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앨범의 발매일이 제작사 사정으로 인해 무기한 연기되었습니다.
마스터 플랜 등 PC통신 시절을 기억하는 소위 90년대 힙합 팬들에게 에픽하이라는 그룹은 어쩌면 애증의 대상일 지도 모른다. 동네마다 온갖 패밀리와 크루가 난무하던 그 때에 (이제는 추억 속 이름인) CB Mass와 함께 세련된 사운드를 최초로 들려주던 이 세 남자는 어느 순간 거리문화를 대표하던 당시의 힙합 이미지와 정반대의 노선을 걷기 시작했다. CDP Players 들에게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생소하게도 [야심만만]과 [논스톱]에 출연해버린 스탠포드 졸업생 타블로는 일부 먹통 팬들이 힙합퍼라고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모습만 매일 선보였고 그 결과 공중파 TV 음악 프로그램 1위라는 더욱 신기한 현상이 벌어졌다.
바로 그때부터였다. 리쌍과 다이나믹 듀오 그리고 드렁큰 타이거와 부가 킹즈까지 Movement 세력은 급속도로 영역을 확장했으며 더 이상 힙합은 음지의 문화가 아님을 먹통 힙합 리스너들이 가장 숭배하던 바로 그 뮤지션들이 제일 먼저 증명했다. 몇 년이 흐른 이제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힙합 스타들이 주요 출연진을 이루고 있으며 광고음악 역시 그 놈의 트렌드를 추구한다면 성우로도 활약하는 Verbal Jint와 Bobby Kim 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시대는 변했고 힙합은 케이팝과 한류로 포장된 아이돌 기계음악 사이에서 그나마 음악의 형태를 유지한 예술작품의 모양을 거의 유일하게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학력위조 논란의 상처 속에 타블로는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중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사랑하는 힙합을, 그 덕분에 어쩌면 처음으로 들었던, 대중이라는 존재가 또한 대중이라는 탈을 쓰고 그를 아프게 했다.
1집 [Map of the Human Soul]과 2집 [High Society]는 상대적으로 이후 작품들에 비해서 투박하고 거친 비트로 들리지만 발매 당시에는 그 시절 다른 뮤지션들의 힙합 앨범에 비해 비교적 소프트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3집 [Swan Songs]의 타이틀곡 ‘Fly’를 통해 그들은 오버그라운드 음악시장의 핵으로 비상할 수 있었고 4집부터의 모든 작품들은 전작의 스타일을 기대했던 팬들을 차례대로 배신하며 온/오프라인에서 큰 사랑을 받았다. 바로 그 ‘스타일’이라는 함정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은 에픽하이의 수장 타블로는 정반대 스타일인 미쓰라의 랩핑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었고 2MC 1DJ 형태의 유려한 팀 구조 역시 DJ 투컷이라는 비트메이커의 놀이터가 되기에 적합했다.
러브홀릭 지선, 캐스커 웅진, 넬 김종완, 나가수로 뜨기 직전의 우리가 알던 바로 그 김연우까지 에픽하이의 객원보컬 섭외력은 MC몽과 린의 조합과는 조금은 다른 느낌의 그것이었고 4집 [Remapping The Human Soul]은 그들의 실력과 개성을 빽빽하게 담아 타이틀곡 제목인 ‘Fan’들을 만족시켰다. 5집 [Pieces, Part One]이 평단과 대중을 다시 한 번 모두 환희와 침묵 속에 굴복시켰다면 6집 [e]는 4, 5집의 허물을 벗고 다시 한 번 끝없이 확장된 그들의 음악세계와 내공을 복합적인 장르의 믹스로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 소품집 [Lovescream]과 북앨범 [魂: Map the Soul]은 양과 질을 함께 발전시킬 수 있는 에픽하이 표 노력의 산물이라 할 수 있는데 Pe2ny와 타블로가 함께 만든 [Eternal Morning] OST 역시 대중이 경험해볼 수 없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에픽하이는 3인조 그룹이다. 미쓰라와 투컷 없이는 (감히 천재성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타블로의 실력은 돋보일 수 없으며 그를 모함하던 자들이 최근 법의 테두리 안에서 공식적으로 사라지면서 이제 팬들은 천재의 귀환을 바라고 있다. 길거리의 문화를 세상으로 끌어올린 한 남자와 그의 친구들의 공공연한 명곡들을 흑과 백이라는 단순한 기준으로 분류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노래들을 아쉬움 속에 놓치게 되었지만 선곡 과정 속에서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 서사시를 써 내려가는 이 그룹의 행보는 끝나지 않았고 대중음악을 평정해버린 예술가의 세계관은 깊이가 다르다는 것을. 이 Best 음반의 선곡들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에픽하이를 향한 작은 도움이 되기를 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The Best is yet to come. (글: Kid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