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저 2만리를 구경하면 혹시 이럴까. 뮤의 노래와 만날 때마다 언제나 심층 해수를 떠올렸다. 그들은 언제나 좀처럼 현실로 접하지 못하는, 그래서 보통 상상으로 가능한 지점에서 사는 존재인 양 느껴졌다. 실제 거리도 멀다. 뮤는 덴마크 출신의 3인조 밴드로, 덴마크라 하면 덴마크 다이어트 식단 정도밖에 떠올리지 못하는 어떤 경박한 이에게 새로운 각도로 생각의 여지를 열어준 아티스트다. 좌우간 그들은 알 수 없는 곳에서 왔다. 그리고 앨범기록이 상당한데도 여전히 가닥이 잘 잡히지 않는 신비로운 밴드다. 이는 앨범의 예사롭지 않은 제목에서부터 드러난다.
Album
읽다가 숨이 넘어갈 것 같다. 뮤의 다섯번째 정규앨범, 그리고 세번째 메이저 앨범의 제목은 [No More Stories/ Are Told Today/ I'm Sorry/ They Washed Away// No More Stories/ The World Is Grey/ I'm Tired/ Let's Wash Away]이다. 할 이야기가 없고, 그래서 미안하고, 세상은 잿빛이며, 나는 지쳤고, 그래서 모두 깨끗하게 쓸어버리자는 절망의 나열과 달리 뮤는 앨범공개 이전 한 인터뷰를 통해 전작 [And The Glass Handed Kites](2005)에 비해 훨씬 밝고 비트 강한 작품이 되리라 예고한 바 있다. 이를 대변하는 곡으로 밴드 역사상 가장 직설적인 노래라 밝히는 'Beach'와 'Repeaterbeater' 정도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일부 곡을 통해 보편적인 리듬강화의 측면을 강조했다 해도, 뮤는 절망도 희망도 아닌 설명불가 지점의 사운드에 지대한 관심을 보여주는 묘령의 뮤지션이다. 그들은 변함없이 서사적인 전개 위에 다큐멘터리에서나 볼 법한 대자연의 그림을 그리거나, 눈뜨고 나서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신비로운 꿈의 이미지를 사운드로 재현한다. 올해 5월 마이스페이스를 통해 공개한 첫싱글 'Introducing Palace Players'는 가사를 듣기까지 무려 2분 가량을 기다려야 하는 곡이다. 도입부가 무지하게 길다. 즉 즉각적인 반응을 상정하는 싱글의 가시적인 질서에서 한참 벗어난 노래라는 얘기다. 한편 7분이 넘는 진행의 (그리고 밴드가 직접 '클래식 소품'이라 설명하기도 하는) 'Cartoons & Macram? Wounds'를 비롯해 연작의 구성을 취하는 'Hawaii Dream'과 'Hawaii', 그리고 여전히 초현실의 시대를 사는 'Sometimes Life Isn't Easy' 'Silas The Magic Car' 등은 뮤의 환상적인 이미지를 배신하지 않는 노래들이다.
앨범의 프로듀서는 메이저 데뷔 앨범 [Frengers](2003)를 조율한 리치 코스테이Rich Costey로, 글라스베가스와 프란츠 퍼디난드 등과 함께 작업한 바 있는 베테랑이다. 그와 함께 브룩클린에서 2008년 5월부터 작업을 시작한 앨범은 프로듀서의 이력과 녹음 환경 이전에 밴드 본래의 인상을 보다 정교하게 구현하는 과정에 몰두했다. 완성된 앨범은 녹음과정을 막연하게 상상하도록 이끈다. 스튜디오에 상주해 있는 동안 그들은 언제나 곡작업에만 몰두했을까? 때로는 시를 쓰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밴드가 두각을 나타내는 영상작업도 겸했을지 모른다. 그리고 느끼고 표현해왔던 바들을 때때로 한폭씩 숨겨두고 나중에 한꺼번에 펼쳐내는 병풍 같은 앨범을 의도했을지 모른다.
