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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의 정규 앨범, 4번의 앨범 차트 1위 기록!
빌보드 앨범 차트 1위를 점령한 <Light Grenades>에 이어 3년 만에 팬들에게 선사하는 최고의 컬렉션!
화제의 새 싱글 <Black Heart Inertia>와 <Midnight Swim>, 10년 간의 히트곡 및 미공개 트랙, 커버 곡 등이 모두 담긴 2CD 버전!
*초회 한정판에만 제공되는 특별한 기회!
멤버들이 직접 고른 미공개 트랙, 비디오, 사진 등을 enjoyincubus.com에서 다운 받을 수 있는 고유 번호 삽입 (앨범 내 삽지에서 확인 )
현재진행형 밴드의 중간 결산
Monuments and Melodies
곡이 있기에 만들었을 뿐
10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강산이 한 번 변한다는 것은 이미 옛 이야기다. 이제 강산은 한 해에도 수십 번씩은 변하니까. 반대로 얘기하면 10년을 버텨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고작 눈 한 번 깜짝였을 뿐인데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가고, 그 짧은 찰나의 순간에 인생의 흥망성쇠는 이미 결정된다. 밴드에게 10년은 더욱 힘겨운 시간이다. 10년을 버텨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칭찬 받을만하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10년이 지나도 여전히 전성기인 밴드가 있다. 아니, 이들에게는 전성기가 이제 시작일지도 모른다. 지난 10년 동안 엄청난 인기를 누려 왔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 인큐버스다. 인큐버스라는 이름을 세상에 알린 <Fungus Amongus> 앨범이 1995년에 발매됐으니, 정확하게 얘기하면 무려 15년이다. 그리고 여섯 장의 스튜디오 앨범을 발매했다. 그들도 이제 슬슬 밴드의 역사를 정리할 때가 된 것이다. 인큐버스의 프론트맨인 브랜든 보이드 역시 인정한다. “베스트 앨범 만들 정도의 곡이 모여 있더라고요.”
인큐버스 성공 신화 혹은 도무지 멈출 줄 모르는 승부욕의 역사
묵직한 일렉트릭 사운드, 팝과 프로그레시브의 절묘한 결합으로 완성된 매끈한 록 음악으로 대변되는 인큐버스의 시작은 1991년이다. 브랜든 보이드(보컬), 호세 파실라스(드럼), 마이크 아인지거(기타), 덕 랜스(베이스)는 이미 고등학교 시절부터 학교가 아닌 동네인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알아주는 밴드였다. 레드 핫 칠리 페퍼스를 연상케 하는 훵크와 메탈의 향연에 사람들은 학교 친구들을 든든한 후원군으로 엎을 수 있었다. 그들에게는 록의 강렬함과 시대의 조류였던 힙합을 동시에 아우를 수 있는 젊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과격한 어린 친구들의 공연은 단시 칼라바사스 고등학교에 국한되지 않았다. 길에서 주은 돈으로 내기 공연을 즐기기도 했다. 하지만 뒷골목에서 벌어지던 배틀은 무대를 넓히는 전초전에 불과했다. 마이크 아인지거는 웃으면서 회상한다. “무서울 게 뭐가 있겠어요. 우린 십대였다고요!” 게다가 운도 좋았다. 그들의 수학 선생님이 왕년에 록음악계에서 침 좀 뱉던 매니저였던 것. 덕분에 공연도 하고 돈도 버는 뮤지션의 생활이 이어지기 시작한다. 이어 매니저 마크 쇼프너를 만나고 프로듀서 짐 월트와 안면을 트게 된다. 그들의 캘리포니아 정복기는 짐 월트의 스튜디오에 입성하면서 시작된다. 물론 짐 월트의 스튜디오가 있던 산타모니카에서의 생활도 크게 다를 바는 없었다. 그들은 클럽에서의 공연만큼 거리에서의 공연과 배틀을 즐겼다. 동시에 밴드의 모습도 착실하게 갖추기 시작한다. 마침 묵직한 베이스에 바탕을 둔 랩 메탈로 방향을 슬슬 선회하기 시작한다. 뜨기 위해서일까? 이제는 인큐버스의 라인업에서 이름조차 찾을 수 없는 덕 랜스는 “당연한 과정”이었다고 차분히 얘기한다. 그리고 당연한 인기를 얻게 된다. 한편으로는 진득한 훵크를, 또 다른 한편으로는 콘과 테프톤즈를 떠올리게 하는 인큐버스의 음악은 캘리포니아 전역에 울려 퍼지기 시작한다. 이어 DJ 라이프로 알려진 개빈 코펠이 가입했고, 첫 앨범 <Fungus Amongus> 녹음이 진행된다. 그리고 곧바로 메이저 레이블 에픽과의 계약으로 이어진다. 다음 이야기는 모두가 잘 아는 탄탄대로 성공일색의 이야기이다. 그저 기왕 하는 밴드, 웬만하면 메이저가 되자던 소년들은 시대를 대표하는 뮤지션의 반열에 올라서게 된다.
