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바다와 눈물, 피와 물의 이야기 SAD LEGEND의 귀환, "The Revenge of Soul"
무인도란 단어가 떠오르게 하는 이미지는 대개 비슷한 모양이다.
찬란한 햇빛이 하늘빛 바다에 떨어져 반짝이고 파도소리뿐인 하얀 해변에는 커다란 야자수 이파리가 한가로이 춤을 춘다.
정말? 삭막하고 스산한 음습한 무인도가 더 많다. 사람이 살지 않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다른 생각과 다른 상상과 다른 표현이 오히려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서게 한다. 새로운 세계는 기존 것의 파괴에서 시작되고,
다른 영역을 향한 걸음은 필연적으로 경계를 무너뜨린다. 또한 어둠과 악과 추함에 묘하게 끌리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며,
감성시대에 이르러 서로 떼어지기 전까진 악마의 형상들이 중세의 교회를 숭고하게 장식했다.
생장에 관여하지 않는 차갑고 투명한 달과 어둠이 오히려 빛을 드러나게 한 덕분에 틈새로 삐져나오는 빛을
소중히 여길 줄 알게 되었다. 죽음과 성과 파괴충동을 생산의 에너지로 삼은 현대의 익스트림 뮤직처럼,
이러한 역할을 문턱에 걸터앉은 예술과 음악이 맡아왔다.
‘전하는 이야기’
데쓰와 블랙, 둠 등의 익스트림 뮤직은 1980년대에 본격적으로 발호하여 어느덧 꽤 두터운 역사를 쌓아두었다.
2·3세대에 의하여 창백한 꽃이 만개한 1990년대로부터도 20년 가까운 시간이 흘러왔다.
바로 그 무렵, 한국에도 음산하고 음침한 물길을 대려 한 자들이 있었다.
풍문이나 목격담을 억누르고 음악적 기록(Record)만 본다면, 데쓰메틀과는 다른 형식의 선구자로 칼파(Kalpa)를 지칭하는
손가락을 나무랄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블랙캔들(Black Candle)이 훗날 어둠(a doom)의 이름으로 근사한 고딕메틀 앨범을 발표할 폐인 등과 함께
옴니버스 앨범으로 존재를 알렸지만, 칼파의 풀렝쓰 [The Path of The Eternal Years](2002)는 한참 후에야 은밀히 빛을 보았다.
데쓰 계열 밴드들 중에서 비교적 색깔이 독특했던 시드(Seed) 역시 [Legal Defense](1997)시절과는 현저히 다른 스타일로
선회하여 [Terror Truck](1998)을 발표했다.
오히려 ‘형식적으로’ 유럽의 블랙메틀에 가까운 정규앨범들을 먼저 발표한 이들은 도그마에서 자유로운 더 어린 뮤지션들이었다.
메탈리카(Metallica) 트리뷰트 [Am I Metallica](1997)에 실린 칼파의 'Fade To Black'을 연주할 때에 나마(Naamah)는
아직 새파란 드러머였다.
이후 잠시 경유지가 된 밴드를 거쳐 원맨밴드로 데모를 제작하고, 이듬해인 1998년에 앨범을 발표하여
매니아 집단의 전폭적인 환영을 받았으며, 라디오 방송까지 '한'을 전파에 실어 날려 보냈다.
새드 레전드(Sad Legend)였다. 이 지지의 의미는 재현을 넘어 실현에 성공한 나마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이기도 했다.
창작은 실현이다. 당시 한국의 헤비뮤직에 대한 고민은 강력한 데쓰메틀 밴드 오프(Off)처럼 한국어에 유머와 은유를
담아내는 수준에 이르렀는데, 새드 레전드 역시 자신감 있게 우리말을 사악한 사운드에 녹여냈다.
나마가 아니었대도 다른 누군가는 테이프를 잘랐겠지만, 나마가 아니었다면 [Sad Legend]와 같은 전설적인
데뷔작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새드 레전드가 인디밴드들의 옴니버스 [Rock-A-Dic](1999)에 '개구리소년'의 리메이크로 참여하고,
'파도 위의 숨결 (증오의 꽃으로 다시 피어나)'이 실린 EP [Searching for The Hope in Utter Darkness..]
(2002년으로 인쇄되었지만 2001년 연말 발매)를 발표하기까지에도 활동이 연속적인 편은 아니었다.
