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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K. 초심으로 돌아간 베테랑 뮤지션들
명품은 보존되며, 호흡해 나온다. 우리 음악사의 명품으로 기록될 S.L.K.의 음악
전 세계의 음악계에는 많은 슈퍼 그룹과 슈퍼 프로젝트가 대중 앞에 선을 보여 나왔다. 락의 역사에 있어서 첫 번째 슈퍼 그룹은 야드버즈(Yardbirds)로 기록된다. 영국을 대표하는 세 명의 기타리스트를 배출해 냈고, 아직까지도 신화로 불리어지는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으로 이어진 그룹이 바로 야드버즈였다. 에릭 클랩튼(Eric Clapton)과 제프 벡(Jeff Beck), 지미 페이지(Jimmy Page)를 배출해 낸 그룹 레드 제플린은 이후 여러 분모와 계파로 나뉘어졌으며 드러머 존 본햄(John Bonham)의 빈 자리를 그의 아들 제이슨 본햄이 대체해서 재결성 앨범 [Celebration Day]을 발매하는 산 역사마저 보여줬다.
대한민국 락 음악사는 짧은 시간적 배경에 비해 깊이가 큰 역사를 지니고 있다. 엄밀히 1970년대 초반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된 한국 락의 역사. 다행스럽게도 현존하며 활동을 이어 나오고 있는 명인들이 많은 것도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 입장에서는 행복일 수 있다. 2012년을 기해 과거의 명그룹과 명뮤지션들의 복귀와 부활이 꾸준히 전개되고 있다. 많은 메탈 키드들을 열광시킨 제로-지(Zero-G)와 크라티아(Cratia)의 화려한 복귀, 그리고 기념비적인 명곡들을 발표해왔던 H2O가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여기에 한국 헤비메탈의 시초로 분류되는 그룹 무당과 마스터 포 역시 활동을 시작하며 락 필드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위 3팀 사이에서 호텔링 게임처럼 위치한 그룹이 등장했다. 앞서 언급한 슈퍼 프로젝트, 대한민국 락 음악의 살아 숨쉬는 역사를 함유한 그룹, SLK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들의 등장은 시기적으로 적당하며, 이들이 선보일 음악은 내용적으로 탄탄한 기품을 지니고 있다. 3년여의 시간을 통해 조심스럽게 활동을 진행해 온 S.L.K.는 세 명의 명뮤지션이 함께 한다. 기타리스트 이근형과 베이시스트 신현권, 그리고 드러머 김민기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서로의 연주에 대한 담금질을 마친 이들은 각 트랙에 맞는 보컬리스트와 여러 세션 뮤지션들을 초빙해서 EP를 발매하기에 이르렀다.
S.L.K. 멤버 소개
그룹 S.L.K.의 음악은 보존되며 우리와 함께 호흡해 나온 명품이라고 먼저 소개하고 싶다. 멤버를 자세히 살펴보자. 한국 락 음악의 아름다운 시작으로 기록되는 그룹 작은하늘과 부활의 성공 이전에 이미 가장 대중적인 락음악으로 성공을 거뒀던 그룹 카리스마(Charisma)를 거쳐 가요계 최정상의 세션맨으로 활동해온 기타리스트 이근형. 고요함 속 묵직한 선이 담겨진 그의 연주는 예의 날카로운 라인에서 시간과 공간의 유려한 흐름을 이어 다양한 울림으로 흘러왔다. 이근형은 여러 세션 활동과 S.L.K. 앨범의 준비 기간 동안 ‘12지신’과 ‘허니기타스 프렌드’ 등의 기타 관련 공연에 꾸준히 참여하며, 블루스와 소울 필 가득한 자신의 음악을 여러 대중들에게 선보여 나왔다.
대한민국 음악의 70%는 신현권을 거쳤다는 풍문, 급기야는 ‘이미자에서 아이유까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수많은 음반 작업에 참여했던 베이시스트 신현권. 신현권의 베이스는 유려한 빛과 같은 다채로운 공간음이 특히 인상적이다. 1970년대 미8군 클럽밴드 히 파이브(He5)로 활동을 시작한 이후 어느덧 음악생활 40년을 넘어선 그는 국내 최고의 레코딩 뮤지션이기도 하다.
시나위를 거쳐 카리스마와 H2O, 페이퍼 모드(Paper Mode) 등의 명그룹을 거친 김민기의 드럼은 명불허전이며, 아직도 진행형에 있는 연주를 들려준다. 1993년 이후 솔로 앨범 [To Be]와 [과대망상] 등 두 장의 솔로 앨범을 발표했던 김민기는 간결함 속에 단단한 구성을 보이는 리듬워크가 특히 인상적인 테크니션이다.
그룹 S.L.K.는 자동차 브랜드의 명품을 연상시킨다. 이미지 자체만으로도 그룹 S.L.K.는 전달되는 느낌이 남다르다. S.L.K.의 그룹명은 신현권의 ‘S’와 이근형의 ‘L’, 김민기의 ‘K’에서 대표적인 알파벳 약자를 모아 만들어졌다. 멤버 전원의 화려한 경력과 음악적 깊이를 떠나 그룹 S.L.K는 가장 기본적인 음악적 겹과 결을 준비해 나왔다. 모든 수록곡에는 전형적인 락 음악의 구성 아래 풍성한 연주와 일치된 진보적 사운드가 담겨져 있다.