하지만 사실 알고 보면 성공은 그저 다가오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Fungus Amongus>가 치기어린 소년들의 가능성(만) 넘치는 데뷔작에 불과하다면, 두 번째 스튜디오 앨범이자 메이저 데뷔작인 <S.C.I.E.N.C.E.>는 그들의 음악적 가능성을 확인하는데 그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다양한 음악적 시도는 그들을 계속된 가능성의 굴레에 가두어 놓게 했다. 마침 그들을 세상에 알리는데 다소 무모한 도전을 했던 짐 월트를 향한 반발심도 커졌다. 결국 2주 만에 프로듀서를 갈아치우기에 이른다. 짐 월트에 이어 스튜디어에 입성한 프로듀서는 알이엠과 너바나의 프로듀서로 유명한 스콧 릿. 그는 세션부터 믹싱 과정까지 함께하며 인큐버스의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훵크, 랩, 메탈 그리고 재즈적인 느낌까지 상당히 많은 시도가 자행된 <S.C.I.E.N.C.E.>는 전작이 레드 핫 칠리 페퍼스를 위시한 훵크-메탈 음악에 대한 오마주였다면, 이제는 선배들을 향한 정면 도전에 가까울 정도로 과감한 모습을 선보인다. 미국 전역에서 수집된 반응 역시 슬슬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들의 도전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300만장이 넘게 팔린 <Make Yourself>는 1999년 발매와 함께 빌보드 차트 여기저기를 수놓기 시작한다. 그들의 첫 싱글인 ‘Pardon Me’가 모던록 차트 3위에 오르는데 이어, ‘Stellar’는 2위, ‘Drive’가 1위에 차례로 등극한다. 스콧 릿이 <S.C.I.E.N.C.E.> 앨범을 작업하면서 인큐버스에게 바라던 바가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사실 인큐버스라는 밴드가 내 마음대로 되는 줄 알았죠.” 스콧 릿이 씁쓸하게 웃으며 화려한 성공의 시작점을 추억한다. 세 싱글 모두 프로듀서 스콧 릿이 추구하던 그 방향에 정확히 부합하는 지점이었기 때문이다. 밴드 내부에도 변화가 있었다. DJ 라이프 대신 크리스 킬모어가 인큐버스의 일원이 됐다. 그들의 성공에는 90년대 후반 지루한 록음악계에 신선한 자극제가 된 뉴 메탈을 자연스럽게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레드 핫 칠리 페퍼스는 물론 서브라임, 311와 콘, 테프톤즈 등을 아우르는 인큐버스의 음악적 스펙트럼은 뉴 메탈이라는 사조와 정확하게 부합했다. 어떤 상황, 어떤 순간에도 대처할 수 있는 유연함도 그들의 성공을 가능케 했다. “그저 인큐버스라는 밴드 자체에 충실했기에 가능한 일이지요. 메탈 밴드라고 어쿠스틱 연주를 하지 말라는 법은 없잖아요.” 탁월한 외모의 브랜든 보이드가 예의 그 아늑한 목소리로 얘기한다. 그리고 그 목소리에, 그리고 인큐버스 음악에 전 세계 팬들이 녹아들기 시작한다. 탄력 받은 기차는 더욱 가속을 내는 법. 그들은 새 앨범을 통해 더 높은 지점에 오르기로 한다. 