그리고 나마는 권영우(Scythe)와의 인연으로 아깝게 퇴장한 멜로딕 데쓰 밴드인 홀리마쉬(Holymarsh)와 활동하기도 한다.
사실 그 이전부터 메틀의 활동반경은 좁아지고 있었다.
레코딩 사운드와 연주력의 향상을 바탕으로 뛰어난 밴드들이 이룬 성과는 대단했다.
그러나 철저히 외면 받았다. 뒤늦게 불어온 커트 코베인과 얼터너티브 열풍, 인디의 펑크 붐이 언더그라운드를 관통했고,
메탈 간지를 자랑하던 총각들은 하나둘 긴 머리를 잘라야 했다.
물론 메탈리카의 첫 내한공연 때 플로어의 카메라가 출렁일 정도의 열기가 있었으나, 그건 메탈리카에 해당되었을 뿐이다.
새드 레전드 역시 나마의 유학이라든가 간간히 새 앨범 준비 중이라는 소식만 전할 뿐 2007년까지 바이오그래피를 공란으로
남겨둔다. 그렇게 전해지는 이야기, 즉 조금 슬픈 전설이 되어가고 있었다.
“The Revenge of Soul”
하지만 나마는 경작지를 엎거나 팔아버린 것이 아니라 토양에 양분을 축적하는 휴경 중이었다.
마침내 꼬박 1년에 걸친 작업 끝에 EP로부터 7년 반, 데뷔앨범으로부터는 무려 11년 만에 [The Revenge of Soul]을 내놓는다.
오랜만이라 서먹하지 않을까, 오랜 여백 때문에 음악적 토대가 모래언덕인 바르한처럼 되어버리진 않았을까.
앨범의 커버아트는 하나의 단서이다. 원래 앨범커버는 신호였다. 전혀 모르는 뮤지션이라 해도 앨범커버에서
감을 받는 경우가 많은 것은 장르별로 공유되는 전통과 감성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그림이 음악타입에 대한 시그널을 보내진 않지만 과거와 현재를 잇는 매듭은 되어준다.
[Sad Legend]에서 한을 품고 나뭇가지에 몸을 늘어뜨렸던 여인이 복수를 위해 다시 돌아왔다, 고 한다.
[The Revenge of Soul]이 모눈종이라 가정하면 점을 몇 군데에 찍어볼 수 있다.
하나는 연주인 나마, 그러니까 정교한 드러머와 폭이 넓어진 보컬리스트의 재발견이다.
또 다시 홀로 완성한 앨범을 두드려대는 드럼은 발군이다.
연인들이 벤치와 소파에 앉아 손가락으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듯이 사람은 몸으로 대화를 한다.
나마의 팔과 다리 역시 가죽과 철과 나무로 이루어진 세트를 엄정하게 다루며 소리를 쏟아낸다.
특히 눈에 띄게 도드라지는 것이 보컬의 다양화이다. 첫 트랙 '도끼'부터 네 가지에 이르는 다양한 창법과 보이스를 시도하고,
'저승사자의 노래'에선 예의 소프라노와 테너·알토 스타일의 보컬을 혼자 주고받는다.
심지어 건반과 중창 풍의 보컬, 그리고 기타 아르페지오와 내레이션이 결합해 흐르다가 후반에서
헤비 사운드로 질주하는 '사냥의 밤'은 뮤지컬을 연상시킬 정도이다.
나마의 보컬을 말하며 두뇌 한 구석에 떠오르는 이름은 보르텍스(ICS Vortex)이다.
알다시피 그는 보르크나가(Borknagar)의 후임 보컬리스트이자 딤무 보르기르(Dimmu Borgir)에서 클린 보컬을 담당했다.
그런데 보르텍스의 이름은 또 다른 그래프를 그리는 작은 점이 되어준다.
이 앨범은 보르텍스가 참여한 악튜러스(Arcturus)를 연상시키는 면도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새드 레전드는 앞서 말한 밴드들을 포함하여 사티리콘(Satyricon)과 엠페러(Emperor) 등 한 시대를 풍미한
노르웨이 뮤지션들에게 수혈 받았다고 할 수 있었다.
동시대에 함께 활동하며 비교대상이 된 다른 밴드가 디섹션(Dissection)으로 대변되는 기타 리프 위주의
스웨디시 블랙메틀의 영향을 표출해온 것과 다른 부분이다.
