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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털처럼 부드럽고 깃털처럼 가벼운
[LP](2009) by Discovery
누군가는 그들의 음악을 두고 어느 학생의 습작 같다고 이야기한다(NME). 한편 누군가는 그들 음악의 유머감각을 우선의 가치로 인정한다(AMG). 이는 밴드 결성의 시기와 의도로 미루어 모두 타당한 해석이다. 이 두가지 평가를 조금만 더 구체화하자면, 2인 프로젝트 디스커버리의 [LP]는 그들이 순박하던 시절 쉽고 재미있게 만든 앨범이라는 의미다. 이들 프로젝트의 원년은 2005년이고, 당시부터 가닥을 잡기 시작했을 [LP]는 뱀파이어 위크엔드Vampire Weekend의 키보디스트 로스탐 바트만글리즈Rostam Batmanglij와 라 라 라이엇Ra Ra Riot의 보컬리스트 웨스 마일스Wes Miles가 각각 프로 반열에 진입하기 전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결성
뱀파이어 위크엔드는 아프로 큐반의 이색적인 리듬 메이킹으로 세계적인 각광을 받은 2008년의 신성이다. 마찬가지로 지난해 데뷔앨범을 공개한 라 라 라이엇은 첼리스트와 바이올리니스트를 동반해 풍성한 음색을 들려주었던 나름 대편성의 밴드다. 로스탐과 웨스는 각각 리얼연주를 부각하고 차별화된 사운드 구성을 선보이는 것으로, 나아가 뉴욕 인디록의 풍성하고 정교한 단면을 증명하는 것으로 호평과 지지를 확보했던 밴드에서 최근 명예로운 시절을 보냈지만, 세상과 본격적으로 소통하기 전 둘의 화두는 호기심과 모험심에 기반해 신디사이저를 마음대로 가지고 노는 일이었다고 회고한다. 지금에야 만나게 된 [LP]가 프로의 문법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있고 중후함 이전에 재치와 흥미가 두드러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류무대에 진출하기 전 뱀파이어 위크엔드의 보컬리스트인 에즈라 코에닉Ezra Koenig의 소개로 만나 서로의 공통적인 관심사와 이상을 발견하며 반가워하던 시절, 그들은 서로의 보컬로 만들어내는 작은 하모니와 그걸 간단한 악기를 동원해 장난삼아 녹음해보는 일에 미쳐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놀고 즐기며 사운드를 완성하는 아늑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에 흠뻑 빠져 있는 동안, 두남자는 의욕과 숙련도에 따라 원하는 음색을 구현할 수 있는 신비롭고 풍요로운 건반의 세계 안에서 장난스럽게 팝과 힙합과 일렉트로니카를 두루 순회할 수 있었고 리메이크에서부터 오토튠까지 기존 밴드의 성격에서 살짝 어긋나는 가벼운 일탈의 쾌감을 만끽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의도
로스탐의 한 인터뷰에 따르면 디스커버리의 초기 의도는 두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미래지향적인" 사운드를 추구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작업을 거듭할수록 기획의도는 희미해져갔다. 그러다 한 친구에게 작업의 일부를 들려주었을 때 "이게 전위적인 거야?" 하고 고개를 갸우뚱하기에 "만약 80년대에 이런 게 나왔다면 충분히 미래지향적이라고 느꼈을 것"이라 얼버무리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자신도 확신하지 못하는 어정쩡한 미래적 사운드로 완결되긴 했지만 사실 문제될 것은 없었다. 오히려 친화력이 강해졌다. 신디사이저의 비현실적이고 초현실적인 효과 이상으로 보편적인 멜로디와 하모니가 담보된 준수한 작품이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번째 의도는 자연스러운 댄스를 유도하는 것이었다. "춤추고 싶어하는 욕구를 자극하는 음악과 우리는 종종 만나게 된다. 한정된 기기를 동원해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무언가를 찾고 만들어보고 싶었다." 각각의 밴드에서 충분히 경험해왔을 일반적인 드럼비트와 거리를 두고, 프로그램화된 루프를 기반으로 때때로 박수소리를 입히기도 하면서 두남자는 저렴하고 신선한 리듬을 고안하기 시작했다. 사람을 들뜨게 하고 움직이게 하는 근본적인 추동력을, 그리고 아레나가 아닌 클럽에 최적화된 간소하고 간편한 박동을.
