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의 음악가 임동창의 피아노 솔로 앨범 [임동창 풍류 1300년의 사랑이야기① 정읍사]
신명의 음악가 임동창. 이 시대 어떤 음악을 듣고 즐길 것인가? 임동창 음악을 담은 음반 ‘1300년의 사랑 이야기-정읍사’를 선택한 당신이라면, “우리 시대 무슨 음악을 들어야 할까?”라는 질문이 크게 거북스럽지 않을 것이다.
임동창 음악을 어떻게 들을 것인가
이 시대 어떤 음악을 듣고 즐길 것인가? 음반 해설지의 짧은 글에 담기엔 꽤 무거운 질문이다. 타이밍이 썩 좋은 것도 아니다. LP 시대를 한때 기세 좋게 밀어냈던 CD가 그만큼 볼썽사납게 등 떠밀려 퇴장 중이지 않던가? 세계 음반시장은 인터넷· 모바일 다운로드 시장에 밀려 거의 쑥대밭이다. 음악 환경의 최대 과도기인 지금 진지한 음악은 더 더욱 주목 받지 못하고 있는 구조다. 많지 않았지만, 그래도 좋았던 음악마저 마구 등을 떠밀리는 통에 퇴출 위기에 몰려 있다. 그래도, 아니 그래서 더욱 음악에 목마른 우리들이 되묻지 않을 수 없는 질문이 지금 무슨 음악을 들어야 할까란 말이다.
댄스 음악이나 리듬앤블루스(R&B)? 가장 흔하게 유통되는 음악, 그러나 일장일단이 있을 것이다. 가벼운 세태에 썩 어울리는 적당히 달콤하고 즐거워서 좋다. 그러나 뭔가가 허전한 게 사실이다. 아니면 트로트? 우리 가요사에서 의미있는 기능을 수행해왔고 우리 앞 세대들과 삶의 애환을 함께 해왔던 장르다. 그렇다고 그 안에 동시대의 새로운 무엇을 담기엔 조금은 때가 묻고 낡아 보인다. 랩이나 록 음악? 그도 나쁘진 않다. 일정한 해방적 기능도 있겠고, 1960년대 이후 그 기능을 수행해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안에 담긴 흑인 음악의 DNA를 추출해내 동시대 지구촌 사람들이 즐길만한 이야기로 바꿔주는, 제대로 된 음악은 매우 드물다. 그런 걸 알면서 랩이나 록 음악을 반복해 듣는 것은 그저 습관성 음악감상 행위에 불과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서양 클래식 음악? 역시 나쁘지 않겠지만, 동시대의 음악 행위를 담아내는 널널한 그릇으로는 일단 적절치 않은데다가, 실은 유통기간까지 오래 전 끝났다는 게 내 판단이다. 그걸 알면서도 반복하고 있다면 둘 중 하나가 아닐까? 지나간 시대 교양으로서의 음악이라면 뭐 나쁘진 않지만, 심히 철모르는 행위다. 그렇다면 클래식의 종언 뉴스를 잘 모르면서 여전히 듣고 있다는 것 역시 민망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재즈? 그것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매력적인 음악이고, 그래서 나 역시 국악과 함께 개인적으로 즐기고 있는 음악이지만 무언가 뒷덜미가 허전하긴 마찬가지다. 컨템포러리 재즈가 됐건, 아방가르드 재즈가 됐건 사정은 어슷비슷해서 무언가 혁신과 돌파구가 요구된다는 것을 아는 이는 모두 안다.
임동창 음악을 담은 음반 ‘1300년의 사랑 이야기-정읍사’를 선택한 당신이라면, “우리 시대 무슨 음악을 들어야 할까?”라는 질문이 크게 거북스럽지 않을 것이다. 국악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그는 10년 전 EBS 기획시리즈 ‘임동창이 말하는 우리 음악’ 마지막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던 것을 우리 모두는 기억한다. “이를 끝으로 저는 두문불출할 것입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그 결과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오늘 이 음반이 그간 10년 공부의 성적표의 일부라고 생각할 당신에게 임동창의 새 음악에 무엇이 담겨있는지를 확인해보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만큼 이번‘정읍사’는 물론, 이에 앞서 나온 세 종류의 음반에 대한 우리의 기대는 크다.
