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여섯의 12월 7일, 남자친구와 헤어진 날. 일이라도 바쁘면 잊기 쉬웠으련만, 불행히도 주35시간 노동 시간을 보장 받는 은행원인 저는 남아도는 시간 속에 넘쳐나는 잡념을 주체할 수 없어 화가 치밀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스무 살 때처럼 다시 음악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내가 다룰 줄 아는 악기는 드럼 뿐이니까, 함께 할 멤버를 찾아야 하잖아요. 한 2년 동안은 인터넷 이곳 저곳을 뒤졌을 거에요. 우연히 사운드클라우드에서 내 사랑 틴에이지 팬클럽, 아니 프라이머리 파이브 같은 느낌이 물씬 나는 음원을 들었어요. 데모에서 느껴지는 진한 락의 향기. 본토 느낌이 물씬 난다 싶었더니, 진짜배기 스코티쉬 스티븐을 그렇게 만났어요. 다행히도 드럼은 공석, 그 자리를 야무지게 꿰차고 들어가 드럼, 베이스, 기타의3인조 밴드가 만들어졌어요.
무대에 설 생각을 하며 설레던 차에, 베이시스트가 고국으로 돌아간다고 했어요. 베이시스트가 필요했죠. 레코딩 프로듀서로 활동하고 있는10년지기 동네 친구인 허정욱이 떠올랐어요. 베이스 연주자를 많이 알 거라 생각하고 노래를 들려줬더니, 본인이 베이스를 하겠다며 그 자리에서 베이스를 하나 사버리던데요.
그런데 이 멜로디엔 코러스 보컬이 또 필요하거든요. 이번에는 스티븐이 목소리는 물론이요 예쁘고 착하기까지한 현민 언니를 데려왔어요. 4인조 밴드 ‘리아스코’는 이렇게 만들어졌습니다.
스티븐의 신박한 기타에 속이 꽉찬 민 언니의 코러스 그리고 미묘한 뽕끼가 흐르는 허정욱의 베이스 그리고 제 백치 드럼은 이상하게도 잘 어울려요. 모여서 합주하면 신나고 곡을 완성시켜 가면 뿌듯합니다. 행복을 노래하는건 아니지만, 헹복한 음악이에요.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연주하고 있거든요.
이제 첫 발입니다. 리아스코의 첫 EP, 앞으로도 신나게 더 좋은 음악 보여드리겠습니다.
글/윤성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