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티 블루'의 사계절 연작 EP, 그 세번째 이야기 '가을의 용기' 세상의 모든 소수에게 전하는 헌시.
올 봄부터 시작된 모던팝 밴드 ‘미스티 블루’의 사계절 연작은 '봄의 언어'로 시작해, 예의 따갑지만 이쁜 해가 있던 여름을 지나, 어느덧 쓸쓸한 가을에 도달했다.
가을로 향해가는 길목에서 긴 시간 잘 버텨 온 식물들의 깊은 향내가 진동하는 듯한 커버 아트웍이 인상적이다. 거리를 수북히 덮어 쓸어도 쓸어 내려지지 않을 것 같은 낙엽의 색을 계속해서 바라보게 되는 묘한 힘이 느껴진다. 아트웍은 일러스트레이터 '김지윤'이 2005년 데뷔이래 계속해서 담당하고 있다.
잔잔한 허밍 소리의 인트로를 지나면, ‘청춘 지도’를 관통해 앨범 ‘가을의 용기’는 달려간다.
‘청춘지도’는 소위 말하는 윗 세대들에 모든 걸 빼앗겨버린 88만원세대들의 이야기이다. 싸구려라 불려지는 이들에겐 하는 일없이 언제나 빡빡하기만 수요일만 계속되지만, 도통 이 삶을 멈출 수는 없는 법. 이렇게 계속 달려가는 수 밖엔.
3번 트랙은 '지상에서의 마지막 연인'은 농도 짙은 '미스티 블루'식 연가이다. '열병같은 질문 가득 안고서','우리는 지구끝이 어딘지도 모르지만' 사랑하는 한 계속 노력해야하는 사랑에 관한 길고 반복되는 이야기다.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모를 아리송한 것들에 대한 질문만을 반복하면서 말이다.
앨범의 제목과 동명인 '가을의 용기'는 2008년 가장 인상적인 데뷔 앨범 [private echo]를 발표한 싱어송 라이터 ‘박준혁’의 맛깔스런 기타(본작의 기타 연주는 5번곡을 제외하고 모두 박준혁이 연주했다.) 리프와 퍼쿠션의 조화가 유독 마음을 울리는 곡으로 보컬 역시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창법을 선보이며 앨범 전체에서 다른 분위기를 선사하는 근사한 곡이다.
이어지는 '한밤의 꿈'은 올해 서거한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전하는 헌시로, 올 여름 제작된 '그대없는, 그대곁에' 라는 노 전대통령의 추모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가장 아름다운 사람을 곁에 두고도 눈이 멀어 못 보고 귀가 먹어 듣지 못했던' 사람들의 아쉬움에 절망 대신 희망을 불러보기를...
타이틀 곡 '하나'는 미스티 블루의 초기작에 속하는 곡으로 가장 ‘미스티 블루’의 느낌을 닮았다. 보컬 '정은수'가 어린 시절 버스에서 우연히 마주한 언니인지 오빠인지 알 수 없던 한 사람을 떠올리면서 쓰여진 곡, 성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던 불특정한 ‘소수’의 운명을 노래하고 있다. 성적 소수자로서의 잘못된 운명을 아파한 사람의 시선으로, 꿈에서라도 단 한번만 몸과 영혼이 같은 모습이 되기를 바라는 그들의 작은 희망에 대한 곡이다.
마지막 트랙인 'Baby P' 는 2006년 런던에서 태어나, 채 2년의 삶을 채우지 못하고 엄마와 계부에 의해 학대받고 죽은 한 생명 혹은 모든 형태의 폭력에 희생당하는 존재들에 관한 곡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쳇바퀴도는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한 순간도 살아보지 못한 시간이라는 사실을 종종 깨닫게 된다. 금새 잊어버리지만. 차라리 이 순간이 빨리 끝나버리기만 간절히 바라는 어떤 존재가, 손도 닿지 않는 별로 되어 다시 태어나기를 바라는 영원한 평화에 관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읊조리는 이야기이다.
미스티 블루가 전하는 가을 노래는 조금은 쓸쓸하지만, 세상에 소외된 것들에 대해 노래할 수 있는 '용기'를 담고 있다. 잘못된 운명과 오해, 편견과 억압 대신 평화를 전하려는 가슴 시린 노래가 가을 노래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