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린셀리셀리느SellinSellySelline’라는 괴상한 이름은 2003년 부산에서 결성된 밴드의 이름으로, 현재 기타 겸 보컬을 맡고 있는 서지만 홀로 활동하고 있다. 현대적인 락 음악에서 전자적인 음악을 거쳐 지금의 형태로 변모하기까지 10년의 세월 동안을 공백 없이 이어온 -가늘고 긴- 공연 속에서 이번 정규 1집은 데뷔앨범이라기보다 베스트 앨범에 가깝다.
긴 시간 동안 장르를 바꿔가며 활동한 그에게는 그의 장르보다는 그가 가진 색감 자체를 좋아하는 이들이 남았고, 그들은 그를 ‘몽환적인 음유시인’이라 불러주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단 한 장의 앨범도 없어 오로지 공연으로만 단편적으로 그를 접할 수 밖에 없었던 대다수의 대중들에게 그는 ‘우울한 마이너 가수’에 불과했다. 암전된 조명아래, 7현 기타의 음역까지 비정상적으로 다운 튜닝된 기타와 한겨울 입김을 연상시키는 목소리, 대표곡인 ‘외팔소녀’ 나 ‘검은 아이’가 가지는 서늘한 느낌들… 두번, 세번 음미하며 감상하며 음미해야 비로소 피어날만한 음악이, 단편의 공연을 통해 ‘우울함’만 강하게 남겼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이미지는 더욱 굳혀져 호불호가 강하게 갈리게 된 듯하다.
뭐, 필자도 그가 ‘우울한 마이너 가수’라는 데 동의하는 바이다. 우울한 음악가이다. 음악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그의 음악 인생에 대해 하는 말이다. 그는 화가의 외동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사람들 앞에서 김건모의 ‘핑계’를 열창하는 그에게 던져진 아버지의 ‘잘하네’ 한마디로 그의 음악은 시작되었다. 하지만 예술가로 산다는 것, 그 자체의 의미를 알고 있는 아버지에게 외동아들의 열정은 ‘막아야만 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일찍이 이렇게 어린 시절부터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 좋아하지 않는 것을 해야만 하는 모순이 생겨나고, 음악이란 거짓말 속에 몰래 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열정으로 가득해야 할 나이에 일찍이 아버지와 가족과, 세상이라 불리는 것과 타협해야만 했고, 그것이 그를 ‘검은 아이’로 만들었는지도. 의과대학에 입학하였을 때, 그는 드디어 그의 세상이 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아직 이렇다 하게 내세울만한 것을 만들어내지 못한 그의 음악은 ‘의사의 취미생활 중 하나’정도로 치부 되어버리기 일수였다. 인디 뮤지션 보다는 의사 뮤지션으로 불려졌고, 열정과 진심은 반감되고 일부에서는 변질되어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그에게는 필수 조건이 되어버린 너무 다른 두 세상 사이에 끼여, 어디에도 두발을 담그지 못했다는 자격지심에 이쪽 저쪽 절룩이는 절름발이. 그것이 세상에 갓 나온 젊은 그의 모습이었고 그를 더욱 뒤틀어버린채, ‘몸파는 아이’로 자각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참 다행이고, 대견한 것이, 그럼에도 그는 숙연하고 처연했다는 것이다. 그저 묵묵히 공연을 계속해 나갔다. 쉬지 않고, 꾸준히 ‘한걸음에 한걸음씩 걷는 심정’으로 공연을 해나갔다. 때론 관객 수가 너무나 적어 수지 타산조차 맞지 않는 공연에 그가 고뇌하고 미안해할 때, 꾸준히 응원해주고 다독여준 이는 클럽 사장들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마음을 닫고 바닥만 바라보던 그에게 조금씩 친구들이 생기고, 어깨동무를 함께 할 동료들이 생겼다. 조언을 아끼지 않는 이들과 관심있게 비판하는 이들도 생겼다. 조금씩 조금씩, 아주 느리게 그의 진심이 소통하며 사람들을 움직였다. 그리고 도와줄 이 없이 혼자 끙끙거리던 녹음 문제를 해결할 프로듀서를 만나기에 이른 것이다.
이제 다시 생각해보라. 그의 음악을 허세 가득한 자의 사치스런 ‘우울함 그 자체’로만 볼 것인가, 뚜벅뚜벅 바람을 헤치고 걷는 자의 고뇌 가득한 ‘표현법 중 하나’로 볼 것 인가. 화려한 편곡에, 강렬한 비트, 예쁜 독주악기들로 화사하게 채우기 보다, 목소리와 기타만으로 자신의 세계를 표현하려고 고뇌하는 고집스러운 사람. 나는 이 앨범의 진정한 의미를 공연보다 더 훌륭한 사운드의 잘 갖춰진 음원을 만든 것에서 찾기보다는, 공연 외에도 언제든 그의 음악을 여러 번 음미할 수 있는 기회가, 드디어 생겨난 것에서 찾고 싶다. 잘 숙성된, 그리고 앞으로 이 앨범을 통해 더욱 깊게 숙성되어 갈 그의 고집스러운 진정성을 음미하게 된다면, 당신은 그를 그저 ‘우울한 마이너 가수’라고 쉽게 이야기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