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발표한 솔로 2집 [Jung Jae il] 로부터 2년. 정재일이 새로운 앨범을 들고 돌아왔다.
여기 실린 음악들은 올해 6월 명동예술극장에서 상연되고, 정재일이 음악감독을 맡았던 연극 [그을린 사랑]을 위해 만들어진 것들로, 이 작업에 깊은 애정을 쏟았던 만큼, 그는 이 음악들을 앨범이라는 형태로 마무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앨범을 위한 작업에 앞서, 연극에 이 곡들이 사용되었던 순서와의 상관없이 음악만으로 새로운 드라마를 만들어 내자는 뜻을 세워 총 14곡을 골랐고, 음악적 필요에 따른 수정작업이 이어졌다. 그리고 이 작업은 음향 디자인 그리고 패키지 디자인의 양면에서 함께 이 앨범을 만들었다고 할 수 있는 두 사람(엔지니어 김병극, 디자이너 이경수)과 정재일 본인의 긴밀한 협의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앨범의 제작을 결심한 시점에서 이미 우리는 다음의 한 문장이, 연극과는 또 다른 이 앨범만의 독자적인 드라마를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There are truths that can only be revealed when they have been discovered.’
‘어떤 진실들은 스스로 발견할 때만 그 모습을 드러낸단다.’ (한국어 대본)
어머니의 마지막 편지로부터 아들과 딸의 모든 여정이 시작되고 끝을 맺는 연극의 전개에서 어쩌면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편지 속의 한 마디. 이 믿기 어려운 모든 이야기들이 침묵을 깨고 다시 살아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이 한 마디 때문이었으니까.
이 한 문장 속의 한 어절씩을 각 음악에 나누어 주고, 그것이 결국 한 문장으로 완성되는 형태로 앨범의 이미지는 확정되었고, 그 이면에는 가사 없이 음악/소리들만으로 표현되는 이 앨범을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이야기로 들어 주기를 바라는 정재일의 마음이 담겨 있기도 하다.
또한 이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데 있어서, 디자이너는 각 어절의 단어들을 스탬프로 제작해, 그것을 스스로 만든 음악들이 주는 다양한 감정 속에서 정재일 본인이 종이 위에 찍어 표현하고 디자이너가 재조합하여 완성하는 색다른 방법을 고안해냈고, 그 결과 이 음악들의 ‘원인’이 된 연극의 드라마 그리고 ‘결과’로서의 디자인이 음악과 하나로 엮여 비로소 앨범이 완결되는 독특한 경험을 우리는 할 수 있었다.
일반적인 의미의 음악 앨범, 공연뿐만 아니라, 영화, 연극, 전시, 퍼포먼스 등 예측하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표현 방식으로, 그리고 서양과 동양, 팝과 클래식 등 장르의 고정관념을 이리저리로 넘나들며 자신을 표현해 온 음악가 정재일의 새로운 활약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이 앨범은, 그래서 더 기쁘고 반가운 소식이다. 그리고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방식 또한 역시 참 정재일, 답다.
[Team Kabe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