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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자켓에 비매품 표시가있으나 나머지는 새상품과 같음
이바이저(E-visor) 록과 디스코, 함께 춤추는 풍경
2011년 11월 헬로루키 출신의 이바이저는 스물넷 동갑 친구 윤은선(보컬)과 남수연(작곡)으로 구성된 밴드다. 공연 일정이 잡히면 연주하는 친구들 셋과 함께 합주를 거듭한 후 무대를 구성하지만, 작품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은 두 여성으로부터 나온다. 둘은 고교시절 학원(서울재즈아카데미)에서 만나 서로 다른 대학 실용음악학과(각각 보컬 전공, 컴퓨터음악 전공)에 진학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5년을 붙어 다녔다.
윤은선은 레드 핫 칠리 페퍼스나 라디오헤드 같은 록 밴드를 좋아한다. 각종 일렉트로니카 음악에 꽂혀 있던 시절의 남수연은 윤은선에게 입문의 의미로 다프트 펑크와 케미컬 브라더스를 권했다고 말한다. 둘은 아이돌을 화두로 삼아 사소하게든 진지하게든 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둘은 다르지만 풍성한 대화를 즐긴다는 점에서 비슷하고, 다행히도 서로 많이 말을 하는 만큼 서로 잘 들어주는 것 같다. 지금 우리가 만나는 그녀들의 음악도 그렇다. 둘은 각자의 취향이 있지만 비트를 살리든 목청을 살리든 어쨌든 땀을 부르는 신나는 음악을 좋아한다. 남수연이 고안했을 기계적인 디스코 사운드가 쏟아지는 가운데, 윤은선은 다른 록 밴드와 경쟁하듯이 기운차게 노래한다. 연주를 맡은 친구들은 때때로 남수연의 편곡을 강화하고, 그러다 문득 윤은선의 보컬을 부각하는 일에 집중한다. 결국 상이한 두 캐릭터를 고루 살리는 작업이다.
남수연과 윤은선이 2011년 헬로루키를 찾아갔을 때만 해도 모든 것이 막연했다. 그냥 여러 친구들과 함께 재미있는 걸 해보자는 생각뿐이었고, 자신들이 아닌 진짜 뮤지션들에게 좋은 결과가 돌아갈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대회는 그들에게 뮤지션 자격을 부여했다. 갑자기 앨범 작업을 같이 하자는 회사가 붙었다. 생각이 많아졌다. 일단 넘치던 의욕을 조금씩 배제하는 것으로 팀을 재정비했다. 헬로루키 당시 8인조였던 대형밴드 이바이저는 곧 5인조로 축소됐고, 이제는 윤은선과 남수연이 핵심 멤버로 남았다. 그리고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2년 전에는 무대에 선 우리가 재미있으면 그만이라고 믿었지만, 이제는 곡을 쓰고 합주할 때마다 우리가 뭘 해야 사람들이 즐거울까를 먼저 생각한다고 그들은 이야기한다. 한때는 떡볶이집 같은 곳에서 우리 음악이 나오는 미래를 생각했지만, 이제는 눈앞에서 만나는 관중이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덧붙인다.
고민 끝에 완성되는 화끈한 공연은 이들을 언제나 들뜨게 한다. 하지만 사실은 매번 고단한 일이다. 두 여성은 연습 및 무대 일정이 잡힌 날이면 노트북, 오디오 인터페이스, 건반, 각종 케이블, 스탠드를 늘 어깨에 짊어져야 한다. 때로는 큰 맘 먹고 택시를 타기도 하고 세션하는 친구들과 함께 나눠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언제나 부담스럽다. 어린 날에는 이 짐을 바라보면서 눈물이 나기도 했지만, 그래도 자신의 음악에 따른 숙명이라고 남수연은 이야기한다.
남수연의 또 다른 숙명이 있다. 매일 출근하듯 집 근처 카페를 찾아가 곡을 쓰는 일이다. 30분 만에 나오는 날도 있지만 불 붙은 날이면 열세 시간을 앉아 있다가 온다. 하지만 미련하지는 않다. 오히려 예민해서 걱정이다. 하루 좀 잘 풀리면 불안하다. 내일은 재미가 없어서, 혹은 만족스럽지 못해서 자신을 미워하느라 많은 시간을 낭비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매일 간다. EP에 실린 노래들은 남수연이 매일 들르던 카페에서 작업한 기록들의 일부다. 어떤 노래는 하루만에 후딱 해치웠고, 어떤 건 윤은선과 만나 상의한 끝에 실마리를 찾았다. 어떤 경우는 수 없이 뒤집고 엎은 끝에 겨우 나왔다. 아래는 그들이 직접 전한 수록곡들의 후일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