S.L.K EP “The Original Mindset"
이번 앨범의 제작 기간은 충분한 여유를 가지고서 적지 않은 시도와 진보적 과정 속에서 레코딩되었다. 이번 앨범의 또 다른 묘미는 각 트랙에 맞춰진 명 보컬리스트와 각 파트의 뮤지션들의 참여에 있다. 김종서와 이현우, 전혜선과 이도건 등의 보컬과 손무현, 신현필, 이홍래, 홍소진 등이 각 수록곡에서 자신들의 기량을 S.L.K.와 함께 안정적으로 완성해 냈다.
S.L.K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뮤지션들의 열정이 그득 담겨진 이번 앨범은 한스 짐머(Hans Zimmer)와 스티브 바이(Steve Vai), 에어로스미스(Aerosmith), 화이트 스네이크(White Snake), 알란 파슨스(Alan Parsons), 저니(Journey), 레드 핫 칠리 페퍼스(RHCP) 등 대형 그룹들이 작업을 진행했던 L.A의 DNA 마스터링 스튜디오에서 데이브 도넬리(Dave Donnelly)의 손을 거쳐서 최종 완성되었다.
전반적인 가사의 맥은 사회의 통념과 사회의 부조리한 현상에 대한 통렬한 일침, 그리고 지난 것에 대한 회상과 이상을 기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러 가지의 수식을 차치하고, 그리고 음악적 질감을 떠나서 한 번의 감상만으로도 S.L.K.의 이번 음반은 폭넓고 깊은 감성으로 청자를 감싸올 것이다.
S.L.K 수록곡 소개
자신들의 음악에 대한 축제의 분위기를 한껏 살린 듯 흥겨운 ‘Em Funky’는 해외 유명 연주자들의 음반과 견줘도 손색이 없는 넘버다. 격조 높은 연주를 구사해 온 신현필의 색소폰과 홍소진의 키보드는 신현권과 김민기가 구축한 견고한 리듬 라인에 실려 안정되게 음의 배열을 이루고 있다. 펑키한 전반부의 흐름은 이근형의 솔로에 이르러 큰 화폭의 그림으로 펼쳐지는 듯 화사하다.
기타의 매력적인 터치가 주는 풍부한 감성이 청자를 흡입력 있게 감아오는 ‘Untruth’는 자신의 이익이나 권력을 도모하기 위해 상식적이지 못한 의식으로 원칙을 위배하며 다수에게 피해를 주는 세상의 위정자들에 대한 외침의 내용을 담고 있다. 더 펄스(The Pulse)의 보컬 이도건의 매력적인 중저음이 인상적인 트랙으로 손무현과 이근형이 맞말린 트윈기타의 묘미 역시 놓칠 수 없는 명연으로 담겨져 있다. 참고로 이도건은 S.L.K.가 진행하던 여러 클럽 공연에서 함께 공연을 펼친 보컬리스트로서 향후 활동이 기대되는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1988년 역사적인 앨범으로 기록되는 그룹 카리스마의 원년 멤버들이 뭉친 ‘Who Am I’에는 김종서가 레코딩에 참여해서 30년이 넘는 우정의 연주를 펼쳤다. 현재 H2O와 글래머 솔 프로젝트에서 활동중인 김영진의 참여가 조금 아쉬운 이 트랙은 카리스마 시절, 즉 김종서의 절정이 실린 보컬 실력을 간만에 접할 수 있는 곡이기도 하다. 카리스마 시절 깁슨 레스 폴의 위력이 돋보였던 ‘깨어진 약속’을 연상시키는 이근형의 필과 신현권, 김민기의 부드러운 연주도 나름 인상적인데, 실업 문제와 사회적 고질병에 대한 무기력한 상태를 공감해보고자 완성된 곡이다.
이어지는 곡은 대한민국 락 역사에 당당히 기록되고 있는 그룹 작은하늘의 명곡 ‘은빛호수’의 리메이크 버전이다. 원곡의 느낌이 시나위의 보컬로 활동했던 김성헌의 육중한 보이스에 주요한 헤비함이었다면, 이번 앨범에 피처링으로 참여한 전혜선의 보컬은 제목 그대로 호수의 은빛 색채를 아련하고 포근하게 잘 표현해냈다. 보컬 전혜선은 청소년 드라마 ‘반올림’의 OST에서 일본 그룹 자드(Zard)의 ‘負けないで’을 리메이크해서 ‘지지마’를 선보인 바 있으며, 뮤지컬 ‘헤드윅’과 ‘밴디트’틀 통해 활동해 나오고 있는 엔터테이너이기도 하다. 또한 이 곡에는 듀엣 모노 출신의 키보디스트이자, 작곡가인 이홍래가 참여해서 희망어린 메시지가 담긴 엔딩으로 이끌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리움과 기억으로 인해 아파하는 사람들, 그들을 치유하고 포근히 안아주는 트랙이 바로 타이틀곡 ‘Mother’이다. 이 곡은 시간이 지날수록 흐릿하고 불투명해지는 기억의 조각들, 그럼에도 너무나 그리운 대상에 대한 마음을 잔잔하고 애잔한 선율로 가득 채웠다. 특히 5분 15초 이후 비틀즈(Beatles)의 ‘Hey Jude’의 기타 솔로를 자연스럽게 차용함으로써 곡의 정감을 더했으며, 보컬 이현우만의 중음이 주는 독특한 아련함은 떠나버린 그 날들에 대한 아쉬움과 소중함을 매끄럽게 이어주고 있다.
명품이라 함은 모든 대중들을 통해 보존되며, 그들과 함께 호흡해 나온다. 우리 음악사의 명품으로 기록될 S.L.K.의 음악. 이들의 음악은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넓고 깊은 감성의 울림으로 우리와 오래도록 함께 할 거라고 확신한다.
글/고종석(월간 Paranoid 기자.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