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의 파워팝”
1집로 파워팝 스타일에서 일가를 이룬 썬스트록이 5년 만에 셀프타이틀 앨범 으로 돌아왔다. 빅스타를 증조할아버지로 모시고, 틴 에이지 팬클럽을 외삼촌쯤으로 생각하며 살아온 인생들이 모여 만든 음악답게, 노래는 솔직하고 담백한 청년의 모습이다. 지난 5년간 이들의 행보를 궁금해하던 팬들이라면 시대를 역행해 찾아낸 밴드 음악의 정체성이 한없이 기쁠 것이다.
“육즙이 살아있는 잘 익힌 쇠고기”
8비트 위주의 드럼 앤 베이스, 귀에 익숙한 멜로디, 친숙한 단어들로 쓰인 가사. 썬스트록의 음악은 언뜻 듣기엔 별다른 것이 없는 듯하다. 그러나 썬스트록은 ‘국내에서 이런 사운드는 의외로 우리가 유일하다’고 자신한다. 곰곰이 들어보니 확실히 그렇다. 그들의 사운드는 심지어 자신들의 1집과도 다르다. 물론 5년이나 지나 나온 게으른 앨범이 전과 같은 사운드라면 그게 더 실망이겠지만, 문제는 변화의 방향이 어느 쪽인가다. 잘라 말하자면, 이들은 오히려 시대를 역행하고 있다. 1집이 틴 에이지 팬클럽과 닮은 전형적인 파워팝 사운드였던 반면 2집에는 기타, 드럼, 베이스로만 구성된 팍팍한 사운드를 기반으로 날카로운 드라이브 톤의 기타, 1분이 넘는 기타 솔로, 20년 전쯤에서 회귀한 듯한 긴 인트로 등 그동안 한국의 대중가요가 기피했던 요소들이 여과 없이 담겼다. 리버브와 딜레이 등 공간계 이팩터의 질은 높아졌지만, 그 쓰임은 확실히 줄었고 메트로놈에 딱딱 맞춰 편집하는 지난한 과정도 그냥 지나쳤다. 그래서일까? 이들의 음악은, 너무 뒤집지 않아 잘 구운 쇠고기처럼 육즙이 살아 있다.
“밴드 음악으로서의 정체성”
’요즘 몇몇 프로듀서는 드럼의 킥 소리, 스네어 소리를 한 두 노트 녹음한 후 그걸 재배열해서 드럼 트랙을 완성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건 밴드 음악이 아니에요.’ 물론 모든 인디 밴드가 이 정도까지 기계적으로 음반을 만들진 않지만 많은 밴드의 음악이, 송 라이터가 혼자 편곡하거나 제작사에서 정해준 프로듀서의 강한 입김 하에 만들어지는 건 사실이다. 반면, 썬스트록은 멤버 전원이 각자의 파트를 편곡한다. ‘물론,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서로 알려주기도 하지만 보통 다른 사람이 알려준 걸 그대로 쓰려고 하지 않아요. 괜한 고집이죠.” 하지만 그런 고집이 밴드 음악의 정체성이 아닐까? 밴드 음악을 고집하는 이들은 송라이터가 통기타로 대강 녹음한 멜로디를 듣고 각자 파트를 편곡한 뒤 합주로 맞춰 보는 오래된 방식을 선호한다. 앨범도 거의 그 결과물 그대로를 담고 있어 언뜻 들으면 서투른 것 같지만 질리지 않는다.
“록음악의 멜로디에 한국말을 붙이는 건 정말 어려워요”
또 다른 큰 변화는 가사에 있다. ‘종이로 만든 유리 위의 그림자’, ‘긴 말은 머리맡에 두고 긴 잠은 하늘 아래서’와 같이 쉬운 단어로 이루어졌음에도 언뜻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는 난해한 가사가 특징이다. ‘펄 잼의 멜로디에 한국말 가사를 붙이면 이상하게도 뽕짝이 돼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가사의 내용과 함께, 발음이 멜로디와 얼마나 어우러지는지를 우선적으로 고려했어요. 그러다 보니 조금 특이한 가사가 되어버렸어요. 이걸 단순히 문예창작과 신입생의 멋 내는 문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음반 전체를 두 번 정도 들은 후에야 그 의미가 분명하게 전달되는 가사는 확실히 튀지 않고 매끄럽다. 지난 5년 동안의 노림수가 수포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사진가 브루스 어셔와의 인연
심플하고 강렬한 한 장의 사진으로 아웃 레이 전체를 뒤덮은 재킷 사진은 호주 출신의 유명 사진가 ‘브루스 어셔’의 작품이다. 리더 박세회는 지난여름 국내의 한 남성 패션 잡지에서 1980년대부터 서핑과 해변사진을 찍고 있다는 브루스 어셔의 작품을 발견하고 바로 접촉을 시도했다. 구글링으로 이메일 주소를 알아내 ‘한국의 인디 밴드’라 밝히고 사진의 재가공을 허락 받았다. 후문에 의하면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에 흔쾌히 허락했다고 한다. 핑크 빛이 살짝 감도는 해변을 배경으로 스케이트 보드를 달리는 소년의 실루엣은 썬스트록이 음악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정조와 거의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 글 : 석기시대 레코드
1. Don’t let it go
2. 차가운 손
3. 나랑 가요
4. 치골의 멍
5. 텅 빈 눈빛
6. Pale Fire
7. 시월의 봄
8. 처음은 순간
9. 운명의 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