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진정한 자유와 구원을 향한 기돈 크레머의 오마쥬!
De Profundis [깊은 구렁으로부터]
마이클 니만의 미니멀리즘 음악을 비롯한 현대음악부터 슈만, 슈베르트, 쇼스타코비치 그리고 아스트로 피아졸라까지
러시아의 자유와 민주화를 위해 투쟁해온 진정한 애국자 미하일 호도르콥스키(Mikhail Khodorkovsky)에게 기돈 크레머가 헌정한 앨범
사람을 돕는 힘의 근원이란 공통점을 지닌 음악과 석유 자원에 관한 기돈 크레머의 고찰이 돋보이는 에세이 수록!
“깊은 심연으로부터” 우리 예술가들은 더 나은 세상을 향해 울부짖는다. 그것은 판매와 숫자, 평점, 홍보 그리고 ‘말장난’과 같은 천박함에 좌우되지 않는다. 우리의 정신적인 사명감은 석유 자원과 같이 가장 깊은 곳에서 나온 감정에 호소함으로써 인류를 지지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열어젖힘으로써 “자신을 잊지”않고 자각하게 된다. 이 앨범을 위해 고른 열두 개 작품 모두, 듣는 이에게 저마다의 메시지를 전한다. 크레머라타 발티카의 동료들과 내가 조명하려고 노력한 것이다. 이제 그 교훈들이 여러분 영혼에 불을 지필지 여부는 애청자 여러분에게 달려 있다.” By 기돈 크레머 (에세이 中 발췌)
깊은 구렁으로부터
“깊은 구렁으로부터 당신께 울부짖나이다.” 수없는 시인과 음악가가 시편 130장으로부터 온 이 오래된 구절을 인용했다. 우리 시대에도 매우 절실한 구절이다. 오늘날 세상은 탐욕과 부패와 거짓 예언으로 고통 받고 있다. 현재 석유는 매우 탐나는 자원이다. 그것은 지구의 ‘깊은 구렁으로부터’ 추출되는 숨은 실체로 생명을 유지시킴과 동시에 파괴한다. 음악도 마찬가지로 연료와 같다. 그것은 영혼을 위한 연료이다. 석유보다 훨씬 소중하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우리 의식의 바닥에서만 그것을 느낄 수 있다. 석유와 음악을 섞을 수 있을까? 긍정적으로 보면 둘 모두 사람을 돕는 힘의 근원이다.
그러나 오늘날 세계에서 석유는 독재 정권을 유지하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미얀마, 러시아에서 그렇다. 민주주의의 옹호자로 스스로를 치장하고는 있지만 그들의 통치자들은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고 공개 처형하고 죄를 추궁하는 소비에트 시대의 방식을 자행한다. 이와 같은 오웰이 묘사한 것과 같은 국가에서는 무두가 평등하지만 몇몇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더 평등하다. 석유에 취한 황금 송아지 숭배자는 반대 의견을 압살하고 사람과 국가 사이에 벽을 구축한다. 그에 반해 예술을 숭상하는 우리는 좀더 민주적인 사회를 세우려고 노력하는 사람들, 투명함과 진실을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을 돕는 다리를 건설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깊은 구렁으로부터」를 침묵을 거부하고 우리 안에 진정한 자유가 있음을 이해하는 사람 모두에게 헌정하고 싶다.
하지만 내 의도가 「깊은 구렁으로부터」를 정치적인 구호로 만들려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정치는 단지 사물의 겉껍질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반면에 이 녹음에 참여한 예술가들은 모두의 내면에서 울려 퍼지는 뿌리 깊은 개개의 표현을 확신하고 있다. 독재 권력자와 달리 음악은 꽉 쥔 주먹이 아니라 내민 손으로 말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듣는 사람에 대한 선물이다. 그 깊은 뜻은 자아도취나 무의미한 인기 영합이 아닌 섬김을 바탕으로 해야만 설 수 있다.
그래서 “깊은 심연으로부터” 우리 예술가들은 더 나은 세상을 향해 울부짖는다. 그것은 판매와 숫자, 평점, 홍보 그리고 ‘말장난’과 같은 천박함에 좌우되지 않는다. 우리의 정신적인 사명감은 석유와 같이 가장 깊은 곳에서 나온 감정에 호소함으로써 인류를 지지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열어젖힘으로써 “자신을 잊지” 않고 자각하게 된다. 이 앨범을 위해 고른 열두 개 작품 모두 듣는 이에게 저마다의 메시지를 전한다. 크레머라타 발티카의 동료들과 내가 조명하려고 노력한 것이다. 이제 그 교훈들이 여러분 영혼에 불을 지필지 여부는 애청자 여러분에게 달려 있다.