이렇게 보컬과 드러밍과 같은 연주 자체만으로 페이소스를 선사하고 있지만, 역시 핵심은 송라이팅이다.
리프 중심의 빠른 곡들은 많은 정보를 담고 있어 매우 짧아도 전혀 짧지 않게 생각된다.
반면, 새드 레전드처럼 무드 중심의 스타일은 긴 러닝타임 동안 점차 큰 그림을 완성해간다.
나마의 송라이팅은 9분 동안 서정적인 무드와 광폭한 질주가 꽉 짜여져 안정적으로 통일성을 유지하는 '마루타'를 통해 즉각 증명된다.
예전의 매력과 발전상을 함께 보여주면서 새드 레전드가 그저 특이해서 주목받은 것이 아님을 상기시켜주기에 충분하다.
멜로디 감각 역시 귀에 자연스레 들어오는 보컬라인이 입혀진 10분여의 대곡 '동양에 울려 퍼지던 살육의 찬가'와
'사냥의 밤'에 드러난다. 이로써 리프 메이커이자 멜로디 메이커로서의 면모가 또 하나의 점으로 찍힌다.
정돈이 사악함과 혼돈을 감소시켰지만, 새드 레전드가 기성 장르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데에 게으르지 않다는 것을
이제부터 주목할 필요가 있다.
둠과 비슷하면서 다른 공기를 품은 무거움이 '망나니'의 전반부를 잠식하고, 다크 앰비언트처럼 최소한의 편성으로 조성된 음울함이
'동양에 울려 퍼지던 살육의 찬가'의 중반부를 이끈다.
베놈(Venom)의 [Black Metal](1982), 오페라 나인(Opera Ⅸ)의 [Gothik](1990)와 파라다이스 로스트(Paradise Lost)의 [Gothic](1991),
그리고 베틀레헴(Bethlehem)의 [Dark Metal](1995)과 같은 선언이 있었지만, 많은 뮤지션은 타인에 의해 틀에 갇히길
한사코 거부하는 성향을 보여 왔다.
장르와 씬의 흐름이란 알아채기 힘들게 시작되었다가 일단 진행되고 나면 순식간에 형성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어떤 움직임이 종료된 후에야 규정되면서 틀이 첨부된다. 이처럼 장르의 개념에는 추후성이 있고, 인식과 규정,
그리고 평가라는 수순을 밟아왔다. 이 사실을 무시하고 정사논쟁에 매몰되어 다른 음악인을 향해 침 뱉듯 말을 던지다 보면
자칫 자기 얼굴 위에 도로 떨어질 수가 있다.
음악동네에선 민속음악에 무관심한 포크메탈과 앰비언트에 직접 영향 받지 않은 다크 앰비언트가 가능하다.
켈틱 등의 포크와 결합한 메틀을 좋아해서 그 뒤를 밟고, 익스트림이 자체 진화한 다크 앰비언트를 수용하는 식으로
내부의 흐름이 있다. 장르용어의 의미 자체가 달라지기도 했다. 1990년대의 멜로딕 데쓰와 2000년대의 멜로딕 데쓰는
그 개념과 형식이 많이 변했고, 지금은 1980년대의 팝메틀이 맡았던 역할까지 맡곤 한다.
물론 변화 자체만으로 설득력을 가질 수는 없다.
많은 익스트림 밴드들이 보여준 사운드의 변화에 대한 아쉬움은 팝과 대중화가 싫어서가 아니라 매력과 가치,
다시 말해 부패하고 녹슨 카리스마의 희생을 대가로 지불한 경우가 더러 있었기 때문이다.
새드 레전드 역시 장르에서 탈주하고 있으나, 종합을 하려다 절충이 되어버린 경우는 아니다.
그렇다면 ‘음악’ 자체를 지향하며 완성도 있는 독자성을 찾는 새드 레전드의 방법은 무엇일까.
유럽의 익스트림 뮤직은 그 땅과 의식을 장기간 지배해온 기독교가 쇠퇴하자 파괴당한 신화의 복원과
훼손된 전통의 재발견에 대한 욕구를 배경으로 잉태되었다.
고대의 사어(死語)는 문명의 비밀을 번역하는 열쇠이고, 창조와 파괴를 아우르는 신화와 전설은 인류가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지금, 과거가 현존한다. 그러나 신화와 전설 말고도 역사, 특히 전쟁의 비극과 얽힌 역사가 자주 소재가 되었다.
