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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크 팝의 21세기형 재림. 새로운 아메리칸 록의 랜드마크, 플릿 폭시스의 2집 [무기력 블루스]
Fleet Foxes / 2006년도 미국 워싱턴 주 시애틀에서 보컬 겸 송라이터 로빈 펙놀드(Robin Pecknold)를 중심으로 플릿 폭시즈가 결성된다. 인터뷰에서 로빈 펙놀드는 학창시절 투명인간 같은 존재였다고 밝혔는데 유일하게 함께 했던 친구가 바로 밴드의 기타리스트인 스카이 스켈셋(Skyler Skjelset)이었다. 이들은 쉬는 시간이 될 때마다 실험실에서 밥 딜런(Bob Dylan)과 닐 영(Neil Young)을 함께 듣곤 했다. 이후 페드로 더 라이온(Pedro the Lion), 크리스탈 스컬스(Crystal Skulls)의 베이시스트였던 크리스찬 와르고(Christian Wargo), 앨범의 코러스 어레인지를 담당하고 있는 건반주자 캐시 웨스콧(Casey Wescott), 그리고 포크 싱어 송 라이터인 조슈아 틸만(Joshua Tillman)이 1집 레코딩 이후 드러머로 가입하면서 5인조 체제로 밴드가 구성됐다. 이들은 벤조와 만돌린, 플룻 등의 다양한 악기들, 그리고 무엇보다 너무나 아름다운 코러스 웍을 통해 60년대의 포크를 기초로 장대한 사운드를 만들어 나갔다. 2006년도에 발표한 자주제작 셀프 타이틀 EP를 통해 미국을 대표하는 인디 레이블 서브 팝(Sub Pop)의 눈에 띄어 곧바로 계약하게 된다. 이 셀프 타이틀 EP가 빌 투 스필(Built to Spill)이나 신즈(The Shins) 그리고 밴드 오브 호시즈(Band of Horses) 같은 서브 팝 아티스트들과 함께 해왔던 명 프로듀서 필 익(Phil Ek)의 도움으로 완성됐던 지라 어찌 보면 당연한 순차였다. 2008년 3월에 열린 SXSW에서의 공연에서 갈채를 받으며 한달 후인 4월에 EP [Sun Giant]를, 그리고 충격적인 셀프 타이틀 데뷔작 [Fleet Foxes]를 6월에 발표하면서 일약 화제의 중심에 선다. 발표 이후 미국은 물론 전세계 미디어가 난리 브루스를 떨었는데, 서브 팝 계약 이후 불과 1년 여 만에 본격적인 스타덤에 오른 것이었다. 암울한 부시 정권이 끝나 가던 2008년도는 확실히 그들의 등장에 어울리는 타이밍이었다. 새로운 세대가 쌓아 올린 고결한 포크 록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Helplessness Blues / 폭풍과도 같았던 2008년도 데뷔작 이후 3년 만에 발표된 신작. 본 작에서부터는 포스트 하드코어 밴드 블러드 브라더스(The Blood Brothers) 출신의 모건 헨더슨(Morgan Henderson)이 정식 가입하면서 밴드는 6인조로 개편된다. 발매 이전에 진행된 인터뷰에서는 업비트의 곡들이 줄어들 것이지만 더욱 그루브해질 예정이라고 언급했다. 레코딩 중 보컬은 망쳐도 한번에 갔고, 기타의 경우도 실수가 있어도 상관하지 않았다. 유기적으로 결합된 사운드를 만들고 싶었던 것이 그 이유였다는데, 밴 모리슨(Van Morrison)의 걸작 [Astral Weeks]가 단 여섯 시간 만에 녹음 된 예를 들면서 그런 방식의 느낌을 캐치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심원한 분위기의 타이틀 곡 ‘Helplessness Blues’은 프리 다운로드 형태로 2011년 1월 31일에 선공개 되었다. 어쿠스틱 기타로 이루어진 전반부와 중반부 이후의 밴드 앙상블은 여전히 매혹적이다. 첫 트랙인 ‘Montezuma’는 깨끗한 감도와 여전히 훌륭한 코러스 웍을 들려준다. 피들을 유연하게 활용한 목가적인 멜로디의 ‘Bedouin Dress’, 포크 튠으로 시작해 긴장감 넘치는 오케스트라, 어쿠스틱 기타 잼의 편성을 가진 ‘Sim Sala Bim’등의 곡이 초반부터 귀를 붙들어 맨다. 전작 ‘White Winter Hymnal’의 풍경과 겹치는 ‘Battery Kinzie’는 제인 로우(Zane Lowe) 쇼에서 3월에 공개되기도 했다. 풍부한 사운드 메이킹이 인상적인 ‘Lorelai’, 어쿠스틱 기타로 차분하게 전개되는 ‘Someone You'd Admire’는 영롱한 여운을 남긴다. 마지막 곡 ‘Grown Ocean’은 뮤직 비디오가 3월에 노출됐다. 레코딩과 여행 장면을 담은 다큐멘터리로 완성되었는데 근황을 알고 싶었던 팬들에겐 무척 귀한 영상으로 거친 질감의 화면 톤은 특유의 공간감을 가진 곡의 매력을 더욱 부각시킨다.
플릿 폭시스의 이번 앨범은 청렴한 포크송 모음집이다. 정서를 고양시키는 하모니와 깊이 있는 멜로디, 그리고 상냥한 가성을 바탕으로 미국 특유의 노스탈지아를 성공적으로 담아냈다. 20대 초반의 사내들이 이 정도로 회고(懷古)의 감성을 몰아붙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일이다. 순수하게 직조된 음악이 어떤 것인지 잊혀져 가는 시기에 이들은 적절하게 등장했다. 후광이 비추는 환각적 포크 사운드의 영롱한 울림은 플릿 폭시스에 의해 21세기에서도 여전히 유효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