- 기돈 크레머 (2010년 3월)
나는 이 음반을 러시아의 진정한 애국자인 미하일 호도르콥스키에게 헌정한다. 그는 그릇된 억측으로 시베리아에서 수년 동안 수감 생활을 견뎌야 했다. 석유를 빼돌리고 세금을 탈루했다는 죄목으로 기소 당했지만, 사실 미하일은 조국을 더 나은 나라로 만들기 위해 열심히 일했다. 그의 부당한 재판과 이어진 수감 생활은 자유롭고 민주적인 러시아를 위해 투쟁하는 모든 이들에게 정치적으로 중요한 상징이다.
미하일 호도르콥스키에게 바침
1. 장 시벨리우스 - 두루미가 있는 정경
시벨리우스는 1903년에 자신의 처남이자 친구인 아르비드 예르네펠트가 쓴 희곡 「쿠올레마」(죽음)에 붙이는 음악을 썼다. 모두 여섯 곡으로 된 극 부수음악 가운데 첫 곡이 유명한 ‘슬픈 왈츠’이고 제3곡과 제4곡을 엮은 곡이 ‘두루미가 있는 정경’이다. 극광과 호수가 자아내는 오묘한 분위기가 고고한 두루미의 자태와 뒤섞여 애조 띤 음악을 만든다.
2. 아르보 페르트 - 파사칼리아
아르보 페르트는 1935년 옛 소비에트 연방의 일원이던 에스토니아에서 태어났다. 미니멀리즘(최소한의 음 소재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아방가르드 음악)과 중세 그레고리오 성가의 명상적인 음악을 결합한 그의 독창적인 작풍은 소련 개방 이후와 21세기 들어 더욱 주목 받고 있다. ‘파사칼리아’는 저음의 멜로디를 반복하며 대위 선율을 변주하는 바로크 양식으로, 페르트는 이 곡을 2007년 기돈 크레머의 60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썼다. 바이올린과 현악 오케스트라, 비브라폰을 위한 작품이다.
3. 라민타 셰르크슈니테 - 깊은 구렁으로부터
셰르크슈니테는 1975년 리투아니아에서 태어난 여성 작곡가이다. 그녀의 작풍은 신낭만주의 계열로 분류된다. 공산권 출신 가운데 비교적 젊은 세대에 속하는 그녀는 재즈와 포크, 아방가르드와 같은 서방의 음악을 풍부하게 받아들였고, 관현악뿐만 아니라 실내악, 무대 음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곡을 썼다.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깊은 구렁으로부터’는 극적인 표현력이 두드러지는 음악이다.
4. 로베르트 슈만 - B. A. C. H에 따른 여섯 개의 푸가, Op 60 가운데 6번
근대 음악의 아버지로 꼽히는 바흐는 자신과 후대의 많은 작품에 그의 이름을 각인했다. 바흐는 ‘BACH’ 모티프를 「푸가의 기법」 가운데 마지막 푸가의 주제로, 그리고 ‘하늘 높은 곳으로부터 당신께 나아갑니다’ 주제에 붙인 카논 변주곡에서 사용했다. 그 뒤를 슈만, 리스트, 림스키코르사코프, 레거, 부소니, 쇤베르크, 베베른, 슈니트케와 같은 작곡가들이 따랐다. 슈만이 1845년에 작곡한 푸가는 원래 오르간과 페달 피아노 또는 하르모늄을 위한 곡이다.
5. 마이클 니만 - 약속한 들판
1944년 영국에서 태어난 작곡가 마이클 니만은 피아니스트이자 영화 음악 작곡가, 소설가에 이르기까지 다재다능한 면모를 보이는 예술가이다. ‘약속한 들판’은 오랫동안 그와 단짝이었던 피터 그리너웨이의 영화 「차례로 익사시키기」에 나오는 음악이다. 1992년에 쓴 이 곡은 비올라와 바이올린이 독주를 맡고, 하프와 현악 오케스트라가 함께 연주한다. 모차르트의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느린 악장의 모티프를 반복하는 미니멀리즘 음악이다.
