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크락 밴드 No Control의 1집 No Control
멍청한 펑크를 내세우는 밴드가 있었다. 내가 그들을 처음 보았던 건 2011년 4월의 마지막 날 어둡고 물이 가득 찬 두리반 지하에서였다. 상당히 기대하고 있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이미 그 당시 나름 유명세를 타고 있었던 밴드였던 탓도 있고, 멍청한 음악을 사랑하는 취향 탓도 있고,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 나름 멍청한 인간이었기에, 과연 얼마나 멍청한 모습을 보여줄 것인지 기대가 대단했었다. 그리고 시작된 공연에서 그들이 보여줬던 건 정말 예상치 못했던 ‘사려 깊음’이었다. 물론 확실하게 시끄럽고 멍청하게 달리는 음악이긴 했지만, 그 눅눅한 지하실에서 어지럽게 퍼져나가는 소음을 타고 느껴지는 것들은 무차별적인 배설이나 날만 서 있는 분노가 아니었다. 좀 더 깊고 진중한 무언가를 담은, 그러나 결코 다듬어지거나 통제되어 있지 않은 음악. 노컨트롤에 대한 나의 첫 인상은 그런 것이었다.
노컨트롤은 황경하(기타), 조원희(기타), 노상수(베이스), 서훈석(드럼)의 4인으로 이루어진 펑크/노이즈 록 밴드다. 밴드는 2011년 EP [You Have No Control]을 내놓았으며(이 EP의 음원은 현재 무료 공개되어 있다) 두리반, 명동 마리, 살롱바다비, 석관동 대공분실 등지에서 활발한 공연을 펼쳐 왔다. 그리고 이들의 데뷔 앨범 [No Control]은 밴드가 결성된 지 3년만의 결과물이다.
작년의 EP가 이들의 날것 그대로의 멍청함을 담고 있었다면, [No Control]은 노컨트롤의 사려 깊은 모습이 한층 진해진 모양새의 앨범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희망적이면서 아름다운 첫 트랙 ‘천일야화’와 노컨트롤만의 서정적인 면이 극대화된 ‘Sunflower’, 안타까운 감정을 진하게 표현하는 ‘시간’과 묵직한 절망감을 담아낸 ‘Arsenic’, 앨범 내에서 가장 싸이키델릭하면서 가장 불길한 분위기의 ‘2월 4일’, 그리고 히로시마에서의 비극에 대한 분노와 슬픔을 연료 삼아 질주하는 대단원 ‘히로시마’. 앨범은 저마다의 다양한 주제와 감성을 지닌 곡들로 꽉꽉 들어차 있지만, 이 모든 곡들의 공통점이라면 그것들이 결코 허세나 섣부른 접근이 아닌 진지한 모습으로 다가온다는 점이다. 그것이 [No Control]이 지닌 강점이자, 노컨트롤이라는 밴드의 가장 커다란 미덕이다.
물론 그들만의 멍청하면서도 거침없는 모습이 실린 곡들을 빼놓으면 곤란하다. ‘사장님개새끼’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고(이번엔 욕이 한층 더 찰지다), 라이브에서의 미친 모습이 기대되는 ‘International Way’, 통통 튀면서도 날카롭게 찔리는 맛이 있는 ‘754’가 그러한 트랙들이다. 이 3개의 곡들은 자칫 무거워질 수도 있었던 앨범의 균형을 잡아 주는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곡들이 에너지가 폭발하면서도 예민하게 짜여 있는 펑크와 노이즈 록의 토대 위에서 청자의 귓속으로 파고든다. 픽시즈(Pixies) 같은 80년대 언더그라운드 록이 떠오르기도 하고, 푸가지(Fugazi)나 드라이브 라이크 제후(Drive Like Jehu) 같은 포스트 하드코어의 영향력도 느껴지며, 심지어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My Bloody Valentine)이나 갤럭시 500(Galaxie 500) 같은 슈게이징적인 모습이 얼핏 느껴지기도 한다. 한국 펑크 씬 계보의 연장선상에서 이 앨범을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No Control]은 다른 누구의 앨범도 아닌, 노컨트롤이라는 밴드의 온전한 앨범이다.
많은 좋은 밴드의 음악이 그렇듯이, 노컨트롤도 자신들의 음악에 미친 영향력을 부인하지 않으면서 자신들만의 색깔로 영민하게 직조해 낸다. 그것을 [No Control]의 사려 깊음이라고 표현한다면, 이 또한 맞을 것이리라.
레코딩에서 자신들의 미덕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음악가는 의외로 많지 않다. 그것이 데뷔 앨범이면 더더욱 그러하다. 노컨트롤의 데뷔 앨범 [No Control]은 바로 그런 점에서 가치 있는 결과물이다. 거침없는 멍청함과 진중한 사려 깊음. 밴드는 서로 상반된 두 가치 중 하나를 택하는 대신에, 우직하게 둘 모두를 끌어안으며 전진해 나간다. 그것이 깊은 고민과 수많은 시간의 결과물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며, 나와 당신이 노컨트롤이라는 밴드를 기억하게 될 가장 큰 이유이다.
-정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