서 경험한 영적인 체험을 바탕으로 첫번째 앨범을 만들었는데, 그녀가 만들어낸 몇몇 트랙들에서는 아이티 포크의 냄새가 풍기기도 한다는 평가를 얻기도 했다. 페인트(The Faint)의 멤버인 토드 핑크(Todd Fink)와 결혼했으며 2006년에는 새들 크릭의 다른 친구들과 함께 아트 인 마닐라(Art in Manila)라는 밴드를 결성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들의 데뷔 앨범 [Set the Woods on Fire]은 2007년 8월에 공개되기에 이른다. 굿 라이프(The Good Life)와 네바 디노바(Neva Dinova)의 뮤직비디오에 출연했으며 서브 팝 출신의 일렉티드(The Elected)의 앨범 [Me First]에서는 백업 보컬로 참여하기도 했다.
Maria Taylor
마리아 타일러의 경우에는 기타의 맨 위에 있는 6번 줄(E 코드)을 제거하고 연주하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2007년에는 두 번째 솔로 앨범 [Lynn Teeter Flower]을 발표하는데 역시 [No Stars]와 같은 노래들이 미드 [원 트리 힐(One Tree Hill)] 같은데 수록되면서 꾸준한 리퀘스트를 받는다. 2009년 3월에 [LadyLuck]이라는 제목의 새 앨범이 발매된다. 앨범의 마지막 트랙인 [Cartoons and Forever Plans]는 R.E.M.의 마이클 스타이프(Michael Stipe)가 함께하기도 했다.
2008년 11월 30일에는 로스 앤젤리스에서 단 한번의 재결성 공연을 가졌다. 그들의 EP 제목이기도 한 [November EP]에 걸맞게 11월의 마지막 날에 공연일정을 잡아놓았다. 물론 각자가 별개의 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이후에도 자주 이런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Burn and Shiver]
첫번째 셀프 타이틀 데뷔앨범 [Azure Ray]가 발매된 이후 2002년 1월, 그들은 웜이 아닌 새들 크릭에서 [November EP]를 발매한다. [November EP]가 공개되고 약 3개월 후인 2002년 4월 9일에 웜에서 발매된 [Burn and Shiver]는 전작의 성공에 힘입어 좀 더 많은 세션 멤버들을 기용할 수 있게 됐다. 전작의 프로듀서인 크룩드 핑거즈의 에릭 바흐만(Eric Bachmann)은 역시 함께 간다. 전체적으로는 전작보다 더 잔잔하고 미니멀해졌다. 일전에도 언급했지만 본 작의 성공을 통해 비로소 같은 해 발매된 모비의 [18] 앨범에 참여하는 계기가 된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회색의 도시를 노래하는 [Favorite Cities]로 신비하게 시작한다. 풋풋한 오르골의 멜로디와 확대된 베이스라인이 돋보이는 [The New Year], 현악파트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서늘한 포크 트랙 [Seven Days]가 이어진다. 전자기타의 담백한 생톤을 통해 자신들의 농밀한 고독을 전달하려는 듯한 [Home]은 앨범에서 가장 사랑 받았던 잔잔한 넘버 중 하나이다. "And So This is Why I'm Here" 이후에 변칙적으로 연주되는 아르페지오는 결국 듣는 이를 무너지게끔 만든다.
무거운 베이스로 시작하는 [How You Remember]의 첫 멜로디는 마치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의 [Stairway to Heaven]의 멜로디를 떠올리게 만든다. 피아노의 울림이 영적인 느낌마저 주는 [The Trees Keep Growing], 역시 한국에서 유독 인기를 끌었던 친숙한 포크 트랙 [A Thousand Years], 맑고 느리고, 무엇보다 슬픈 어쿠스틱 트랙 [While I'm Still Young] 등의 곡들이 전개된다. [While I'm Still Young]의 가슴 아픈 허밍은 많은 이들의 가슴 또한 아프게 만들었다.
신실한 멜로디와 앨범의 제목인 'Burn and Shiver'가 가사에 등장하는 [Your Weak Hands]는 중반부부터 등장하는 현악기 트레몰로 부분이 이 감정을 더욱 붙들어 매어 애달프게 만든다. 역시 듣는 이를 가라앉히는 [We Exchanged Words], 그리고 지리멸렬 해져가는 사랑을 노래하는 [Raining In Athens]의 마지막 가사는 "'Since November, It's Been Raining" 이라는 간지나는 대목이 있는데 이들의 EP 제목, 그리고 단 한번의 리유니언 공연을 11월의 마지막 날로 잡았던 것, 그리고 이 가사로 미루어 볼 때 이들에게 11월은 무척 특별한 계절인 듯 보인다.
