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쾌동(1910~1977)은 전북 익산군 심기면 오룡리에서 신광조의 육남매 중 둘째로 출생하였으며, 그는 산조뿐만 아니라 국악 다방면에 걸쳐 뛰어난 명인이었다. 부친의 남다른 음악적 관심으로 인하여 백낙준에게 산조를 배우기전에 양금, 단소, 대금 풍류를 박생순에게, 가야금 풍류와 산조는 박학순에게, 거문고 풍류 가락은 정일동과 김용근에게 학습하였다.
신쾌동은 백낙준에게 배운 약 20여분의 거문고 산조 가락을 그의 타고난 음악적 재능과 노력으로 1시간여에 이르는 대곡을 구성하여 자신의 독자적 산조를 형성하였다. 또한 신쾌동은 거문고 산조 작곡에만 머물지 않고 가야금 산조 및 거문고 병창도 만들었다. 이와 같이 그는 뛰어난 음악성과 부단한 노력으로 국악 다방면에 걸친 진정한 명인이었으며 당대 최고의 거문고 연주자였다. 또한 1976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6호 거문고 산조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신쾌동류 거문고 산조의 음악적 특징은 조성의 구분이 명확하고 가락의 느낌이 남성적이고 우람한 산조이며, 시작과 끝의 선율 전개 과정이 명확하면서도 완벽하다. 또한 연주자의 많은 공력을 요구하는 가락들로 짜여져 있는 선이 굵은 산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