‘임동창 풍류-수제천’‘임동창 풍류-영산회상’ ‘임동창 풍류-경풍년 염양춘 수룡음’등 세 음반은 앞서 언급한 그 어떤 종류의 음악과 다르다. 음악행위에서 다르다는 것, 차별성을 확보했다는 것은 분명 메리트다. 즉 임동창의 음악은 댄스음악· 리듬앤블루스· 재즈· 록이나 클래식 혹은 랩음악도 아니며 새로운 음악 어법 속에서 등장했다는 게 중요하다. 임동창 식 표현을 빌리자면 “내 배꼽에서 자라난 음악”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오리지널 국악의 DNA를 자기 방식으로 디자인해 펼쳐 보인 새로운 음악이다.
지난 10년 공부하면서 그는 조상 음악의 품에서 철모르는 아이들처럼 충분히 행복하게 놀았고, 이 과정에서 마음 저편의 우물에서 물이 차기 시작했다. 그것이 몸과 마음을 가득 채울 때까지 기다려 악보가 세상에 나왔고, 그 일부를 그가 음반으로 선보인 것이다. 그의 오랜 친구인 내가 아는 임동창은 우리 기대를 걸어봄직한, 우리 시대 많지 않은 뮤지션의 한 명이다. 실제로 나는 그렇게 믿어왔다. 그게 사실이라면, 기왕에 나온 세 장의 음반을 들을 때 우리에게 일단 필요한 것은 마음의 무장해제가 아닐까? 음악에 관한 고정관념 따위를 훌쩍 벗어던진 채 피아노 솔로의 한 음 한 음과 그 펼쳐짐을 그 자체로 느껴보는 과정 말이다.
다른 음악처럼 들까불거나 깝치는 소리의 공허한 잔치에 몸을 맡기지 않아도 되고, 억지스러운 감정과잉에 몸을 싣지 않아도 된다. 상업주의 회로 속에서 만들어진 그 밥에 그 나물 식의 동어반복의 위험도 별로 없을 것이다. 그저 자신의 몸과 마음을 들여다보는 거울처럼 듣고 즐기면 되지 않을까? 깊은 계곡물처럼 맑고 투명한 음악으로, 듣다보면 신선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껴도 상관없으리라. 글쎄다. 작곡가이자 연주가인 임동창이나 우리들의 기대와 조금은 다를 수도 있다. 뭔가 짜릿한 클라이맥스와 자극, 그리고 감정과잉이나 깊은 슬픔 따위가 빠져있어 허전할 수도 있다. 내가 알기에 그건 기존의 습관화된 음악들이 만들어낸 가짜 마술, 가짜 위안의 악세서리물에 불과하다. 파편화되고 외로운 근대적 에고(개인)에게 손을 내밀기 위해 만들어진 허구적 장치다. 아니면 무책임한 감정의 충동질을 음악이랍시고 내놓는 행위일 수도 있다.
때문에 임동창 음악이란 이 시대 어떤 음악을 듣고 즐길 것인가란 질문에 딱 어울리는 음악이다. 그점 일단 분명하며, 기분 좋은 일이다. 때문에 그의 음악을 듣는 행위란 무척 쉬우면서도 어려울 수 있다는 점도 기억해두자. 조미료 없는 음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 번 더 그의 음반에 귀를 가까이 대보는 과정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이 음반을 미리 들어보라고 주문한 뒤 임동창이 내게 전화를 했다. “음반 잘 받았어? 13곡 수록곡이 모두 즉흥이여. 요즘 즉흥이라고 말들을 하지만 실은 미리 짜놓은 음악을 요땡 한 뒤 펼치는 것이 보통이여. 그런데 이건 모두 그런 게 아니여. 진짜로 즉흥이거등. 그것만 기억해두고 일단 들어봐. 알았지?”
글. 조 우 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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