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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노/일렉트로니카 씬의 세계적인 슈퍼스타
모비(Moby), 21세기 멜랑콜리 맨으로 돌아오다!
홈메이드 레코딩으로 만들어낸 진솔하고 매혹적인 사운드
[PLAY] 시절의 잔향 가득한 첫 싱글 <Pale Horses> 외, <Study War>, <Mistake> 등 어느 한 곡 버릴것 없이 완벽한 2009년 새 앨범 [Wait For Me]
"지금까지 만들어온 앨범들보다 훨씬 멜로딕하고, 우울하고, 개인적인 작품" - 모비
"더불어 감상적이고, 슬프고, 고독하고, 아름답다" - 해설지: 성문영
"가장 슬프면서도 생각깊게 만드는 앨범을 가지고 돌아온 일렉트로니카계의 가장 위대한 사람" - 모조(MOJO)
Moby [Wait For Me]
21세기 멜랑콜리 맨
사적인 영역을 상품화할 경우 보통은 여러 가지 복잡한 상황들이 벌어질 각오를 해야 한다. 모비(본명: 리처드 멜빌 홀)의 이름으로 발표되는 아홉 번째 공식 앨범인 [Wait For Me]는 모비 자신이 말하길 지금까지 만들어온 앨범들보다 훨씬 멜로딕하고, 우울하고, 개인적인 작품이라고 한다. 들어본 바 동감한다. 더불어 감상적이고, 슬프고, 고독하고, 아름답다.
관건은 이것이 하필 디스코와 클럽, 댄스 리듬이 격하게 남실거렸던 [Last Night] 다음 앨범이라는 데 있다. 이같은 급격한 무드 스위치는 그 원인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 최근에 무슨 커다란 안 좋은 일이라도 겪은 걸까. 이런 생각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역시나 ‘개인적’이라는 표현을 쓰는 그 순간부터 사람들은 주인공 주변을 킁킁거리고 냄새 맡으려드는 법이기에. 모비의 이번 음반 최대의 미스터리는 ‘개인적’이라고 밝히면서 정말 개인적인 디테일은 말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인적이라지만 이 상태로는 사실상 최대한 익명적인 노래들이다. 덕분에 누구나 이 노래들의 내밀한 감정선에 자기 자신을 대입해볼 수 있다.
그러나 정신 차리고 기억을 더듬어보면, 모비에 있어 이것은 결코 급격한 변화가 아니다. 그는 언제나 우울한 음악에 사로잡혀 왔다(사춘기 시절부터 조이 디비전을 비롯한 포스트 펑크 계열 음악을 즐겼고, 고등학교 졸업 앨범에도 자기 소개란에 ‘우울한 음악 좋아함’이라고 썼었다). 많은 사람들이 쌍수를 들고 환호했던 1999년도의 모비 최고의 히트 앨범 [Play]에서도 <Why Does My Heart Feel So Bad?>, <Natural Blues>, <Porcelain> 같은 울적하기 그지없는 트랙들이 차트 상위에 올랐고, 이는 모비 자신조차 약간 당황하게 만들었지만, 그렇다고 그 덕분에 찾아온 명성과 사람들의 융숭한 스타 대접까지 마다하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이 의도하든 않았든 매번 이슈를 만들어냈고, 그것이 지금까지 결과적으로 자신의 경력을 (예상보다?) 오래 균질하게 유지하게 한 역설적인 힘이기도 하다.