뮤는 여전히 듣는 이를 향해 명료한 설명에 앞서 추상적인 묘사나 불가피한 비교를 유도한다. "꿈을 꾸고 있는 와중 천둥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질 것 같다"거나 "라디오헤드의 지지자들을 만족케 할 만큼 실험적이고, 콜드플레이에 익숙한 이들을 설득할 만큼 직관적"이라는, 뮤를 발견했을 당시 영미언론의 수사는 지금까지도 충분한 효력을 갖는다. 들어본 것 같으면서도 사실상 어디에서도 접하지 못해왔던 기이한 사운드가 흐르는 동안, 팝의 관습이든 인디록의 문법이든 영미음악에 길들여진 관성이 마침내 부서지는 순간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팝과 록의 세계에서 경험했던 소재들을 믿기지 않는 방식으로 펼쳐놓거나 노래하기 때문이다. 90년대부터 활동해왔고 쌓아 온 시간 만큼이나 적지 않은 앨범을 보유하고 있는데도 뮤는 여전히 구체화가 난감한 존재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소비하는 대중문화의 영역인 줄로만 알았던 밴드의 노래를 예술의 차원으로 끌어올리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History
뮤의 음악을 지지하는 이들을 한꺼번에 솎아내는 전문용어가 있다. 이는 뮤의 앨범 제목이기도 한 'frengers'로, 밴드는 현장에서 또는 웹에서 만나는 음악적인 상호 소통의 일군들을 프렌저로 지칭한다. 설명에 따르자면 프렌저는 "딱히 친구라 말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타인도 아닌 존재"다. 뮤가 프렌저를 확보하기 시작한 시기는 1980년대 후반, 혹은 199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 교외의 헬레럽Hellerup 출신의 소년들이 7학년 과정의 과제를 통해 만나 환경보호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다가 마음이 통해 밴드를 결성하면서부터 시작되는 이야기. 취향과 이상의 일치를 본 후, 악기를 손에 쥐고 기본적인 코드법만을 익힌 다음 전형적인 교육을 피하고 그들만 만들어낼 수 있는 고유의 사운드가 무엇인지를 파악한 시점부터다.
밴드의 설명에 따르면 덴마크의 주류 음악은 영미권의 팝이라 현지보다 영국에서 활동하면서 기반을 쌓는 게 유리한 선택이라 판단했다고. 원했던 바대로 뮤는 데뷔앨범 [A Triumph For Man](1997)을 통해 보다 넓은 세계를 경험하기 시작한다. 한폭의 그림 같은 사운드스케이프 위에 팔세토 보컬을 아낌없이 펼쳐놓은 뮤의 음악은 뒤늦게 스칸디나비아 시장의 호기심을 자극했고 나아가 미국 공연이 이루어졌으며, 두번째 앨범 [Half The World Is Watching Me](2000)부터는 확실한 판매망을 확보하고 자신의 레이블 이블 오피스Evil Office를 설립해 진정한 앨범의 주체가 되었다. 이어 발표한 작품이자 국내에도 정식 소개된 [Frengers](2003)는 본격 세계시장으로 진출한 월드와이드 앨범이다. "이케아(스웨덴의 가구 브랜드)만큼 확실한 스칸디나비아 수출품"이라는 평가도 이즈음의 수확이다.
특유의 영묘한 사운드와 함께 두드러지는 밴드의 특징으로 영상작업을 꼽을 수 있다. 이는 라이브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특기로, 밴드 내에 이방면의 전문가가 있다. 보컬 요나스 비에르Jonas Bjerre가 애니메이터와 비디오 아티스트를 겸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실제로 확인할 기회가 많지는 않으나 좌우간 이는 그만큼 뮤의 음악이 시각적인 이미지를 동반하고 있으며 장비와 기술을 동원해 이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신비롭고 환상적인 앨범으로 입지를 쌓아왔고 공연을 통해 앨범의 의도를 고스란히 재현해왔던 뮤는 또한 REM, 나인 인치 네일스 등 세계적인 아티스트의 공연에 지속적인 서포트 밴드로 활동하는 한편 유투의 보노로부터 공식적인 지지를 얻은 뮤지션으로도 유명하다.
세계적인 인증보다 밴드 스스로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자기음악의 가치는 청중의 반응으로부터 나온다. 일례로 멤버 보 마드센Bo Madsen은 리스너의 리액션을 동원해 자신의 음악을 이렇게 설명한다. "요나스의 보컬 없이도 도입부가 흐르는 순간 사람들은 이것이 뮤의 노래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스스로 확신하듯 뮤는 전개를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비일상적이고 비관습적인 노래에 세상의 귀를 열게 만들고 청중을 길들여버린 비현실적인, 아니 초현실적인 밴드다. 낯선 음악을 생활로 만들어버린 이유는 이렇다. "누구나 음악을 들으면서 뭔가 놀랄 만한 것을 얻고 싶어하니까."
1. New Terrain
2. Introducing Palace Players
3. Beach
4. Repeater Beater
5. Intermezzo 1
6. Silas The Magic Car
7. Cartoons and Macrame Wounds
8. Hawaii Dream
9. Hawaii
10. Vaccine
11. Tricks
12. Intermezzo
13. Sometimes Life Isn't Easy
14. Repri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