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한국대중음악상(2005) '특별상',
제4회 한국대중음악상(2007) '올해의 앨범'과 '최우수 모던록 앨범' 수상에 빛나는 허클베리핀 이기용의 솔로 프로젝트 스왈로우(Swallow), 4년만의 새 앨범 <It>.
지난 4월에서 6월, 이번 앨범의 여성 보컬을 담당하기도 한 루네(Lune)와 매주 일요일 함께 했던 “Everyday is like Sunday” 공연을 통해 발매 이전부터 이미 대중들에게 그 가치를 인정받은 9곡의 주옥 같은 노래들.
그 어느 때보다 각별한 애정과 오랜 노력으로 빚어낸 작품인 만큼
그간의 결과물들 중에서도 단연 최고라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앨범이 될 것이다.
우리가 만나고 싶었던, 바로 그 음악
스왈로우 <It>
2007년 2월,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을 하루 앞두고 선정 위원회가 수상자를 결정하는 회의를 가졌다. 늘 가장 큰 상인 '올해의 앨범'이 처절한 갑론을박의 대상이 되곤 했다. 하지만 이 해는 달랐다. 전체 선정위원을 대상으로 한 1차 투표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앨범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결과에 딴지를 건다는 건, 말하자면 룩셈부르크 정도의 소국이 미국에게 시비를 거는 것과 다름없었다. 하여, 2007년 대중음악상 '올해의 앨범'은 너무나 쉽게 결정됐다. 스왈로우의 두번째 앨범 <Aresco>였다. 허클베리핀의 리더 이기용의 솔로 프로젝트인 스왈로우는 그렇게 한국의 대중음악 전문가들에게 압도적으로 인정받았다. 햇수로 3년, 그 사이에 이기용은 허클베리핀의 네번째 앨범을 냈다. 그리고 스왈로우의 세번째 앨범으로 돌아왔다. 허클베리핀의 데뷔가 1998년, 10년 만에 총 일곱 장의 앨범을 발표한 셈이다. 한국 인디 역사상 유래 없는 왕성한 창작력이다. 하지만 어느 한 장 허투루지 않았다. 허클베리핀의 데뷔 앨범 <18일의 수요일>이 2년 전 각계각층의 음악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선정된 걸 포함해서 그간 발표한 여섯 장의 앨범은 단 한 번도 졸작, 아니 범작의 부류에 들어간 적이 없다. 다른 1세대 인디 밴드들이 그 음악성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부침을 겪어왔음을 떠올린다면, 적어도 꾸준함에 있어서는 허클베리핀과 스왈로우, 두 유닛을 이끌고 있는 이기용은 한국 프로야구의 삼성 라이온스 같은 존재다. 써놓고 보니 적절한 비유는 아니다. 올 시즌 삼성 라이온스는 실로 오랜만에 4강 진출에 실패했지만, 스왈로우의 3집 <It>는 1집과 2집을 넘어서는, 또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앨범이기 때문이다.
스왈로우의 일관된 노선은 어쿠스틱이었다. 자신만의 포크를, 자신의 목소리로 부르고 싶어서 시작한 프로젝트였다. 1집은 딱 그 노선에 충실했다. 비트 해프닝, 피시만즈등 이기용 개인에게 영향을 미쳤던 음악들을 토대로 한 미니멀 사운드가 담겨있던 게 <Sun Insane>이었다. 코드는 단순했고 사운드는 투박했으며 노래는 오직 이기용의 목소리뿐이었다. 그리고 2집 <Aresco>에서는 역시 어쿠스틱한 사운드라는 기조 하에 바이올린을 중심으로 한 풍성한 멜로디가 얹혀있는 앨범이었다. 그 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름만 걸고 시작하다시피 했던 자체 레이블, 샤에서는 허클베리핀과 루네의 앨범을 냈다. 음악에만 전념하기 위해 홍대 앞에 '바 샤'라는 가게를 냈고, 이 가게는 뮤지션을 비롯한 문화계 인사들의 살롱이 됐다. 허클베리핀의 <환상...나의 환멸>이 밴드의 리더로서, 그 모습을 보여주는 앨범이었다면 스왈로우의 <It>은 이기용 개인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그러나 스왈로우의 기조, 즉 어쿠스틱 사운드를 중심에 둔다는 점에서는 한결같은 앨범이기도 하다.
