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ssential VLADIMIR HOROWITZ
RCA 시절과 SONY 시절의 주요 트랙들을 최초로 한 앨범에 모았습니다!
필수 아티스트의 필청 레퍼토리 - 이센셜 시리즈
클래식 음악사를 빛낸 위대한 아티스트의 주요 레퍼토리를 엄선, 2장의 앨범에 빼곡히 담아 리마스터링을 거친 우수한 음질의 앨범으로 발매!
Essential : 본질적인, 없어서는 안될, 필수적인, 가장 중요한, 정수를 모은...
이상한 이야기지만, 1917년에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우린 결코 블라디미르 호로비츠(1903-89)의 음악을 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볼셰비키에 의해 가족들의 재산이 몰수되기 전까지 그는 작곡에 헌신적으로 매달렸다. 호로비츠 자신의 설명에 따르면, 그가 콘서트 무대에 오르게 된 것은 오로지 재정적인 압박 때문이었다.
1921년, 그는 러시아의 몇몇 도시에서 놀라울 정도로 조용한 몇 차례의 데뷔 무대들을 가졌다. 하지만 2년 뒤 레닌그라드에서 연주했을 때 사람들은 정말 집중하고 주목하기 시작했다 - 그것은 마치 베수비오 화산이 한복판에서 폭발하는 것과 같았다. 1924년 한해동안 20세의 호로비츠는 레닌그라드에서만 25회 이상의 서로 다른 리사이틀 무대에 올랐다. 단 하나의 작품도 중복됨이 없었다.
어떤 기준으로 봐도 이미 방대했던 그의 레퍼토리는 그후 60년간 계속해서 늘어났지만, 그모든 곡들이 대중 앞에서 연주되지는 않았다. 이 음악의 바다에서 걸러진 특정한 곡들만이 연주의 빈도나 뛰어난 수준, 그 모든 면에서 오랜 연주 경력을 함께 해왔다.
그중 많은 곡들이 이 컬렉션에 담겨 있다. 호로비츠는 대체로 19세기 낭만 레퍼토리에 자신을 제한시켰고, 이 앨범에서 슈만, 리스트, 멘델스존, 쇼팽(그의 음악, 아마도 특히 마주르카는 비교할 대상이 없다고 일컬어진다)의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호로비츠는 1927년부터 1962년까지 RCA에서 레코딩을 했으며, 그 이후에는 콜롬비아/CBS/소니에서 레코딩을 했다. 이 앨범의 컬렉션에서 보는 것처럼, RCA 시기(그중 다수가 78rpm 레코딩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한 면의 평균 시간이 약 4분 정도이다)는 앙코르 곡들이 대부분을 이룬다. 거의 대부분이 기분을 즐겁게 하고 듣는 이를 압도하는 고급 오락거리이다.
아마도 호로비츠의 가장 인기있는 연주곡은 비제의 '카르멘'을 호로비츠 자신이 편곡한 곡일 것이다(CD 1, 6번 트랙) . 그가 단지 두 개의 손(또는 단지 한 대의 피아노)을 가지고 있다고 믿어야만 하는, 대단히 비르투오소적이고 매력적으로 편곡된 소사의 '성조기여 영원하라'(CD 1, 17번 트랙)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큰 음량과 눈부시게 빛나는 오케스트라 사운드의 조화, 그 말할 수 없는 기품과 크리스탈과 같은 우아함(매혹적으로 퍼져 나가는 제2 주제는 작은 기적이다), 이 연주는 우리에게 호로비츠를 독특하게 만드는 그 정수를 전해준다.
전설적인 손놀림을 지녔지만 - 정말 가끔은 그야말로 과시를 하게 된다 (라코츠키 행진곡을 들어보라, CD 1, 트랙 5) - 그는 애청곡만을 고수하며 안일하게 연주하는 피아니스트가 아니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또는 당시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많은 곡이나 그가 알리고자 마음 먹은 작곡가들을 청중들에게 소개한 개척자였다. 스카를라티에 그보다 더 큰 공을 들인 위대한 피아니스트는 없었다.
그가 세상에 널리 알린 클레멘티의 소나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 이전, 이후의 어떤 피아니스트보다도 그는 더 사람들을 스크랴빈으로 이끌었다. 그의 연주 레퍼토리에서 놀라울 정도로 작은 비중을 차지했던 다른 매우 유명한 작곡가들도 있었다 - 특히 꽤 후반에 이르러서야 연주된 모차르트와 베토벤(32개의 소나타 중 겨우 일곱, 5개의 협주곡 중 하나만 연주)이 그렇다.
살아있는 작곡가들의 곡을 연주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드물었다. 그와 교류한 작곡가 가운데 가장 유명했던 사람은 라흐마니노프였는데, 1943년에 작고한 작곡가이지만 그는 결코 20세기의 작곡가가 아니었다(음악적으로 그는 19세기를 떠나지 않았다). 좀더 가볍게는, 오늘날 흔히 연주되는 작곡가는 아니지만, 모스코프스키가 초기부터 일생에 걸쳐 자주 연주되는 레퍼토리였다.
모든 위대한 피아니스트가 그러하듯, 단지 그가 무엇을 연주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그것을 연주했느냐가 호로비츠를 위대한 존재로 만들고 그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게 한다. 얼마나 잘 연주했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그것을 연주했느냐 하는 것.
그의 첫번째 레코딩이 1927년에 발표되었을 때 빅터 토킹 머신 컴퍼니(당시 이름 그대로)는 "이런 사람이 곧 세계를 정복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그렇게 되었다. 진실로 현대의 피아니스트들 가운데 글렌 굴드 같은 경우를 제외한 어떤 누구도 호로비츠가 그의 커리어를 쌓아갈 때처럼 카리스마 넘치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마치 스스로를 삼켜버릴 듯이 연주했다. 루돌프 제르킨은 언젠가 호로비츠의 연주하는 쇼팽 g단조 발라드 (CD 2, 트랙 1)를 '불덩어리가 폭발하는 것 같다'고 정확하게 표현한 적이 있다. .....
호로비츠 연주의 전영역에 대해 익숙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은 그가 리스트를 포함한 거의 모든 것을 연주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그 뛰어남을 보편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고전주의와 전고전주의 음악에서, 그의 연주는 종종 고도의 자기 절제, 텍스트의 모든 디테일에 대한 충실함, 감정에 의해 훼손되지 않는 표현의 순수성으로 특징지어지곤 했다. 예를 들어 스카를라티(CD 2, 트랙 6, 11)와 클레멘티(CD 1, 트랙 13, 14) 연주에서 그는 그 자신의 기질상의 요구와 음악 자체가 요구하는 것 사이에서 완벽한 균형을 이룬다.
60년 이상을 하나의 전설로 살아온 호로비츠가, 마지막 레코딩을 마친 4일 후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진부한 것 같지만 진실되게 말하자면 그와 같은 연주를 다시 들을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