게다가 준비 기간도 그리 길지 않았다. 2001년 곧바로 인큐버스를 역사에 남길 <Morning View> 앨범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어렸을 적 상상에만 불과했던 성공이 가까워지자 조바심이 나더라고요. 그럴수록 더욱 음악에 집중하게 됐어요.” 그들은 새 앨범 작업을 위해 말리부로 숨어 들어갔다. 작업은 2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동안 틈틈이 만들어 놓은 곡이 꽤 많았다는 소문에 비하면 긴 시간이었다. 하지만 무한 충성을 바치는 팬들을 생각하면 어떤 것도 허투루 넘어갈 수 없었다. 작업을 끝내놓은 그들이 향한 곳은 유럽. 물론 휴가가 목적은 아니었다. 유럽 정복이 목적이었다. 그들은 유럽에서 모비, 아웃캐스트, 루츠, 폴 오큰폴드, 칼 콕스. 심지어는 넬리 퍼타도와 같은 뮤지션과 공연을 하기도 했다. 킬모어는 “그렇게 크게 성공할 줄은 몰랐죠. 세상에 유럽 사람들이 우리 음악을 좋아해주다니!”라며 손사래를 친다. 그의 웃음에는 살짝의 비꼼이 섞여 있기도 하다. 인큐버스는 유럽에 이어 호주와 아시아에 들렸고, 절친한 동료이자 친구인 후바스탱크와 함께 미국 투어에 나선다. 더 많은 싱글이 차트에 이름을 올렸고, <Make Yourself>에 수록된 ‘Drive’의 뮤직비디오는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에서 ‘베스트 그룹 비디오’ 상을 수상하는 상복도 꽤 누린다.
앨범 발매 전에 발표한 싱글 ‘Wish You were Here’가 모던록 차트 2위, 싱글 차트 60위에 올랐다. 팬들은 인큐버스의 새 앨범을 더욱 기대하기 시작한다. 아니나 다를까, 팬들은 물론 평론가들까지 <Morning View> 앨범에 경탄과 찬사를 함께 보냈다. 앨범은 발매와 동시에 빌보드 앨범 차트 2위에 올랐고, TV에서는 연일 인큐버스의 비디오가 나왔다. 심지어는 데이비드 레터맨 쇼에도 출연했다.
<Morning View> 앨범이 놀라운 것은 이미 상당한 성공을 거둔 그들이 그 성공에 멈춰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브랜든 보이드는 더 큰 소리로 노래했다. 여전히 진화하고 있음을 앨범을 통해 증명했다. 인큐버스는 <Morning View> 앨범으로 더 높은 포인트를 찍었다. 하지만 인큐버스는 절대로 한 지점에 멈추어 있는 밴드가 아니었다. 그들은 이제 완성형 밴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다. 하지만 밴드의 안팎은 결코 평탄치 만은 않았다. 에픽과의 계약에 문제가 생기면서 소송을 진행하게 되고, 음악적 변화의 간극에 적응하지 못한 덕 랜스는 탈퇴를 결심한다. “글쎄요, 그냥 개인차라고 해두죠.” 갑작스레 비어버린 베이시스트 자리는 오랜 시간 공석으로 남아있지 않았다. 루츠에서 기타를 쳤던 벤 케네디가 가입했다. 이미 마이크 아인지거와 함께 훵크-재즈 프로젝트를 함께 하며 친해질 대로 친해진 벤 케네디의 가입은 팬들에게 경악에 가까운 놀라움을 선사했다. “세상에, 힙합 밴드의 기타리스트가 인큐버스의 베이스를 친다고?” 그 사이 브랜든 보이드는 스페인에서 다음 앨범 준비에 여념이 없었고, 아인지거는 더욱 엄청난 것을 준비하기 위해 분주히 사람들을 만난다.
