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쿤의 특색을 근사한 형태로 발로시킨, 클래식 소품을 그만의 섬세하고 서정미 가득한 표현으로 들려주는 앨범'
스티브 쿤(Steve Kuhn)은 일찍이 수수한 피아니스트의 대명사였다. 연주력은 옛날부터 정평이 나 있었지만, 작품에 대한 운이 없었기 때문에 명성에 비해 커다란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하지만, 일본 비너스에서 앨범을 발표하게 되면서 그는 아마 자신도 깨닫지 못했던 매력적인 특색을 발휘하게 되었다.
쿤을 비롯하여, 최근 한국에서도 베스트 음반이 발매된 에디 히긴스(Eddie Higgins)나 클로드 윌리암슨(Claude Williamson) 등, 이 레이블에서 앨범을 발표함으로써 그때까지의 과소평가에 매듭을 지은 연주자가 적지 않다. 비너스의 오너로 프로듀서이기도 한 테츠오 하라의 안목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그는 실력 있는 연주자에게 진가를 발휘하게 하는 무대를 마련해준다. 이 점에 있어 비너스만큼 보란 듯이 솜씨를 발휘하는 레이블은 없다.
쿤은, 훨씬 이전부터 견실한 활동을 계속하여 왔으며, 작품도 여유롭게 남기고 있다. 내용에도 창조적인 것이 많으며, 훌륭한 업적을 거듭하여 온 뮤지션 중의 한 사람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인기 면에서는 아직까지 확 두드러진 바가 없었다. 견실한 나머지 또는 상업성과는 멀리 하여 왔기 때문에 특별하게 커다란 화제를 부르지 못했다고도 할 수 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쿤에 대한 과소평가는 그에게 있어서는 훈장일지도 모른다.
1938년 4월 24일에 뉴욕주 브룩클린에서 태어난 쿤은, 5세에 피아노 레슨을 시작하였으며, 13세 때에는 보스턴의 댄스 밴드에서 연주를 했다. 학업성적도 우수하여, 1959년에 하버드 대학을 졸업하였다. 한편으로 프로 뮤지션이 되는 꿈도 버리지 못해, 졸업과 동시에 케니 도햄(Kenny Dorham) 그룹에 참가한다. 그곳에서 연주를 인정 받아 한 때는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 쿼텟에서 맥코이 타이너(McCoy Tyner)를 대신하여 피아노 자리에 앉았던 적도 있을 정도이다. 이어서 스탄 게츠(Stan Getz) 그룹으로 향하였지만, 1964년에 아트 파머(Art Farmer)의 제의를 받아 그가 결성한 쿼텟에서 1966년까지 재적하였다.
파머의 쿼텟에서 스웨덴으로 연주 여행을 떠난 것이 계기가 되어 쿤은 그룹을 탈퇴한다. 그대로 1967년부터 1971년까지 같은 지역인 유럽에서 활동한 후, 뉴욕으로 되돌아와 자신의 그룹이나 파머, 게츠 등 옛날 리더 아래에서도 연주를 한다.
1979년에 싱어인 쉘라 조던(Sheila Jordan)과 결성한 그룹은, 쿤의 경력 가운데서도 커다란 각광을 받은 것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이 그룹에서도 창조적인 음악성을 전면에 내세웠기 때문에 일반적인 대중성으로는 연결짓지 못했다.
그런데, 백인 피아니스트라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빌 에반스(Bill Evnas)이다. 그로 대표되는 내성적인 피아노 스타일을 쿤 또한 가지고 있는데, 단, 독특한 서정주의를 표출함으로써 인상적인 플레이를 선보인 에반스에 비해 로맨틱한 부분을 적극 배제하고 창조적인 세계를 추구하여 보인 것이 바로 쿤이다.
그것이 원인이 되어 불행을 초래하였는지, 쿤의 연주에는 난해하다는 이미지가 항상 따라붙어 다니게 된다. 그런데 1966년에 녹음한 'The October Suite: Three Compositions of Gary McFarland'(Impulse!)나 같은 시기에 사이드맨으로서 참가한 아트 파머 쿼텟의 작품 등에서는, 에반스와는 다르면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서정적인 플레이도 추구되고 있었다.
이러한 서정적인 부분은, 1990년대 이후, 적극적으로 나타나게 된 요소이다. 특히 비너스에서 발표되는 여러 작품에서는, 예전의 날카롭던 긴장감을 대신하여 온화한 터치가 커다란 매력으로 다가 온다. 그것은 쿤이 그에 어울리는 연령이 되어 원숙함에서 나오는 표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거슬러 올라가보면 그는 이러한 타입의 연주로 데뷔를 하였다. 그러한 것들을 생각하면, 지금에 와서 그가 진정으로 피아노를 마주하게 되었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는, 클래식 소품을 확실히 그다운 섬세하고 서정미가 넘치는 표현으로 들려준다. 이것이야말로 과연 그의 특색을 올바른 형태로 발로시킨 앨범이다. 이러한 레코딩을 기획한 비너스의 센스, 그리고 그것을 보기 좋게 훌륭한 연주로 대답한 쿤의 의지, 양자의 훌륭한 팀웍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역작이다.
1. I'm Always Chasing Rainbows / 쇼팽:즉흥환상곡
2. Pavane For A Dead Princess / 라벨: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3. Moon Love /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제5번 2악장
4. One Red Rose Forever / 그리그:그대를 사랑해
5. Swan Lake / 차이코프스키: 백조의 호수
6. Nocturne / 쇼팽: 야상곡(녹턴) 작품 9-2 내림마장조
7. Reverie / 드뷔시: 꿈
8. Prelude In E Minor / 쇼팽: 전주곡 작품 28-4 마단조
9. Full Moon And Empty Arms /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10. Pavane / 포레: 파반느
11. Lullaby / 브람스: 자장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