노래
신디사이저를 아끼지 않고 쏟아붓는 설정, 전반적으로 무게보다는 촉감을 강조하고 역동성보다는 화사함을 부각하는 한편 진지하기 전에 짓궂은 연출에 주력하는 일관성을 갖지만, 결국 앨범은 개별적인 특징을 음미해볼 만한 다채로운 흐름으로 완성됐다. 우선 앨범의 부피를 확대한 우정출연자 두명이 눈에 띈다. 로스탐과 웨스를 연결해준 매치메이커이자 로스탐의 동반자, 뱀파이어 위크엔드의 보컬리스트 에즈라가 'Carby'에 참여했다. 동반 투어차 함께 이동하다가 어느날 로린 힐의 노래를 흥얼거리는 목소리에 눈이 번쩍 뜨여 섭외를 결정했다는 더티 프로젝터스Dirty Projectors의 앤젤 데라두리안Angel Deradoorian은 'I Wanna Be Your Boyfriend'를 불렀다.
'Saw you at the discotheque/ sent my vibe out to ya'로 시작하는 'So Insane'은 환락과 유혹의 밤을 묘사하는 알앤비 스타일의 가사를 적용한 노래이지만 로스탐에 따르면 모친의 젊은 시절을 상상하면서 썼다. "디스코텍이라는 용어를 쓰는 사람을 나는 딱 한명 알고 있다. 우리 엄마다. 노래는 이란에서 그녀가 경험한 청춘(로스탐은 바트만글리즈라는 성이 의미하는 대로 이란계 미국인이다)의 이야기다." 앨범에는 그밖에 오토튠을 적용해 한옥타브 올려 노래하는 느낌으로 리메이크한 잭슨 파이브의 'I Want You Back', 밤하늘의 별이 쏟아지는 것처럼 영롱한 사운드효과가 빛나는 'Osaka Loop Line', 라 라 라이엇의 원곡 'Can You Tell'을 신디사이저 버전으로 해석한 'Can You Discovery' 등이 수록되어 있다.
밴드
두남자는 지금 무지 바쁘다. 로스탐의 밴드 뱀파이어 위크엔드는 최근 두번째 앨범 녹음작업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데뷔앨범보다 더 남미적인 작품이 되리라는 중간보고가 있었다. 웨스의 밴드 라 라 라이엇은 올 10월까지 거의 공백이 없는 빡빡한 투어 스케줄을 해치우고 있는 중이다. 이는 앨범이 나왔으되 디스커버리로 움직이기 힘들다는 뜻이기도 하다. 각각의 영역에서 땀나게 뛰고 있는 로스탐과 웨스의 디스커버리는 올 7월 앨범발표를 전후로 실시간 듣기만 가능한 비교적 부실한 공식 홈페이지 하나만을 구색으로 띄워놓고 별다른 싱글 발표 이벤트도 없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사실상 방만하기 짝없는 액션에도 불구하고 리액션은 존재한다. 두남자 모두 지난해 충분한 성과를 거둔 인물이기 때문인 데다 작년의 작업과는 완벽하게 차별화된 의외의 작품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앨범 속의 두남자는 솜털처럼 부드럽고 깃털처럼 가볍다. 진성으로 노래하기를 의도적으로 기피하고, 자본의 특혜를 누릴 줄 모르던 시절이기에 합리의 아이디어에 열중하고 있으며, 그래서 예술적 성취에 대한 강박에서 전반적으로 자유롭다. 크고 넓은 세계를 경험하기 이전의 여유와 풋풋함이 짧은 러닝타임의 앨범 구석구석에 깃들어 있다는 뜻이다. 다시 돌아오지 않기에 더없이 소중한 시절이 고스란히 새겨진 사진을 발견한 것 같다. 우리는 지금 프로로 사는 어느 뮤지션의 아름다운 한때를 즐겁게 훔쳐보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