2003년 12월, 밴드는 조심스레 애틀랜타에 도착한다. 새로운 앨범 녹음을 위해서다. 하지만 스튜디오에서 인큐버스를 기다리는 사람은 스콧 릿이 아니었다. 브랜든 오브라이언이었다. 브랜든 오브라이언이 누구던가. 펄잼, 사운드가든 등 당대 최고의 밴드 앨범의 프로듀서이자 마이다스의 손. 그의 영입은 마이크 아인지거의 노력과 그동안 인큐버스가 쌓아놓은 믿음 때문이었다. “작업을 시작하지도 않은 앨범이 이미 성공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할까요?” 새로운 프로듀서, 새로운 베이시스트와 함께 작업한 <A Crow Left of the Murder...> 앨범은 마이크 아인지거와 브랜든 보이드의 대화 중 아인지거의 한마디로 깔끔하게 설명된다(그들은 앨범 속에 작업 광경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완전히 옛날 음악이긴 한데, 그것과 다르기도 해야 해. 굉장히 에너지가 넘치고, 빠르고, 더 복잡할 필요가 있어. 그러니까 우리의 초창기 노래들을 생각해봐. 하지만 어느 누구도 우리의 과거를 떠올리지 못할 거야.” 그러고 보면 브랜든 오브라이언의 영입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정확히 1년 후, 그들을 대변하게 되는 곡 ‘Megalomaniac’이 모습을 드러낸다. 부시 정권에 대한 비판을 담아 노래한 이 싱글은 상당히 과격한 진행 덕분에 MTV에서 낮 시간 동안 방영이 금지됐다. 하지만 해가 지면 상황은 역전됐다. 매일 밤 MTV에서 ‘Megalomaniac’ 비디오가 비추어 졌다. 브랜든 보이드는 “오히려 그게 더 좋았어요”라고 얘기했다. 파실라스 역시 “사람들이 우리가 하는 얘기만 들어준다면 좋았어요. 어쨌거나 우리 음악은 좋으니까. ” 그리고 팬들은 인큐버스가 기대한 그대로 반응했다. ‘Megalomaniac’은 단숨에 차트를 정복했다. <A Crow Left of the Murder...> 역시 마찬가지였다. 미국은 물론 영국에서도 300만장이 넘게 팔렸다. 그들의 정치적인 행동 역시 과감해 졌다. 두 번째 싱글 ‘Talk Show on Mute’는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바탕으로 부시 정부 비판에 본격적인 노선을 취한다. 음악에 있어서도 과감성은 이어졌다. 무려 27분에 이르는 ‘The Odyssey’는 앨범 대신 인기 게임 <Halo 2>의 테마곡으로 사용됐다. <A Crow Left of the Murder...>이 가진 가장 큰 미덕은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는 것이다. 실패를 모르는 프로듀서 브랜든 오브라이언에 대한 신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천재잖아요. 그렇죠?” 팬들의 충성도 역시 하늘 높은 줄을 모르고 높아져만 갔다. 그리고 때가 됐다. 여전히 브랜든 오브라이언과 함께한 새 앨범 <Light Grenades>가 발매됐다. 과감하게 신곡을 앨범 발매와 상관없이 선보이던 와중에 갑작스레 새 앨범 소식을 전하던 인큐버스는 <Light Grenades>를 밴드 역사상 최초 빌보드 앨범 차트 1위 데뷔작으로 만든다(하지만 실상은 <Make Yourself> 앨범 이래로 첫 주에 가장 적은 양의 앨범이 팔렸다). 그리고 이어 싱글 ‘Love Hurts’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게 된다. 어느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다. 밴드 멤버 어느 누구도 싱글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8년은 라디오, TV 모두 인큐버스와 ‘Love Hurts’ 이야기뿐이었다. 하지만 브랜든 보이드는 침착했다. “놀라지는 않았고, 그냥 기쁘긴 했죠.”
오로지 팬들을 위한 지난 10년의 증거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그들은 베스트 앨범을 발매하기에 이른다. 10년 넘게 활동한 밴드로서 당연한 수순이다. 하지만 인큐버스의 첫 번째 베스트 앨범인 <Monuments and Melodies>에는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몇 가지 있다.
첫 번째, 이 <Monuments and Melodies>는 15년이 아니라 지난 10년의 시절을 회상하는 앨범이다. 히트 싱글 등 기존의 13곡은 1999년에 발매된 <Make Yourself>를 기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쉽게도 그들의 풋풋한 과격함을 즐길 수 앞선 두 장의 앨범을 <Monuments and Melodies>에서는 만날 수 없다. 하지만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그들의 홈페이지(www.enjoyincubus.com)를 찾아가 초도 한정판 CD 안에 개별적으로 들어있는 코드를 입력하면 비밀의 문이 활짝 열린다. 수 백 곡의 레어 MP3와 유튜브에서 조차 볼 수 없었던 비디오가 잔뜩 모여 있다.