앨범은 미드 템포의 포크튠 [Rest Your Eyes]로 끝을 맺는다. 앨범에서 가장 싱그러운 부분으로 상대적으로 빠르고 상대적으로 밝을 뿐, 크게 밝거나 볼륨이 높은 곡은 아니다. 애줘 레이의 앨범들은 항상 마지막 곡이 가는 사람의 발목을 잡는다. 여태까지 모든 애줘 레이의 노래 중 가장 설레게 만드는 트랙 같다. "그냥 눈을 붙이고 쉬다 보면....너는 다시 사랑에 빠져있을 거야" 하는 가사 뒤에 배치되는 "우~ 우우~" 하는 허밍은 꼭 옆에서 같이 해줘야 될 것만 같은 의무감에 빠지게끔 만든다. 앨범에 꾸준히 이어지는 곡들이 사람들을 질식하게 만들만한 곡들이었는데-이것이 결코 부정적인 뜻이 아니다- 이 마지막 곡을 통해 숨통을 트여 주는 것 같다. 담담하지만 기쁜 종류의 눈물을 흘리게 만들 것이다.
"You Said to Write You a Song.
So Here, This is For You."
- [Rest Your Eyes] 中.
조용하고 호흡이 긴 팝 튠들은 약간은 단조로울 수 있다. 하지만 이 일렉트로닉 팝/포크 튠들은 무의식적으로 사람들 사이로 잠식한다. 아이슬란드의 문(Mum)과도 닮아 있지만 그들 보다는 더욱 어둡고 갈색의 사운드를 담아내고 있다. 피아노와 현악의 생음을 주체로 한 부드러운 트랙들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두 여성의 비터스윗한 보컬은 묘한 노스텔지아를 자극한다. 생음의 곡들과 일렉트로니카 트랙들 서로가 나름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송 라이팅에서도 확실한 자신들의 색깔을 보여주고 있어 비교적 안정적인 성과를 달성했다 할만하다.
대담한 미니멀함을 갖춘 꿈의 노래들이다. 침묵 속에 모든 것이 사라져버린다. 트랙마다 마법을 일으키고 있다. 어느 유저는 독일의 일렉트로닉 그룹 그루스터(Cluster)가 브라이언 이노(Brian Eno)와 함께했던 [Cluster & Eno]를 연상 시킨다고 까지 말하곤 했다. 적절하게 미니멀하고 고전적인 전자 효과들은 이 시기를 연상케 하는 부분들이 있다. 이런 소스들이 안타까운 멜로디와 화학반응을 일으키면서 무척 낡아 보이면서도 새롭게 들리게 되는 것 같다.
무엇인가를 토해내려고 한다, 닿지 않는 곳에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보내려 하는 소리와 한숨, 그리고 이것은 무척 자그마하면서도 또한 강력하다. 해설지의 제목에는 '자장가'라고 표기해 놓았지만 오히려 이 '어른들을 위한 자장가'는 너무 고독하고 눈물겹기 때문에 함께 잠을 이루기 어려울 수도 있다.
단락의 제목에 써놓은 가사처럼 이것은 그녀들이 우리를 위해 쓴 노래이다. 물론 그녀들이 생각하는 다른 '누군가'가 직접적으로 존재할 수도 있겠지만 그 '누군가'가 우리가 된다는 착각도 크게 빗나간 것은 아닌 것 같다. 이들이 유독 11월을 좋아하고 여러 리뷰어들이 늦가을, 혹은 초겨울에 어울리는 앨범이라고 귀뜸 하기는 했지만 꼭 그렇지 만도 않은 것 같다. 굳이 시기를 정해야 한다면 가슴 아픈 계절, 혹은 가슴 아픈 주기에 가장 잘 어울릴 것이다. 당신에게 있어 가장 가슴 아픈 계절은 언제쯤인가? 나는 이 앨범을 듣고 있는 지금인 것 같다.
한상철 (불싸조 http://myspace.com/bulssaz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