6. 프란츠 슈베르트 - 미뉴에트 3번과 트리오 D단조, D. 89
슈베르트는 1813년에 두 대의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의 현악 4중주 편성을 위해 다섯 개의 미뉴에트와 여섯 개의 트리오를 작곡했고 이를 그가 세상을 떠나고 한참 뒤인 1886년에 요한 네포무크 푹스가 하나로 묶어 출판했고 20세기 들어 오토 에리히 도이치가 D. 89로 분류했다. 크레머와 그의 앙상블의 연주는 현악 합주를 위한 편곡이다.
7. 스테반 코박스 티크마이어 / J. S. 바흐 - 이 옷을 찢지 말고
티크마이어는 1963년 옛 유고 연방에서 태어났고, 동구권이 붕괴한 이후인 1991년부터 프랑스에 살고 있다. 피아노와 더블베이스를 전공한 그는 이어서 네덜란드 왕립 음악원에서 루이스 안드리센에게 배웠다. 2003년 크레머의 초청으로 그가 주관하는 로켄하우스 음악제의 상주 작곡가가 되면서 더욱 이름을 알렸다. 현악 합주를 위한 ‘이 옷을 찢지 말고’(Lass uns den nicht zerteilen)는 바흐의 「요한 수난곡」에 나오는 코랄을 가지고 쓴 긴장감 넘치는 음악이다. 그리스도의 옷을 찢지 말고 제비를 뽑아 나눠 갖자는 로마 병사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8.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 - 아다지오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으로부터)
쇼스타코비치는 1934년에 레닌그라드 말리 극장을 위해 쓴 오페라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 때문에 혹독한 시련을 겪는다. 니콜라이 레스코프의 소설에 바탕을 둔 이 오페라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잣대에 비춰 볼 때 지나치게 난해하고 퇴폐적인 것이었다. 결국 작곡가는 이 오페라를 ‘카테리나 이스마일로바’라는 제목의 곡으로 개작했다. 원곡은 스탈린 사후 해금되었다. 크리스티안 시코르스키는 3막의 비가풍 아리아를 현악 사중주가 연주하도록 편곡했다.
9. 레라 아우에르바흐 - 슬픔의 성모의 꿈
레라 아우에르바흐는 1973년 시베리아 변경 우랄 지방에서 태어난 여성 작곡가이다. 줄리아드와 하노버 음대를 나온 그녀는 1991년부터 뉴욕에 정착하고 유럽에서는 함부르크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슬픔의 성모의 꿈’은 바로크 작곡가 페르골레시의 「슬픔의 성모」(Stabat Mater)를 토대로 쓴 「슬픔의 성모에 따른 대화」 가운데 한 곡이다. 바이올린과 비올라, 비브라폰에 현악 오케스트라가 콘티누오로 반주하는 이 곡은 브레멘 음악제와 루체른 음악제가 공동으로 그녀에게 위촉했다.
10. 아스토르 피아졸라 - A단조 멜로디 (10월의 노래)
크레머는 피아졸라가 1992년 세상을 떠난 뒤부터 그의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었지만, 누구보다 그 보편성과 독창성을 널리 알린 음악가가 되었다. 데샤트니코프에게 의뢰해 편곡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사계」는 선풍적인 관심을 모았고, 탱고를 오늘날의 클래식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반도네온과 현악 오케스트라를 위한 ‘A단조의 멜로디’는 1955년 무렵에 반도네온과 오케스트라를 위해 쓴 곡이다.
11. 게오르그스 펠레시스 - 활짝 핀 자스민
펠레시스는 1947년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에서 태어난 크레머와 동갑나기 동향 음악가이다. 차이콥스키 음악원에서 아람 하차투리안에게 배운 그는 팔레스트리나, 오케겜과 같은 르네상스 음악가들의 작품을 폭넓게 연구했고, 이는 그가 받아들인 서유럽 미니멀리즘 음악에 선율적인 아름다움을 가져왔다. 가락을 연주할 수 있는 타악기인 비브라폰과 바이올린, 현을 위한 이 곡은 그런 특징을 잘 보여주는 음악이다.
12. 알프레트 슈니트케 - 단장 (미완성 칸타타로부터)
슈니트케는 1934년 소련 볼가강 유역의 엥겔스에서 태어났다. ‘폴리스타일, 곧 다중 양식’을 적용한 음악들은 소련의 젊은 음악가들인 기돈 크레머, 미샤 마이스키, 유리 바슈메트와 같은 비르투오소 연주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는 1998년 함부르크에서 카운터테너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칸타타를 작곡하다가 마지막 3악장을 다 마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수록된 1악장은 현과 하프시코드의 팽팽한 긴장감이 어린 음악이다.
번역 및 해설: 정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