고대와 중세뿐 아니라 현대의 2차대전과 나치를 소재로 하여 가해자의 입장을 계승한 무리도 있다.
물론 사려 깊은 음악인은 피해자의 입장에 섰으며 독일의 만투스(Mantus)는 'Utopia'에 이런 메시지를 담았다.
“새로운 시대”, 그 이상이 “세상에 증오와 공포의 기운을 불어넣는다면” 우리를 “피를 바쳐 전쟁을 치루는 희생자들”로 만들고,
남겨지는 건 “강간과 살육의 대지와 죽음”이며, 결국 “사람은 없고 이상만이 남을 뿐”이라고. 삽입된 히틀러의 연설과 군중의 환호,
그리고 ‘Utopia’의 역설적 교차는 홍살문 위로 까마귀 떼가 날아오르는 풍경처럼 신성한 불길함을 만들었고, 그래서 아름다웠다.
특정시대와 정치에만 국한되지 않기에 더욱 비극적이었다.
새드 레전드의 선택은 각각의 괄호에 우리 역사의 한과 제국주의의 침탈을 대신 채워 넣는 것이었다.
“동양수호라는 거짓 … 붉은 태양의 악마들”이 누구인지는 알기 쉽다.
그리고 가해자의 관점이 아니라 천형 같은 고통과 살육으로 영혼이 독살당한 피해자의 시선에서 노래한다.
그런데 음악기법은 지역과도 관계를 맺고 있어서 미국 서부는 스케이트 펑크를 낳았고,
고전음악의 전통이 깊은 유럽에선 클래시컬한 연주와 합창이 빈번히 등장하는 메틀이 등장했다.
동양의 뉴에이지와 서양의 뉴에이지도 다르다.
그런 점에서 “어기야 어기여차”라고 노래하면서 국악기를 삽입하는 대신 전통음악의 장단과 가락을
메탈 리프로 응용한 '왜란'은 새드 레전드에겐 음악적으로 중요한 성취이다.
다양한 익스트림 메틀의 폭발을 이끌었던 유능한 뮤지션들이 유럽 포크의 구슬픔을 체화해낸 방식도 이것이었다.
그래서 '왜란'은 그간 시도되었던 한국적인 익스트림 메탈이 도달할 수 있는 완성형들 하나이다.
2009 - 1997
바다와 눈물, 피와 물의 이미지는 새드 레전드가 음악적 해금(海禁)을 벗어나고 있다는 사실에까지 이어 흐른다.
[The Revenge of Soul]은 다양한 음악적 시야를 반영하며 자신만의 재능과 독자성을 다채로운 기법으로 표출한 작품이다.
‘시작과 함께 완성했다’는 말은 천재에 대한 찬사이고, ‘완성이자 시작이었다’는 말은 대가에게 바치는 헌사이다.
그 정도로 무겁지 않은 의미로 써도 된다면, [Sad Legend]는 시작과 함께 이룬 완성이었고 [The Revenge of Soul]은
또 다른 완성이자 시작이다.
헤비 씬이 침체했다는 주장을 반박하고 싶어도 그렇다고 지지해주는 사례가 많아 보이긴 하지만,
좋은 밴드들과 앨범들은 꾸준히 태어나고 있다.
밤길을 걸을 때 발아래는 어두워도 멀리는 어슴푸레 밝고, 시계가 어스름히 보이기 시작하는 새벽은 매일 다시 온다.
어둡게 타오르는 불길처럼 새드 레전드 역시 과거의 전설에서 나와 모눈종이 위를 훌쩍 넘어 새로운 항해에 합류했다.
1997년, 서울 종로의 세화합주실에는 긴 나무 의자가 놓여 있었고,
테이블 위엔 나온 지 꽤 지나 표지가 바랜 음악잡지들이 어지러이 쌓여 있었다.
태연스레 파를 다듬고 있는 주인장 앞에서 나마에게 근황을 묻자 새로 만든 밴드의 데모 작업 중이라고 했다.
몇 달 전, 검은 벽과 붉은 페인트, 살벌한 인테리어에 이름까지 아늑하고 온순했던 클럽 헬(Hell)에 들러
지난 번 여기에서 공연했던 밴드는 해산했으며 이젠 음악을 하지 않겠다고 말하던 그였다.
새로운 밴드의 이름을 무어라 지었느냐는 심드렁한 물음에 나마는 답했다. “Sad Lege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