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중음악史 최초의 모던재즈 음반, 35년 만에 재발매’
‘이판근과 김수열, 강대관, 손수길, 최세진 등 한국 재즈를 대표하는 명인들이 함께 한 첫 레코딩!’
‘우리에게 재즈는 없다'
신중현과 엽전들의 74년 앨범 라이너 노트는 최경식 평론가의 단호한 명제로 시작한다. 한국 식 ‘로크' 앨범의 출현을 더욱 극적으로 빛나게 해 주는 수사일지는 모르겠으나, 그 이면을 들여다본다면 8군과 일반 무대 그 어디에서도 자신만의 보금자리를 갖지 못한 한국 재즈계의 서러움과 탄식의 한마디로 여겨짐도 무리는 아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재즈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그러하듯) 1930~’40년대 한국 대중음악의 태동기에서 가장 큰 축을 담당하고 있었으며, 뮤지션들에게는 가장 큰 무대이자 선망의 대상이기도 하였다. 바이올린 연주자이자 라틴 음악의 거장으로 꼽혔던 김광수와 스탠다드 재즈와 빅밴드의 선구자였던 엄토미를 한국 재즈뿐 아니라 악단의 효시로 꼽음에 있어 많은 사람들이 주저하지 않음은 아마도 그 완성도와 영향력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봉조, 길옥윤같은 한국 대중음악의 대가들은 이 ‘지붕'아래에서 탄생했다.
하지만, ‘60년대 대중음악의 큰 줄기가 팝, 가요로 옮겨가면서 많은 연주자들은 무대를 옮기고, 재즈씬은 암흑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 시절에 탄탄한 이론과 기초를 바탕으로 한국 재즈의 ‘불씨’를 보존하고 그것을 후대에 이어지도록 한 인물이 바로 이 앨범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마에스트로 이판근이다. 그는 한국 전쟁 직후 독학으로 재즈를 공부하면서 이론과 실전 양면을 섭렵하고 연주자로서뿐 아니라 이론가로서 최선배, 강태환, 정성조 등 수많은 대한민국 재즈의 대표적인 인물들을 양성해냈다. 뿐만 아니라 현재까지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가요계의 유명 가수/작곡가들을 양성해낸 이 마에스트로의 손길이 직접적으로 담긴 작품으로는 본작 <JAZZ: 째즈로 들어보는 우리 민요, 가요, 팝송!>이 최초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본 앨범의 제작에는 당시 가요계의 히트 프로듀서이자 독특한 기획으로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는 엄진의 재즈 앨범에 대한 갈망이 원동력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기획: 엄진'이라는 타이틀뿐 아니라 그에 걸맞는 앨범의 성격과 전반적인 사운드 메이킹을 중시했던 그는 이판근 마에스트로와 손잡고 ‘이판근 사단'의 최고 플레이어들을 모아 한국 재즈의 현주소를 기록에 남길 본격적인 재즈 앨범 제작에 대한 열의를 불태우게 된다. ‘78년에 녹음된 이 앨범이 중요한 가장 큰 이유는 당시의 재즈씬에 대한 가감 없는, 거의 유일한 기록물이라는 점이다. 김수열(색소폰), 강대관(트럼펫)과 같은 ‘70년대 대표적 재즈 뮤지션들의 본격적인 연주, 전통적인 업라이트 베이스 뿐 아니라 일렉트릭 베이스를 통해 새로운 색깔을 보여준 이수영(베이스)의 독창적인 플레이, 당시 막 귀국하여 그동안 해외 활동에서 얻어진 다양한 리듬의 텍스쳐들을 결합시킨 드러머 최세진, KBS관현악단의 주 멤버로 더 알려져 있지만, 한국 재즈계에서 손꼽는 ‘신동 피아니스트’로 자칫하면 기억으로만 남을 뻔 했던 손수길의 피아노 연주는 이 앨범이 아니었다면 구전으로만 전해 내려오는 설화가 될 뻔했다.
앨범의 타이틀에서 민요가 가장먼저 자리하고 있음은, 마에스트로 이판근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재즈 어법의 현지화(localization), 우리 전통음악과의 상호 이해를 바탕으로 한 한국형 재즈 어법의 발견과 발전에 대한 갈증, 그리고 그 고민과 연구에 대한 결과의 제시이다. 앨범의 시작을 여는 ‘아리랑'은 약 10분이 넘는 대곡으로, 이 앨범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을 대변하는 대표적 트랙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스피리추얼한 인트로와 함께 이어지는 재즈-훵크 드럼 브레익과 이어지는 중독적인 일렉트릭 베이스라인, 이판근 마에스트로가 인터뷰에서 밝힌 진정한 천재 피아니스트 손수길의 예측할 수 없는 피아노는 마치 블랙재즈(black jazz)나 스트라타이스트(strata east)와 같은 스피리추얼/소울재즈 명가 레이블의 그것을 듣는듯한 착각은 대한민국에서 발매된 재즈 앨범에서 경험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순간이다.
당시 홍콩과 동남아에서의 활동을 마치고 막 귀국한 드러머 최세진의 연주는 ‘70년대를 거치면서 완성된 소울재즈와 부갈루 패턴이 결합된 세련된 리듬이 곳곳에 녹아 있으며, ‘한오백년’, ‘가시리'를 거치는 순간 스피리추얼 재즈의 한국적인 아이디어와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 앨범의 제작과 맞물려 한국 재즈씬에서 새로 등장하는 키워드는 공간사랑과 야누스등 지금까지도 가장 의미 있는 움직임들로 기억되는 시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토양은 척박했다. 많은 뮤지션들이 생계를 위해 재즈씬을 떠났고, 최소한의 명맥이 유지된 채로 국내파 재즈 뮤지션들의 녹음 기록물들은 지금까지도 손에 꼽힐 정도이다.
가장 척박한 땅에서 핀 한줄기 꽃과 같은 이 순간은 그래서 더욱 의미 있는 기록이자 동시대에 대한 자극으로 작용하리라 믿는다.
(이상 해설지 일부 발췌)
*1978년 발매된 음반(대한음반제작소) 쟈켓을 재현한 LP 미니어쳐 커버
*이판근, 김수열, 손수길 등 참여 멤버들과의 인터뷰에 기반한 황덕호, 박민준의 해설
*오리지널 LP 라벨을 재현한 코스터 포함
*32페이지 부클릿(한, 영 해설)
*김트리오, 배인숙, 희자매에 이은 비트볼 팝스코리아나 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