두 번째, 그들은 <Monuments and Melodies> 앨범을 철저히 팬을 위한 베스트 앨범으로 만들었다. 그들은 히트 싱글을 중심으로 숱한 공연에서의 경험으로 팬들이 사랑하는 곡을 중심으로 선정했다. 게다가 한 장(사실은 두 장)의 앨범을 그저 단순한 베스트 앨범으로 만들지 않았다. 그들은 이 앨범을 전 세계 무수한 팬들로 하여금 소장할 수밖에 없는, 거의 새로운 앨범으로 만들었다. 일단 히트 싱글, 아니 베스트 싱글로 이루어진 첫 번째 시디의 시작과 끝은 새로운 트랙이 장식한다. 여전히 브랜든 오브라이언과 함께 한 두 신곡은 정점에 이르러 새로운 도약점을 찾아 날카로운 눈을 번뜩이는 인큐버스의 모습을 떠올리기 충분하다. 이어지는 두 번째 시디는 쉽게 들을 수 없었던 혹은 유튜브 등을 통해 그 실체만 확인할 수 있었던 싱글 비사이드 트랙과 희귀 버전 등 미공개 싱글로 가득하다. 소문만 무성했던 폴리스의 커버 곡이 빠진 것은 아쉽지만 대신 프린스의 ‘Let’s Go Crazy’가 깔끔하게 녹음됐다. 인큐버스의 탁월한 실력을 커버곡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기회이다. 마지막으로 커버 이미지는 두 권의 아트 북을 내기도 한 브랜든 보이드가 담당했다. 이미 공개된 이미지를 확인한 팬들은 앞 다투어 엄청난 탄성을 자아냈다.
인큐버스를 좋아했지만 마땅히 그들의 앨범 모두를 가지고 있지 못한 팬들 그리고 앨범은 물론 싱글, 부틀렉까지 가질 수 있는 그들의 모든 앨범을 가지고 있는 팬들 모두를 혹하게 만드는 <Monuments and Melodies>는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 “우리가 투어에서 하는 것 그대로를 느끼게 해주고 싶었어요. 더욱 우리 공연에 오고 싶지 않을까요?” 이미 2003년 서울에서 멋진 공연을 마치고 간 호세 파실라스가 담담히 입을 연다.
진화형 밴드의 중간 점검
그렇게 10년이 지났다. 브랜든 보이드는 뮤지션 뿐 아니라 화가로서의 경력을 화려하게 이어가고 있고, 마이크 아인지거는 하버드 생활을 시작했다. “사실 학위가 몇 개 있긴 한데, 학교 근처에 가본 적이 없어요. 하버드에서는 음악 이론과 과학 쪽을 공부하고 싶어요.” 밴드 인큐버스는 십 년이 훨씬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쇠락기가 아니라 어디가 끝인지 모를 정도 호황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인큐버스는 여전히 성공 앞에 무심하다. 그저 좋아하는 음악을 할 수 있어서 좋다고 이야기할 뿐이다. 사람들이 자신들의 노래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맙다고 슬쩍 고백한다. 베스트 앨범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대신 차세대 하버드 엘리트 마이크 아인지거는 <Monuments and Melodies>을 “귀로 연주한 앨범”이라 표현한다. 인큐버스라는 밴드 자체가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것을 에둘러 표현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자신감에 차있기 때문에 가능한 발언이기도 하다. 이제 인큐버스는 자신들의 장기인 공연에 다시 몰두한다. 이미 드넓은 미국 대륙을 횡단하는 공연인 ‘Monuments and Melodies’ 투어 스케줄이 발표됐다. 더 놀라운 것을 보여줄 예정이라고 넌지시 얘기하는데, 별로 놀랍지도 않다. 항상 그래왔으니까. 그리고 비록 공연장 한 가운데 자리 잡지 못하더라도, 그 놀라움은 앨범을 통해 전율로 마주할 수 있으니까. 중요한 것은 지난 10년이 그러했고, 앞으로의 10년 그리고 그 이상의 긴 시간이 그러할 것이기 때문이다.
글 김용현(주간지 <M25>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