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티지 사운드의 모던한 해석, ‘BLUE VELVET – Fell, Fall, Foolish’
너바나의 적자임을 외치던 펑크밴드에서 자신들만의 색깔을 찾기 위한 노력 끝에 그 달콤한 열매를 빚어냈다. 홍대 인디씬에서 호주 멜번의 라이브 클럽을 거쳐온 블루벨벳의 첫 번째 정규 앨범인 Fell, Fall, Foolish의 첫 느낌을 말하자면 여전히 남아 있는 Grunge의 향기에 Blues의 끈적함을 더해 비참한 좌절과 실망, 누구나 한 번쯤은 겪는 부조리함을 원초적인 그리움을 향한 온기로 감싸고 있었다.
앨범은 흡사 축축하게 젖은 빨래 같은 초기 너바나와 70년대 펑크록 밴드의 기타톤의 재현으로 시작하는 [Air zeppline]으로 시작한다. 마치 전설적인 밴드 ‘The Cars’가 머릿속에서 그려질 만한 트랙으로, 이들이 호주 멜번의 라이브 씬에서 활동할 때 만들어진 곡이다. 곤욕스러운 월요일 아침을 억지로 시작해야만 하는 고충을 토로하며 일어나야 하는 현실과 그 달콤한 꿈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은 두 가지 자아가 소용돌이치듯 나누는 대화를 잔뜩 잠겨있는 진득한 목소리로 내지른다. 어딘지 광기가 잠재된듯한 찢어지는 기타 솔로로 시작해서 톱날 같지만, 어딘가 유머러스한 느낌의 기계적인 기타리프로 이어지는 앨범의 타이틀이자 두 번째 트랙 [Werewolf in the blue moon]은 ‘런던의 늑대인간’이라는 영화에 영감을 얻어, 여행 중 잘못된 선택으로 들어선 길에서 늑대에게 습격을 당해 결국엔 늑대인간이 돼버리는 영화의 내용처럼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늘 후회를 하게 되는 스스로를 투영하고 있다.
경쾌한 비트로 뒤이어 귀를 자극하는 [Fear and loathing in underground], 지하실의 혐오와 공포는 이들이 오랜 기간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지하실의 습기를 한껏 머금고 보컬과 코러스의 비명이 이어진다. 지하실이라는 뜻과 언더 뮤직씬을 중의적으로 일컫는 Underground는 이들이 오랜 기간 머물렀던 홍대씬에서 느꼈던 주류 음악의 답습을 벗어나지 못한 언더그라운드 뮤직에 대한 푸념과 결국 그 속에서 함께 벗어날 길이 없었던 자신들의 무기력함에 대한 분노를 시원한 기타플레이와 함께 내던진다.
”영화 인투더 와일드 같은 삶을 살아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렇게 객사하고 싶지는 않아서 그냥 마음 한곳에 담아 두려고 합니다.” [여행자]는 이 앨범의 주된 테마인 그리움과 어딘가로 떠나는 이의 마음을 묵직한 베이스라인에 담아낸다. 그 속에서 귀를 간지럽히는 키보드의 처량한 사운드는 그 자체로 오래된 LP트랙을 듣는 느낌이며, 혼자 혹은 친구와 여행을 떠나기 직전의 기대와 뭉클함을 아련한 코러스와 절제된 솔로라인이 리스너의 감성을 자극시킨다. 이번 정규앨범의 이름이기도 한 [Fell, Fall, Foolish]는 깨달음에 대한 갈망을 원했던 1988년 풀숲이 흔들리는 들판의 어린 시절을 위한 소곡으로, 그 시점에서부터 현재까지 늘 답에 대한 고민과 이에 대한 실패를 거듭할수록 느껴지는 현재의 무기력함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느껴보았을 법한 자기 자신에 대한 변명과 푸념, 그리고 언제나 푸근하고 고민 없던 그 한때를 그리워하는 향수를 때로는 애절하게, 그리고 뼈저리게 전한다.
[Patt]은 술집에서 우연히 만난 뚱보 친구의 감언이설에 속아 도둑질에 가담한 꼴이 되어 경찰에게 포위당하게 된 비운의 화자를 빗대어 억울한 누명을 쓰고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뀌어버린 뒤죽박죽의 세상에 대해 냉소적으로 비꼬고 있으며, 앨범의 또 다른 타이틀곡에 준하는 일곱 번째 트랙 [Harley Quinn]은 밴드가 품고 있는 생생한 날것의 그런지하고 펑크적인 록 사운드를 거침없이 뿜어내며 곡 중반을 관통하는 기타솔로와 변화무쌍한 리프가 분명히 당신의 온몸을 들썩거리게 한다. [향수병]은 이들이 호주로 떠났던 음악의 여정을 마치고 귀국하였을 때 느꼈던 그곳의 그리움에 대한 향수병을 노래하는 곡이다. 곡의 스타일은 심플한 컨트리 로큰롤로 누구나 부담 없이 다가서게 되지만, 곡에서 노래하는 고독함과 상실감을 느낀다면 그저 흥얼거리며 듣기에는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질 것이다.
밴드에서 리드기타와 보컬을 맡고있는 John의 자조섞인 메시지가 담긴 [Automatic]은, 단 한 줄의 영어로 된 가사를 쉴 새 없이 읊조리는데 단순한 가사와는 달리 기대를 넘어서는 다채로운 곡의 구성과 변주, 리드미컬한 드럼과 이를 뒤따르는 베이스라인은 가사처럼 쉽사리 흘려 들을 수 없는 완성도를 보인다. 냉전시대 당시에 어울렸을 법한 [You just smile]은 다른 세상에서 만났다면 친구가 될 수도 있었던 시대의 젊은이들이 서로에게 총을 겨누고 서로에게 폭력을 사용하게 하는 전쟁과 분쟁을 유감스럽게 생각하며 쓴 곡으로 90년대 그런지록에 열광한다면 넘어갈 수 없는 트랙이 된다. 앨범의 마지막 트랙이자 드러내놓은 히든넘버 [피노키오]는 들고양이처럼 거칠지만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청춘들에게 바쳐 비틀즈의 향기가 물씬 묻어나는 부담 없는 어쿠스틱 발라드곡으로 땅거미가 지는 석양으로부터 흐리고 어두운 그믐밤을 지나 구름 사이로 태양이 얼굴을 내밀 듯이 앨범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어딘지 모를 빈티지함이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것 같지만 군데군데 예리하게 날 선 기타사운드와 처절한, 그리고 때로는 관망적인 보컬 속에 묵직한 베이스가 경쾌한 드럼과 함께 당신의 귀를 자극한다. 그런 빈티지함을 단순히 로우파이라고 하기엔 다소 모던하지만 추억을 그리는 그 시절의 빛바램이 곳곳에 묻어나는 블루벨벳의 이번 정규앨범은 리스너로 하여금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하게 하기에 충분할 것이다.
1. Air zeppelin
2. Werewolf in the blue moon
3. Fear and loathing in the underground(지하실의 공포와 혐오)
4. 여행자
5. Fell, Fall, Foolish
6. Patt
7. Harley quinn
8. 향수병
9. Automatic
10. Put the gun down
11. 피노키오