사실 모비의 모순에 대해서 말하라면 더 신나게 지껄일 수 있다. 그는 일찍부터 기독교(신약)의 가르침에 경도되었지만(이전 앨범 부클릿에 이에 관한 논평 글을 쓰기도 했다), 우주와 외계인에도 항상 매혹된(이번 앨범의 표지 및 <Pale Horses>의 뮤비를 장식한 그의 페르소나 외계인도 그가 직접 그려 창조해낸 캐릭터이고, ‘스타트렉’ 시리즈의 광팬이기도) 철학도였다. 금욕주의를 강변하는 듯했지만, 그도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잦은 연애 관계의 실패와 약물 경험이 있다. 그러면서도 대단히 많은 수의 자선사업과 봉사활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왔고, 지금도 부업이나 단순 관심사 이상의 열정을 가지고 참여하고 있다. 그리고 채식주의자이고 독서가이고 영화감독 데이빗 린치의 팬이다. 맨 처음 그가 테크노/일렉트로니카 씬에 등장했을 때부터 주변에선 너무 설친다며 말이 많았다. 왜 DJ가 그 모든 악기를 이고지고 대규모 록 공연 같은 세팅을 고집해야 하는지 댄스 업계 사람들은 이해를 못했으며, 그러는 와중에도 그는 앰비언트 앨범, 록 앨범, 유사(?) 사운드트랙 앨범을 착착 내놓았다. 음악적 일관성보다는 그때그때의 탈출구와 시대의 해답을 찾아 탐구하는 스타일이었달까. 그는 테크노 왕자이자 너드(nerd) ‘덕후’였으며, 자의식적인 면에서는 DJ이기 훨씬 전부터 아티스트였다. 그리고 끊임없이 음악이라는 자신의 수단에 대해 회의하고, 질문해왔다.
이런 전력을 생각해볼 때 [Wait For Me]가 취한 방법론은, 뮤지션/아티스트가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꼭 한 번은 찾아오는 자기 성찰의 시점, 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꼭 한번 초심으로 되돌아가보고 싶다는 그 욕구에 값하는 지점의 작품이 될 것으로 보인다. 때마침, 그는 자신의 말마따나 ‘프리 에이전트’의 상태가 되었다. 북미 지역에서는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EMI/Mute에서 관리하지만, 그 외 지역에 대해선 그는 이번 앨범부터 자유인이다. 자신이 세운 레이블 리틀 이디엇(Little Idiot)에 스스로 속한 첫 작품으로 이번 [Wait For Me]를 공개하는 셈이다. 그와 더불어 그는 이번 앨범에서 처음으로 상업적 결과/벌어들일 돈 생각에서 자유로운 작업을 했다고 자임한다. 메이저 레이블로부터의 성공 압박, 보다 더 라디오에서 틀기 좋은 곡을 만들라 주문하는 돈 줄 쥔 분들의 시시콜콜한 요구에 그는 지금까지 비교적 잘 응대해왔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던 일 년 전 어느 날, 데이빗 린치(David Lynch) 감독이 했던 연설을 듣고 자신도 그 노감독이 말하는 바와 같은 ‘돈과 시장 논리가 주도하는 상황이 아닐 경우의 작업이 주는 순수한 기쁨과 열정’에 깊이 공감함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 정신을 그대로 현실화하고자 했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집에서 홈메이드로, 전형적인 DIY 방식으로 [Wait For Me]를 만들었다. 모든 악기를 연주했고 녹음을 마쳤으며, 오로지 믹싱만 전문 프로의 힘을 빌어 켄 토마스(버즈콕스 Buzzcocks, 시규어 로스 Sigur Ros 등을 담당해온)에게 파이널 믹스를 의뢰했다. 믹싱 작업에 들기 전까지 그의 음원은 크든작든 기존의 설비 빠방한 전문적인 스튜디오는 거치지 않은 것이다.
이것은 사운드의 스타일적인 면보다는 정신 혹은 태도의 문제라고 봐야 할 것이다. 갈수록 정밀해지는 테크놀로지의 세상에서, 사운드를 최후의 또 최후의 순간까지 손질해야 직성이 풀리는 첨단 스튜디오의 설비는 이제는 업계의 필수 요소가 되었지만, 모비는 어쩌면 자신의 경력에서 중요한 지점이 될지 모를 이번 앨범을 그 정반대의 대각점에서 잡으려 했고, 그 결과 이런 홈메이드 녹음이 가능했으며, 이런 연주곡 첫 싱글(기존의 메이저 레이블 입김이라면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Shot In The Back Of The Head>가 발표 가능했고, 데이빗 린치의 특징이 고스란히 담긴 그 곡의 (화제의) 저예산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가 가능했던 것이다(모비는 그저 쓰고 남은 촬영분이라도 희사해주십사 곡을 들려줬을 뿐인데 대 영화감독님께서 친히 그렇게 뮤비를 완성해서 보내주었다 한다). 당연히, 라디오나 MTV에서의 열띤 방송 따위 기대하기 힘든 ‘매니악한’ 첫 포문을 일부러 택해서 연 것이다. 그러나 모비는 이것이 자신이 정말 원했던 것이라며 웃는다.
