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아름답지 않은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건 예술의 역사였다.
20세기 초 일렉트릭 기타가 발명된 이래, 기타의 파이오니어들은 온갖 소음과 굉음을 연주의 일부로 끌어들였다. 통제의 대상이 아니었던 노이즈또한 기술과 창작의 힘을 입어 숨겨져있는 아름다움을 빛낼 수 있었다.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을 정점으로 라이드, 슬로우다이브 같은 팀들이 노이즈의 신천지를 열었다. 어두컴컴한 클럽에 안개빛 노이즈를 뿜으며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는 그들을 슈게이징이라 불렀다. 구두를 뜻하는 shoe와 바라본다는 gazing의 합성어다. 말 그대로 연주하는 내내 고개를 숙이고 사운드 속으로 침잠하는 공연의 모습을 본 딴 말이다. 우리나라에도 아름다운 노이즈를 표현의 주된 무기로 삼는 밴드들이 있었다. 옐로우 키친, 데이드림, 잠, 우리는 속옷도 생기고 여자도 늘었다네 같은 팀들이 그 계보를 이어왔다. 이런 노이즈계 밴드들이 애호가들의 지지에도 불구하고 세력을 형성하지 못했던 건 그들 대부분이 단명했기 때문이다. 절정의 순간이 찾아오기 전에 사라졌다. 원없이 환호하기도 전에 아쉬운 작별 인사를 해야했다.
그래서 한국의 슈게이징은 일자전승 구도처럼 이어져왔다. 인디 신 안에서 차지하는 영역이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그 추상적 미학이 가진 매력은 꾸준히 파이오니어들을 불러 모으곤 했다. 그렇게 간혹 등장하는 슈게이징 밴드들, 그리고 그들이 내놓는 앨범은 텍스쳐이자 이미지로서의 음악의 지표를 세우곤 했다. 기타라는 악기로 발휘할 수 있는 상상력의 극점이자 공감각적 심상의 전위로서, 슈게이징의 대안은 그리 쉽게 떠올릴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비둘기 우유는 이 일자전승의 한국 슈게이징 신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해온 밴드중 하나다. 2003년 결성되어 꾸준히 공연을 하며 자신들의 사운드를 완성해왔다. 2008년 발매된 데뷔 앨범은 슈게이징 사운드를 꿈꾸는 밴드맨들에게 연구대상이 되곤 했다. 랩탑 박스를 쌓고, 몇 시간 동안 사운드 세팅을 하지 않아도 균일한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그들의 공연은 다른 뮤지션들의 감탄을 자아내곤 했다. 장기하와 얼굴들, 검정치마, 국카스텐 등 놀라운 신예들이 등장하며 인디신의 새로운 르네상스를 열어가던 2008-2009년 동안 그들은 이런 확고한 아이덴티티와 사운드로 로로스와 더불어 한국 슈게이징 신의 맥을 이어가던 주역이 되었다. 그런 정체성은 비둘기 우유가 해외와의 교류를 시도할 수 있는 무기이기도 했다. 2010년, 그들은 갤럭시 익스프레스, 이디오테이프와 함께 약 한 달에 걸쳐 미국 투어를 돌았다. 한국 밴드들의 해외 진출을 모토로 그 해 처음으로 시작된 서울소닉 프로젝트에 당당히 이름을 걸쳤던 것이다. 또한 미국 슈게이징 밴드인 블리스 시티 이스트와 스플릿 앨범을 발매, 공연과 음반이 동시에 미국에 소개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2012년에는 일본의 슈게이징 전문 레이블인 울트라 바이브에서 발매된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의 <Loveless>20주년 트리뷰트 앨범에 ‘Only Shallow’로 참가, 한국 슈게이징 신의 현주소를 보여줬다.
2003년 데뷔, 5년 만에 첫 앨범을 발매, 그리고 다시 5년이 흘러 두번째 앨범 <Officially Pronounced AlIVE>는 그들의 긴 침묵이 무위의 시간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결과물이다. 열곡이 담긴 이 앨범은 전작에 비해 스케일과 디테일, 양 쪽면에서 더욱 성장해있다. 보컬의 비중이 줄어든 대신, 연주로서 보여주는 표현력은 훨씬 늘어났다. 하나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만들어진 노래들은, 말하자면 영화없는 사운드트랙과 같다. 각각의 트랙들이 명확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듣는 이로 하여금 선연하되 다채로운 상상을 유발시킨다. 그것은 하나의 사건을 넘어 하나의 서사로 구현되는 상상의 사운드트랙이다. 1집의 주역이었던 드론 노이즈를 기반으로, 그들은 거기에 보다 명징한 점을 찍고, 선을 그어 구체적인 공간을 제시한다. 보컬의 비중이 비약적으로 줄어들었음에도 듣는 이를 충실히 인도하는 것은 그런 방법론에 기인한다. 하여, 기름종이로 덧댄 흑백의 풍경같았던 그들의 세계는 보다 명확한 채도를 가진 물감으로 칠해져 안개 자욱한 심상화가 되었다. 비둘기 우유의 음악이 보다 선연해지고 확장될 수 있었던 것은 리듬 파트의 견고한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이다. 머물 때 머무되, 나아갈 때 확실히 치고 나오는 리듬은 전작에 없던 댄서블한 순간을 만들어낸다. 이런 리듬으로 인하여, 비둘기 우유는 두번째 앨범을 통해 슈게이징 밴드에서 슈게이징에 기반한 록 밴드로 한 단계 올라섰다. 슈게이징이라는 변방에서 록이라는 중원으로 접근한 것이다.
<Officially Pronounced AlIVE>는 일본에서 먼저 발매됐다. 이 앨범을 두고 [롤링 스톤]일본판은 이렇게 평했다. “일본 밴드에는 없는 소박한 '테이스트'가 독특한 투명감을 빚어 낸다.” 이 문장에서 핵심은 소박함이란 단어일 것이다. 그것은 기교 이전의, 보다 본질적인 음악을 강조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소리’에만 함몰되지 않고 ‘음악’의 중요성을 놓치지 않는 미덕이, 이 앨범에는 있다. 한국 슈게이징의 확장이자 발전, <Officially Pronounced AlIVE>을 바라보는 핵심 열쇠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