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성진 곡조의 밀양아리랑은 우리나라 4대 아리랑 중 하나로 경상도 색깔이 분명한 첫 사설 ‘날좀보소~’로 시작되는데, 빠른 리듬으로 내어 지르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 ‘탁월한 嶺南性’의 노래이다. 이는 다른 지역의 아리랑과 변별되는 고유 속성이다.
밀양아리랑은 1926년 음반으로 발매되어 본조아리랑과 함께 동반유행을 하게 되는 과정에서, 해외 민족운동 진영으로부터 ‘역사의 노래’로 불리게 되었다.
문필가 청오(靑吾) 차상찬(1887~1946)은 잡지 '별건곤(別乾坤)' 1928년 8월호 '밀양의 7대 명물, 구슬픈 밀양 아리랑'에서 "어느 지방이든지 아리랑 타령이 없는 곳이 없지만 이 밀양의 아리랑 타령은 특별히 정조가 구슬프고 남국의 정조를 잘 나타낸 것으로 지금은 전국에 유행이 되다시피 했다"고 소개했다.
1920년대 중반 국내에서는 신민요라고 했지만, 해외 독립운동 진영에서는 항일민족 운동가인 '역사의 노래'로 불렸다. 1926년 9월29일 나운규 감독의 영화 '아리랑'이 개봉되기 하루 전 전단 1만매가 압수당했고, 이후 대중적인 밀양아리랑은 저항성을 표출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으며, 중국이나 일본의 동포사회에서 민족해방운동과 함께했다.
이처럼 시대적 상황과 함께 세계적으로 불려졌던 다양한 버전의 밀양아리랑이 처음으로 마당극 배우 김종엽(64)씨와 소리꾼 신인자(70)씨 등이 창자(唱者)로 참여, 모두 9곡을 수록하여 음반 '영남 명물 밀양 아리랑'으로 발매되었다.
밀양아리랑은 주체화를 가진 아리랑의 저항성과 생명력을 입증하는 과정으로 아리랑의 시대적 필요성에 대해 중요한 의미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