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석하지만 지금은 없는 ‘우리는 속옷도 생겼고 여자도 늘었다네(이하 속옷밴드)’에서는 멜로디/기타 파트에 있어서 크게 두 가지 성격을 엿볼 수 있었다. 한 축이 고전적인, 그리고 락앤롤에 근접한 리프를 만드는 데 관심을 가졌다면 다른 하나는 섬세한, 그리고 특유의 엠비언스를 바탕으로 서정적인 멜로디라인을 만드는데 중점을 뒀다. 물론 이것은 아주 '무식한' 분류-혹은 오해-이다만 이 점은 후에 나올 이들의 개별적인 작품들을 통해 구체화 될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
과연 조월은 속옷밴드에서 어떤 부분이었을까. 반대로 속옷밴드는 조월로 인해 무엇을 장착하게 됐을까. 본 작 [네가이곳에서보게될것들]을 듣게 되면 약간은 명확해지는 부분들이 있다. 어떤 부분이 남았고 어떤 부분을 버렸고, 그리고 어떤 부분이 더 풍부해졌는지에 대한 얘기들을 하는 것이 순서일수도 있겠지만 가끔 어떤 음악에 대해서는 그런 부분들을 그냥 있는 그대로 놓아두고 싶을 때가 있다. 본 작이 약간 그렇다. 나는 이것을 들으면서 내가 왜 이것을 해체시켜 놓아야 할까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결국 그런 식의 감상은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특유의 멜로디 감각을 바탕으로 리버브를 머금은 특유의 질감을 만들어내는 재능은 속옷밴드시절뿐만 아니라 이미 모임 별 때부터 쉽게 간파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가끔씩 감지되는 차가운 유머 또한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포스트 록이니 좀 더 나아가 프리 포크니 하는 구분짓기는 일단 나중으로 미루자-혹은 영영 그만두던가-.
수많은 어쿠스틱 기타들의 소스들이 퍼커시브한 느낌 마저 주는 [this is the night]에 들어서면서부터 우리는 비로소 '목격자'가 된다. 약간의 슬픔을 머금고 있는 [기록], 아마 올해 가장 아름다운 아르페지오 인트로로 두고두고 기억될 [정말로행복하다] 등의 곡들이 전개된다. 어쿠스틱과 일렉트릭 기타가 맞물리면서 절묘한 부유감을 주는 [온도시가불타는꿈]은 결국 막판에 파국으로 치닫고, 마치 바이닐 레코드의 마지막 부분에 무한 반복되는 잡음을 루핑시킨듯한 리듬파트를 바탕으로 진행되는 여백의 미가 인상적인 [보이스카웃]과 섬세한 어레인지가 돋보이는 발라드 [산불]은 적당한 숙연함을 안겨준다.
앨범이 막바지로 접어들수록 감정의 굴곡은 깊어져 간다. 애수어린 율동감을 가진 [Stay], 그리고 앨범에서 가장 많은 이들을 사로잡았던 [불꽃놀이]가 시작된다. [불꽃놀이]는 '팝'을 다루는데 있어 그가 얼마나 탁월한지를 보여주는 증거물과도 같다. 가사에는 "비내리는 호남선"이라는 부분이 존재하는데 실제로 조월은 아주 오래전에 [남행열차]를 커버하곤 했다. 이후 5분여 동안 펼쳐지는 제목없는 여운 역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가끔씩 뭉클한 90년대의 공기를 떠올리게 만들곤 한다.
나는 이 앨범이 얼마나 대단한지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저 어떤 방식으로 본 작이 한 개인-혹은 다수의 청자들-을 매혹시키고 있는지에 대한 관찰을 시도해보려 했을 뿐이다. 글을 끝까지 읽어보신 분들은 이미 눈치챘겠지만 이 '관찰'은 실패했다. 가끔은 말로 무언가를 표현하는 게 얼마나 구체적이지 못한가에 대해 자각할 때가 있다. 당신은 이곳에서 무엇을 보았는가. 진정 우리가 이 화염 속에서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파스텔 문예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