기술적인 면을 떠나 오직 ‘노래’로만 기능할 대중에게는 그럼 어떻게 먹혀들까? 명명백백한 반전가 <Study War>의 샘플링 사운드와 두 번째 싱글 <Pale Horses>의 신스 스트링 사운드는 얼핏 손쉽게 [Play] 시절의 잔향을 남긴다. 아련하고 아름다운 <A Seated Night>이나 <Isolate>처럼 앰비언트 정서 역시 낯선 것이 아니다. 앨범에서 가장 단도직입적이고 진솔하게 다가오는 <Mistake>(설마 싱글로 커트 안 할 생각은 부디 아니길 - 듣기에 따라 모비 자신의 우상 중 하나인 데이빗 보위 David Bowie 의 충실한 재연 같기도 한 모비의 보컬 트랙이다)는 그의 음악 세계에서 빠질 수 없는 한 축을 담당하는 록 사운드 바탕의 곡이다. 매혹적인 여성 게스트 보컬(하나같이 다들 모비와 가까운 무명의 음악계 친구들이다)이 피처링한 <Walk With Me>, <Wait For Me>, <Pale Horses>, <Hope Is Gone>, <Jltf>는 흡사 린치의 영화 사운드트랙을 안젤로 바달라멘티/줄리 크루즈 대신 만든 것 같은 느낌이다. 이 모두를 정리하자면, 기존의 모비 사운드스케이프의 요소들을 고루 반영한 전반적 믹스 형태가 이번 앨범이라는 뜻이며, 그게 이것이 일렉트로니카나 댄스가 아니라 팝록 앨범으로 분류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이 앨범이 스타일이 아니라 태도에 관한 것이라 믿는 것은 이 때문이다. [Play]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들리고 사랑받은 만큼, 영화 ‘본 아이덴티티’ 3부작에서 엔딩마다 그의 <Extreme Ways>가 놀랄 만큼 강렬하고 효율적인 인상을 남긴 만큼, 그리고 그로 인해 그가 추락 직전에서 경험하고 또 충분히 향유한 명성의 화려함과 편리함(그는 [Play] 앨범을 만들 때 너무 우울하고 자신이 없어서, 이 앨범마저 실패한다면 그냥 음악계를 떠나 학교로 돌아갈 결심을 했었다고 한다)만큼, 이번 [Wait For Me] 앨범에서 들려지는 곡들은 자기 반복의 결과물로 치부되거나 진부함의 징조로 읽힐 여지가 분명 없지 않다. 하지만 그는 이미 자기가 하고 싶은 스타일, 건드려보고 싶은 변방을 다 욕심껏 찔러보며 지금까지의 디스코그래피를 채워온 사람이다. 이 업계엔 보위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롤링 스톤즈 같은 이들도 있는 법이고, 이 모비 같은 친구도 있는 거다. 자신이 애초 머리 속에 그렸던 설계 당시의 청사진 때보다는 덜 실험적이고 덜 위험하게 나온 것 같다고 자평하는 그이지만, [Wait For Me]는 분명 결과물 이전의 동기에 있어 분명히 그에게 새로운 전환점이 되는 앨범이다.
덧붙여, 이 정도 수준의 멜랑콜리아라면 닉 드레이크나 조이 디비전도 울고들 가시겠다. 그러고 보면 [Wait For Me]가 순수하게 기능적인 면에서는 라디오헤드의 대체제나 불면 치료 음악으로 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참, 모비가 음악 치료 방면에도 열심히 자선 활동 한다는 거 혹시 말했던가?
090611. 성문영.
Moby discography (official studio albums only):
[Moby] 1992
[Ambient] 1993
[Everything Is Wrong] 1995
[Animal Rights] 1996
[Play] 1999
[18] 2002
[Hotel] 2005
[Last Night] 2008
[Wait For Me]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