올해 초 주목할만한 데뷔 앨범을 냈던 루네는 이번 앨범의 몇몇 곡들에서 코러스를 넘어, 이기용과 공동 보컬이라 해도 될 만큼의 비중을 차지한다. 2집까지는 듣기 힘들었던, 풍성한 키보드 사운드를 제공하는 건 물론이다. 그리고 루네의 키보드는, 일렉트릭 기타의 역할을 상당부분 대체하며 절묘한 앙상블을 이끄는 주역이 된다. 2집에서 어쿠스틱 기타와 멜로디의 축을 이루던 바이올린 또한 여전히 네 현을 미끄러진다. 기타만으로 시작된 스왈로우의 무기고가 가득 찬 것이다. 새로 도입된 무기들이 스왈로우가 지향하는 어쿠스틱의 질감을 더할 나위 없이 풍성하게 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아무리 무기가 많아도 쓰임새가 부적절하다면 예산낭비다. 룩셈부르크를 공격하기 위해서 핵버튼을 누르는 격이 된다. 음악계에서는 흔히 그런 걸 '자의식과잉'이라고 부른다. 만약 이 앨범이 <Sun Insane>의 연장선상에 머물러 있었다면 그럴 공산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나 <It>은 그런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 <It>은 허클베리핀의 앨범 넉 장을 포함, 이기용이 그동안 만들었던 음반 중 가장 보편적인 정서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팝이라는 얘기다. 이 앨범에는 그간 허클베리핀과 스왈로우의 음반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밝은 멜로디가 담겨 있다. '자이언트'는 그 대표적인 노래다. 이것이 이기용의 기타 리프인가, 싶을 정도로 장조로 전개되는 이 노래는 반복적 점층과 반전이 오가는 구성, 아기자기한 편곡이 돋보이는 기타 팝이다. 물론 이기용이 만들어 온 노래들 중에도 기타 팝이라 칭할 수 있는 노래는 있었다. 하지만 '자이언트'는 쓸쓸함, 어두움 따위의 수사를 때어내고 그 자리에 밝음, 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는 최초의 노래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흐름은 앨범 전체에 조금씩 흩뿌려지며 스왈로우의 자리를 포크에서 팝으로 이동시킨다. 그러니 이 앨범에서 스왈로우에게 장착된 무기, 즉 풍성한 편곡은 스마트 미사일처럼 적재적소를 타격하며 앨범의 정서와 지향점에 정확히 이바지할 수밖에 없다.
이 앨범을 팝이라 규정한다 하여, 그게 곧 타협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최근의 인디 팝 하면 주로 떠오르는, 크리스피 도넛 한 박스를 먹은 듯 혀가 아릴 정도의 그 달달함과 깃털만 달아도 능히 공중부양이 가능할 것 같은 가벼움은 <It>과는 서울과 부에노스 아이레스만큼이나 멀고멀다. 첫 곡 'Show'에서 끝 곡 '비늘'에 이르는 흐름은 한결같다. '비늘'은 초창기 기타 노이즈를 통해 뿜어내던 록의 에너지를, 어쿠스틱 기타와 신시사이저로 치환시킨 차분한 격렬이다. '죽이다' '자폐'같은 초기 곡들에 대한 10년 후의 대답이다. 10년 전과 똑같은 얘기만 하고 있으면 정체가 되고, 10년 전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으면 변절이 된다. 그 정도의 시간을 잘 저어 왔을 때, 인간은 비로소 한결같되 여유로워진다. <It>에 밝음과 진정성이 공존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시간의 흐름이 잘 버무려져있을 것이다. 밤이 낮이 되어 해가 드리워진다 해도, 나무는 한 자리에 머문다. <It>은 어두운 새벽에서 출발한 스왈로우, 즉 이기용의 세월이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땅 깊은 곳에서 맑은 물을 빨아올리며 자라온 나무처럼 흘러왔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다른 훌륭한 1세대 뮤지션들과 마찬가지로, 늙지 않되 여유를 얻은 중견이 되었음을 말해주는 음악이다. 늦여름의 활엽수마냥 풍성하고 여유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